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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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길리포스는 고대 스파르타의 군인으로, 시켈리아 원정에서 시라쿠사이 방어에 기여했으나 금전적 스캔들로 인해 추방당했다. 아버지 클레안드리다스는 뇌물 수수로 추방되었고, 어머니가 헤일로타이 출신일 가능성 때문에 길리포스는 모타케스였을 수도 있다. 그는 아테네의 시켈리아 원정 당시 알키비아데스의 요청으로 시라쿠사이 지원을 위해 파견되어, 아테네 군을 격파하고 시라쿠사이 공략을 실패로 이끌었다. 이후 리산드로스로부터 신뢰를 얻었지만, 횡령 혐의로 추방당하고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길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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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클레안드리다스의 아들 길리포스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금전 문제로 몰락했다. 리산드로스의 신임을 받아 스파르타의 에포로스(행정감독관)에게 은화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짐 일부를 횡령한 사실이 발각되어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유랑 생활을 하다가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2.1. 초기 생애와 배경

클레안드리다스의 아들로, 아버지는 스파르타의 왕 플레이스토아낙스의 지도자였으나 기원전 446년에 아테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었다. 아버지 클레안드리다스는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 반도에 건설된 그리스 식민지 투리(Θούριοι고대 그리스어)로 피신했다. 길리포스의 어머니는 헤일로타이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길리포스는 순수 스파르타인이 아니라 신분이 낮은 모타케스(μόθαξ고대 그리스어)였을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길리포스는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스파르타식 전사 훈련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 스파르타 군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부유한 스파르타인 후원자가 제공한 자금으로 군 복무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했다. 불리한 배경을 가진 그에게 전쟁은 명예와 출세의 기회였다.

2.2. 시켈리아 원정

알키비아데스시켈리아 원정에 즈음하여 아테네에서 쫓겨난 뒤, 시라쿠사이(현재의 시라쿠사) 지원을 위해 장군을 파견하도록 스파르타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기원전 414년에 길리포스가 파견되었다. 그의 참전으로 전황은 일변했다. 대치한 아테네의 장군 니키아스보다 대담했던 길리포스는 전투의 주도권을 쥔 아테네 군세를 요충지에서 몰아내고, 공성전을 하고 있었던 아테네 군의 포위진을 무너뜨렸다. 아테네는 데모스테네스가 이끄는 증원 부대를 파견했지만, 그 역시 길리포스에게 패해 결국 아테네의 시라쿠사이 공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2.3. 시라쿠사이 방어 성공

알키비아데스시켈리아 원정에서 쫓겨난 후 시라쿠사이(현재의 시라쿠사)에 지원군 파견을 스파르타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기원전 414년에 길리포스가 파견되었다. 그의 참전으로 전황은 일변했다. 대치하던 아테네의 장군 니키아스보다 대담했던 길리포스는 전투의 주도권을 쥔 아테네 군세를 요충지에서 몰아내고, 공성전을 벌이던 아테네 군의 포위진을 무너뜨렸다. 아테네는 데모스테네스가 이끄는 증원 부대를 파견했지만, 그 역시 길리포스에게 패배하여 결국 아테네의 시라쿠사이 공략은 실패로 끝났다.

2.4. 아테네 장군 포로 처형 논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티마이오스를 근거로 길리포스가 포로가 된 아테네 장군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시라쿠사이 시민들을 부추겼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의 〈니키아스 전〉에 나오는 ‘필리스토스’(Philistus)라는 이름의 시라쿠사이 인의 변호 발언이나,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의하면, 길리포스는 포로들을 스파르타에 연행하여 승리의 증거로 삼으려 하였고, 포로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2.5. 몰락과 죽음

기원전 446년 클레안드리다스는 아테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되어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었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티마이오스를 근거로 길리포스가 포로가 된 아테네의 장군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시라쿠사이 시민들을 부추겼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플루타르코스의 〈니키아스 전〉에 나오는 ‘필리스토스’(Philistus)라는 시라쿠사이 인의 변호 발언이나,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의하면, 길리포스는 포로들을 스파르타에 연행하여 승리의 증거로 삼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길리포스는 아버지 클레안드리다스처럼 금전적 스캔들로 인해 실각했다. 리산드로스에게 신뢰를 받았던 길리포스는 스파르타의 에포로스(행정감독관)에게 은화 보물을 보내는 일을 맡았는데, 짐의 일부를 횡령했다. 이 사건이 드러나 길리포스는 스파르타로부터 추방되어 유랑하게 되었다.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길리포스는 이후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