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스케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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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시지마 스케요시는 1847년에 태어나 보신 전쟁에 참전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사가의 난에 포로가 되기도 했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훈1등 서보장, 훈1등 욱일대수장 등을 수여받았다. 1907년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1916년 퇴역 후 1933년 사망했다. 그는 노기 마레스케의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한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니시지마 스케요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니시지마 스케요시
일본어 표기니시지마 스케요시 (西島助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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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지마 중장
출생1847년 10월 11일
출생지 조슈번
사망1933년 2월 8일 (85세)
군 경력
소속 일본 제국 육군
복무 기간1873년 - 1911년
최종 계급중장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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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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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847년 조슈번에서 번사의 자제로 태어났다. 보신 전쟁 때 분대장으로 출정하였고,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893년 보병 제11연대장으로 청일 전쟁에 출정하였다. 1894년 보병 대좌, 1896년 보병 제44연대장, 1897년 육군 교도단장, 1898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보병 제24여단장, 1900년 타이완 수비 혼성 제3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2년 보병 제7여단장으로 러일 전쟁에 출정하여 난산 전투, 더리스 전투, 대석교 전투, 랴오양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4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 육군 대장 니시 간지로를 대신하여 제2사단장으로 봉천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5년 훈일등 서보장, 1906년 훈일등 욱일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7월 제6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7년 청일, 러일 전쟁에서의 군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09년 대한제국의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9월 휴직, 1911년 후비역에 편입되었다. 1916년 퇴역했다. 1933년 사망하였다.

2.1. 초기 군 경력

1847년 조슈번 번사의 자제로 태어나 보신 전쟁 때 분대장으로 출정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874년 사가의 난에서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2.2. 청일 전쟁 참전

1893년 2월, 보병 제11연대장으로서 청일 전쟁에 참전하였다. 1894년 11월에 보병 대좌로 진급하였고, 1896년 12월에는 보병 제44연대장을 역임하였다.

2.3. 러일 전쟁 참전

1902년 러일 전쟁에 보병 제7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난산 전투, 더리스 전투, 대석교 전투, 랴오양 회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4년에는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니시 간지로 대장을 대신해 제2사단장으로서 봉천 회전에 참전하였다.

2.4. 전후 활동 및 사망

1905년 5월에 훈일등 서보장을 받았고, 1906년 4월에는 훈일등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같은 해 7월에 제6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1907년 9월 21일에는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의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09년 5월 26일대한제국으로부터 대훈위이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9월에 휴직하여 1911년 9월에 후비역(後備役)에 편입되었다. 1916년 4월 1일에 퇴역하였다.

1933년 2월, 사망하였다. 향년 85세.

3. 서훈 내역

니시지마 스케요시는 1894년 훈3등 서보장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15년 대례기념장까지 여러 훈장을 받았다. 1907년에는 남작 작위를 받았다.

3.2. 훈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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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훈격
1894년 (메이지 27년) 5월 29일훈3등 서보장
1895년 (메이지 28년) 10월 18일공4급 금계훈장, 욱일중수장
1895년 (메이지 28년) 11월 18일메이지 27-28년 종군기장
1905년 (메이지 38년) 5월 30일훈1등 서보장
1906년 (메이지 39년) 4월 1일공2급 금계훈장, 욱일대수장, 메이지 37-38년 종군기장
1907년 (메이지 40년) 9월 21일남작
1909년 (메이지 42년) 9월 20일대훈위 이화대수장 (대한제국)
1915년 (다이쇼 4년) 11월 10일대례기념장

4. 노기 마레스케 관련 증언

만년에 서남 전쟁 이후 노기 마레스케의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해 언급하였다. 전쟁 후 노기는 적군에게 군기를 빼앗긴 불상사를 뉘우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기가 할복하려는 현장을 목격한 니시지마는, 함께 있던 고다마 겐타로와 함께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자살을 막았다. 이 사건은 세 사람만의 비밀이 되었지만, 메이지 천황에게 순사한 노기의 사후, 니시지마는 "고다마도 이미 죽었으니, 이제 와서 비밀로 할 필요는 없겠지."라며 비화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