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류사쿠
1. 개요
엔도 류사쿠는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1910년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도쿄부 산업부장, 지바현 내무부장, 아오모리현 지사, 미에현 지사를 역임했으며, 1928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장, 내각서기관장, 도쿄 신문 사장을 거쳐 1944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취임했다. 광복 후 공직에서 추방되었으나, 1952년 무사시노 은행 초대 은행장을 역임했고, 1955년 참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3년 사망 후 종3위로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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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엔도 류사쿠 |
|---|---|
| 로마자 표기 | Endo Ryusaku |
| 출생 | 1886년 3월 18일 |
| 출생지 | 일본 사이타마현 기타카쓰시카군 센즈카 마을 (현재의 사테시) |
| 사망 | 1963년 9월 18일 |
| 사망지 | 알 수 없음 |
| 학력 |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독법과 졸업 |
| 소속 정당 | (입헌정우회 →) ( 무소속 →) 자유민주당 |
| 칭호/훈장 | 종3위 훈1등 서보장 쇼와 6년 내지 9년 사변 종군기장 |
| 배우자 | 알 수 없음 |
| 자녀 | 알 수 없음 |
| 친족 (정치가) | 알 수 없음 |
| 서명 | 알 수 없음 |
| 국회의원 | 참의원 의원 |
|---|---|
| 선거구 | 사이타마현 지방구 |
| 당선 횟수 | 1회 |
| 임기 시작 | 1955년 6월 5일 |
| 임기 종료 | 1956년 6월 3일 |
| 국회의원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 | 사이타마현 제3구 |
| 당선 횟수 | 1회 |
| 임기 시작 | 1928년 2월 20일 |
| 임기 종료 | 1930년 1월 21일 |
| 임기 시작 | 1944년 7월 24일 |
|---|---|
| 임기 종료 | 1945년 10월 24일 |
| 총독 | 아베 노부유키 |
| 내각 | 아베 내각 |
| 임기 시작 | 1939년 8월 30일 |
| 임기 종료 | 1940년 1월 16일 |
| 임기 시작 | 1933년 7월 22일 |
| 임기 종료 | 1935년 5월 11일 |
| 임기 시작 | 1932년 6월 28일 |
| 임기 종료 | 1933년 7월 21일 |
| 임기 시작 | 1931년 12월 28일 |
| 임기 종료 | 1932년 6월 28일 |
| 임기 시작 | 1926년 9월 28일 |
| 임기 종료 | 1928년 2월 28일 |
| 임기 시작 | 1925년 9월 16일 |
| 임기 종료 | 1926년 9월 28일 |
-
미에현지사 -
야마가타 이사부로
야마가타 이사부로는 일본 제국의 정치인으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양자이자 한국통감부 부통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중추원 의장을 지내며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 -
아오모리현지사 -
가와무라 다케지
가와무라 다케지는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요직을 거쳐 귀족원 의원, 내무 차관, 남만주 철도 사장, 대만 총독, 사법 대신 등을 역임하다 1955년에 사망했다. -
아이치현지사 -
오타 마사히로
오타 마사히로는 야마가타현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성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현 지사, 경시총감, 귀족원 칙선의원, 관동 장관, 대만 총독 등을 지냈으나 태평양 전쟁 이후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사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
아이치현지사 -
나카야 요시아키
나카야 요시아키는 아이치현 교육장과 지사를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자 교육자로, 학교군 제도 도입 시도와 올림픽 유치 실패를 겪었으며 나고야 구장 사장과 아이치 의과대학 이사장을 역임했다.
2. 생애 및 경력
엔도 류사쿠는 사이타마현 출신의 일본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1910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도쿄부, 지바현, 아오모리현, 미에현 등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
1928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무사시노 철도 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1931년부터는 가나가와현, 아이치현 지사를 거쳐 1933년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장에 취임하여 1935년까지 재직했다. 1936년에는 귀족원 의원으로 칙선되었다.
1939년 아베 노부유키 내각의 내각서기관장으로 발탁되었으며, 1943년에는 도쿄 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1944년에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임명되어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 통치에 관여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공직 추방되었다가 해제된 후, 1952년 무사시노 은행 창립위원장 겸 초대 은행장에 취임했다. 1955년에는 참의원 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1년간 의원직을 수행했으며, 1956년 무사시노 은행 회장에 취임했다. 1963년 사망했다.
그의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2.1. 초기 생애 및 관료 경력
사이타마현 기타카쓰시카군 센즈카 촌(현 사테시) 출신으로, 엔도 고고로의 차남이다. 제2고등학교를 거쳐 1910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독법과를 졸업 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내무성에 들어갔다.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시보, 서기관, 비서관을 역임했다.
1920년 도쿄부 산업부장, 지바현 내무부장, 아오모리현, 미에현 지사를 역임했다. 1928년 사이타마현 제3구에서 입헌정우회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이 되었다. 변호사 개업, 무사시노 철도 회사 사장에 취임했다.
1931년 가나가와현 지사, 1932년 아이치현 지사를 거쳐 1933년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장에 취임했다.
2.2. 정치 경력
1910년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였다. 1920년부터 도쿄부 산업부장, 지바현 내무부장, 아오모리현 관선 지사, 미에현 관선 지사를 역임하였다. 1928년에는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무사시노 철도 사장을 역임하였다.
1931년 가나가와현 관선 지사, 1932년 아이치현 관선 지사를 거쳐 1933년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장(~1935년)을 맡았다. 1939년 아베 노부유키 내각의 내각서기관장으로 취임하였다. 1943년 도쿄 신문 사장을 거쳐 1945년에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임명되었다.
1952년 무사시노 은행 창립위원장으로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55년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6년 무사시노 은행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2.3.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시절
1944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취임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에서의 전후 처리를 예상하여, 조선인 독립운동가인 여운형과 행정권 이양 등의 사전 교섭을 수면 아래에서 진행했다. 8월 15일 쇼와 천황이 옥음방송으로 포츠담 선언 수락에 의한 항복을 (조선인을 포함한) 일본 국민에게 발표한 당일 밤에 여운형 등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것을 지원했다고도 한다.
2.4. 패전 이후
1945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임명되었다.
3. 가족 및 친족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고고로 | |
| 어머니 | 소요 | 야마나카 유에몬의 둘째 딸 |
| 아내 | 타네 | 1892년 -, 요코가와 시게지의 누나 |
| 자녀 | 아들, 딸 | |
| 처남 | 요코가와 시게지 | 사이타마현 고액 납세자, 농업, 제재업, 정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