곽재은 유괴 살해 사건
1. 개요
곽재은 유괴 살해 사건은 1990년 6세 곽재은 양이 유괴되어 살해된 사건이다. 범인 홍순영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허영심과 거짓된 삶을 살았으며, 경제적 어려움과 남자친구와의 관계 문제로 범행을 계획했다. 홍순영은 곽 양을 유인하여 살해하고 금품을 요구했으나,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 후 공범이 있다고 진술하며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곽 양의 시신 은닉 장소를 자백했다. 홍순영은 사형 선고를 받고 1991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여러 대중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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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괴 -
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
19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발생한 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은 빚에 시달리던 전현주가 박나리 양을 유괴하여 몸값을 요구했으나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사건으로, 경찰의 늦장 공개수사와 범인의 허황된 삶 등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
아동 유괴 -
린드버그 납치사건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이 1932년 유괴되어 사망한 린드버그 납치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용의자 체포 후에도 유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유괴 사건 -
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
19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발생한 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은 빚에 시달리던 전현주가 박나리 양을 유괴하여 몸값을 요구했으나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사건으로, 경찰의 늦장 공개수사와 범인의 허황된 삶 등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
대한민국의 유괴 사건 -
조두순 사건
조두순 사건은 2008년 조두순이 초등학생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사건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 관련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
1990년 대한민국 -
3당 합당
1990년 노태우 정부 주도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3당 합당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 도모, 각 당 총재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내각제 개헌 조건 등의 배경 속에서 거대 여당 탄생 및 정국 주도권 확보를 가져왔으나, 지역주의 심화 및 민주 진영 분열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1990년 대한민국 -
이문옥
이문옥은 감사원 감사관 재직 중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감사 중단 사실을 내부 고발한 공무원 출신 정치인으로, 파면과 복직, 부패방지법 제정 촉구, 민주노동당 부대표 활동 등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이문옥 밝은사회상'이 제정되었다.
2. 사건 이전의 홍순영
홍순영은 1967년 서울특별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허영심이 강하고 윤리의식이 희박했다. 숙명여대에 진학하고자 했으나 실패 후 학력을 위조하여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했다. 가짜 학생증을 만들고, 집에는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주었으며, 4년 동안 도강을 하고 MT 등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으며 심지어 졸업식까지 참석했다. 당시에는 전산화가 완전히 되지 않아 이런 가짜 학생 행세가 가능했다. 졸업 후에는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전형적인 공상허언증 증세를 보였다.
홍순영은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결국 유괴를 결심하게 되었다. 범행 당일 유치원 주변을 서성이다가 우산꽂이에 있는 우산에서 곽재은 양의 이름을 보고 범행 대상을 정할 정도로 대담했다.
2.1. 유복한 가정 환경과 허영심
홍순영은 1967년 10월 12일 서울특별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며,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어야 했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남들보다 우월해 보여야 직성이 풀렸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숙명여대에 입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숙명여대 86학번 행세를 했다. 가짜 학생증을 만들고, 집에는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주었으며, 4년 동안 도강을 하고 MT 등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고, 심지어 졸업식까지 참석했다.
홍순영은 처음에는 숙명여대생인 척하면서 다시 입시를 치러 정식으로 입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교생활과 자신의 거짓말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쓰느라 정작 공부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사람들은 홍순영이 진짜 숙명여대생인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 남자친구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거짓된 생활, (가짜) 취직 후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남자친구 부모의 결혼 반대 등 여러 요인이 겹쳐 홍순영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2.2.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
홍순영은 숙명여대에 입학하지 못했으나, 가짜 숙대 86학번 행세를 하며 4년간 대학 생활을 하였다. 가짜 학생증을 소지하고, 집에는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주었다. 4년 동안 도강을 하며 모든 수업을 듣고, MT 등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으며 졸업식까지 참석했다. 당시에는 전산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이러한 가짜 학생 행세가 가능했다.
홍순영은 처음에는 숙명여대생인 척하면서 그해에 다시 입시를 치러 정식으로 입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교생활과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거짓으로 대응하는 데 신경을 쓰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홍순영이 진짜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졌고,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 남자친구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2.3. 거짓된 삶과 경제적 어려움
홍순영은 1967년 10월 12일 서울특별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거짓말로 남들보다 우월해 보이려 했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숙명여대 86학번 행세를 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가짜 대학생 신분이 들통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소문은 남자친구에게도 전해질 위기에 놓였고, 결혼을 추진했으나 남자친구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홍순영은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하며 그 해에 다시 입시를 치러 정식으로 입학하려 했으나, 학교생활과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 봐 거짓 대응에 신경 쓰느라 공부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홍순영이 진짜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졌고,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 남자친구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짓된 삶을 살아온 홍순영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가짜 대학생 시절에는 등록금을 핑계로 받은 돈을 썼지만, 가짜 취직 후에는 돈을 받을 수 없었고 오히려 집에 월급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는 고졸 백수였기에 돈이 나올 곳이 없었고, 경제적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만이 이 상황을 끝낼 기회였지만, 남자친구 부모의 반대로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3.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
1990년 서울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던 곽재은 양(당시 6세)이 유괴되어 살해된 사건이다. 범인은 23세 여성 홍순영으로,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하며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홍순영은 1990년 6월 25일, 곽재은 양을 유치원에서 하교시킨 뒤 엄마의 지인으로 속여 숙명여자대학교까지 유인하여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아내고, 음악대학 건물 후미진 곳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곽재은 양이 유괴 및 살해된 날짜는 1990년 6월 25일이다. 이후 곽 양의 집에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살해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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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곽재은 양 유괴
1990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서 살던 곽재은 양(사망 당시 6세)은 단지 내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곽재은 양은 혼자서 등하원을 했다.
그런데 1990년 6월 25일, 집에 돌아와야 할 12시가 되어도 곽재은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까지 갔지만, 교사는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30분 전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계속 수소문하다가 오후 5시에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다.
3.2. 금품 요구 및 경찰 수사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 5시에 젊은 여성이 곽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은이를 데리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고 50"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강동경찰서는 이를 추적하여 공중전화에서 발신했음을 밝혀냈다. 이후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서 계좌번호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예금주를 댔다.[] 곽 양의 어머니는 우선 6월 27일 오전에 5, 다음 날 오전에 25을 범인이 알려준 조흥은행 계좌에 송금했으며,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흥은행 본점 및 서울시내 모든 지점 그리고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했다.
그 이틀 후인 6월 29일 오후에 드디어 범인이 300을 인출한 기록이 포착되었는데, 형사들이 배치된 조흥은행이 아닌 국민은행 본점의 ATM이었다.[] 이에 형사들에게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고 약 2시간 후 명동 롯데백화점 내부의 조흥은행 출장소 ATM에서 10분간 2600을 인출했다.
3.3. 범인 체포
형사들은 명동 롯데백화점의 조흥은행 ATM으로 달려갔고, 막 돌아나오던 키가 매우 작은 젊은 여성을 주목했다.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해 추적에 나선 경찰은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홍순영을 체포했다.
홍순영은 "공범이 있다"고 거짓 진술을 했고, 이에 속은 경찰은 홍순영을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울역까지 데려가 공범을 유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홍순영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 자살을 시도했으나, 기관사가 급정거를 하여 경상만 입었다.
재은의 행방을 추궁했으나 동문서답을 하던 홍순영은 결국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다.
3.4. 범행 동기 및 과정
홍순영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허영심이 강하고 윤리의식이 부족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숙명여대 86학번을 사칭하며 가짜 대학생 생활을 했다. 가짜 학생증을 만들고,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집에 내놓는 등 4년 동안 주변 사람들을 속였다. 심지어 가짜 졸업 후에는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홍순영은 처음에는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면서 다시 입시를 치러 정식으로 숙명여대에 입학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생활과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 봐 거짓말을 하는 데 신경을 쓰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홍순영이 진짜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남자친구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거짓된 생활을 하는 동안 홍순영은 등록금을 핑계로 받은 돈을 탕진했지만, 가짜 취직 후에는 돈을 벌기는커녕 집에 월급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는 고졸 백수였기 때문에 돈이 나올 곳이 없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만이 이 상황을 끝낼 기회였지만, 남자친구 부모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었다.
홍순영은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결국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범행 당일, 곽재은 양이 다니는 유치원 주변을 배회하다가 우산꽂이에 있던 곽 양의 우산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범행 대상으로 정했다.
홍순영은 곽 양에게 엄마의 지인이라고 속여 빵과 음료수를 사주며 숙대까지 유인한 후,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아냈다. 그 후, 숙명여대 음악대학 건물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곽 양을 살해한 후에 협박 전화를 걸었다.
홍순영은 남자친구에게 집착했지만, 범행이 발각되자 공범이라며 남자친구의 이름을 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4. 홍순영의 범행 이후
당시 유괴살인은 1987년 12월에 터진 함효식 사건에서 보듯이 그 동기나 과정이 우발적이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연쇄살인, 대량살인과 같이 무조건 사형이 원칙이었다. 홍순영은 사건 1달 전인 1990년 5월에 국민학교 1학년 학생을 납치하여 5시간 동안 자신의 부천시 자택에 감금했다가 풀어준 적이 있었고, 곽재은 유괴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사형 판결을 받았고, 1991년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집행 직전 집행관들이 유언을 남길 것을 권했으나 울면서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여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 시신은 파주시 나자렛 묘원에 안치되었다.
4.1. 거짓 진술과 자살 시도
홍순영은 "공범이 있다"고 거짓 진술을 했고, 경찰은 이에 속아 홍순영을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울역까지 데려가 공범을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홍순영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기관사가 급정거를 하여 경상만 입었다.
4.2. 범행 자백
홍순영은 "공범이 있다"고 거짓진술을 했고, 경찰은 이에 속아 홍순영을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울역까지 데려가 공범을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홍순영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기관사가 급정거를 하여 경상에 그쳤다.
경찰이 재은의 행방을 추궁했으나 홍순영은 동문서답을 하다가, 결국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의 시신을 숨겼다"고 자백했다.
4.3. 재판 및 사형 집행
홍순영은 1990년 5월에 국민학교 1학년 학생을 납치하여 5시간 동안 자신의 부천시 자택에 감금했다가 풀어준 전적이 있었고, 곽재은 유괴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사형 판결을 받았다. 1991년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집행 직전 집행관들이 유언을 남길 것을 권했으나 울면서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여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 시신은 파주시 나자렛 묘원에 안치되었다.
5. 사건의 사회적 영향 및 대중 매체
이 사건은 여러 대중 매체에서 다루어져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5.1. 대중 매체에서의 조명
표리부동에서 '친근한 접근 아동 유괴 범죄'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심야괴담회에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사연으로 등장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51화에 이 사건을 다루었다.
범죄의 재구성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