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애공
1. 개요
노 애공은 정공의 아들로, 기원전 494년에 노나라 군주로 즉위했다. 오나라, 제나라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나라와 화해하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기도 했다. 공자가 제나라 간공과 전상을 토벌할 것을 여러 번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삼환씨를 무력으로 토벌하려다 실패하여 위, 추를 거쳐 월로 망명했으며, 기원전 467년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 이름 | 희장 (姬將) |
|---|---|
| 칭호 | 공 (公) |
| 왕조 | 노 |
| 재위 기간 | 기원전 494년 - 기원전 468년 |
| 수도 | 취푸 |
| 휘 | 희장 (姬將) |
| 시호 | 애공 (哀公) |
| 아버지 | 정공 |
| 사망 년도 | 도공 원년 (기원전 467년) |
| 주석 | "애"는 젊어서 사망한 왕에게 보내는 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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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위된 중국의 군주 -
진왕 자영
진왕 자영은 혼란한 진나라를 잠시 다스린 마지막 군주로, 조고를 제거했으나 유방에게 항복 후 항우에게 처형당했으며, 그의 정확한 신분은 사료마다 달라 논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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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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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의 군주 -
노 환공
노 환공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제16대 군주로, 혜공의 아들이며 은공의 섭정 후 즉위하여 18년간 재위했으나 제나라 방문 중 암살당했고, 그의 아들들은 훗날 노나라 권력을 장악한 삼환의 시조가 되었다. -
노나라의 군주 -
노 장공
춘추 시대 노나라의 제16대 군주인 노 장공은 제나라와의 잦은 전쟁과 외교적 활동을 펼쳤으며, 제나라 내전 개입과 제 환공과의 화평을 통해 영토를 회복하기도 했으나, 후계자 선정 실패로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노나라(현재 중국 산둥성 남부)의 제26대 군주 정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495년 노 정공이 죽자, 기원전 494년 그의 뒤를 이어 노나라의 제27대 군주가 되었다. 기원전 471년에는 진나라와 함께 제나라 정벌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2.1. 즉위 초
기원전 495년 아버지 정공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기원전 494년에 노나라 군주가 되었다. 즉위 초 오나라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하고 화해하였다. 이후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기도 하였다.
2.2. 오나라와의 동맹과 제나라 공격
기원전 487년, 오나라의 침입을 받았으나 격퇴하고 화해하였다. 이후 제나라에게 공격받아 패배했다. 기원전 485년, 오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기원전 484년, 제나라가 반격해와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다.
2.3. 공자와의 관계
노나라 출신의 대유학자 공자가 만년에 섬긴 군주였다. 기원전 483년, 공자는 제나라 간공을 토벌할 것을 애공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원전 481년, 제 간공이 재상 전항(田恒)에게 살해당하자, 공자는 다시 세 차례나 제나라 정벌을 권했지만 애공은 듣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들이 남긴 《논어》에는 애공과 공자의 대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공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역사서 《춘추》는 애공 14년(기원전 481년) 기린을 얻었다는 기사(획린)로 끝을 맺는다. 이로 인해 "획린"은 사물의 끝맺음이나 절필을 의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