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후
1. 개요
금관후는 고려 문종과 인예태후의 일곱째 아들로, 순종, 선종, 숙종 등의 친동생이다. 1077년 특진으로 금관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수사도, 수태위 겸 중서령의 관작을 받았다. 1086년에는 여동생 적경궁주와 부여공 왕수의 혼인이 근친혼이라며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망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 이름 | 금관후 |
|---|---|
| 원래 이름 | 금관후(金官侯) |
| 본명 | 왕비(王㶨) |
| 출생일 | 미상 |
| 사망일 | 1092년 4월 14일 (음력) |
| 모후 | 인예태후 이씨 |
| 부친 | 문종 |
| 작위 | 고려 문종의 왕자 |
| 시호 | 장헌(莊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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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년 사망 -
콘라트 1세 (보헤미아)
콘라트 1세는 브르제티슬라프 1세의 아들이자 브라티슬라프 2세의 동생으로, 모라비아 남부를 통치하다가 조카 브르제티슬라프 2세에게 보헤미아 공작위를 물려주었다. -
1092년 사망 -
완안 핵리발
완안 핵리발은 금나라 황족으로, 금나라 건국에 기여한 아들들을 두었다. -
고려의 중서령 -
최사추
최사추는 고려 문종 때 등과하여 숙종 대에 문하시중에 오르고 보정공신에 책록된 문신으로, 외교적 수완과 정치적 능력을 인정받아 숙종과 예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청렴하고 신중한 처신으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여 충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고려의 중서령 -
최유선
최유선은 고려 시대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문종 때 중서령,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하고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문화 시호를 받고 선종 때 문종의 묘정에 배향된 최충의 아들이다. -
고려의 태위 -
오연총
오연총은 고려 예종 때 요나라와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여진 정벌에서 윤관의 부원수로 활약했으며, 신기군 징발 조건 완화와 서경 궁궐 창건 반대 등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다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내고 문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고려의 태위 -
김부식
신라 왕족 후예인 김부식은 고려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진압에 공을 세웠으며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2. 생애
금관후는 문종과 인예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째 아들이다.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비(㶨)이며, 본관은 개성이다. 순종, 선종, 숙종의 친동생이며,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1077년(문종 31년) 음력 3월 5일 특진으로 검교사공 금관후 작위와 식읍 1,000호를 받았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에는 수사도와 식읍 2,000호를, 1092년(선종 9년) 음력 4월 6일에는 수태위 겸 중서령의 작위와 식읍 3,000호, 식실 500호를 받았다. 그러나 금관후는 수태위에 오른 지 불과 8일 후인 음력 4월 14일에 사망하였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8일, 금관후의 동복남매 적경궁주와 금관후의 이복형제인 부여공 왕수가 혼인하였다. 당시 금관후와 변한후, 진한공 등은 이 혼인이 근친혼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중지할 것을 선종에게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1. 가계 및 가족 관계
금관후는 고려 문종과 인예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째 아들이다.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비(㶨), 본관은 개성이다. 순종, 선종, 숙종의 친동생이며,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2.1.1. 가족 관계
2.2. 왕자 시절
1077년(문종 31년) 음력 3월 5일 특진으로 검교사공 금관후의 관작과 식읍 1,000호를 받았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에는 수사도와 식읍 2,000호를, 1092년(선종 9년) 음력 4월 6일에는 수태위 겸 중서령의 관작과 식읍 3,000호, 식실 500호를 받았다. 그러나 금관후는 수태위에 오른 지 불과 8일 후인 음력 4월 14일에 사망하였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8일 금관후의 동복남매 적경궁주와 금관후의 이복형제인 부여공 왕수가 혼인하였다. 당시 금관후와 변한후, 진한공 등은 이 혼인이 근친혼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중지시킬 것을 선종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