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후
1. 개요
변한후는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의 아들이며, 순종, 선종, 숙종의 친동생이다. 1077년 검교사공 상주국에 임명되었고, 1086년에는 검교상서령 수사도로 관작이 올랐다. 부여공 왕수와 적경궁주의 근친혼을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 해 사망하여 장순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후사가 없어 불교 예법에 따라 화장되었다.
| 이름 | 변한후 |
|---|---|
| 원래 이름 | 변한후(卞韓侯) |
| 본명 | 왕음(王愔) |
| 출생일 | 미상 |
| 사망일 | 1086년 9월 12일 (음력) |
| 시호 | 장순(章順) |
| 부친 | 문종 |
|---|---|
| 모친 | 인예태후 이씨 |
| 자녀 | 미상 |
| 작위 | 고려 문종의 왕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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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년 사망 -
사마광
사마광은 북송 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며 《자치통감》 편찬으로 유명하고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했으며 철종 시대에 재상으로 복귀하여 신법 폐지를 주도하는 등 시대적 배경과 평가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인물이다. -
1086년 사망 -
경성왕후
경성왕후는 고려 현종과 원순숙비 김씨의 딸로 덕종의 왕후에 책봉되었으나, 덕종 사후 자녀 없이 52년간 과부로 지내다 유정관숙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고려의 상서령 -
정간왕
현종과 원혜왕후의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인 정간왕은 개성국공에 봉해진 후 평양공으로 진봉되어 고려 왕실에 공헌했으나, 사후 모반 사건으로 아들이 유배되기도 했으며, 딸은 순종의 왕비가 되었다. -
고려의 상서령 -
대원공
숙종의 총애를 받은 왕효는 예종 시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공신에 책봉되었으나 이자겸의 득세로 유배를 겪었고, 인종 즉위 후 복권되어 의종으로부터 장평이라는 시호를 받은 고려의 왕족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변한후 왕음은 개성을 본관으로 하는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문종과 인예왕후의 8남으로,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음(愔)이며, 순종, 선종, 숙종 등이 그의 친동생이다.
1077년(문종 31년) 음력 3월 5일 왕음은 정식으로 관작을 받아 검교사공 상주국 변한후가 되었고 식읍 800호를 받았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 검교상서령 수사도 관작이 추가되었고, 식읍은 2,000호로 늘었다.
변한후는 이복 형제인 부여공 왕수가 자신과 친남매인 적경궁주와 혼인하는 것에 대해 금관후 왕비, 진한공 왕유 등과 함께 근친혼이라며 반대하였으나, 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
2.1. 가계
본관은 개성이며,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고려의 제11대 왕 문종과 인예왕후의 8남이며,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음(愔)이다. 순종, 선종, 숙종 등은 그의 친동생이다.
2.2. 왕자 시절
1077년(문종 31년) 음력 3월 5일 변한후 왕음은 정식으로 관작을 받아 검교사공 상주국 변한후가 되었고 식읍 800호를 하사받았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에는 검교상서령 수사도 관작이 더해졌고, 식읍은 2,000호로 늘어났다.
변한후 왕음은 이복 형제인 부여공 왕수가 자신과 친남매인 적경궁주와 혼인하는 것에 대해 금관후 왕비, 진한공 왕유 등과 함께 근친혼이라며 반대하였으나, 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