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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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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원로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윤원형의 형이다. 1515년에 태어나, 누이동생의 왕비 간택으로 가문의 권력 기반을 다졌으나, 권력 투쟁에 휘말려 여러 차례 파직과 유배를 겪었다. 특히 을사사화를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관여했으며, 동생 윤원형과의 갈등으로 파직된 후 사사되었다. 그는 권력 다툼 속에서 복권과 탄핵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았고, 사극에서도 권력 암투를 보여주는 인물로 자주 등장한다.

2. 생애

1515년 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하자, 1517년 윤원로의 누이동생이 왕비(문정왕후)로 간택되면서 가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2] 1536년 감역이 되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 6품으로 승진했으나, 갑작스러운 승진으로 대간의 논박을 받고 체직되었다. 1537년 좌사어로 근무할 때 사돈인 김안로와 다투다가 파직, 여러 번 대간의 논박을 받고 문외출송되었다가 유배되었다. 이후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가 실패하면서 관직에 복귀했다.[2] 1544년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었다.

1544년 (인종 즉위) 인종이 즉위하면서 윤임의 대윤이 득세하자, 윤원로는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2] 이후 동생인 윤원형, 조카 윤춘년 등과 함께 윤임을 축출할 계획을 세웠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이 사망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복권되어 군기감첨정이 되었다. 문정왕후,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인종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의 예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게 했다.[2]

같은 해 7월, 윤임 등 대윤(大尹) 일파를 축출하기 위해 대윤 일파가 경원대군(명종)을 해치려 했다고 무고했으나, 영의정 윤인경(尹仁鏡)과 좌의정 유관(柳灌)의 탄핵으로 전라남도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을사사화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다시 풀려나 군기감첨정이 되었다. 국왕의 장례는 5월장이 원칙이었으나 문정왕후·윤원형·이기(李芑) 등과 함께 '인종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의 예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게 했다.[2] 그 뒤 을사사화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됐다.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 돈녕부도정에 이르렀으나,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2] 1546년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에서 패하여 탄핵을 받아 파직, 유배되고, 배소에서 사사당했다. 바로 상구와 관곽이 내려졌으나 사헌부 등이 이를 문제삼기도 했다. 이 일로 그의 아들 윤백원은 윤원형의 정적인 이량과 결탁하게 되었다.

정적인 김안로(金安老)와 사돈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김안로의 사촌 형 김안수의 딸이 동생 윤원형의 본부인이다.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은 중종의 딸 효혜공주와 연성위 김희(延城尉 金禧 ? ~ 1531년)의 딸 김선옥(金善玉, 1531년 ~ ?)과 결혼했다. 며느리 김선옥은 김안로의 손녀였다.

2. 1. 초기 생애

1515년 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하자, 1517년 윤원로의 누이동생이 왕비(문정왕후)로 간택되면서 가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2] 1536년 감역이 되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 6품으로 승진했으나, 갑작스러운 승진으로 대간의 논박을 받고 체직되었다. 1537년 좌사어로 근무할 때 사돈인 김안로와 다투다가 파직, 여러 번 대간의 논박을 받고 문외출송되었다가 유배되었다. 이후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가 실패하면서 관직에 복귀했다.[2] 1544년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었다.

2. 2. 권력 투쟁과 을사사화

1544년 (인종 즉위) 인종이 즉위하면서 윤임의 대윤이 득세하자, 윤원로는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2] 이후 동생인 윤원형, 조카 윤춘년 등과 함께 윤임을 축출할 계획을 세웠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이 사망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복권되어 군기감첨정이 되었다. 문정왕후,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인종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의 예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게 했다.[2]

같은 해 7월, 윤임 등 대윤(大尹) 일파를 축출하기 위해 대윤 일파가 경원대군(명종)을 해치려 했다고 무고했으나, 영의정 윤인경(尹仁鏡)과 좌의정 유관(柳灌)의 탄핵으로 전라남도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을사사화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되었다.

2. 3. 몰락과 죽음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다시 풀려나 군기감첨정이 되었다. 국왕의 장례는 5월장이 원칙이었으나 문정왕후·윤원형·이기(李芑) 등과 함께 '인종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의 예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게 했다.[2] 그 뒤 을사사화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됐다.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 돈녕부도정에 이르렀으나,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2] 1546년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에서 패하여 탄핵을 받아 파직, 유배되고, 배소에서 사사당했다. 바로 상구와 관곽이 내려졌으나 사헌부 등이 이를 문제삼기도 했다. 이 일로 그의 아들 윤백원은 윤원형의 정적인 이량과 결탁하게 되었다.

3. 가계


  • 조부 : 윤욱(尹頊, 1459 ~ 1485)
  • * '''아버지''' : 파산부원군 윤지임(坡山府院君 尹之任, 1475 ~ 1534)
  • * '''어머니''' :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 李氏, 1475 ~ 1511) - 이덕숭(李德崇)의 딸
  • ** 형 : 윤원개(尹元凱)
  • ** 형 : 윤원량(尹元亮, 1495 ~ 1569)
  • ** 형 : 윤원필(尹元弼, 1496 ~ 1547)
  • ** 큰누나 : 파평 윤씨
  • ** 작은누나 :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 ~ 1565)
  • ** 남동생 : 윤원형(尹元衡, 1503 ~ 1565)
  • ** '''정부인''' : 평창 이씨 이량(李亮)의 딸[3]

장남 : 윤백원(尹百源, 1528 ~ 1589)
며느리 : 김선옥(金善玉, 1531 ~ ?) - 효혜공주김희(金禧)의 딸
* 손녀 : 윤개미치(尹介未致, ? ~ 1589)[4]
장녀 : 윤애현(尹愛賢, 1534 ~ ?)
차남 : 윤천원(尹千源, 1539 ~ ?)
차녀 - 윤중현(尹仲賢, 1541 ~ ?)
3남 : 윤만원(尹萬源, 1545 ~ ?)
서자 : 윤조원[4]

윤지임(尹之任)과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李氏)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윤원개(尹元凱), 윤원량(尹元亮), 윤원필(尹元弼)의 동생이며, 문정왕후의 남동생이고, 윤원형(尹元衡)에게는 친형이 된다.[3] 정부인은 평창 이씨 이량(李亮)의 딸이다.[3]

정부인 평창 이씨에게서는 윤백원, 윤천원, 윤만원 세 아들과 윤애현, 윤중현 두 딸을 두었고, 측실 여흥 민씨에게서 서자 윤조원을 두었다. 장남 윤백원은 효혜공주김희(金禧)의 딸 김선옥(金善玉)과 혼인하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윤개미치(尹介未致)가 있다.[4]

김안로(金安老)와는 정적(政敵)이었으나 사돈관계를 맺었다. 김안로의 사촌 형 김안수(金安遂)의 딸이 동생 윤원형의 본부인이었다.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은 중종의 딸 효혜공주와 김희의 딸 김선옥(金善玉, 1531년 ~ ?)과 결혼했다. 며느리 김선옥은 김안로의 손녀였다.

3. 1. 본가와 처가

윤지임(尹之任)과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李氏)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윤원개(尹元凱), 윤원량(尹元亮), 윤원필(尹元弼)의 동생이며, 문정왕후의 남동생이고, 윤원형(尹元衡)에게는 친형이 된다.[3] 정부인은 평창 이씨 이량(李亮)의 딸이다.[3]

정부인 평창 이씨에게서는 윤백원, 윤천원, 윤만원 세 아들과 윤애현, 윤중현 두 딸을 두었고, 측실 여흥 민씨에게서 서자 윤조원을 두었다. 장남 윤백원은 효혜공주김희(金禧)의 딸 김선옥(金善玉)과 혼인하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윤개미치(尹介未致)가 있다.[4]

3. 2. 사돈 관계

김안로(金安老)와는 정적(政敵)이었으나 사돈관계를 맺었다. 김안로의 사촌 형 김안수(金安遂)의 딸이 동생 윤원형의 본부인이었다.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은 중종의 딸 효혜공주와 김희의 딸 김선옥(金善玉, 1531년 ~ ?)과 결혼했다. 며느리 김선옥은 김안로의 손녀였다.

4. 윤원로에 대한 평가

5. 관련 작품

윤원로는 권력 암투를 다룬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1985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제4화 풍란에서는 강인덕이, 2001년 SBS 여인천하에서는 김기섭이 윤원로 역을 맡았다.

참조

[1] 문서 장경왕후의 아들
[2] 웹사이트 윤원로 - Daum 백과사전 http://enc.daum.net/[...]
[3] 문서 세종의 5남 광평대군의 외고손녀
[4] 뉴스 살인사건으로 본 조선시대 http://www.seoulilbo[...] 연합뉴스 200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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