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스케요시
1. 개요
니시지마 스케요시는 1847년에 태어나 보신 전쟁에 참전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사가의 난에 포로가 되기도 했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훈1등 서보장, 훈1등 욱일대수장 등을 수여받았다. 1907년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1916년 퇴역 후 1933년 사망했다. 그는 노기 마레스케의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한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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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보신 전쟁 관련자 -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대한제국 통감으로서 한국 병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국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
일본 육군 중장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일본 육군 중장 -
의민태자
의민태자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로, 영친왕 책봉 후 황태자가 되었으나 일본 유학 및 군 복무, 일본 황족과의 정략결혼, 광복 후 국적 미인정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다 귀국 후 영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의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청일 전쟁 관련자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청일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2. 생애
1847년 조슈번에서 번사의 자제로 태어났다. 보신 전쟁 때 분대장으로 출정하였고,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893년 보병 제11연대장으로 청일 전쟁에 출정하였다. 1894년 보병 대좌, 1896년 보병 제44연대장, 1897년 육군 교도단장, 1898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보병 제24여단장, 1900년 타이완 수비 혼성 제3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2년 보병 제7여단장으로 러일 전쟁에 출정하여 난산 전투, 더리스 전투, 대석교 전투, 랴오양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4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 육군 대장 니시 간지로를 대신하여 제2사단장으로 봉천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5년 훈일등 서보장, 1906년 훈일등 욱일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7월 제6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7년 청일, 러일 전쟁에서의 군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09년 대한제국의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9월 휴직, 1911년 후비역에 편입되었다. 1916년 퇴역했다. 1933년 사망하였다.
2.1. 초기 군 경력
1847년 조슈번 번사의 자제로 태어나 보신 전쟁 때 분대장으로 출정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874년 사가의 난에서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2.2. 청일 전쟁 참전
1893년 2월, 보병 제11연대장으로서 청일 전쟁에 참전하였다. 1894년 11월에 보병 대좌로 진급하였고, 1896년 12월에는 보병 제44연대장을 역임하였다.
2.3. 러일 전쟁 참전
1902년 러일 전쟁에 보병 제7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난산 전투, 더리스 전투, 대석교 전투, 랴오양 회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4년에는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니시 간지로 대장을 대신해 제2사단장으로서 봉천 회전에 참전하였다.
2.4. 전후 활동 및 사망
1905년 5월에 훈일등 서보장을 받았고, 1906년 4월에는 훈일등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같은 해 7월에 제6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7년 9월 21일에는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의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09년 5월 26일에 대한제국으로부터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9월에 휴직하여 1911년 9월에 후비역(後備役)에 편입되었다. 1916년 4월 1일에 퇴역하였다.
1933년 2월, 사망하였다. 향년 85세.
3.1. 위계
* 1885년 7월 25일 - 종6위
* 1892년 3월 28일 - 정6위
* 1895년 2월 13일 - 종5위
* 1898년 4월 30일 - 정5위
* 1903년 5월 30일 - 종4위
* 1905년 6월 9일 - 정4위
* 1908년 7월 10일 - 종3위
* 1909년 9월 20일 - 정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