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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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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진우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1932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7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988년 헌법 개정으로 헌법재판소가 설치되면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어 1997년 정년 퇴임했다.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며 상속세, 선거구 획정, 사형제도 등 다양한 헌법 관련 사건에 참여했으며, 특히 5.18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과 노동 관련 법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백범 김구 기념사업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고, 한서대학교에서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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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법조인)
인물 정보
이름김진우
로마자 표기Gim Jinu
출생일1932년
경력헌법재판소 재판관 (2번 연임)
직업법조인

2. 생애

김진우는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인권 강화에 중점을 둔 법조인으로 평가받는다.[12] 1993년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6]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김진우는 1932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나 1951년 예산농업중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에 합격했다.[1]

2. 2. 법조 경력

김진우는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에 합격한 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1981년부터 11년 동안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988년 헌법 개정으로 헌법재판소가 설치되면서 통일민주당의 추천으로 비상임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 1991년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비상임 재판관이 폐지되어 같은 해 11월 30일 상임 재판관으로 재임명되었다.[2] 1994년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다시 임명하여[3] 김문희, 이시윤[4]과 함께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헌법재판관 연임[5]에 성공한 유일한 인물이다. 1997년 1월 21일 정년 퇴임으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삼흥 종합법률사무소 등에서 변호사를 하였다.

헌법재판관 재직 중 상속세 관련 헌법소원 사건에서 "조세회피 목적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증여로 보지 않는다"는 한정 합헌 결정을 할 때 변정수와 함께 소수의견을 냈다.[13] 선거구 획정에 대한 위헌심판에서는 "국회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도농 간 인구밀도와 개발 차이, 지역별 국가 시책 요구 차이 등을 선거구 획정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1996년 사형제도를 합헌으로 판단할 때는 "사형은 사형 선고를 받은 자에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아니하는 형벌 제도"[15]이며 "양심에 반해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 존엄,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 제도"[16]라는 이유로 조승형과 함께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항 등 위헌제청에 대하여 이재화, 조승형, 정경식과 함께 "우리 헌정사에 공소시효에 관한 진정소급입법을 단 한 번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허용하여야 한다"고 했다.[17]

노동쟁의조정법에 대해서는 "강제중재에 일단 회부되면 단체행동권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며 위헌 정족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다수의견을 냈다.[18] 노동위원회의 구제 명령을 위반한 사람에 대해 처벌을 규정한 노동조합법 46조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은 행정명령에 대해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했다.[19]

2. 3. 헌법재판관 이후 활동

김진우는 1997년 1월 21일 헌법재판관 정년 퇴임 이후 법무법인 삼흥 종합법률사무소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72년 창립된 사단법인 예산모현사업회에 참여하였고, 김구 기념사업협회 이사 및 부회장(1987년), 추사 김정희 기념사업회장, 일재 김병조 기념사업회장(2008년),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장(2014년)을 역임했다.[7]

2014년에는 예천군 개포면에 세워졌으나 일제에 의해 3년 만에 폐쇄된 계동학원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에 참석하였다.[8] 2016년 5월 11일에는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2001년) 기념 제막식이 충남 예산군 대술면 농리에서 열렸는데, 이때 승정원일기 복구를 기념하는 의곡 박정현을 추앙하는 시문을 새겼다.[9] 같은 해 사육신 순의(殉義) 561주년 추모제향에도 참석했다.[10]

한서대학교는 2015년 김진우에게 "명판결과 개척자적 법이론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셨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유업을 선양하시어 일평생 국민과 후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해 정부와 국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의 큰 어른"이라며 명예 행정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11]

2. 4. 사회 활동

1972년 창립된 사단법인 예산모현사업회에 참여하였으며, 1987년 백범 김구 기념사업협회 이사 및 부회장, 추사 김정희 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에는 일재 김병조 기념사업회장을, 2014년에는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장을 맡았다.[7] 2014년 예천군 개포면에 세워졌으나 일제에 의해 3년 만에 폐쇄된 계동학원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에 참석하였고,[8] 2016년 5월 11일에는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2001년) 기념 제막식이 충남 예산군 대술면 농리에서 열렸을 때 승정원일기 복구를 기념하는 의곡 박정현을 추앙하는 시문을 새겼다.[9] 1456년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숭고한 충절을 기리기 위한 순의(殉義) 561주년 추모제향에 참석했다.[10] 한서대학교는 2015년 "명판결과 개척자적 법이론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셨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유업을 선양하시어 일평생 국민과 후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해 정부와 국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의 큰 어른”이라며 명예 행정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11]

2. 5. 명예 박사 학위

한서대학교는 2015년에 "명판결과 개척자적 법이론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셨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유업을 선양하시어 일평생 국민과 후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해 정부와 국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의 큰 어른”이라고 하면서 명예 행정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11]

3. 주요 판결 및 법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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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뉴스 동아일보 1993-09-07
[2] 뉴스 한겨레신문 1991-12-01
[3] 뉴스 http://www.newdaily.[...]
[4] 웹사이트 http://www.segye.com[...]
[5] 뉴스 http://news.mt.co.kr[...]
[6] 뉴스 한겨레신문 1993-02-22
[7] 웹사이트 http://news.donga.co[...]
[8] 웹사이트 http://www.imaeil.co[...]
[9] 웹사이트 ‘승정원일기’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제막식 http://www.asiatoday[...]
[10] 웹사이트 http://news.donga.co[...]
[11] 웹사이트 김진우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 http://www.joongdo.c[...]
[12] 뉴스 법률신문 2010-08-05
[13] 웹사이트 신탁은 등기 또는 등록을 통해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어 http://www.intn.co.k[...]
[14] 웹사이트 례대표에 고사 위기 처한 농어촌 지역대표성 http://www.newdaily.[...]
[15] 웹사이트 두 재판관은 왜 사형이 '위헌'이라고 했나 http://www.segye.com[...]
[16] 웹사이트 http://weekly.khan.c[...]
[17] 웹사이트 법률가의 문장 http://www.domin.co.[...]
[18] 웹사이트 http://news.naver.co[...]
[19] 뉴스 http://newslibrary.n[...] 한겨레신문 1995-03-24
[20] 웹인용 대한민국헌법·헌법재판소 연대표 https://library.ccou[...] 헌법재판소 도서관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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