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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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리움은 기독교 전례에서 사용되는 어깨에 걸치는 띠 형태의 의복으로, 교황과 대교구장에게 수여된다. 기원은 불분명하며,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임, 에포드, 성 베드로의 망토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팔리움은 교황 대리자와 사도좌와 독점적인 관계를 가진 주교들에게 수여되었으며, 8세기에는 대교구 주교들이 로마 교황으로부터만 팔리움을 받도록 의무화되었다. 팔리움은 교황 직무의 충만함을 상징하며, 대주교에게는 교황의 사목 권한 참여를 나타낸다. 현재는 띠 모양에 여섯 개의 십자가가 수놓아진 형태로 제작되며,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운 양의 털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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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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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종류 | 기독교 성직 복장 |
사용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
착용자 | 교황, 대주교, 수도 대주교, 주교 |
목적 | 권위와 일치를 상징 |
역사 및 기원 | |
기원 | 로마 시대의 팔리움에서 유래 |
초기 사용 | 교황에게만 수여 |
발전 | 9세기부터 대주교에게 수여 12세기부터 수도 대주교에게 수여 |
형태 및 재료 | |
형태 | 고리 모양의 흰색 양모 띠 |
장식 | 검은색 또는 자주색 십자수 6개 |
핀 | 십자수가 수놓아진 금 또는 은 핀 3개 |
재료 | 양모 |
상징 | |
의미 |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목자 상징 교황과 대주교의 권위 상징 교황과 대주교의 일치 상징 |
수여 | |
수여권자 | 교황 |
수여 대상 | 새로 임명된 대주교 또는 수도 대주교 |
수여 장소 | 성 베드로 대성당 |
수여 시기 |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축일 |
추가 정보 | |
착용 방법 | 미사 또는 공식 행사 때 목에 착용 |
보관 | 개인적으로 보관하지 않고 교구에 보관 |
기타 | 팔리움은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교회 복장임 팔리움은 로마의 성녀 아녜스 축일에 축복받은 어린 양의 양모로 만들어짐 팔리움은 대주교의 관할권과 교황과의 특별한 유대를 나타냄 |
2. 역사
팔리움은 관할구역 내에서 미사나 서품식 등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관구장 대주교만 착용할 수 있으며, 은퇴한 관구장 대주교나 관구장이 아닌 주교, 자신의 관구 밖에서 의식을 집전하거나 참여하는 관구장 대주교는 원칙적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한 관구 안에서는 한 사람만 팔리움을 착용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성직자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경우 그를 주교로 서품하는 성직자는 팔리움을 착용하고 의식을 거행한다.[2]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다른 성직자들의 팔리움과 달리, 오모포리온과 팔리움이 거의 같은 모습을 띠었던 6세기 시절 팔리움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만큼 폭이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양끝에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16]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인해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교황의 팔리움만이 특별히 구별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팔리움은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우는 양의 하얀 털로 짜여 만들어지며, 팔리움으로 만들 털을 가진 양은 성 아녜스 수녀원의 수녀들에 의해 제대에 봉헌된다.
2. 1. 기원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봤을 때 마치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자수로 놓여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팔리움의 기원은 오모포리온과 같은 복장이다. 오모포리온은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을 한 천의 일종인데,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착용한다.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루카 15,1~7)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 의미는 후세에 덧붙인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팔리움과 관련된 전례 의식에서 그러한 의미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팔리움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 (또는 그의 후계자 중 한 명)에 의한 서임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에포드와 후멜러 베일(고위 사제의 대제사장의 어깨 옷)을 모방한 것이라고 여기는 견해도 있다. 성 베드로의 망토, 즉 최고의 목자로서의 그의 직무를 상징하는 망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초기 교황들이 사용했던 전례용 로브에서 기원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띠 모양으로 접혀졌다고 보는 가설도 있다. 제국 시대에 사용되던 외투-팔리움, 즉 일반 망토를 접는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가설도 있다. 교황의 전례용 의복으로 도입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팔리움이 황제의 서임, 유대교 대제사장의 에포드, 혹은 성 베드로의 전설적인 망토에서 유래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는 교황의 전례적 표장으로 도입되었거나, 이미 동방 교회에서 유행하던 이에 상응하는 교황의 오모포리온을 모방하여 채택되었을 수 있다.
2. 2. 초기 사용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봤을 때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자수로 놓여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팔리움의 기원은 오모포리온과 같은 복장이다. 오모포리온은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을 한 천의 일종인데,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착용한다. 그 기원을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루카 15,1~7)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 의미는 후세에 덧붙인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의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팔리움과 관련된 전례 의식에서 그러한 의미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팔리움은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서 미사나 서품식 등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관구장 대주교만 착용할 수 있으며, 은퇴한 관구장 대주교나 관구장이 아닌 주교, 자신의 관구 밖에서 치러지는 의식을 집전하거나 그에 참여하는 관구장 대주교는 원칙적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즉, 한 관구 안에서는 한 사람만 팔리움을 입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주교품을 아직 받지 않은 성직자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경우 그 사람을 주교로 서품하는 성직자는 팔리움을 착용하고 의식을 거행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여느 성직자들의 팔리움과는 달리, 오모포리온과 팔리움이 거의 같은 모습을 띠었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인 6세기 시절 팔리움의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의 너비만큼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훨씬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양끝에는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더불어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16]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당시 그의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말미암아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오직 교황의 팔리움만이 이렇듯 특별히 구별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팔리움은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우는 양의 하얀 털로 짜여 만들어지며, 팔리움으로 만들 재료로 선정된 털을 가진 양은 성 아녜스 수녀원의 수녀들에 의해 제대에 장엄하게 봉헌한다. 팔리움이 언제 처음 도입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테르툴리아누스가 220년 이전에 "De Pallio"("팔리움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썼지만, ''교황 연대기''에 따르면, 교황 마르코 (336년 사망)가 오스티아 주교에게 팔리움을 착용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교황의 서임이 그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교황 심마쿠스는 513년에 아를의 성 케사리우스에게도 그렇게 했으며, 6세기의 수많은 다른 언급에서 팔리움은 오랫동안 관습적인 제의로 언급되고 있다. 이전에는 교황만이 팔리움을 착용할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의 사용은 교황의 허가에 의해서만 허용되었다.
6세기에 팔리움을 다른 사람에게 명예의 표시로 수여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었다. 이 명예는 일반적으로 대교구 주교, 특히 교황에 의해 대리인으로 임명된 사람들에게 수여되었지만, 때로는 단순한 주교에게도 수여되었다(예: 오툉의 시아그리우스, 메시나의 도누스,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시라쿠사의 요한에게). 대교구 주교들 사이에서 팔리움의 사용은 8세기가 되어서야 일반화되었다. 성 보니파시오가 소집한 시노드에서 서방 대교구 주교들에게 로마의 교황으로부터만 팔리움을 받도록 의무를 부과했을 때였다. 이것은 로마로 여행하거나 팔리움에 대한 청원을 보내고 엄숙한 신앙 고백을 동반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팔리움을 받기 전에는 모든 서임을 금지했다. 오늘날 팔리움 수여자가 하는 충성 서약은 파스칼 2세 (1099–1118)의 통치 기간 동안 11세기에 시작되어 신앙 고백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팔리움 수여는 중세 시대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교황들이 팔리움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수수료를 징수하여 교황청에 수억 금 이탈리아 플로린을 가져왔고, 팔리움 수여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4] 6세기 초부터 팔리움을 받는 데 대한 조공이 지불된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595년 로마 시노드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나중에 성좌의 부분적인 유지를 위해 다시 도입되었다. 이 과정은 1432년 바젤 공의회에서 "교황청이 발명한 가장 고리대금업적인 책략"이라고 비난받았다.
2. 3. 현대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이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봤을 때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자수로 놓여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16]팔리움의 기원은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 주교들이 착용하는,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의 천인 오모포리온과 같다.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후대에 덧붙인 의미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팔리움과 관련된 전례 의식에서 그러한 의미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팔리움은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서 미사나 서품식 등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관구장 대주교만 착용할 수 있다. 은퇴한 관구장 대주교나 관구장이 아닌 주교, 자신의 관구 밖에서 치러지는 의식을 집전하거나 그에 참여하는 관구장 대주교는 원칙적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즉, 한 관구 안에서는 한 사람만 팔리움을 입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주교품을 아직 받지 않은 성직자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경우 그 사람을 주교로 서품하는 성직자는 팔리움을 착용하고 의식을 거행한다.[2]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여느 성직자들의 팔리움과는 달리, 6세기 시절 팔리움의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의 너비만큼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훨씬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양끝에는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더불어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당시 그의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말미암아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오직 교황의 팔리움만이 이렇듯 특별히 구별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팔리움은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우는 양의 하얀 털로 짜여 만들어지며, 팔리움으로 만들 재료로 선정된 털을 가진 양은 성 아녜스 수녀원의 수녀들에 의해 제대에 장엄하게 봉헌한다. 현재는 교황, 자신의 관구 내 대주교와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만이 팔리움을 착용한다. 1917년 교회법전에 따르면 대주교는 다른 곳에서 이전에 대주교를 역임했더라도 자신의 교회 관구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팔리움을 받아야 했지만, 개정된 1983년 교회법전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졌다. 다른 주교, 심지어 일반 대주교나 은퇴한 대주교 또는 관할 구역 밖에서 미사나 종교 의식을 집전하거나 참석하는 현직 대주교도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3. 형태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이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면,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자수로 놓여 있다.[16]
팔리움의 기원은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착용하는,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을 한 천인 오모포리온과 같다.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후대에 덧붙인 의미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의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6세기 시절 팔리움의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만큼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오며 양끝에는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인해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교황의 팔리움만이 이러한 독특한 형태를 가진다.[16]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두 번째 팔리움은 2008년까지 실제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그 모델은 이미 그의 문장에 있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팔리움 변형의 선례는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 해의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붉은 십자가가 있는 긴 Y자형 팔리움을 착용했을 때 설정되었다.[10]
2014년 6월 29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두 번째 팔리움을 1년 이상 사용한 후 베네딕토 이전의 교황들이 착용했던 전통적인 팔리움을 복원했다.[12]
3. 1. 초기 형태
현대 팔리움의 형태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사용된 형태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이는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묘사되어 있다. 6세기의 팔리움은 길고 적당히 넓은 흰색 양모 띠로, 끝 부분에는 검은색 또는 붉은색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었고, 술로 마감되었다. 목, 어깨, 가슴에 둘러져 앞쪽에 V자 형태를 이루었으며, 양 끝은 왼쪽 어깨에서 앞뒤로 하나씩 내려왔다.[14]

8세기에는 양 끝을 가슴 중앙과 등 중앙으로 내려 핀으로 고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팔리움이 Y자 모양이 되었다. 9세기에는 (고대 전통이 엄격하게 유지되지 않은 로마 외 지역의 그림 표현에 따르면) 더 발전하여, 지금까지 핀으로 고정되었던 띠가 잘리지 않은 채 Y자 모양으로 꿰매어졌다.[14]
현재의 둥근 형태는 10세기 또는 11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형태의 두 가지 훌륭한 초기 예시로, 성 헤리베르트 대주교(1021)와 성 안노 대주교(1075년 사망)의 것이 있으며, 지크부르크, 쾰른 대교구에 보존되어 있다.[14]
처음에는 팔리움의 유일한 장식은 양 끝 근처에 있는 두 개의 십자가였다. 이는 라벤나와 로마의 모자이크로 증명된다. 팔리움을 더 많은 십자가로 장식하는 것은 9세기에 이르러서야 관례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작은 십자가가 특히 어깨 위에 팔리움에 꿰매어졌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는 십자가의 수에 대한 명확한 규칙이 없었으며, 그 색상을 결정하는 규정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어두웠지만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처음에는 팔리움을 제자리에 고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핀은, 팔리움이 적절한 모양으로 꿰매어진 후에도 더 이상 실용적인 목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식품으로 유지되었다. 13세기 초부터 팔리움의 수직 끝 부분에 작은 납 추를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은 1605년에 보니파시오 8세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팔리움이 발견된 것과, 클레멘스 4세의 무덤에서 발견된 팔리움 조각으로 증명된다.[14]
3. 2. 발전 과정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면,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자수로 놓여 있다.[16]팔리움의 기원은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착용하는,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을 한 천인 오모포리온과 같은 복장이다.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후대에 덧붙인 의미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의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팔리움은 관구장 대주교가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서 미사나 서품식 등 종교적 의식을 거행할 때 착용한다. 은퇴한 관구장 대주교나 관구장이 아닌 주교, 자신의 관구 밖에서 의식을 집전하거나 참여하는 관구장 대주교는 원칙적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한 관구 안에서는 한 사람만 팔리움을 입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성직자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경우, 그를 주교로 서품하는 성직자는 팔리움을 착용하고 의식을 거행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6세기 시절 팔리움의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만큼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오며 양끝에는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인해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교황의 팔리움만이 이러한 특별한 형태를 가진다.[16]
현대 팔리움의 형태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사용된 형태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이는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묘사되어 있다. 6세기의 팔리움은 길고 적당히 넓은 흰색 양모 띠로, 끝 부분에는 검은색 또는 붉은색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었고, 술로 마감되었다. 목, 어깨, 가슴에 둘러져 앞쪽에 V자 형태를 이루었으며, 양 끝은 왼쪽 어깨에서 앞뒤로 하나씩 내려왔다.
8세기에는 양 끝을 가슴 중앙과 등 중앙으로 내려 핀으로 고정하여 팔리움이 Y자 모양이 되었다. 9세기에는 띠가 잘리지 않은 채 Y자 모양으로 꿰매어졌다.
현재의 둥근 형태는 10세기 또는 11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형태의 초기 예시로, 성 헤리베르트 대주교(1021)와 성 안노 대주교(1075년 사망)의 것이 지크부르크, 쾰른 대교구에 보존되어 있다.[14]
처음에는 팔리움의 유일한 장식이 양 끝 근처에 있는 두 개의 십자가였다. 팔리움을 더 많은 십자가로 장식하는 것은 9세기에 이르러서야 관례가 되었는데, 이때 작은 십자가가 특히 어깨 위에 꿰매어졌다. 중세 시대에는 십자가의 수나 색상에 대한 명확한 규칙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어두웠지만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팔리움을 고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핀은, 팔리움이 적절한 모양으로 꿰매어진 후에도 장식품으로 유지되었다. 13세기 초부터 팔리움의 수직 끝 부분에 작은 납 추를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 3. 현대 형태
오늘날의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봤을 때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의 작은 십자가가 자수로 수가 놓여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16]팔리움은 교황과 대교구장이자 관구장 대주교에게만 사용이 허용되지만, 후자는 보통 6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에 열리는 축하 행사에서 교황에게 수여받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5년 1월 팔리움 수여 의식을 변경했다. 팔리움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에 축성될 것이지만, 대교구장 대주교들은 각자 교황 대사(해당 국가에서 교황의 개인 대리인)의 손에서 자신의 교구 내에서 별도의 의식을 통해 팔리움을 받게 된다.[5] 팔리움은 또한 예루살렘의 라틴 전례 총대주교에게도 수여된다. 다른 주교들이 팔리움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던 이전의 전통은 1978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교황 자의 교서에 의해 종료되었다.[2] 관구장 대주교는 자신의 관할 대교구뿐만 아니라 미사를 집전할 때마다 자신의 교회 관구 내 어디에서든지 관할권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있다.
팔리움은 법과 전례 규범에 따라 관구장에게만 제한되지만, 예외적인 관례가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단 단장이 되어 오스티아의 추기경 주교가 된 조셉 라칭거 추기경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는데, 이는 명예직이었으며 대주교좌나 관구가 수반되지 않았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단장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에게 팔리움을 수여함으로써 그 예외를 유지했다.[6]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0년 1월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단장이 되었을 때 2020년 6월 29일에 그에게도 팔리움을 수여했다.[7]
교황이 착용하는 팔리움은 ''plenitudo pontificalis officii''(즉, "교황 직무의 충만함")를 상징하며, 대주교가 착용하는 팔리움은 교황의 최고 사목 권한에 대한 그들의 참여를 나타낸다. 사임 후에는 팔리움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다른 대교구로 전출되면, 다시 교황에게 새로운 팔리움을 청원해야 한다. 새로운 팔리움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의 저녁 기도 후에 엄숙하게 축성되며, 필요한 시점까지 ''Confessio Petri''(성 베드로의 무덤) 근처의 특별한 은도금 상자에 보관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공식 취임식에서 팔리움과 오모포리온이 거의 동일했던 시대의 초기 형태의 팔리움을 채택했다. 현대 팔리움보다 넓지만 현대 오모포리온만큼 넓지는 않으며, 검은색 실크 끝이 달린 양모로 만들어졌고, 다섯 개의 붉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 세 개는 예수의 다섯 상처와 세 개의 못을 상징하는 핀으로 꿰뚫려 있으며, 왼쪽 어깨 위에 겹쳐 착용했다. 오직 교황 팔리움만이 이러한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2008년 6월 29일)부터 베네딕토 16세는 최근의 선임자들이 착용한 것과 유사한 형태로 돌아갔지만, 더 크고 긴 형태로 컷을 했고 붉은 십자가가 있어, 관구장 대주교가 착용하는 팔리움과는 차별성을 유지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두 번째 팔리움은 2008년까지 실제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그 모델은 이미 그의 문장에 있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팔리움 변형의 선례는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 해의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붉은 십자가가 있는 긴 Y자형 팔리움을 착용했을 때 설정되었다.[10]
2014년 6월 29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두 번째 팔리움을 1년 이상 사용한 후 베네딕토 이전의 교황들이 착용했던 전통적인 팔리움을 복원했다.[12]
2015년 1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해 수여부터 팔리움이 더 이상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직접 수여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신 해당 대주교가 자신의 지역 교회에서 팔리움을 수여할 것이다. 그러나 교황은 사전에 팔리움을 축성하는 것을 계속할 것이다.[13]
현대 팔리움의 형태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사용된 형태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이는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묘사되어 있다. 6세기의 팔리움은 길고 적당히 넓은 흰색 양모 띠로, 끝 부분에는 검은색 또는 붉은색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었고, 술로 마감되었다. 목, 어깨, 가슴에 둘러져 앞쪽에 V자 형태를 이루었으며, 양 끝은 왼쪽 어깨에서 앞뒤로 하나씩 내려왔다.
8세기에는 양 끝을 가슴 중앙과 등 중앙으로 내려 핀으로 고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팔리움이 Y자 모양이 되었다. 9세기에는 (고대 전통이 엄격하게 유지되지 않은 로마 외 지역의 그림 표현에 따르면) 더 발전하여, 지금까지 핀으로 고정되었던 띠가 잘리지 않은 채 Y자 모양으로 꿰매어졌다.
현재의 둥근 형태는 10세기 또는 11세기에 시작되었다.
4. 의미
오늘날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이며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이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보면 Y자 모양이다. 팔리움에는 검은색 십자가 여섯 개가 수놓아져 있는데, 넷은 고리 부분에,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16]
팔리움은 오모포리온과 같은 복장에서 기원했다. 오모포리온은 오늘날 팔리움보다 넓은 띠 모양의 천으로,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 주교들이 착용한다. 팔리움의 기원을 초대교회 벽화에 자주 나오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루카 15,1~7)와 연관 짓기도 하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인 의미로 보이며,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 복식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6]
팔리움은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서 미사나 서품식 등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관구장 대주교만 착용할 수 있다. 은퇴한 관구장 대주교나 관구장이 아닌 주교, 자신의 관구 밖에서 의식을 집전하거나 참여하는 관구장 대주교는 원칙적으로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성직자가 교황으로 선출되면, 그를 주교로 서품하는 성직자는 팔리움을 착용하고 의식을 거행한다.[2]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팔리움을 6세기 시절 형태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 오모포리온만큼 넓지는 않지만, 오늘날 팔리움보다는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다섯 개의 붉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고, 세 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16]
오늘날 모든 팔리움은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우는 양털로 만들어지며, 성 아녜스 수녀원의 수녀들이 제대에 봉헌한다. 현재 교황, 관구 내 대주교,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만이 팔리움을 착용한다. 1983년 교회법전에서는 대주교가 이전에 다른 곳에서 대주교를 역임했더라도 팔리움을 받으면 자신의 교회 관구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른 주교는 특별 허가 없이는 팔리움을 착용할 수 없다.[2]
팔리움 도입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테르툴리아누스가 220년 이전에 "De Pallio"("팔리움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썼지만, ''교황 연대기''에 따르면 교황 마르코 (336년 사망)가 오스티아 주교에게 팔리움을 착용할 권리를 부여했다. 교황 심마쿠스는 513년에 아를의 성 케사리우스에게도 그렇게 했으며, 6세기에는 팔리움이 관습적인 제의로 언급된다. 이전에는 교황만이 팔리움을 착용할 권리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교황 허가에 의해서만 허용되었다. 팔리움을 명예 표시로 수여하는 것은 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대교구 주교나 교황 대리인에게 수여되었다.
대교구 주교들 사이에서 팔리움 사용은 8세기에 일반화되었다. 성 보니파시오 시노드에서 서방 대교구 주교들은 로마 교황에게서만 팔리움을 받도록 의무화되었다. 충성 서약은 파스칼 2세 (1099–1118) 통치 기간인 11세기에 시작되어 신앙 고백을 대체했다.
팔리움 수여는 중세 시대에 논란이 되었는데, 교황들이 수수료를 징수하여 교황청에 수억 금 이탈리아 플로린을 가져왔기 때문이다.[4] 6세기 초부터 팔리움에 대한 조공이 지불되었고, 595년 로마 시노드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도입되었다. 바젤 공의회는 이를 "교황청의 고리대금업 책략"이라고 비난했다.
팔리움은 교황과 관구장 대주교에게만 허용되지만, 후자는 6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에 교황에게 수여받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5년 1월 팔리움 수여 의식을 변경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축성되지만, 대교구장 대주교들은 각자 교황 대사의 손에서 자신의 교구 내에서 별도 의식을 통해 받게 된다.[5]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 자의 교서를 통해 다른 주교들이 팔리움을 사용하는 전통을 종료했다.[2] 관구장 대주교는 자신의 관할 대교구뿐만 아니라 교회 관구 내 어디에서든지 팔리움을 착용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단 단장이 된 조셉 라칭거 추기경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는데, 이는 명예직이었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다.[6]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0년 1월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단장이 되었을 때 2020년 6월 29일에 팔리움을 수여했다.[7]
교황 팔리움은 ''plenitudo pontificalis officii''(교황 직무의 충만함)를 상징하며, 대주교 팔리움은 교황의 최고 사목 권한에 대한 참여를 나타낸다. 사임 후에는 팔리움을 사용할 수 없고, 다른 대교구로 전출되면 다시 교황에게 청원해야 한다. 새 팔리움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 저녁 기도 후 축성되어 ''Confessio Petri''(성 베드로 무덤) 근처에 보관된다. 팔리움은 이전에는 로마에서 추기경 부제가, 로마 밖에서는 주교가 수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취임식에서 초기 형태 팔리움을 채택했다. 현대 팔리움보다 넓지만 현대 오모포리온만큼 넓지는 않으며, 검은색 실크 끝이 달린 양모로 만들어졌고, 다섯 개의 붉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 왼쪽 어깨 위에 겹쳐 착용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2008년 6월 29일)부터 베네딕토 16세는 이전과 유사한 형태로 돌아갔지만, 더 크고 긴 형태로 붉은 십자가가 있어 차별성을 유지했다. 귀도 마리니는 팔리움 역사 연구를 통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착용한 팔리움 묘사가 고풍주의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리니는 또한 교황 베네딕토가 팔리움을 고정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팔리움은 2009년 라퀼라 지진 피해 조사 중 교황 첼레스티노 5세 유해가 살아남은 콜레마조의 성 마리아 성당 방문 시 첼레스티노 유리 관에 남겨졌다. 베네딕토 16세 이전 자발적 퇴위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였다.[8][9]
교황 베네딕토 16세 두 번째 팔리움은 2008년 제작되었지만, 모델은 그의 문장에 존재했다.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붉은 십자가 있는 긴 Y자형 팔리움을 착용했을 때 선례가 설정되었다.[10] 피에로 마리니가 제작했다.[11]
2014년 6월 29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 두 번째 팔리움을 1년 이상 사용 후 전통적인 팔리움을 복원했다.[12]
2015년 1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팔리움이 더 이상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직접 수여되지 않고, 해당 대주교가 지역 교회에서 수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3]
6세기 초부터 팔리움은 미사 중에만 사용되는 전례 복장이었다. 팔리움 원래 사용 규칙은 불확실하지만, 6세기 이전에도 전례적 성격이었다. 랭스의 힝크마르에게 레오 4세 (851), 쾰른의 브루노에게 아가페투스 2세 (954)가 허용한 무분별한 사용은 일반적 관습에 반하는 것이었다. 10, 11세기에는 팔리움 사용을 몇몇 축일과 특별한 경우로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팔리움 상징적 성격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모든 대주교가 팔리움 사용을 위해 교황청에 허가를 청원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11세기 말경, 팔리움은 ''plenitudo pontificalis officii'' ("교황 직무의 충만함") 상징으로 지정된다. 6세기 팔리움은 교황 직무와 권력 상징이었고, 교황 펠릭스는 관습에 반하여 후임자 지명 시 부제에게 팔리움을 전달했다. 대주교 사용 시 팔리움은 사도좌 연합 의미, 착용자 덕과 지위 상징 장식품이었다.
5. 제작
오늘날의 팔리움은 가운데가 원형이며 앞뒤로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좁은 고리가 있는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의를 걸친 목과 어깨 부분에 걸치고 목 앞과 등 뒤로 두 개의 띠가 내려와 앞뒤에서 봤을 때 Y자처럼 보인다. 팔리움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작은 십자가가 자수로 놓여 있는데, 넷은 고리 모양 부분에, 나머지 둘은 꼬리 부분에 있다.
팔리움의 기원은 오모포리온과 같은 복장이다. 오모포리온은 오늘날의 팔리움보다 훨씬 넓은 띠 모양을 한 천의 일종인데, 동방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착용한다. 그 기원을 초대교회의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그림, 즉 ‘잃었던 양의 비유’(루카 15,1~7)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으나, 이 의미는 후세에 덧붙인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양털로 만든 로마 귀족의 복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팔리움을 여느 성직자들의 팔리움과는 달리, 오모포리온과 팔리움이 거의 같은 모습을 띠었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인 6세기 시절 팔리움의 형태로 다시 바꾸었다. 이 팔리움은 오늘날의 오모포리온의 너비만큼 크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팔리움보다는 폭이 훨씬 넓고 길이도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양끝에는 검은 비단을 덧붙였다. 더불어 다섯 개의 붉은빛을 띤 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중 세 개(앞쪽, 뒤쪽, 왼쪽 어깨)[16]는 핀이 꽂혀 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당시 그의 양손과 양발에 박힌 세 개의 못과 그로 말미암아 생긴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오늘날 모든 팔리움은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키우는 양의 하얀 털로 짜여 만들어지며, 팔리움으로 만들 재료로 선정된 털을 가진 양은 성 아녜스 수녀원의 수녀들에 의해 제대에 장엄하게 봉헌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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