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시 (중화민국)
1. 개요
다롄시는 일본 제국 치하에서 도시 구도와 산업 기반이 형성되었으며, 1945년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뤄다 지구를 회복하고 다롄 직할시로 명칭을 변경했으나, 소련은 중소 우호 동맹 조약을 위반하고 1955년까지 주둔했다. 이후 소련군은 다롄에서 철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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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대륙 시기의 직할시 -
광저우시 (중화민국)
중화민국 광저우시는 1921년 설치된 시로, 중국 혁명의 발상지이자 국공합작 시기 국민당과 공산당의 활동 무대였으며,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시기를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점령되었다. -
중화민국 대륙 시기의 직할시 -
난징시 (중화민국)
난징시는 1912년부터 1949년까지 중화민국의 수도였으며,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국민정부 수립 이후 수도로서 대규모 건설이 이루어졌으나, 중일 전쟁 시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국공 내전으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
다롄시의 역사 -
여순항 봉쇄 작전
러일 전쟁 중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해군의 여순 함대를 봉쇄하기 위해 노후 선박을 이용해 여순항 입구를 봉쇄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 작전은 해상전에서 육상전으로 전환되어 여순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
다롄시의 역사 -
남산 전투
남산 전투는 1904년 러일 전쟁 중 일본군이 랴오둥 반도 남산 언덕에서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승리한 전투이며, 9차례의 공격 끝에 일본군이 남산 언덕을 점령하고 뤼순 포위의 발판을 마련했다. -
시행된 적이 없는 행정 구역 -
이북5도위원회
이북5도위원회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이북 5도와 미수복 경기·강원 지역에 대한 명목상 행정 기관으로, 도민 지원, 이산가족 상봉, 향토 문화 계승 등의 사업을 수행하며 통일 대비와 탈북민 지원 기능을 수행하지만, 실질적 행정 권한은 제한적이며 기능과 효율성에 대한 비판도 있다. -
시행된 적이 없는 행정 구역 -
타이완성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성(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자국 영토의 일부로 주장하는 행정구역이나, 하나의 중국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행사하지 못하고 중화민국이 지배하고 있다.
2.1. 일본 제국 통치 시기
일본 제국 치하에서 다롄은 급속한 도시 발전과 산업 기반 형성을 경험했다. 당시 다롄시의 인구는 70여 만명이었으며, 그 중 중국인이 50만 명, 일본인과 한국인이 20만 명 이상이었다.
1945년 8월 10일, 소련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선전 포고를 했고, 붉은 군대가 만주국을 공격하여 얄타 협정에 따라 다롄을 포함한 둥베이 3성에 진입하여 점령했다. 8월 24일(일설에는 8월 22일) 소련군은 다롄을 점령하였다.
2.2. 소련 점령과 중화민국 시기
1945년 8월 10일, 소련은 일본 제국에 선전 포고를 했고 붉은 군대가 만주국을 공격하여 얄타 협정에 따라 다롄을 포함한 둥베이 3성을 점령했다. 8월 24일(일설에는 8월 22일) 소련군이 다롄을 점령하였다.
1945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1905년 러시아 제국에 이어 일본이 점령했던 뤄다 지구를 명목상 회복하고 다롄 직할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소련은 중소 우호 동맹 조약을 위반하고 1955년까지 군대를 철수하지 않고 다롄을 점령했다. 조약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1945년 9월 2일 연합국에 항복 문서에 서명했으므로, 소련군은 1945년 12월 3일까지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