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1935년)
1. 개요
김동완(1935년)은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방송인이다. 농소국민학교, 김천농림중학교를 거쳐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제대학 법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 조종사를 꿈꿨으나 실패 후 기상청에서 근무하며 KBS 라디오 기상 통보관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MBC 모닝쇼와 KBS 9시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진행했으며, 이후 TBC, MBC 등에서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1996년 MBC에서 하차 후 케이웨더 이사로 재직했으며,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저서로는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 《날씨의 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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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학교 (서울) 동문 -
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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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학교 (서울) 동문 -
서영훈
서영훈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방송공사 사장,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
대한민국 공군 군인 -
김상우 (정치인)
김상우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 외교특보로 정계에 입문하여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제안보대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외신대변인, 민주당 광진갑 지구당위원장, 사단법인 EACOS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 공군 군인 -
서지훈 (프로게이머)
서지훈은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게이머로, 테란을 주종족으로 사용하며 2003년 올림푸스 스타리그 우승과 2004년 WCG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을 통해 '3대 테란'으로 불렸고, 팀 리그에서도 활약하며 2012년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김천시 출신 -
이범렬
이범렬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시국사건 판결 논란으로 사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여 제1차 사법파동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헌법재판 연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김천시 출신 -
정해창
정해창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수석 졸업 후 검사로 임용되어 법무부 장관을 두 차례 역임한 법조인 및 정치인으로, 변호사 활동과 사회 활동을 통해 법조계에 기여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2. 생애
경상북도 금릉군 농소면 월곡리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회현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농소국민학교와 김천농림중학교를 거쳐 1953년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국제대학 법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아호(雅號)는 노루(老淚)이다.
2.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김동완은 경상북도 금릉군 농소면 월곡리에서 태어났으며,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회현리에서 잠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농소국민학교, 김천농림중학교를 거쳐 1953년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국제대학 법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아호는 노루(老淚)이다.
2.2. 방송 활동 이전
김동완은 원래 공군 조종사가 꿈이었다. 대구공고 3학년 때 공군사관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최종 선발 과정에서 탈락하였다. 공군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교로 복무한 후 5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조종사의 꿈이 좌절되자, 수학 교사를 꿈꾸기도 했다.
1958년 군 복무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1959년 1월 중앙관상대(현 기상청) 직원이 되었다.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는, 기상 기술원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다. 1959년 12월 24일 김포국제공항 측후소의 기상 요원으로 발령받았으며, 당시 그의 직책은 5급 공무원(현재의 9급 수준)이었다. 이후 부산 수영비행장(현 김해국제공항) 측후소에서 4년 정도 근무하다가, 중앙관상대 예보관으로 활동했다.
2.3. 방송 활동
2.3.1. 기상 통보관 활동
1960년대 중반부터 방송국들은 날씨 보도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중앙 관상대 직원이 나와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즉, 이 일을 공무원인 관상대 예보과 직원이 직접 하게 된 것이다. 하루는 선배 방송요원이 그만두어 누가 그 뒤를 잇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김동완은 3일에 한 번씩 교대로 돌아가며 하는 방송요원으로 뽑혔으며, KBS 라디오의 어업기상통보(후에 기상통보로 변경)의 기상 통보관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통보관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도 바로 이 무렵이라고 한다.
2.3.2. TV 방송 활동
1972년 4월 MBC 모닝쇼에서 일기예보를 시작했고, 그 해 가을 KBS 9시 뉴스에서도 일기예보를 진행했다. 1973년 유류 파동으로 아침방송이 중단되면서 MBC 모닝쇼는 폐지되었고, KBS 9시 뉴스 일기예보도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게 되면서 잠시 중앙 관상대 예보과에서만 활동했다. 1974년 하반기부터 언론통폐합 이전까지 동양방송에서 7년간 활동했다.
언론통폐합 이후 1981년 초 문화방송의 섭외로 MBC 뉴스데스크에서 기상 보도를 담당하게 되었다. 1992년 3월 초 프리랜서 선언 후 1996년 9월 23일까지 MBC에서 활동했다.
* 1972년 4월~1974년 - MBC 모닝쇼, KBS 9시 뉴스
* 1974년~1980년 11월 30일 - 동양방송 TBC 석간(추정)
* 1981년~1994년 10월 16일 - MBC 뉴스데스크(매일)
* 1994년 10월 24일~1996년 9월 23일 - MBC 뉴스데스크(매주 월요일)
* 2010년 10월 5일 - MBC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방송
2.4. 은퇴 이후
1996년 MBC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한 후, 1997년 민간 기상정보 회사인 케이웨더의 이사직으로 자리를 옮겨 2000년까지 활동했다. 2000년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선거 중에 당뇨를 앓던 아내의 치료 시기를 놓쳐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2024년 9월 15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3. 주요 경력
3.1. 방송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기상통보(1967년~1972년 3월경)를 시작으로, 1972년 4월부터 1974년까지 MBC 모닝쇼와 KBS 9시 뉴스에서 기상 정보를 전달했다. 1974년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는 동양방송의 TBC 석간(추정)을 진행했다.
1981년부터 1994년 10월 16일까지 매일 MBC 뉴스데스크의 날씨를 담당했으며, 1994년 10월 24일부터 1996년 9월 23일까지는 매주 월요일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 2010년 10월 5일에는 MBC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방송에 출연했다. 1993년 9월 27일부터는 날씨와 생활의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이 외에도 KBS 《KBS초대석》,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TV는 사랑을 싣고》, 《TV쇼 진품명품》, 《밤과 음악사이》, 《아침마당》, 《KBS인간대학》, MBC 《타임머신》, EBS 《시대의 초상》, SBS 《일요일이 좋다 - 옛날 TV》, KBS 《비타민》, OBS 《최양락·이봉원의 나는 전설이다》, 《차인태의 명불허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4.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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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1998년)
* 《날씨의 신비(1999년)
5. 평가 및 영향
6. 가족 관계
배우자와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7.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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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2000년 |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자유민주연합 | 6,925표 (10.53%) | 3위 | 낙선 | 국회의원 (김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