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싱베 에야데마
1. 개요
냐싱베 에야데마는 1967년부터 2005년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1935년 카비예족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1963년과 1967년 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에야데마는 1969년 토고 인민 집회를 창설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며, 여러 차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2002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 제한을 철폐하고 장기 집권했으며, 개인 숭배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 그는 2005년 사망 이후 아들 포르 냐싱베가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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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토고 |
|---|---|
| 출생일 | 1935년 12월 26일 |
| 출생지 | 프랑스령 토골란드 피야 |
| 사망일 | 2005년 2월 5일 |
| 사망지 | 튀니지 튀니스 근처 |
| 배우자 | 베로니크 마상 오세이 |
| 자녀 | 포르 냐싱베 크파차 냐싱베 |
| 종교 | 기독교 개신교 |
| 직위 | 토고 대통령 |
|---|---|
| 임기 시작 | 1967년 4월 14일 |
| 임기 종료 | 2005년 2월 5일 |
| 이전 대통령 | 클레베르 다조 |
| 다음 대통령 | 포르 냐싱베 |
| 총리 | 조제프 코쿠 코피고 에뎀 코조 크와시 클루체 외젠 코피 아도볼리 아그베요메 코조 코피 사마 |
| 정당 | 토고 인민 연합 |
| 복무 기간 | 1958년 - 1987년 |
|---|---|
| 최종 계급 | 대장 |
| 소속 | 토고군 |
| 임기 시작 | 1975년 11월 9일 |
|---|---|
| 임기 종료 | 1978년 6월 1일 |
| 이전 의장 | 야쿠부 고원 |
| 다음 의장 | 올루세군 오바산조 |
| 임기 시작 2 | 1980년 6월 3일 |
| 임기 종료 2 | 1981년 4월 2일 |
| 이전 의장 2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 다음 의장 2 | 시아카 스티븐스 |
| 임기 시작 3 | 1999년 7월 7일 |
| 임기 종료 3 | 1999년 9월 8일 |
| 이전 의장 3 | 압둘살라미 아부바카르 |
| 다음 의장 3 | 알파 우마르 코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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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의 대통령 -
포르 냐싱베
포르 냐싱베는 2005년부터 토고의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정치인으로, 냐싱베 에야데마 전 대통령의 아들이며, 권력 승계 논란 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권력을 합법화하고 장기 집권하면서 비판과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
토고의 대통령 -
니콜라 그뤼니츠키
니콜라 그뤼니츠키는 토고의 정치인으로,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1956년부터 1958년까지 토고 자치 정부의 초대 총리, 1963년부터 1967년까지 토고의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두 번 모두 실각했다. -
유일한 생존자 -
울리 회네스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FC 바이에른 뮌헨의 전 회장인 울리 회네스는 선수 시절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경영진으로 활동하며 구단을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탈세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
유일한 생존자 -
김신조
김신조는 19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던 북한 무장공비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된 인물로, 귀순 후 김재현으로 개명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참전 군인 -
자크 시라크
자크 시라크는 드골주의 정치인으로 총리와 파리 시장을 거쳐 199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했고, 퇴임 후에는 시라크 재단을 설립하여 활동했다. -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참전 군인 -
장 지로
장 지로는 뫼비우스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진 프랑스의 만화가, 삽화가, 영화 제작자로, 독특한 공상과학 및 판타지 만화와 사실적인 서부 만화 《블루베리》 시리즈로 유명하며, 다양한 미술 기법과 누보 레알리즘의 영향으로 세계 여러 아티스트와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즈너 상, 하비 상 등을 수상했다.
2. 어린 시절 및 군사 경력
냐싱베 에야데마는 1935년 12월 26일 프랑스령 토골란드 카라주 코자현의 작은 마을 피야에서 카비예족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는데, 코미 M. 툴라보르는 에야데마의 공식 생년월일이 "비옥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193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후에 마만 은다니다 또는 마만 은다니다하로 알려졌다.
195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에야데마는 프랑스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다.
2.1. 1963년 쿠데타 가담
1962년, 프랑스 군대에서 거의 10년을 복무한 에야데마는 토고로 돌아왔다. 그는 1963년 토고 쿠데타의 지도자였으며, 쿠데타 공격 중 암살된 실바뉘 올랭피오 대통령에 대항했다. 에야데마 자신이 올랭피오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는 니콜라 그뤼니츠키를 토고의 새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데 기여했다.
2.2. 1967년 쿠데타 주도
니콜라 그뤼니츠키와 사이가 틀어진 에야데마는 1967년 두 번째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무혈로 진행되었으며, 축출된 그뤼니츠키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에야데마는 1967년 4월 14일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국방장관직을 겸임했다. 그는 거의 38년 동안 두 직책을 모두 맡았다.
3. 정치 경력
에야데마는 1969년 토고 인민연합(RPT)을 창설하여 유일 합법 정당으로 만들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1972년 무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79년 토고는 형식적으로 민정으로 이양되었으나 RPT 일당 독재 체제가 유지되었다. RPT 대통령은 당 총재 선출과 동시에 7년 임기 대통령으로 자동 지명되었고, 반대 없는 국민투표로 취임했다. 이 조항에 따라 에야데마는 1979년과 1986년에 무투표로 재선되었다.
코미 M. 툴라보르는 에야데마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개인적인 친구였으며, 여러 차례의 쿠데타, 조직적인 선거 사기, 군대의 충성, 해외 지원 (특히 프랑스), 토고의 빈약한 경제 자원 관리 덕분에 38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에야데마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리카 통일 기구 의장을 지냈고, 2002년 제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에서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반군 사이의 중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유럽 연합은 2004년 6월 1일 토고의 민주주의 상태를 평가하고 민주화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으나, 정부의 비협조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에야데마는 아프리카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스타 훈장을 받았다.
3.1. 암살 시도 및 생존
에야데마는 통치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암살 시도를 겪었다. 1974년에는 사라카와 근처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았다. 또 다른 암살 시도가 실패한 후, 그는 외과의사가 제거한 총알을 부적으로 가지고 다녔다. 1993년 3월에는 에야데마가 살던 토코인 군사 캠프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으나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에야데마의 개인 참모총장 마울릭플리미 아메지를 포함한 여러 명이 사망했다.
에야데마는 1974년 1월 24일 비행기 추락 사고를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고 주장하며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인 에티엔을 냐싱베로 바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가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었으며, 다른 생존자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건을 자신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처럼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에야데마는 이 추락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그가 국유화하려던 Compagnie Togolaise des Mines du Bénin프랑스어(CTMB 또는 Cotomib)을 싫어한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3.2. 민주화 운동 탄압
1991년 8월, 전국 회의가 개최되어 조제프 코쿠 코피고를 총리로 선출하고 에야데마는 의례적인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으나, 에야데마는 군대를 동원하여 회의를 방해하고 권력을 유지했다. 1993년 3월에는 에야데마가 살고 있던 토코인 군사 캠프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여, 에야데마의 개인 참모총장 마울릭플리미 아메지를 포함한 여러 명이 사망했다.
1993년, 야당이 보이콧한 다당제 대통령 선거에서 에야데마는 단 두 명의 사소한 도전자들을 상대로 96.42%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고 발표했으나, 그의 고향 카라주 밖에서는 투표율이 낮아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에야데마는 공식 결과에 따라 52.13%의 득표율로 길크리스트 올랭피오를 꺾고 재선되었으나, 이 역시 부정선거 의혹과 수백 명의 정부 반대자 학살 혐의 속에 치러졌다. 유럽 연합은 1993년에 부정 투표와 인권 침해에 대한 항의로 원조를 중단했다.
3.3. 헌법 개정 및 장기 집권
2002년 말, 에야데마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앴다. 이전에는 대통령이 5년 임기로 두 번까지 연임할 수 있었지만, 이 개정으로 에야데마는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야데마는 57.78%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또 다른 임기를 시작했다. 이로써 에야데마는 장기 집권의 길을 걷게 되었다.
4. 개인 숭배
에야데마는 광범위한 개인 숭배를 구축했다. 대부분의 상점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수도 로메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를 찬양하는 노래와 춤을 추는 1,000명의 여성 수행원들이 있었으며, 15초마다 그의 초상화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손목시계도 제작되었다. 그를 무적의 힘과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로 묘사한 만화책도 출간되었다. 또한, 에야데마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 날은 매년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의 축제"로 기념되었다.
5. 사망
2005년 2월 5일, 냐싱베 에야데마는 튀니지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250km 떨어진 비행기 안에서 사망했다. 정부 성명에 따르면, 그는 "해외 응급 치료를 위해 이송되던 중" 사망했으며, 사인은 심근 경색으로 발표되었다. 사망 당시 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국가 원수였다.
에야데마의 장례식은 2005년 3월 13일에 열렸으며, 베냉의 마티유 케레쿠 대통령, 가나의 존 쿠푸오르 대통령,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 니제르의 마마두 탄자 대통령, 나이지리아의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 원수들이 참석했다. 3월 15일, 에야데마의 가족과 RPT 당은 그의 고향인 파야에서 그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