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야 요시아키
1. 개요
나카야 요시아키는 1925년 나고야시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자치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아이치현 교육위원회 교육장을 거쳐, 1975년 아이치현 지사로 당선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나고야 유치를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1988년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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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치현지사 -
엔도 류사쿠
엔도 류사쿠는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관료, 지바현, 아오모리현, 미에현 지사, 만주국 총무청장, 아베 노부유키 내각의 내각서기관장,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등을 지낸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해방 후에는 무사시노 은행 창립 기여 및 참의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친일 행적 비판과 더불어 여운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발족을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아이치현지사 -
오타 마사히로
오타 마사히로는 야마가타현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성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현 지사, 경시총감, 귀족원 칙선의원, 관동 장관, 대만 총독 등을 지냈으나 태평양 전쟁 이후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사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
1925년 출생 -
조르조 나폴리타노
조르조 나폴리타노는 이탈리아 공산당 출신의 정치인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탈리아 최초의 공산당 출신 대통령이자 재선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
1925년 출생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1988년 사망 -
허정
허정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4·19 혁명 후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를 지내며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
1988년 사망 -
숀 맥브라이드
숀 맥브라이드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정치인, 변호사,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하고, 클란 나 포블라흐타를 창당하여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제앰네스티 공동 설립, 노벨 평화상 수상 등 인권 및 평화 운동에 기여했다.
2. 생애
1925년 나고야시에서 태어난 나카야 요시아키는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자치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후현과 아이치현에서 근무한 후, 1969년 아이치현 교육위원회 교육장에 취임하여 학교군제도를 추진했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는 사립학교에 진학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75년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79년 재선에 성공했다. 지사 재임 기간 동안 1988년 나고야 하계 올림픽 유치를 추진했으나, 1981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대한민국 서울에 밀려 유치에 실패했다.
1983년 지사직에서 퇴임한 후 나고야 돔 사장, 아이치 의과대학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 11월 18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나고야 올림픽 유치 실패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2.1. 초기 생애
1925년 10월 27일, 나고야시 니시구 사쿠라기 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방직 회사와 미싱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나카야 상회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아이치현 아쓰미군 고베촌(현 다하라시)에서 농업을 경영하던 아버지 나카야 세이이치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호황에 휩쓸려 밭을 팔고, 기계 공장을 시작했으나 실패하여 야반도주하듯이 가족은 나고야시로 이주했다.
1945년 4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으나, 3개월 후 육군에 입대하였다. 간부 후보생 대표로서 자주 구타당했다고 한다. 1948년 9월, 대학을 졸업하고 자치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후현 서무과장, 지사공실차장 등을 거쳐, 1960년 아이치현 수도부장, 노동부장 등을 역임했다. 1969년 4월 16일, 아이치현 교육위원회의 교육장으로 취임하였다. 교육장 재임 중에는 학교군제도를 추진했다. 학교군제도는 학교마다 그룹을 만들어 학력 격차를 줄이고 평균점에 가깝게 합격자를 나누는 입시 제도의 하나이다. 나카야는 학교군제도를 추진한 당사자였지만, 당시 본인의 자녀는 학교군제도를 피하고 사립학교에 진학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2.2. 관료 생활
1948년 9월, 대학을 졸업하고 자치성에 근무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기후현 서무과장, 지사공실차장 등을 거쳐, 1960년 아이치현 수도부장, 노동부장 등을 역임했다.
1969년 4월 16일, 아이치현 교육위원회 교육장에 취임하였다. 교육장 재임 중에는 학교군제도(学校群制度)를 추진했다. 학교군제도란 학교마다 그룹(郡)을 만들어 학력 격차를 줄이고 평균점에 비슷하게끔 합격자를 나누는 입시 제도의 하나이다. 나카야는 학교군제도를 추진한 당사자이지만, 당시 본인의 자녀는 학교군제도를 피하고 사립학교에 진학시켜 물의를 빚었다.
2.3. 아이치현 지사
1974년 12월 9일, 나카야는 아이치현 지사 출마 의사를 표명했고, 다음 해인 1975년 2월 9일에 실시된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서 자민당과 민사당의 추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9년 2월, 자민당,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의 추천을 받아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1982년 5월 17일, 다음 해에 치러질 지사 선거에 불출마를 표명하였고, 1983년 2월 14일 퇴임하였다.
2.4. 1988년 나고야 하계 올림픽 유치 실패
1977년 8월 25일, 나고야 올림픽 유치 계획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모든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1979년 2월, 나카야는 자민당,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의 추천을 받아 현지사 선거에 입후보하여 재선되었다.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에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발표되었는데, 당시 개최지로 유력했던 나고야시가 서울에 절반에 가까운 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나고야시가 서울에 패배한 요인으로는 서울을 이길 거라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뤄 방심하였고, 로비 활동에 소홀하였다. 또한 지역 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지속적인 항의 운동 등이 나고야시의 패배 요인으로 거론된다. 유치 성공을 100% 확신하던 각종 매체는 개최 성공을 축하하는 특별방송까지 편성한 상태였다. 개최 도시 결정이 발표되자, 특별방송 스타디움은 침묵에 휩싸였다.
2.5. 퇴임과 자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폐막하고 한 달이 지난 11월 18일 오후 9시경, 나고야시 나카구 사카에 잇쵸메에 있는 자신의 사무소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고, 가족에 의해 발견되었다. 나카야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넥타이를 맨 채였다.
나카야는 죽기 한 달 전부터 아이치현 의대 관계자에게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경찰은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괴로워하던 중에 급작스럽게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지만, 원인은 불명이다. 일부에서는 서울 올림픽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고야 올림픽 유치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