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도루 (1878년)
1. 개요
다카하시 도루는 1878년 니가타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규슈일보 주필을 거쳐 1903년 대한제국 관립 중학교 교사로 초빙되었으며, 이후 조선의 풍속과 문헌을 연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활동하며,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어학 연구에 기여했다. 해방 후에는 역술가로 활동하다가 후쿠오카 대학 교수를 거쳐 덴리 대학에서 조선학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덴리 대학 명예 교수로 추대되었다. 그는 조선 사상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지만,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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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학자 -
사사카와 요헤이
사사카와 요헤이는 일본재단 회장으로서 국제 원조, 사회 공헌, 한센병 퇴치, 해양 문제 해결, 동일본 대지진 복구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나,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로 논란도 있는 인물이다. -
일본의 학자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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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자 -
박노자
박노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대한민국에 귀화한 한국학 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며,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
한국학자 -
오선화
오선화는 대한민국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평론가이자 작가, 대학교수로, 호스티스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데뷔 후 한일 관계와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
경성제국대학 교수 -
아베 요시시게
아베 요시시게는 일본의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칸트 철학 연구와 한국 문화 연구에 기여했으며, 전후 일본 교육 제도 개혁을 이끌고 가쿠슈인대학 총장으로 재임하며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경성제국대학 교수 -
야마다 사부로
야마다 사부로는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사법 권위자로 한·프랑스 문화 교류에 기여한 일본의 법학자이자 관료이다.
2. 생애
다카하시 도루는 1878년 출생하여 1967년 사망할 때까지, 교육자, 학자, 역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 출생과 교육: 1878년 니가타현에서 출생, 도쿄 제국대학 졸업.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규슈일보 주필, 대한제국 관립 중학교 교사, 조선총독부 시학관, 경성제국대학 교수 등을 역임.
* 해방 이후: 역술가로 활동, 후쿠오카 대학 및 덴리 대학 교수 역임, 조선학회 부회장.
2.1. 출생과 교육 (1878년 ~ 1902년)
1878년 니가타현 나카우오누마군 가와지촌 오아자(大字) 다카야마(高山) 1번지에서 아버지 다카하시 시게이치로, 어머니 키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8년 제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한문과에서 공부했다. 1902년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논문은 '한역을 논하여 근본 박사의 역설에 이르다'였다.
2.2.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1902년 ~ 1945년)
1902년,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한 다카하시 도루는 같은 해 규슈일보의 주필이 되었으나, 1903년 대한제국 정부의 초빙을 받아 시데하라 히데키의 후임으로 관립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1909년, 『한어 문법』을, 1910년, 『조선의 이야기집 부리언(俚諺)』을 간행했으며, 이 무렵부터 조선의 풍속 조사를 시작하여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조선 문헌 수집을 진언해 채택되었다.
1911년, 경성 고등 보통학교의 교유가 됨과 동시에 조선총독부의 종교 조사 및 도서 조사의 촉탁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을 정하기 위한 회의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1916년, 대구 고등보통학교장에 임명되어 고등관 5등에 서임되었다. 1919년, 학위 청구 논문 '조선의 교화와 교정'을 제출하여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1년, 조선총독부 시학관이 되어 고등관 3등이 되었고, 같은 해부터 1922년까지 미국과 유럽의 대학을 시찰했다. 1923년, 경성제국대학 창립 위원회 간사가 되었으며, 1926년, 신설된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되어 법문학부의 조선어학 문학 제1강좌를 담당하고 고등관 2등으로 승격했다. 1929년, 언문 철자법 원안 작성 시 제2차 조사회의 위원으로 참여하여, 1911년에 이어 조선어의 정서법 제정에 관여했다. 1931년, 고등관 1등으로 승격했다.
1940년, 경성 사립 혜화 전문학교장이 되면서 경성제대 교수를 퇴관하고 명예 교수가 되었다. 1945년, 경성 경학원 제학 및 명륜 연성소장이 되어 다시 경성으로 이주했다. 또한, 정무총감의 찬의를 얻어 농사 학교 건설에 착수했지만, 후보지 선택 중에 종전을 맞았다.
2.3. 해방 이후 (1945년 ~ 1967년)
전후 1946년부터 역술가로 활동하며 '순수 역단'을 개업했다. 그러나 1949년에 후쿠오카 상과대학(후의 후쿠오카 대학 상학부) 교수가 되어 다시 학문의 세계로 돌아왔다. 1950년, 덴리 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조선학회를 발회시키고 부회장이 되었다。조선학회는 덴리 대학 총장이 회장이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고, 부회장이 사실상의 톱이었다. 1964년, 덴리 대학을 사임하고 덴리 대학 명예 교수 제1호가 되었다.
3. 연구 및 업적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 사상 연구의 제1인자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생활하며 교육 행정에 종사하는 한편, 경성제국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천리 대학교에서 조선학회 창립과 운영에 힘쓰며 광복 이후 조선 연구의 토대를 쌓는 데 기여했다.
3.1. 주요 연구 분야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 사상 연구의 제1인자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생활하며 연구하였고, 교육 행정에 종사하면서 경성제국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였다. 광복 후에는 천리 대학교에서 조선학회 창립과 운영에 관여하여 광복 이후 조선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4. 저서
* 韓語文典일본어 하쿠분칸(博文館) / 문법서 (1909)
* 朝鮮の物語集일본어 닛칸쇼보(日韓書房) (1910)
조선의 모노가타리
* 朝鮮の俚諺集일본어 닛칸쇼보(日韓書房) (1914)
완역 조선이야기집과 속담 / 이시준, 김광식, 조은애, 김영주 역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속담집 / 박미경 편역
* 朝鮮人일본어
조선인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 / 구인모 역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 / 총독부 편, 김문학 역
* 朝鮮思想史大系第1冊李朝仏教일본어 호분칸(宝文館) (1929), 본권만 간행
복각판 李朝仏教일본어 국서간행회 (1973)
이조불교
* 内鮮関係政治文化思想史일본어 주오쿄와카이(中央協和会) (1943)
* 高橋亨朝鮮儒学論集일본어 가와하라 히데키(川原秀城), 김광래 편역 지센쇼칸(知泉書館) (2011)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 / 이형성 역
* 完本 高橋亨 京城帝国大学 講義 ノート일본어 (전 2권) 권순철 편, 사인사(三人社) (2021)
# 조선 유학사 편
# 조선 사상사 편
5.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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