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만 (1918년)
1. 개요
김진만(1918년)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삼척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 후 북삼화학 회장, 강원일보사 사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는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당,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3선 개헌 시기에는 민주공화당 내 신주류 그룹을 이끌었으나,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 성립으로 세력이 와해되었다. 이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을 헌납하고, 강원일보사 사장, 동곡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
삼척시 출신 -
엄현성
엄현성은 대한민국 해군의 예비역 대장으로,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해군참모총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고 국방 개혁에도 기여했으며, 퇴역 후에는 석좌교수와 여러 협회 활동을 통해 후학 양성과 해군 발전에 기여하고 대통령표창과 보국훈장을 수훈했다. -
삼척시 출신 -
박상철 (가수)
박상철은 1969년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1993년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00년 1집 앨범으로 데뷔하여 〈자옥아〉, 〈무조건〉 등의 히트곡으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한다. -
유신정우회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유신정우회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
도시샤 대학 동문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도시샤 대학 동문 -
박충훈
박충훈은 대한민국 제3공화국에서 상공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고, 국무총리 직무대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했으며 2001년에 사망했다.
2.1. 학력 및 기업 활동
| 학력 | |
|---|---|
| 기업 활동 |
2.2. 정치 활동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당 삼척군 당 부위원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원내총무, 재정위원장, 국회 상공위원장, 국회 부의장, 아시아·태평양 의원연맹(APU) 제9차 총회 의장, 한영 의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1969년 3선 개헌부터 1971년 10·26 사태까지는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와 “4인 체제”를 구축하여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 내 구주류 그룹과 대항하는 신주류 그룹을 이끌고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 성립으로 박정희의 지배권이 이어지면서 와해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다. 46일간의 감금 후 서울특별시 강남의 토지 1000여 평 및 재산을 강제 헌납했다.
3. 생애
김진만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삼척군(현 동해시) 출신이다. 1936년 일본 浪華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도시샤고등상업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금융 조합 및 회사에 근무했으며, 해방 후에는 삼척개발 북삼화학공업소 자치위원장·상무이사·이사장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초선되어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당 삼척군 당 부위원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원내총무, 재정위원장, 국회 상공위원장, 국회 부의장, 아시아 의원연맹(APU) 제9차 총회 의장, 한영 의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민주공화당 내에서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4인 체제"를 구축하여 김종필 중심의 구주류 그룹에 대항하는 신주류 그룹을 이끌었다. 그러나 1971년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가 성립되면서 박정희의 지배권이 강화되어 이들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 46일간 감금된 후 재산을 강제 헌납당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매스컴, 교육, 문화 분야에서 활동했다. 1957년 강원일보사 사장, 1969년 금강장학회 설립, 1975년 동곡문화재단 설립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대한헌정회 회장, 2001년 6월부터는 민족중흥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지병으로 89세에 사망했다.
3.1. 기업인 활동과 정계 입문
일제강점기 강원도 삼척군(현 동해시) 출신이다. 1936년 일본 浪華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도시샤고등상업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금융 조합 및 회사에 근무했으며, 해방 후에는 삼척개발 북삼화학공업소 자치위원장·상무이사·이사장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초선되어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당 삼척군 당 부위원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원내총무, 재정위원장, 국회 상공위원장, 국회 부의장, 아시아 의원연맹(APU) 제9차 총회 의장, 한영 의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1969년 3선 개헌부터 1971년 10·26 사태까지는 김성곤 (1913년)한국어, 백남억한국어, 길재호한국어와 “4인 체제”를 구축하여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 내 구주류 그룹과 대항하는 신주류 그룹을 이끌고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 성립으로 박정희의 지배권이 이어지면서 와해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다. 46일간의 감금 후 서울특별시 강남의 토지 1000평 및 재산을 강제 헌납했다.
정계 이외에도 매스컴·교육·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며, 1957년 강원일보사 사장, 1969년 정주영, 김일환 등과 금강장학회를 설립했고, 1975년 동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역임했다.
3.2. 민주공화당 신주류의 리더
1969년 3선 개헌부터 1971년 10·26 사태까지는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와 “4인 체제”를 구축하여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 내 구주류 그룹과 대항하는 신주류 그룹을 이끌었다. 이들은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 성립으로 박정희의 지배권이 이어지면서 와해되었다.
3.3. 유신 체제와 몰락
1969년 3선 개헌부터 1971년 10·26 사태까지는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와 “4인 체제”를 구축하여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 내 구주류 그룹과 대항하는 신주류 그룹을 이끌고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10·26 사태 이후 유신 체제 성립으로 박정희의 지배권이 이어지면서 와해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다. 46일간의 감금 후 서울특별시 강남의 토지 1000여 평 및 재산을 강제 헌납했다.
3.4. 정계 은퇴 이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다. 46일간 감금된 후 서울특별시 강남의 토지 1000평 및 재산을 강제 헌납당했다.
정계 은퇴 이후에도 매스컴·교육·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며, 1957년 강원일보사 사장, 1969년 정주영, 김일환 등과 금강장학회를 설립했고, 1975년 동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대한헌정회 회장, 2001년 6월부터는 민족중흥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지병으로 89세에 사망했다.
4. 가족 관계
5. 평가
(요약 및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