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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현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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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현왕후는 조선 헌종의 왕비로, 1828년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1837년 10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순원왕후의 영향으로 안동 김씨 세력이 강화되는 데 기여했다. 1843년 1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경기도 구리시 경릉에 헌종, 효정왕후와 함께 묻혔다. 사후 1851년 경혜, 1853년 단성, 1866년 수원, 1908년 효현성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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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현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직위조선의 왕비
재위 기간1837년 – 1843년
전임순원왕후
후임효정왕후
배우자헌종
아버지김조근
어머니한산 이씨 한성부부인
출생일1828년 4월 27일
출생 장소조선 한성부 안국방
사망일1843년 10월 6일
사망 장소조선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능묘경릉
씨족
씨족안동 김씨
칭호
시호단성수원경혜정순효현(端聖粹元敬惠靖順孝顯)
존호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휘정전휘정전(徽定殿)

2. 생애

1837년 헌종의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843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철종 대에 "경혜(敬惠)"와 "단성(端聖)"[1], 고종 대에 "수원(粹元)"[1]의 존호가 더해졌고, 1908년 순종 대에 "성(成)"을 더해 황후로 추존되었다.[1]

2. 1. 탄생과 가계

1828년 4월 27일(음력 3월 14일) 인시에 관광방(觀光坊) 안국동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는 영흥부원군 김조근(1793~1844)이며, 어머니는 한성부부인 한산 이씨이다.

효현왕후는 부친을 통해 인목왕후의 6대 방손녀였고, 철인왕후의 7촌, 순원왕후의 6촌이었다. 친할머니를 통해 인현왕후의 맏오빠 민진후의 4대 외손녀였다.

'''본가 안동 김씨'''

관계이름
고조부김탄행(金坦行, 1714∼1774)
고조모정경부인 청주 한씨(생몰년 미상)[2]
증조부김이소(金履素, 1735∼1798)
생증조부김이유(金履裕, 생몰년 미상)
생증조모정부인 문화 류씨(생몰년 미상)[3]
조부김지순(金芝淳)
조모증 정경부인 여흥 민씨(생몰년 미상)[4]
아버지김조근(1793~1844)
숙부김보근 (1803∼1869)
외조부이희선(李羲先, 1775~1818)
외조모정부인 반남 박씨(1774~1811)[5]
어머니한성부부인 한산 이씨(생몰년 미상)
외숙이창재(李昌在, 1797~1863)
외숙모정부인 안동 김씨(1798~1871)[6]
외숙이경재(1800 ~1873)


2. 2. 왕비 책봉

1837년(헌종 3년) 10세의 어린 나이로 헌종의 왕비로 책봉되었다.[1] 왕비 책봉에는 순원왕후(헌종의 할머니)가 관여했는데, 이는 자신의 친정 가문인 신 안동 김씨의 권력과 외척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2. 3. 죽음과 추존

1843년(헌종 9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헌종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1] 같은 해 12월 2일 훗날 헌종과, 효정왕후와 함께 묻히게 될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경릉에 모셔졌다.

1851년(철종 2년) 5월 25일 경혜(敬惠)의 휘호가 내려지고,[1] 1853년(철종 4년) 8월 20일 단성(端聖)의 존호가 더해졌으며,[1] 1866년(고종 3년) 4월 3일 수원(粹元)의 존호가 더해졌으며,[1] 1908년(순종 1년, 융희 2년) 5월 11일 남편 헌종이 헌종성황제로 추존되면서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로 추존되었다.[1]

3. 가계

효현왕후의 친가인 안동 김씨와 시가인 전주 이씨 가계는 조선 후기 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이다.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중심 가문 중 하나였다. 효현왕후의 아버지 김조근은 순조의 장인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권력을 강화했다. 효현왕후는 신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김조근한산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인목왕후의 후손이자 철인왕후, 순원왕후와 친척 관계였다.

'''전주 이씨''' 왕가의 경우, 효현왕후는 헌종의 비였다.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자 문조의 아들로, 효현왕후는 시아버지인 문조와 시어머니 신정왕후를 통해 왕실과 연결되었다.

3. 1. 본가 안동 김씨(安東 金氏)

효현왕후 가계
고조부첨지중추부사 김탄행(金坦行, 1714∼1774)[2]
고조모정경부인 청주 한씨(생몰년 미상)[2]
증조부좌의정 익헌공 김이소(翼憲公 金履素, 1735∼1798)
생증조부군수 김이유(郡守 金履裕, 생몰년 미상)
생증조모정부인 문화 류씨(생몰년 미상)[3]
조부충주목사 증 영의정 김지순(忠州牧使 贈 領議政 金芝淳)
조모증 정경부인 여흥 민씨(생몰년 미상)[4]
외조부직산현감 이희선(稷山縣監 李羲先, 1775~1818)
외조모정부인 반남 박씨(1774~1811)[5]
아버지영흥부원군 효간공 김조근(1793~1844)
숙부병조판서 김보근(1803∼1869)
어머니한성부부인 한산 이씨(생몰년 미상)
외숙공조참판 증 좌찬성 이창재(工曺參判 贈 左贊成 李昌在, 1797~1863)
외숙모정부인 안동 김씨(1798~1871)[6]
외숙영의정 문간공 이경재(1800 ~1873)



효현왕후는 신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1828년 4월 27일 안국동에서 김조근[1]한산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목왕후의 6대 방손녀였고, 철인왕후의 7촌, 순원왕후의 6촌이었다. 친할머니를 통해서는 인현왕후의 맏이였던 민진후의 4대 외손녀였다.

3. 2. 왕가 전주 이씨(王家 全州 李氏)


  • 시고조부: 추존 장조의황제 (1735~1762)
  • 시고조모: 헌경의황후 홍씨 (1735~1815)
  • * 시증조부: 정조선황제 (1752~1800)
  • * 시증조모: 효의선황후 김씨 (1753~1821)
  • * 생시조모: 현목수빈 박씨 (1770~1822)
  • ** 시조부: 순조숙황제 (1790~1834)
  • ** 시조모: 순원숙황후 김씨 (1789~1857)

시아버지: 추존 문조익황제 (1809~1830)
시어머니: 신정익황후 조씨 (1808~1890)
* 남편: 헌종성황제 (1827~1849)[1]

4. 평가

효현왕후는 안동 김씨 세도 정치 시기에 왕비로 간택되었으나, 15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순원왕후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왕정 시대의 세도 정치를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신 안동 김씨 가문의 김조근[1]과 한산 이씨 부인 사이에서 안국동에서 태어난 효현왕후는 부친을 통해 인목왕후의 6대 방손녀이자, 철인왕후의 7촌, 순원왕후의 6촌이었다. 1837년 10세의 나이로 헌종의 왕비가 되었으나,[1] 1843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경기도 구리시 경릉에 헌종과 함께 묻혀있다.[1]

철종은 1851년에 "경혜"(경혜|敬惠한국어)[1], 1853년에 "단성"(단성|端聖한국어)[1]을 더했다. 1866년, 고종은 "수원"(수원|粹元한국어)[1]을 더했고, 1908년 순종 재위 기간에 황후로 추존되어 "성"(성|成한국어)이 더해졌다.

순원왕후, 철인왕후와는 먼 친척 관계이나, 효현왕후는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친정의 권력과는 관련이 없었다.

5. 기타

효현왕후는 조선 헌종과 함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경릉에 묻혔다.[1]

5. 1. 관련 유적

효현왕후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경릉에 조선 헌종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효정왕후와 함께 묻혔다.[1]

참조

[1] 웹사이트 효현왕후 https://www.doopedia[...] 2024-03-06
[2] 문서 한백증의 딸
[3] 문서 유광석의 딸
[4] 문서 민종현의 딸
[5] 문서 박홍수의 딸
[6] 문서 김봉순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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