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영 (1887년)
1. 개요
남궁영은 1887년 전라남도 영암군 출생으로, 일본 유학 후 도쿄 제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관리가 된 인물이다. 그는 진도군수, 함평군수, 충청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1935년 퇴관 후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1939년에 사망했다.
| title: 남궁영 | |
| 한글 | 남궁영 |
|---|---|
| 한자 | 南宮營 |
| 가타카나 | 남구・용 |
| 이름 | 남궁영 |
|---|---|
| 한글 | 남궁영 |
| 출생 | 1887년 |
| 출처 | 1940 조선 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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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충청북도지사 -
장헌식
장헌식은 대한제국 관료와 조선총독부 사무관,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하며 친일 행위를 했고, 청주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해방 후 공금횡령 혐의로 처벌받았으며,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충청북도지사 -
유만겸
유만겸은 유길준의 장남으로, 조선총독부 관료, 문경군수, 충청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친일 행위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수록되었다. -
함열 남궁씨 -
남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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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 남궁씨 -
남궁영 (1962년)
남궁영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으로, 기술고시 합격 후 충청남도청 주요 보직, 행정자치부 정책기획관 및 대변인을 거쳐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도지사 권한대행을 역임하고 현재는 세종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2. 생애
남궁영은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1914년에 도쿄 제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대학 졸업 직후 곧바로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가 되면서 관계에 들어섰다.
이후 빠른 승진을 거듭하여,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 통치에 공을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수록되었다. 1934년 훈3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1935년을 기준으로 정4위 훈3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참여관, 조선총독부 사무관의 4개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과 관료 두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887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1906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구제 제1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조선인 유학생 친목 단체인 대한유학생회에 참가했다. 1909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 1914년에 졸업했다. 도쿄 제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는 평가가 있다.
2.2. 조선총독부 관료 생활
1914년 도쿄 제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직후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가 되면서 관계에 들어섰다. "대학 나온 조선인 관리로서 최초로 칙임에 임명되었던 만큼 그의 수완은 정평이 나 있다."라는 인물평이 남아 있다.
1916년 총독부 내무부에서 근무하였고, 1917년 전라남도 진도군 군수로 임명되었다. 1919년에는 함평군 군수로 이동했다. 1921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무관을 거쳐 유럽 시찰을 다녀왔다. 1924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근무했다. 1926년 충청남도 참여관, 1929년 경상남도 참여관으로 이동했다. 1930년부터 경상남도 산업부장을 겸임했고, 경북 수산업 발전에 세운 공을 인정받았다. 1931년 충청북도 도지사가 되었다. 1935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고, 구미 제국에 출장했다. 1934년 훈3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1935년을 기준으로 정4위 훈3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2.3. 사망
1939년(昭和 14年일본어)에 사망했다.
3. 친일 논란 및 평가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 통치에 공을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수록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참여관, 조선총독부 사무관의 4개 부문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관료 2개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