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만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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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학만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계동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활동했으며, 명동학교 등 학교 설립을 후원했다. 이강년 의병부대에 재정을 지원하고,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성명회를 조직하여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알렸다. 권업회 총재를 역임하고 한흥동 건설을 추진했으며,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노인동맹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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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학만은 1907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계동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활동하는 등 교육 활동에 힘썼다. 1908년에는 이강년 의병부대에 재정을 지원하고, 성명회를 조직하여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10년에는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인 사회를 이끌었으며, 권업회 총재, 한흥동 건설사업 추진, 대한독립선언서 서명, 노인동맹단 단장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2.1. 교육 활동

1907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 Shinhanchon영어(新韓村)에서 계동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활동하였고, 1908년 명동학교, 동흥학교, 선흥의숙 등 여러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2.2. 독립운동 지원

1908년 1월경 함경북도에서 이강년 의병부대에 재정을 지원하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 신한촌에서 이상설, 유인석, 이범윤 등 6명과 함께 성명회를 조직하여 취지서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각국에 호소하였다.

이범윤의 독립군 부대 편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1911년 5월 항일운동단체인 권업회가 창립되자 그해 12월 총재로 선임되었다.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이승희와 함께 중국 밀산현 봉밀산 일대에 독립군기지 개척의 일환으로 한인정착촌인 한흥동 건설사업을 추진하였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이른바 戊午獨立宣言書)에 서명하였다. 1921년 노인동맹단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3. 한인 사회 지도자 활동

1910년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1914년까지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 신한촌에서 이상설, 유인석, 이범윤 등 6명과 함께 성명회를 조직하여 취지서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각국에 호소하였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