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미치타카
1. 개요
구조 미치타카는 구조 히사타다의 장남으로, 구조 유키쓰네의 양자로 기록되었으며, 에이쇼 황태후의 남동생이자 데이메이 황후의 외삼촌이다. 1864년 국사어용가를 맡았고, 1867년 좌대신에 임명되었으며, 메이지 유신 시기에는 신정부군에 협력하여 오우 진무 총독부 총독을 역임했다. 메이지 천황의 자문역을 맡았으며, 일본 최초의 해상보험 회사를 설립하고, 화족 제도 창설 시 공작에 서임되어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1898년 사향간 시후에 임명되었고, 1900년 대훈위 국화대수장을 수여받았으며, 190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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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해상 그룹 사람 -
도쿠가와 아쓰시
도쿠가와 아쓰시는 메이지 시대 화족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아들이며 남작 작위를 받았고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으나, 음주운전 뺑소니, 다양한 분야의 재능, 류잔 호 사용, 천리교 신자 활동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
막말의 공가 -
오기마치 나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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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의 공가 -
고노에 다다히로 (1808년)
고노에 다다히로는 고노에 모토사키의 장남으로 좌대신, 관백을 역임했으나 안세이 대옥으로 실각하고 복귀 후 다시 관백을 지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사망하여 정1위가 추서되었다. -
구조가 -
구조 가네자네
구조 가네자네는 섭정 후지와라 타다미치의 아들로, 내람 선하를 받고 섭정, 씨장자가 되었으나 보수적인 성향과 고토바 천황과의 갈등으로 실각하여 정토종에 귀의, 일기 『교쿠요』를 남겼다. -
구조가 -
도요토미 사다코
도요토미 사다코는 도요토미 히데카쓰의 딸로 태어나 요도도노의 양녀가 되었으며, 구조 유키이에와 결혼하여 기타노만도코로가 되었고, 오사카 전투 이후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가 되어 공가와 무가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다가 1658년에 사망했다.
2. 생애
보신 전쟁 당시 신정부를 도와 도호쿠 지방으로 진격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천황의 자문역을 맡았다. 이와사키 야타로와 함께 일본 최초의 해상보험 회사인 도쿄 해상 니치도 화재보험(당시 이름은 도쿄 해상 보험회사)을 세웠다. 의회 개설 이후에는 귀족원 의원을 맡기도 했다. 1900년에 대훈위 국화대수장을 받았고, 1906년에 68세로 죽었다.
2.1. 가계 및 성장 배경
구조 히사타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공식적으로는 구조 유키쓰네의 양자로 기록되었다. 어머니는 가라하시 메이코이다. 누나는 고메이 천황의 황후이자 메이지 천황의 양모인 에이쇼 황태후이며, 딸 사다코는 다이쇼 천황의 황후이다.
원래 이름은 미치타카로 표기했으나, 구조 히사타다의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사타다의 양자인 구조 유키쓰네의 양자가 되었다.
2.2. 메이지 유신과 신정부 활동
겐지 원년(1864년) 국사어용가를 맡았고, 게이오 3년(1867년) 좌대신이 되었다. 대정봉환 이전에는 아버지 구조 히사타다와 함께 막부 협조 노선을 추진했으나,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잠시 실각했다가 1868년(메이지 원년) 사면되어 복권되었다.
같은 해 섭정관백 폐지 후 후지와라 씨 장자에 임명되었고, 메이지 유신의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삿초 동맹)의 오우 진무 총독부 총독을 맡아 도호쿠 지방에서 구 막부군과 싸웠다. 오우 진무 총독부하참모인 조슈번번사 세라 슈조 및 사쓰마번 번사 오야마 쓰나요시와 함께 센다이번번주 다테 요시쿠니의 센다이 성에 들어갔다. 이후 사타케 씨의 아키타번으로 옮겨 도호쿠 지방을 전전하며, 교토 수호직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아이즈번과 아이즈 쇼나이 동맹을 맺었던 에도 경호역 쇼나이번 번주 사카이 다다아쓰의 쇼나이번 등과 싸웠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메이지 천황의 상담역을 맡았다.
이와사키 야타로의 권유로 일본 최초의 해상 보험회사인 도쿄 해상 보험 회사 (현재의 도쿄 해상 니치도 화재보험) 창설에 참여했다.
3. 가족 관계
| 항목 | 내용 |
|---|---|
| 아버지 | 구조 히사타다 |
| 어머니 | 가라하시 메이코 (1796–1881) |
| 양아버지 | 구조 유키쓰네 (1823–1859) |
| 부인 | 소 가즈코 |
| 측실 | 노마 이쿠코 |
| 자녀 |
가즈코, 노리코, 세츠코 및 적남인 구조 미치자네는 모두 측실인 노마 이쿠코 사이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