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스테파노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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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테파노 8세는 939년부터 942년까지 재위한 교황이다. 로마 출신으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산 마르티노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서프랑크 왕국 내분에 개입하여 루이 4세를 지지하고, 반(反)국왕 세력에 파문을 경고했다. 로마에서는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에게 실권을 빼앗겨 통치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알베리크 2세의 지지자들에게 고문과 유폐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942년 10월에 선종했으며, 교황 마리노 2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교황 스테파노 8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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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스테파노 8세
이름스테파노 8세
본명스테파누스
직함로마의 주교
교회가톨릭 교회
이전 직책산티 실베스트로 에 마르티노 아이 몬티 성당의 추기경 사제 (938년 4월 5일 - 939년 7월 14일)
재임 기간
임기 시작939년 7월 14일
임기 종료942년 10월
선임자레오 7세
후임자마리노 2세
개인 정보
출생지교황령, 로마
사망일942년 10월
사망지교황령,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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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스테파노 8세는 로마 출신으로, 산티 실베스트로 에 마르티노 아이 몬티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939년 레오 7세가 사망하자, 알베리코 2세에 의해 후임 교황으로 옹립되었다.

알베리코 2세와 처음에는 수도원 개혁을 함께 했지만, 곧 대립했다. 오파바의 마르티노에 따르면, 알베리코 2세에게 유폐되어 수족이 절단되었다고 한다. 942년 10월 하순에 사망했는데, 절단 당시의 상처가 사망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2.1. 초기 생애와 교황 선출

스테파노 8세는 로마 출신으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산 마르티노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939년 레오 7세가 사망하자,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에 의해 후임 교황으로 옹립되었다.

스테파노 8세는 처음에는 알베리크 2세와 공동으로 수도원 개혁을 실시했지만, 이내 대립하게 되었다. 오파바의 마르티노에 따르면, 알베리크 2세에 의해 유폐되었으며, 수족이 절단되었다고 한다. 스테파노 8세는 942년 10월 하순에 사망했는데, 절단 당시의 상처가 사망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2.2. 서프랑크 왕국 내분 개입

939년부터 940년 위그 대공과 베르망두아 백작 헤르베르 2세가 루이 4세에게 반기를 들고 오토 1세에게 지원을 요청하자, 스테파노 8세가 개입했다. 스테파노 8세는 서프랑크 귀족들에게 교황 특사를 파견하여 루이 4세를 국왕으로 인정하고 반역을 중단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교황 특사들은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위그와 에르베르 2세를 지지했던 많은 프랑크 주교들의 지지를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스테파노 8세는 에르베르 2세의 아들인 베르망두아의 위그에게 랭스대주교 자리를 제안하여 루이 4세에 반대하는 귀족들의 동맹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는 지역 교회(대교구)를 사목하는 대주교의 권위와 책임, 친교의 상징인 팔리움과 함께 교황 특사를 다시 보내, 서프랑크 귀족들에게 루이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촉구했다. 반(反)국왕 세력은 예수 성탄 대축일 전까지 교황에게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뜻을 알리지 않으면 파문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에 반교황 세력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 더 많은 귀족들이 루이 4세의 편에 섰으며, 942년 말에는 모든 귀족이 루이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이를 교황에게 알렸다.

2.3. 알베리크 2세와의 갈등과 죽음

스테파노 8세는 교황령의 명목상 통치자였지만, 실권은 스스로 로마 공작이라고 칭한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에게 있었다. 940년 이탈리아의 위그가 로마를 포위하면서 스테파노 8세는 알베리크 2세와 위그 사이의 싸움에 휘말렸다. 알베리크 2세는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자 로마 내 잠재적인 불만 세력 및 이탈 세력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실시했고, 그 결과 주교들을 포함한 수많은 정적들이 처형되거나 감옥에 보내졌다. 오파바의 마르티노는 알베리크 2세의 지지자들이 스테파노 8세를 붙잡아 고문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는데,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암살 시도 사건과 스테파노 8세가 선종하기 바로 전 사이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알베리크 2세는 로마 시노드를 소집하여 프리미케리우스, 노타리우스, 베스타라리우스 등 로마 교회의 여러 관료들을 동원함으로써 자신이 로마 교회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과시하였다. 스테파노 8세는 942년 10월에 선종했으며, 교황 마리노 2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3. 평가 및 논란

13세기 말 연대기 작가인 오파바의 마르티누스는 스테파노 8세가 독일인이며, 친척인 오토 1세의 권력과 영향력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묘사했다. 마르티누스는 오토가 추기경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스테파노를 강요했으며, 스테파노가 독일인이어서 미움을 받아 알베리크 2세의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심하게 불구되어 다시는 대중 앞에 나설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버전은 대부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시대 및 근접 시대의 기록들은 스테파노가 로마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오토의 이탈리아 문제 개입 및 영향력 행사는 10년 이상 뒤의 일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오토는 독일 공작들의 주요 반란 속에서 독일에서의 권력 장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토는 이 시점에서 교황 계승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테파노가 프랑크 왕 루이 4세(오토와 대립 중)를 지지한 것은 스테파노가 독일 왕의 친척이었거나 오토의 개입으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스테파노의 불구는 942년 중반 알베리크에 대한 음모의 여파로 일어났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