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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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조근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헌종의 장인이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핵심 인물이다. 김이소의 손자이자 김지순의 아들로, 순조 때 음보로 관직에 올라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37년 딸이 헌종비로 책봉되면서 영흥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호위대장, 어영대장, 총융사 등 무반의 중요 직책을 역임했다. 안동 김씨 세력이 쇠퇴하는 시기에도 헌종비의 존재로 인해 세력을 유지했으며, 1844년 사망 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837년(헌종 3) 광주판관에서 특별 승진해 승지가 되고, 같은 해 딸이 헌종비로 책봉되자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1] 이어 호위대장(扈衛大將), 어영대장, 주사대장(舟師大將), 1838년 총융사, 어영대장 등 무반의 중요직을 지냈다. 순조 때 정권을 독점한 안동 김씨 세력은 헌종 즉위와 함께 새로 대두한 풍양 조씨의 세도 세력에게 잠시 세력을 빼앗겼으나, 순원왕후 김씨가 김조근의 딸을 헌종비로 맞아들임으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는 순조·헌종에 이어 철종 대까지 계속되었다. 1844년 1월 2일 병으로 사망했다.[1]
2. 생애
2. 1. 초기 생애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의정 김이소이고 아버지는 함양 군수와 충주목사를 지내고 증 영의정에 추증된 김지순(金芝淳)이다.[1] 숙종대의 재상 김수항의 6대손으로 5대조는 김창집이며 고조부는 김제겸, 증조부는 남원부사 증 좌찬성 김탄행이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7촌 아저씨뻘이 된다.
1816년(순조 16) 생원이 되고, 음보로 관직에 올라 1827년 시직(侍直), 1830년 제용감봉사, 의영고직장을 거쳐 1831년 장원서별제, 호조좌랑을 역임했다. 1832년(순조 32) 영희전영(永禧殿令)이 되었다. 이후 의령·광주 등지의 판관을 지냈다.
2. 2. 관료 생활
김수항의 6대손으로, 5대조는 김창집, 고조부는 김제겸이며, 증조부는 남원부사 증 좌찬성 김탄행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 김이소이고, 아버지는 함양군 군수와 충주 목사를 지내고 증 영의정에 추증된 김지순(金芝淳)이다.[1]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7촌 아저씨뻘이 된다.
1816년(순조 16) 생원이 되고, 음보로 관직에 올라 1827년 시직(侍直), 1830년 제용감봉사, 의영고직장을 거쳐 1831년 장원서별제, 호조좌랑을 역임했다. 1832년(순조 32) 영희전영(永禧殿令)이 되었다. 이후 의령·광주(廣州) 등지의 판관을 지냈다. 1837년(헌종 3) 광주판관에서 특별 승진해 승지에 이르고, 같은해 딸이 헌종비에 책봉되자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이어 호위대장(扈衛大將)·어영대장·주사대장(舟師大將), 1838년 총융사·어영대장 등 무반의 중요직을 지냈다. 순조 때에 정권을 독점하여온 안동 김씨 세력은 헌종의 즉위와 함께 새로 대두한 풍양 조씨의 세도세력에게 잠시 세력을 빼앗겼다. 그러나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가 김조근의 딸을 헌종비로 맞아들임으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는 순조·헌종에 이어 철종대까지 계속되었다. 1844년 1월 2일 병으로 사망했다.
2. 3. 왕실과의 인연
숙종 대의 재상 김수항의 6대손으로, 5대조는 김창집, 고조부는 김제겸, 증조부는 남원부사 증 좌찬성 김탄행이다.[1]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의정 김이소이고 아버지는 함양 군수와 충주 목사를 지내고 증 영의정에 추증된 김지순(金芝淳)이다.[1]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7촌 아저씨뻘이 된다.
1837년(헌종 3) 딸이 헌종비에 책봉되자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순조 때 정권을 독점한 안동 김씨 세력은 헌종의 즉위와 함께 새로 대두한 풍양 조씨의 세도 세력에게 잠시 세력을 빼앗겼다. 그러나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가 김조근의 딸을 헌종비로 맞아들임으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는 순조·헌종에 이어 철종 대까지 계속되었다.
2. 4. 군사 요직 역임
1837년(헌종 3년) 광주판관에서 특별 승진해 승지가 되고, 같은 해 딸이 헌종비로 책봉되자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1] 이어 호위대장(扈衛大將), 어영대장, 주사대장(舟師大將), 1838년 총융사, 어영대장 등 무반의 중요직을 지냈다.[1] 순조 때에 정권을 독점하여온 안동 김씨 세력은 헌종의 즉위와 함께 새로 대두한 풍양 조씨의 세도세력에게 잠시 세력을 빼앗겼다.[1] 그러나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가 김조근의 딸을 헌종비로 맞아들임으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는 순조·헌종에 이어 철종대까지 계속되었다.[1]
2. 5. 사후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350번지 산에 있다. 묘소는 맨 아래에 정부인 김해 김씨의 묘, 그 위에 아들 김병집의 묘, 가장 위에 김조근의 묘가 있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묘소 인근에는 친족인 김제근, 김병엽의 묘소가 있다.
3. 가족 관계
관계 이름 증조부 김탄행(金坦行) 조부 좌의정 익헌공 용암 김이소(金履素) 부친 충주목사 김지순(金芝淳) 부인 한성부부인 이씨 아들 김병집(金炳潗) 손자 김갑규(金甲圭) (생부: 김병서(金炳敍)) 장녀 남병철의 처 안동 김씨 차녀 효현왕후 김씨 - 헌종의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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