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말제
1. 개요
금 말제는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금 태조의 후손인 완안 쭝린은 금 애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1234년 몽골의 침략으로 차이저우가 포위되자 애종으로부터 양위받았다. 그러나 즉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군에 저항하다 전사했고, 재위 기간은 12시간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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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년 사망 -
김취려
김취려는 고려 시대 음관 출신 무신으로, 거란족 침입 격퇴와 반란 평정 등의 공을 세워 판병부사 시중에 이르렀고 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청렴결백하고 뛰어난 계략으로 전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
1234년 사망 -
쩐트어
쩐트어는 쩐 왕조 개창의 기반을 마련한 태상황으로, 쩐 가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아들 쩐 깐이 왕위를 선양받아 쩐 왕조를 세우면서 태조로 추존되었다. -
13세기 중국 사람 -
육유
남송 시대의 시인이자 관리였던 육유는 '방옹'이라는 호를 사용하며 만 수 이상의 시를 남겼고, 특히 중원 회복을 염원하는 우국시를 통해 애국 시인으로 알려졌으며, 당완과의 비극적인 사랑과 관련된 시조 「채두봉」으로도 유명하다. -
13세기 중국 사람 -
신기질
신기질은 남송의 장군이자 시인으로, 금나라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 후 남송에 귀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북벌 정책으로 인해 주류 세력과 갈등하며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만년에는 은거하며 호방하고 비장미 넘치는 가사풍의 시를 썼으며 소식과 함께 "소신"으로 불린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아구다의 형인 우야수의 후손으로 금나라 가계의 방계에 해당되며 생년은 알 수 없다. 애종의 치세 기간 동안 황제의 호위대장을 하고 있었다. 1234년 애종은 채주(蔡州, 오늘날의 루난 현)만 남게 되자, 몽골군에 동조한 남송 군인에게 살해되어 시신은 몽골군에게 이송된 후 효수되었다.
2.1. 즉위 전
금 태조의 아버지 아구다의 후손으로, 금나라의 무장으로 복무했다. 금 애종은 그의 용기와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완안 쭝린의 형 완안 쭝이 (完顏承裔)는 재상으로 재직했으며, 1232년경 몽골과의 푸청(蒲城) 전투에서 전사했다.
1232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공격하자, 애종은 수도 변경(汴京, 현재의 카이펑, 허난성)을 버리고 차이저우(蔡州, 현재의 루난현, 허난성)로 도망갔다. 완안 쭝린은 황제를 수행하며 여정 내내 그와 함께 했으며, 많은 대신들과 장교들이 도중에 황제를 버린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차이저우에 도착하자 완안 쭝린은 애종에게 중앙 지휘부를 설립하고 몽골의 공격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출 것을 조언했다.
2.2. 즉위와 최후
1234년, 애종은 남송과 연합한 몽골 제국에 의해 채주(蔡州)만 남게 되자, 자신이 뚱뚱하여 빠르게 달아날 수 없음을 알고 젊고 민첩한 완안승린에게 양위하려 했다. 애종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함과 동시에 승린에게 금나라의 재건에 대한 희망을 걸었다. 승린은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애종은 금나라의 재건을 위해서라며 승린을 설득하여 황위를 넘겨주었다.
황제가 된 승린은 곧바로 포위된 채주성을 탈출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몽골군에 동조한 송나라 군인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시체는 몽골군에게 이송되어 애종과 같이 효수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재위 기간은 12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 기간이다. :zh:续资治通鉴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들과 병사들에 의해 소종(昭宗)이라는 묘호가 부여되었다고 하며, 정식 추승은 이후 등장하는 그 어떤 왕조에서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3. 평가
금 말제는 정식 묘호나 시호를 받지 못했다. 續資治通鑑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들과 병사들이 '소종(昭宗)'이라는 묘호를 부여했다고 하지만, 이는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이후 어떤 왕조에서도 추승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