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세르지오 4세
1. 개요
세르지오 4세는 1012년 사망한 교황이다. 본명은 피에트로 마르티노 부카포르치이며, 1009년 교황 요한 18세의 퇴위 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재위 기간 동안 로마 귀족 요한네스 크레스켄티우스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도시의 기근을 구제하고 수도원을 주교의 지배에서 면제하는 활동을 했다. 예루살렘 성묘 교회 파괴 이후 무슬림을 성지에서 몰아낼 것을 촉구하는 교황 칙서 발표 여부를 두고 논쟁이 있었으며, 1012년 5월 12일 사망하여 라테라노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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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피에트로 마르티노 부카포르치는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며, 로마의 "피나" 구역에서 구두 수선공인 피에트로와 스테파니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카포르치' ("돼지코")는 그의 본명도 아니고 가족의 성씨도 아니었으며, 그의 개인적인 습관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004년에 그는 알바노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황 요한 18세의 퇴위 후인 1009년에 선출되어 세르지오 4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3. 교황 재위 기간
세르지오 4세는 재위 기간 동안 권력이 미미했으며, 당시 로마를 지배하던 귀족 요한네스 크레스켄티우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세르지오 4세는 크레스켄티우스의 도움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3세의 로마 지배 시도를 저지했다. 또한 도시의 기근을 구제하고 여러 수도원을 주교의 지배로부터 면제하는 정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