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통상대신
1. 개요
남양통상대신은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된 직위이다. 1844년 광저우에 오구통상대신이 설치되어 양광총독이 겸임했으며, 1861년 상하이로 이전되었다. 1866년 오구통상대신이 남양통상대신으로 개칭되었고, 양강총독이 겸임하며 관청은 난징으로 옮겨졌다. 역대 남양통상대신으로는 증국번, 이홍장 등이 있으며, 청나라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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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관직과 칭호 -
흠차대신
흠차대신은 청나라에서 황제의 특명을 받아 지방 통제, 감찰, 외교 등의 임무를 수행한 임시 관직에서 유래했으며, 아편 전쟁 이후 서구 열강과의 외교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청나라의 관직과 칭호 -
북양통상대신
북양통상대신은 1870년 청나라가 삼구통상대신을 개칭하여 설치한 관직으로, 직례총독이 겸임하며 직례성, 산동성, 봉천성의 통상, 양무, 외교, 해방 등을 관할했다. -
청나라의 대외 관계 -
러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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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대외 관계 -
쿨리 (노동자)
쿨리는 19세기 노예제 폐지 이후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 대륙과 중국에서 유럽 식민지와 미국으로 이주한 일용직 노동자를 의미하며, 강제성과 착취로 얼룩진 쿨리 무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종결되었고 현재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 역사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1844년(도광 24년) 난징 조약으로 개항된 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 등 다섯 항구에서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오구통상대신 직위가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광저우에 설치되어 양광총독이 겸임했으나, 1861년(함풍 11년) 상하이로 이전하여 총리아문 관할 하에 두었으며, 설환이 오구통상대신을 맡았다.
1866년(동치 5년), 오구통상대신은 남양통상대신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양강총독이 겸임하면서 난징으로 관청이 이전되었다. 역대 남양대신으로는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심정, 장지동, 유곤일, 단방 등이 있다.
2.1. 오구통상대신 (1844년 ~ 1866년)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1844년(도광 24년) 난징 조약으로 개항된 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 등 다섯 항구에서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할 오구통상대신 직위가 광저우에 설치되었고, 양광총독이 겸임했다. 1861년(함풍 11년) 오구통상대신 관청은 상하이로 이전되어 총리아문의 관할 하에 놓였다. 이 시기 오구통상대신은 설환(薛煥)이었다.
2.2. 남양통상대신 (1866년 ~ )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1844년(도광 24년) 난징조약으로 개항된 다섯 항구(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에서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광저우에 오구통상대신 직위가 설치되었고, 양광총독이 겸임했다. 1861년(함풍 11년) 오구통상대신 관청은 상하이로 이전되어 총리아문의 관할 하에 놓였다. 당시 오구통상대신은 설환(薛煥)이었다.
1866년(동치 5년), 오구통상대신은 남양통상대신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양강총독이 겸임하며 난징으로 관청이 이전되었다.
역대 남양대신으로는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심정, 장지동, 유곤일, 단방 등이 있다.
3. 역대 남양통상대신
1844년 (도광 24년) 난징 조약으로 개항된 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 등 다섯 항구에서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오구통상대신 직위가 광저우에 설치되었고, 양광총독이 겸임했다. 1861년(함풍 11년) 오구통상대신 관청은 상하이로 이전되어 총리아문 관할 하에 놓였다. 이 시기 오구통상대신은 설환(薛煥)이었다.
1866년(동치 5년) 오구통상대신은 남양통상대신으로 개칭되었고, 양강총독이 겸임하며 난징으로 관청을 옮겼다. 역대 남양통상대신으로는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심정, 장지동, 유곤일, 단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