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공
1. 개요
진한공 왕유는 고려 문종의 아들이자 이자연의 외손으로, 1086년 검교태위 수사공에 임명된 후 수사도, 상서령을 거쳐 진한공에 봉해졌다. 그는 근친혼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1099년에 사망하여 시호는 화신이다. 그의 아들 왕기는 숙종의 딸 대령공주와 혼인하고 찬화공신에 올랐으며, 다른 아들 왕연은 복녕궁주와 혼인했다. 왕유의 딸은 예종의 비 문정왕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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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년 사망 -
교황 우르바노 2세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88년부터 1099년까지 재위하며 제1차 십자군 파병을 호소하여 십자군 운동을 촉발하고, 개혁을 추진하며 교황권을 강화하다가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직전에 사망한 인물이다. -
1099년 사망 -
고려 양헌왕
고려 양헌왕은 고려 문종의 장남으로 조선공에 봉해졌으며 숙종 때 양헌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이자연의 외손자이며 1099년에 사망하여 제후왕으로 추존되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고려의 후작 -
염제신
염제신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원나라 관료 생활 후 고려로 돌아와 기철 일파 숙청과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워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공민왕의 후궁 신비 염씨의 아버지로서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
고려의 후작 -
김부식
신라 왕족 후예인 김부식은 고려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진압에 공을 세웠으며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2. 생애
진한공 왕유는 고려 제11대 문종의 13남이자 인경현비의 3남으로,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유(愉), 본관은 개성이다. 이자연의 외손자이자, 선종, 숙종, 순종의 이복 형제 또는 이종사촌이었다.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 왕유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검교태위 수사공에 임명되었고, 1094년(헌종 즉위년) 음력 6월 30일에는 수사도에 올랐다. 1095년(숙종 즉위년) 음력 10월 18일에는 상서령으로 승진했으며, 식읍 6,000호와 식실 400호를 하사받았다. 훗날 진한공(辰韓公)으로 봉해졌다.
왕유는 친형 부여공이 이복 남매인 적경궁주와 혼인하는 것에 대해 변한후, 금관후 등과 함께 근친혼이라며 부당함을 주장하며 선종에게 혼인을 무효화해 줄 것을 청했으나,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진한공 왕유는 1099년(숙종 4년) 음력 11월 4일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화신(和信)이다.
2.1. 가계 및 초기 생애
고려 제11대 왕 문종의 13남이자 인경현비의 3남으로,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성은 왕, 이름은 유(愉), 본관은 개성이다. 어머니 인경현비는 이자연의 딸로, 문종의 제2비 인예왕후와 제4비 인절현비는 왕유의 이모이다. 따라서 순종, 선종, 숙종을 비롯한 인예왕후 소생의 왕자 및 공주들과는 이복 형제이자 이종 사촌 관계가 된다. 왕유는 이자연의 외손자이자, 선종, 숙종 및 순종의 이복 형제 또는 이종사촌이었다.
2.2. 왕자 시절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 왕유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검교태위 수사공에 임명되었고, 1094년(헌종 즉위년) 음력 6월 30일에는 수사도에 올랐다. 1095년(숙종 즉위년) 음력 10월 18일에는 상서령으로 승진했으며, 식읍 6,000호와 식실 400호를 하사받았다. 훗날 진한공(辰韓公)으로 봉해졌다.
왕유는 친형 부여공이 이복 남매인 적경궁주와 혼인하는 것에 대해 변한후, 금관후 등과 함께 근친혼이라며 부당함을 주장하며 선종에게 혼인을 무효화해 줄 것을 청했지만,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