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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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약연은 시인 윤동주의 외숙부로, 간도 지역에서 교육, 종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1900년 간도로 이주하여 명동학교를 설립해 교육 계몽 운동을 이끌었다. 유학에서 개신교로 전향하여 명동교회를 설립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간민회 회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18년 무오 독립 선언에 참여했고,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김약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약연
원어 이름金躍淵
접미어목사
제목 모양목사
출생일1868년 9월 12일
출생지조선 함경도 회령
타계일1942년 10월 29일
타계 장소만주국 지린 성 옌볜 룽징 둥젠다오
국적대한제국
기타호(號)는 규암(圭巖)
가명(假名)은 최세평(崔世平)
학력평안남도 평양신학교 전문학사
종교개신교(장로회)
배우자남씨 부인
가족자녀는 1남 3녀
형제자매는 김학연(이복 남동생)과 김용(이복 누이동생)
친인척은 윤동주(이복 생질)와 윤일주(이복 생질)와 윤성주(이복 생질)와 김재홍(증손자)
비고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직업
전직만주 명동중학교 교감
한국독립당 고문 겸 당무위원(1932년~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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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김씨 - 김설송
    김설송은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김정일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몰타와 유럽에서 유학하며 외국어를 배웠다.

2. 생애

간도 지역의 교육자이자 목사,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1900년 간도 용정으로 이주하여 명동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계몽 운동에 힘썼으며, 명동교회를 세우고 목회 활동을 하였다. 또한 간민회 조직을 주도하고 무오 독립 선언에 참여하는 등 일제강점기 간도 지역 항일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시인 윤동주는 그의 여동생 김용과 매제 윤영석 사이에서 태어난 생질(甥姪) 조카로, 외숙부인 김약연이 설립한 명동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그가 개척하여 활동했던 용정의 명동촌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증손자인 김재홍이 서굉일과 공저한 전기 《규암 김약연 선생》이 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활동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잠시 함경북도 종성에서 유아기를 보낸 뒤, 다시 회령에서 주로 성장하였다. 1900년 일가족과 함께 간도의 용정으로 이주하였다.

1901년 소규모 서당인 규암재를 설립하였다. 규암재는 이후 명동서숙을 거쳐 1909년 명동학교와 명동여학교로 발전하며, 이 지역 교육 계몽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그의 여동생 김용과 매제 윤영석 사이에서 태어난 생질(甥姪) 조카로, 외숙부인 김약연이 설립한 명동학교를 졸업하였다.

본래 유학자였으나 1909년 개신교에 입교하였고, 1929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명동교회를 설립하고 후에 목사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간도 지역 항일 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2.2. 종교 활동과 독립운동

본래 유학자였으나 1909년 개신교에 입문했다. 이후 간도 용정에 명동교회를 설립하고 1929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간도 지역 항일 운동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다.

그는 간도 지역의 한인 자치 기구인 간민회 결성을 주도하여 회장을 맡았으며, 1918년 길림에서의 무오 독립 선언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용정시 명동촌에 세워진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 명동촌에 세워진 김약연 목사 기념비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3.1. 김재홍과 서굉일의 공저, 《규암 김약연 선생》

김약연의 손자인 김재홍(金在洪)이 서굉일(徐宏一)과 함께 저술한 전기 《규암 김약연 선생》(圭巖金躍淵先生)이 있다.

4. 평가

간도 용정에서 "규암재"라는 서당을 시작으로 "명동학교"와 "명동여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계몽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본래 유학자였으나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명동교회를 설립하여 목사로서 일제 강점기 간도 항일 운동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다.

또한, 간도의 자치 기구인 "간민회" 결성을 주도하고 회장을 맡았으며, 1918년 무오독립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그가 개척하고 활동했던 용정 명동촌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손자인 김재홍(金在洪)이 서굉일(徐宏一)과 함께 쓴 전기 《규암 김약연 선생》(圭巖金躍淵先生)이 있다.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
용정시의 김약연 목사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