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 (조선 중기)
1. 개요
김희는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연안 김씨이며, 김안로의 아들이자 효혜공주의 부마이다. 1521년 효혜공주와 혼인하여 연성위에 봉해졌으며, 아버지 김안로가 유배되자 인종에게 청하여 풀려나게 했다. 김안로의 사주로 작서의 변을 일으켜 경빈 박씨 등을 몰락시키는데 관여했으며, 효혜공주 사후 6개월 만에 사망했다. 딸 김선옥은 윤백원과 혼인했으며, 윤백원은 명종 대에 사림을 제거하려다 유배되었으나 문정왕후의 배려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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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년 사망 -
효혜공주
효혜공주는 조선 중종과 장경왕후의 장녀로, 김희와 혼인하여 딸 김선옥을 낳았으며, 이질을 앓다 사망하여 고양의 월산대군 묘에 예장되었다. -
1531년 사망 -
한스 부르크마이어
한스 부르크마이어는 15세기 말~16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판화가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종교화와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특히 목판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막시밀리안 1세의 의뢰를 받은 목판화 연작과 키아로스쿠로 판화 기법 혁신, '아프리카와 인도의 사람들' 시리즈 제작 등으로 초기 인류학 발전에 기여했다. -
조선의 부마 -
윤사로
윤사로는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등 요직을 역임하며 세조 정권에 기여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등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왕조실록에 영민함과 청렴함이 기록됨과 동시에 재산 축적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시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
조선의 부마 -
심종
심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청원군에 봉해지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회안군 이방간과 내통한 죄로 폐서인되어 사망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본관은 연안으로 아버지 김안로(金安老)와 어머니 인천 채씨(仁川 蔡氏) 채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이름은 몽룡(夢龍)이며 후에 희(禧)로 개명하였다.
1520년(중종 15년) 12월 14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다음해인 1521년(중종 16년) 11월 길례를 올리고 연성위(延城尉)에 봉해졌다.
아버지 김안로가 남곤과 심정의 탄핵으로 경기도 풍덕(蘴德)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인종을 통해 중종에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해 귀양에서 풀려나게 하였다.
1527년(중종 22년) 김안로의 사주로 작서의 변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경빈 박씨 및 그의 소생인 복성군, 심정 등이 주모자로 몰려 사사되었다. 1527년3월 28일 원한을 품은 김안로의 사주로 동궁전의 해(亥) 방향에 탄 쥐 한 마리를 걸어놓고, 또 수조의 나무 부분에 방서를 작성하여 걸어두었으며, 걸어 다니며 왕세자(인종)를 비방하는 내용의 흑색 선전을 퍼뜨렸다. 해(亥)는 왕세자가 해년에 태어났음을 의미하며, 이 날은 왕세자의 생일이었고, 쥐는 왕세자를 뜻했다. 이를 소서의 변이라 한다.
1531년(중종 26년) 4월 20일, 아내 효혜공주가 딸 선옥(善玉)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하였다. 김희 역시 효혜공주가 죽은지 반년이 지난 10월 10일 병으로 사망했다.
효혜공주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김선옥은 문정왕후의 오빠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의 아내가 되었다. 윤백원은 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었으나 효혜공주의 하나뿐인 사위라는 이유로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했다.
2.1. 혼인과 연성위 책봉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아버지 김안로(金安老)와 어머니 인천 채씨(仁川 蔡氏) 채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이름은 몽룡(夢龍)이며 후에 희(禧)로 개명하였다.
1520년(중종 15년) 12월 14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다음해인 1521년(중종 16년) 11월 길례를 올리고 연성위(延城尉)에 봉해졌다.
아버지 김안로가 남곤과 심정의 탄핵으로 경기도 풍덕(蘴德)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중종에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해 귀양에서 풀려나게 하였다.
1527년(중종 22년) 김안로의 사주로 작서의 변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경빈 박씨 및 그의 소생인 복성군, 심정 등이 주모자로 몰려 사사되었다.
1531년(중종 26년) 4월 20일, 아내 효혜공주가 딸 선옥(善玉)을 낳고 사망하였다. 김희 역시 효혜공주가 죽은지 반년이 지난 10월 10일 병으로 사망했다.
효혜공주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김선옥은 문정왕후의 오빠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의 아내가 되었다. 윤백원은 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었으나 효혜공주의 하나뿐인 사위라는 이유로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했다.
2.2. 아버지 김안로의 정치 활동 지원
본관은 연안으로 아버지 김안로와 어머니 인천 채씨 채수의 딸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이름은 몽룡(夢龍)이며 후에 희(禧)로 개명하였다.
1520년(중종 15년)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와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이듬해 1521년 길례를 올리고 연성위(延城尉)에 봉해졌다. 아버지 김안로가 남곤과 심정의 탄핵으로 경기도 풍덕으로 유배될 위기에 처하자, 인종을 통해 중종에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해 귀양에서 풀려나게 하였다.
1527년(중종 22년) 김안로의 사주로 작서의 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경빈 박씨 및 그의 소생인 복성군, 심정 등이 주모자로 몰려 사사되었다.
2.3. 작서의 변 가담
1527년(중종 22년) 아버지 김안로의 사주로 작서의 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경빈 박씨 및 그의 소생인 복성군, 심정 등이 주모자로 몰려 사사되었다. 1527년3월 28일 원한을 품은 김안로의 사주로 동궁전의 해(亥) 방향에 탄 쥐 한 마리를 걸어놓고, 또 수조의 나무 부분에 방서를 작성하여 걸어두었으며, 걸어 다니며 왕세자(인종)를 비방하는 내용의 흑색 선전을 퍼뜨렸다. 해(亥)는 왕세자가 해년에 태어났음을 의미하며, 이 날은 왕세자의 생일이었고, 쥐는 왕세자를 뜻했다. 이를 소서의 변이라 한다.
2.4. 효혜공주와의 사별과 죽음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어릴적 이름은 몽룡(夢龍)이었으나 후에 희(禧)로 개명하였다. 1520년(중종 15년) 12월 14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다음해인 1521년(중종 16년)년) 11월 길례를 올리고 연성위(延城尉)에 봉해졌다.
1531년(중종 26년) 4월 20일, 아내 효혜공주가 딸 선옥(善玉)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하였다. 김희 역시 효혜공주가 죽은지 반년이 지난 10월 10일 병으로 사망했다.
효혜공주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선옥은 문정왕후의 오빠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의 아내가 되었다. 윤백원은 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었으나 효혜공주의 하나뿐인 사위라는 이유로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했다.
2.5. 사후
김희는 효혜공주가 죽은 지 반년이 지난 1531년(중종 26년) 10월 10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효혜공주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선옥은 문정왕후의 오빠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의 아내가 되었다. 윤백원은 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었으나 효혜공주의 하나뿐인 사위라는 이유로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했다.
효혜공주는 출산으로 산후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망했고, 태어난 딸 김선옥은 후에 문정왕후의 조카 윤백원에게 시집갔다.
3. 가족 관계
아버지 김안로(1481~1537)와 어머니 인천 채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채수의 외손자이다. 아내는 효혜공주(1511~1531)이다. 딸 김선옥(1531~?)은 윤백원(1528~1589)에게 출가하였는데, 윤백원은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로의 아들이다. 외손녀 윤개미치(1555~1589)는 아버지 윤백원을 독살했다는 모함을 받아 사망하였다. 외손녀사위는 이홍원(1554~158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