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식 (1948년)
1. 개요
남대식(1948년)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였다. 선수 시절 고려대학교를 거쳐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대한민국 U-20, B팀 국가대표로도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국민은행 코치를 시작으로 고려대학교, 대한민국 U-20 대표팀, 남북 단일팀 코치 등을 역임했다. 2001년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대행을 맡았으며, 베트남 빈즈엉 FC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2018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 이름 | 남대식 |
|---|---|
| 한자 표기 | 南大植 |
| 로마자 표기 | Nam Dae-sik |
| 출생일 | 1948년 10월 15일 |
|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
| 사망일 | 2018년 3월 20일 (향년 69세)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포지션 | 감독 (과거 미드필더 / 공격수) |
| 청소년 클럽 연도 | 1967-1969 |
|---|---|
| 청소년 클럽 | 동북고등학교 |
| 대학교 연도 | 1970-1973 |
| 대학교 | 고려대학교 |
| 클럽 연도 | 1969, 1969, 1974-1979 |
| 클럽 | 양지 축구단, 제일은행 축구단, 국민은행 축구단 |
| 국가대표팀 연도 | 1969, 1970, 1971 |
|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B, 대한민국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1 (0) |
| 클럽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03년 1월 1일 |
|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03년 1월 1일 |
| 감독 연도 | 1980, 1984-1986, 1987-1996, 1990, 1990, 1991, 1995, 1998, 1999-2000, 2000-2001, 2001, 2003-2004, 2004, 2004, 2006-2007 |
|---|---|
| 감독 클럽 | 국민은행 축구단 (코치), 고려대학교 (코치), 고려대학교, 한국대학축구연맹 (기술이사), 대한민국 U-20, 코리아 U-20 (코치), 대한민국 유니버시아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전북 현대 다이노스 (기술고문), 전북 현대 다이노스 (감독 대행), 빈즈엉 FC, 빈즈엉 FC (기술고문), 빈즈엉 FC, 한국중등축구연맹 (부회장) |
-
대한민국의 베트남 진출 축구 감독 -
이흥실
이흥실은 K리그 초창기 포항제철에서 맹활약하며 MVP, 신인상, 도움왕, 베스트 11을 수상하고 K리그 최초 30-30 클럽 가입, 1990년 월드컵 국가대표 출전, 안산 무궁화 FC 감독 시절 K리그 챌린지 우승 등의 업적을 남긴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
V리그 1의 대한민국인 축구 감독 -
이흥실
이흥실은 K리그 초창기 포항제철에서 맹활약하며 MVP, 신인상, 도움왕, 베스트 11을 수상하고 K리그 최초 30-30 클럽 가입, 1990년 월드컵 국가대표 출전, 안산 무궁화 FC 감독 시절 K리그 챌린지 우승 등의 업적을 남긴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
V리그 1의 대한민국인 축구 감독 -
전재호
전재호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선수 시절 성남 일화 천마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고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으며, 은퇴 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 U-18팀 코치를 거쳐 하노이 FC의 임시 감독으로서 V.리그 1 우승과 베트남 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
전북 현대 모터스의 디렉터 -
로베르토 디 마테오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스위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출신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첼시 FC에서 여러 우승을 이끌었고, 지도자로서 첼시 FC에서 FA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
전북 현대 모터스의 디렉터 -
박지성
박지성은 '두 개의 심장'으로 불린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행정가로,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서 데뷔하여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명문 클럽에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이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2002년 월드컵 4강, 2010년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에는 유소년 축구 발전 기여 및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행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양지 축구단 및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1년여간 선수 생활을 한 뒤 1970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해 고연전에서 쐐기골을 득점해 팀의 승리에 공헌했으며, 1974년 국민은행 축구단에 합류하였다.
1969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197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이원화 원칙에 따라 국가대표 B팀이 신설되자 B팀인 백호팀에 포함되었다. 1971년 국가대표팀의 중남미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었고,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에 참가해 말레이시아와의 조별 라운드 2차전에서 국가대표팀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2.1. 클럽
양지 축구단 및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1년여간 선수 생활을 한 뒤 1970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해 있었던 고연전에서 쐐기골을 득점해 팀의 승리에 공헌했으며, 이후 1972년 전국대학축구연맹전에서는 한양대학교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의 활약으로 팀의 공동 우승에 기여하였다. 그 뒤 1973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여러 차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으나 팀은 8강전에서 탈락하였고, 얼마 뒤 있었던 와세다 대학과의 정기전 중 두 번째 경기에서 추가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일조하였다. 또한 그 해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팀의 준우승을 견인하며 수훈선수상을 수상하였고, 고연전에서는 팀의 결승골이 된 프리킥을 얻어내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1974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국민은행 축구단에 합류하였고, 그 해 팀의 대통령배 금융단 축구대회 준우승에 일조했으나 한국신탁은행 축구단과의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와 난투극 직전 상황까지 가는 상황을 연출하며 구설수에 올랐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고, 1975년에는 대통령배 금융단 축구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1977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79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2.2. 국가대표팀
1969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성공시켜 팀의 7-0 대승을 이끌었다. 또한 라오스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대표팀은 이란과의 8강전에서 패배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197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이원화 원칙에 따라 국가대표 B팀이 신설되자 B팀인 백호팀에 포함되었으며, 같은 해 열린 자카르타 창립 기념대회에 출전하였다. 그 해 이원화 원칙이 다시 폐지되어 국가대표팀이 하나로 통합됨에 따라 국가대표팀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킹스컵에도 나설 예정이었으나 A매치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제외되었다.
그 뒤 1971년 국가대표팀의 중남미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었고, 그 해 개최된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에도 참가해 말레이시아와의 조별 라운드 2차전에서 국가대표팀에 정식으로 데뷔했으며, 그 경기에서 정강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다시 국가대표팀이 이원화되어 국가대표 B팀이 부활하자 다시 B팀으로 편입되었으며, 얼마 뒤 있었던 던디 유나이티드 FC와의 평가전에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직후 열린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에도 국가대표 B팀의 일원으로 출전했으며, 중화 타이베이와의 3-4위전에서 이중휘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는 등의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후 1972년에는 제1회 한일 정기전의 대학 선발팀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3. 지도자 경력
1980년 국민은행 축구단의 코치로 활동했으나 주심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여 구설수에 올랐다. 이듬해 한동안 국민은행 남대문 지점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축구계와 거리를 두었다. 1984년 은행원 업무와 겸직한다는 조건으로 고려대학교의 코치로 임명되었으며, 그 해 이영익 등 유망 선수들을 데려왔으나 김봉길이 연세대학교로 진학하는 등의 손실을 안았다. 1985년에는 송주석, 김상훈 등을 스카우트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이병우 감독을 보좌하며 팀의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견인한 뒤 지도자 코치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1986년 김종부에게 현대 호랑이 축구단에 입단할 것을 강압하며 당시 불거진 스카우트 파동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으며, 스카우트 파동 이후 은행원 업무를 그만두고 지도자 생활에 전념하며 고려대학교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전국대학축구연맹전 추계 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지도자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1988년 팀에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안기며 지도자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전국대학축구연맹전 추계 대회에서 다시 한 번 팀을 정상에 올려 지도자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히로시마 축구 대회에 출전할 대학 선발팀의 감독을 맡았다. 1989년 팀의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 2연패를 이루어내 지도자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는 곽경근, 최익형 등의 유망주들을 데려오는 수훈을 발휘하였다.
1990년 한국대학축구연맹 기술이사로 선임되었으며, 같은 해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의 예선 및 본선을 지휘할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대회 우승을 이끌어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으며, 대회 종료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남북 단일팀 논의가 본격화되자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하였다. 올림픽 대표팀으로 차출된 김승안, 강철, 이임생, 곽경근 등 네 선수의 U-20 대표팀 복귀를 요청했으며, 대한축구협회는 이들 중 강철과 이임생을 남북 단일팀에 합류시키기로 합의하였다. 1991년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평가전에 출전할 대표팀을 이끌었으며, 남북 단일팀의 감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안세욱이 맡고 남대식은 코치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남북간 이루어진 평가전에서 1차전은 홍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1 승리, 2차전은 5-1로 백팀(대한민국)이 승리하였고, 평가전 이후 남북 단일팀 구성이 완료되었고 협의 결과 안세욱은 공격 훈련을, 남대식을 수비 훈련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대회 본선에서 남북 단일팀은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의 이변을 일으키며 1승 1무 1패로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전에서 브라질에 패배해 4강 진출은 무산되었으나 안세욱과 남대식의 상호 협조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1991년 대한축구협회 '축구인의 밤' 행사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대표팀 감독 중 한 명으로 검토되었으나 박상인이 낙점되었으며, 1994년 창단 예정인 전남 드래곤즈의 초대 감독 후보로 물망이 올랐으나 정병탁이 선임되었다. 1995년 대한민국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일본과의 유니버시아드 결승전에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며 준우승에 머무른 것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고려대학교에서도 부진한 성적이 이어지자 퇴진을 요구하는 투서가 잇따랐으며, 결국 1996년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1998년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99년 기술위원장에 올랐다. 2000년 전북 현대 다이노스의 기술고문 겸 스카우트로 위촉되어 박동혁 등을 영입했으며, 2001년 7월 성적 부진으로 최만희가 경질되어 감독이 공석이 되자 대행을 맡았다. 부임 후 3경기만에 첫 승을 올리는 등 4개월여간 2승 6무 6패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고, 그 해 11월 신임 감독으로 조윤환이 선임되자 기술고문으로 복귀했다. 2003년 9월 V리그 승격을 확정지은 빈즈엉 FC 감독직에 올랐으며, 2004년부터 팀을 지휘하였으나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8라운드인 테 꽁 FC와의 홈 경기에서 0-1로 패배한 직후 감독에서 물러나 기술고문으로 옮겼다. 마이응옥코아 감독 또한 부진한 성적을 거두어 16라운드 종료 후 경질된 이후 남대식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였지만, 분위기 반전에 실패하며 결국 시즌이 끝난 이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07년까지 한국중등축구연맹의 부회장을 지내며 2006년 '한국중등연맹회장배 국제친선 축구대회' 신설에 관여했으며, 그 해 '전북 축구인의 밤' 행사에서 전북축구협회장 공로패를 수상하였다.
4. 사망
2018년 3월 2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대학교 감독 시절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김대의는 2018년 3월 26일 수원 FC와 부천 FC 1995와의 K리그2 경기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조의를 표했다.
5. 수상 경력
(제공된 원본 소스에 남대식 선수의 수상 경력에 대한 정보가 없으므로, 이전 답변과 동일합니다.)
남대식에 대한 별도의 수상 경력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5.1. 선수
| 연도 | 소속팀 | 비고 |
|---|---|---|
| 1969년 | 양지 축구단 | |
| 1969년 | 제일은행 축구단 | |
| 1970년 ~ 1973년 | 고려대학교 | |
| 1974년 ~ 1979년 | 국민은행 축구단 | |
| 1969년 |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U-20 국가대표 |
| 1970년 | 자카르타 창립 기념대회 | B팀 국가대표 |
| 1971년 |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 국가대표 |
| 1971년 |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 | B팀 국가대표 |
5.2. 국가대표팀
* 1969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U-20)
* 1970년
자카르타 창립 기념대회 국가대표 (B팀)
* 1971년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국가대표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 국가대표 (B팀)
5.3. 감독
남대식은 1987년 고려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990년에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1년에는 전북 감독, 2003년에는 빈즈엉 감독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