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화
1. 개요
오선화는 제주도 출신으로, 한국군 부사관 복무 후 일본으로 건너가 호스티스로 일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출판했다. 이후 일본에서 칼럼니스트, 평론가,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의 역사 인식, 사회 문제 등을 비판하는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98년 일본으로 귀화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반한적 활동을 이유로 입국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반일 감정과 역사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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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오승일 (吳勝一) |
|---|---|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
| 국적 | 일본 (1998년 귀화) |
| 직업 | 다쿠쇼쿠 대학 교원 교육자 작가 언론인 소설가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하사 |
| 활동 기간 | 1976년 ~ |
| 학력 | 대구보건전문대학 임상병리학과 졸업 (1980. 2.) 다이토 분카 대학 영문학과 졸업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 석사 수료 |
| 웹페이지 | 프로필 |
| 가나 | オ・ソンファ |
|---|---|
| 한자 | 呉善花 |
| 로마자 표기 | O Sonfa |
| 한글 | 오선화 |
|---|---|
| 한자 | 吳善花 |
| 로마자 표기 | O Seon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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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보건대학교 동문 -
이장우 (1967년)
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이장우(1967년)는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본부장, 공공운수연맹 전국의료연대노조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노동당 울산광역시당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울산 지역에서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
다이토 문화대학 동문 -
토가시 히데아키
토가시 히데아키는 일본의 만화가이며, 《드래곤 나이트 4》, 《오니히메》 등의 일반 만화와 《숲의 요정 이야기》, 《B.M.E.O》 등의 성인 만화를 그렸고, 우스네 마사토시에게 만화 작법을 배웠다. -
다이토 문화대학 동문 -
타카하시 아유미
타카하시 아유미는 일본의 배우, 모델, 방송인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캠퍼스 나이트 후지》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
식민지근대화론 -
한승조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및 명예교수를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지만, 2005년 일본 잡지에 식민지 지배 옹호 글을 기고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
식민지근대화론 -
안병직
안병직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으나, 일제강점기 경제사 및 위안부 문제 관련 주장이 논란을 빚고 있다.
2. 생애
어린 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그의 부모는 전전(戰前) 시기 일본에 거주한 경험이 있었고, 오선화는 어머니로부터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학교 교육의 영향으로 한때 반일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의 한자 부활론을 지지하며 저서에서 한글 전용 교육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1980년에 한국군에 입대하면서 대구보건전문대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의 한국계 호스테스 클럽에서 일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호스테스를 다룬 『스커트의 바람』을 출판했다. 이 책은 이후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일제」만으로는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양이(攘夷)의 한국 개국의 일본』 등이 있으며, 후자는 야마모토 시치헤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본식 이름 발음인 '고 젠카'(呉善花) 대신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오 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어에 없는 탁음 발음이 서툴러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오승일(吳勝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부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고, 오선화는 어머니로부터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학교 교육의 영향으로 한때 반일 감정을 갖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에서 지내다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여군 부사관으로 4년간 복무했다. 1978년 대구보건전문대학 임상병리과에 입학하여 1980년 2월에 졸업하였다. 이는 2006년 MBC 《PD 수첩》과 경향신문의 취재를 통해 확인된 사실로, 오선화가 주장했던 대구대학교 졸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PD 수첩》에 따르면 대구대학교의 입학생, 졸업생, 편입생 명단 어디에서도 오선화나 본명인 오승일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의 한인 클럽에서 '오선화'라는 예명으로 호스티스로 일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스티스를 다룬 책 《치맛바람》(일본어 원제: スカートの風일본어)을 출판했으며, 이후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일본에서는 다이토 분카 대학 영어과에 편입하여 졸업했고, 이후 도쿄 외국어대학 지역연구과에서 북미 지역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4년부터는 일본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방송 패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1년 6월 11일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1998년 10월 29일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였다. 1998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본식 이름인 '고 젠카'(呉善花) 대신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오 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어에 없는 탁음 발음이 어려워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선화는 한국의 한자 부활론을 지지하며, 자신의 저서에서 한글 전용 교육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2.2. 일본 이주 및 귀화
1983년 일본을 방문하여, 우에노의 한국계 호스테스 클럽에서 일했다. 당시 기생 이름은 오 선화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스테스를 소재로 한 『스커트의 바람』을 출판했으며, 이후 『속 스커트의 바람』, 『신 스커트의 바람』 등 시리즈를 이어갔다.
1998년 일본으로 귀화했으나, 이 사실을 오랫동안 숨겨오다가 2006년 6월 월간지 '쇼쿤'(諸君일본어)에 귀화 사실을 밝혔다. MBC PD수첩은 오선화가 1998년 귀화 후 주변에 이를 숨겨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뒤에도 일본식 발음인 呉善花일본어 대신 조선어 발음 그대로 "오 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조선어에 없는 "탁음" 발음이 서툴러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다쿠쇼쿠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에 재임용되었고, 같은 해 4월 다쿠쇼쿠대학교 일본문화연구소 객원교수가 되었으며, 한일문화협회 이사로도 선출되었다.
2.3. 학력 및 경력
1980년 대구보건전문대학 임상병리과를 졸업했다. 당시 본명은 오승일(吳勝一)이었다. 경향신문의 취재 결과, 1978년에 해당 학과에 입학하여 1980년 2월에 졸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오선화 본인이 주장했던 대구대학교 졸업과는 다른 사실로, 2006년 MBC 《PD 수첩》 보도를 통해 대구대학교 입학 및 졸업 명단에서 오선화나 본명 오승일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알려지며 학력 위조 논란이 일었다.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초기에는 도쿄 우에노의 한국계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했으며, 이때 '오선화'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스테스를 소재로 한 『스커트의 바람』을 출판했고, 이후 『속 스커트의 바람』, 『신 스커트의 바람』 등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 호스티스 경력은 오선화와 동거했던 일본인 사업가 및 재일 교포가 PD 수첩에 출연해 증언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일본에서 칼럼니스트 및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부터는 방송 출연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 시기부터 대한민국의 국수주의,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 태도,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해 의식 등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 발언하여 대한민국 내에서 큰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일본에서 다이토 분카 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에서 지역연구과 북미지역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체류 중 여러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다 니가타 산업대학 비상근 강사를 거쳐, 2000년 다쿠쇼쿠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로 임용되었다.
1991년 6월 11일 일본 국적을 취득했으며, 1998년 10월 29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일본식 이름 발음인 '고 젠카(呉善花)' 대신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오 선화'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이 탁음 발음이 서툴러 일본식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4. 저술 및 강연 활동
1991년경부터 일본의 언론에 칼럼과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대학 비상근 강사 및 교수로 활동하였다. 1994년 일본에서 칼럼, 집필, 기고 활동과 방송 출연 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일본에서는 다이토 분카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학하여 졸업하였고, 이후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의 글은 1995년경까지 일부 대한민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소개되기도 하였으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소개되지 않게 되었다. 이후 칼럼, 기고, 방송 등 언론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수주의, 쇼비니즘,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해 의식 등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대한민국에 알려지거나 번역되면서 논란과 함께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983년 일본 방문 당시 우에노의 한국계 호스테스 클럽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스테스를 소재로 한 スカートの風일본어을 출판했다. 이 책은 이후 시리즈화되어 《속 스커트의 바람》, 《신 스커트의 바람》 등이 출판되었다. 《스커트의 바람》에서는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는 등 한국 여성들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여 문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저서 《한일합방의 길》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아 큰 논란을 일으켰다.
오선화는 저서 《치맛바람》 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등을 비판했는데, 일각에서는 그가 이런 책을 통해 왜곡되고 추한 한국인상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과거사 및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로 인해 '일본 우익의 앞잡이',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저술로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으며, 그의 저서 상당수에 대해 대필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일본어 구사 능력이나 지적 수준, 전공 외 분야에 대한 이해도 등을 근거로 전문가들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日帝」だけでは歴史は語れない일본어
* 攘夷の韓国 開国の日本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상 수상)
* 넘어서기! 한국은 왜 일본 비난을 멈춰야 하는가 (타치바나 출판, 2015)
* 한국이 일본을 모욕하는 이유: 일본에 대한 한국의 분노 뒤에 숨겨진 진실 (히카루랜드 출판, 2017)
또한, 한국의 한자 부활론 지지자로서 저서에서 여러 차례 한글 전용 교육의 문제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에 체류하며 여러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다 니가타 산업대학 비상근 강사를 거쳐 다쿠쇼쿠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가 되었다. 1998년에는 일본에 귀화하였다. 일본식 이름 발음인 呉善花일본어 대신 조선어 발음 그대로 "오 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조선어에 없는 탁음 발음이 서툴러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5. 대한민국 입국 거부
2007년 10월 1일, 제주도에 거주하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했다. 당시 오선화는 1998년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였으며(이 사실은 2006년에야 본인이 직접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서의 소위 '반한국적인 활동' 등을 이유로 그를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하고 있었다.
오선화는 입국 허용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주제주 일본 총영사관이 개입하여 대한민국 정부와 교섭했다. 일본 총영사관 측은 이를 일본인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적 배려' 차원에서 일시적인 입국을 허용했고, 오선화는 장례식에 참석한 뒤 10월 4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오선화는 몇 시간 동안 공항에 묶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 산케이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며, 오선화가 일본에서의 '반한국적인 활동'을 이유로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사건은 일본 내 혐한 단체들이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오선화는 한국의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후 2013년 7월 27일에는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다시 입국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완전 입국 거부(본국 송환 명령, 출입국관리법 76조) 조치를 받았다. 한국 당국은 거부 사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역사 문제 등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한국 비판 활동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3. 주요 주장 및 논란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루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 섹션에서는 해당 내용을 생략함)
3.1. 한국 사회 비판
1994년 일본에서 칼럼, 집필, 기고, 방송 출연 등을 시작한 이후,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비판은 주로 한국의 국수주의, 쇼비니즘, 일제 강점기에 대한 피해 의식,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 한국 여성의 특정 성향 등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큰 논란과 함께 맹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오선화는 특히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권위주의를 여러 차례 비판했다. 2006년 7월 일본 월간지 文藝春秋일본어에 기고한 글과 강연 등에서 그는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만, 결혼 후에는 바람기, 폭력, 남아선호사상, 고부 갈등 유발 등으로 여성을 괴롭힌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저서 《スカートの風일본어》(치맛바람) 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문화를 비판하며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는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 인식과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산야 차륜과의 대담에서는 한국 기원설을 강하게 비판하며, 한류 열풍 속에서 기모노나 검도 등 일본 문화의 기원이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 중심의 움직임과, 심지어 차 문화의 역사를 날조하여 茶園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 조선반도 중심의 소중화사상과 반일감정이 있으며, 한국인들이 일본인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정신적, 혈통적 우월성을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의 역사 교육이 중국으로부터 문물을 전래받은 사실은 축소하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일본에 전파했다는 점만 부각하여 "모든 것은 한국 발상이고, 우리가 일본에 가르쳐 주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그의 저서 《한일합방의 길》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아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과 저술 활동은 한국을 비하하고 왜곡된 한국인상을 부각시킨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특히 과거사 및 정치 현안에 대해 일본 우익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로 인해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앞잡이’,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그의 저술 활동과 관련하여 실제 일본어 구사 능력이나 지적 수준, 타 분야 인용의 정확성 등을 근거로 대필 의혹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2. 일본 식민 지배 긍정 평가
오선화는 한국의 반일 감정 문제점을 지적하며, 창씨개명 논란에 대해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2007년 일본에서의 한 강연에서는 "한반도 태풍은 일본이 다 막아준다. 한반도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하며 한국의 반일 감정을 비판했다. 또한 독도 영유권 논쟁과 관련해서는 "욘사마나 쫓아다니는 기품없는 사람들이니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한국 숭례문 주위에는 쓰레기만 있으며 북한은 위험하니 일본의 선제 공격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저서 スカートの風일본어(치맛바람) 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등을 비판했는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저술 활동이 왜곡되고 부정적인 한국인상을 부각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우익의 앞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거사 및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일본 내에서 주목을 받았고,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치맛바람》에서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는 등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저서 《한일합방의 길》에서는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저술로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으나, 그녀의 실제 일본어 구사 능력, 지적 수준, 비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도 등을 근거로 저서 상당수에 대한 대필 의혹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었다.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와의 대담 형식으로 출간된 책 등에서 한국 기원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류 붐과 함께 네티즌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기모노, 검도 등)가 모두 한국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일부 일본인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반도에는 본래 차 마시는 습관이 없었으며, 재일한국·조선인이 한국에 차 문화 역사를 날조하고 다원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중화사상과 반일감정에 기반해 한국인들이 일본인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정신적, 혈통적 우월감을 가진다고 비판했고, 일부 역사가들이 '일본은 한국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고 언급했다. 오선화는 불교나 한자 등 대부분의 문화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었음에도, 한국 교육에서는 중국의 영향은 축소하고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것만 강조하여 '모든 것은 한국 발상'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3.3. 한국 기원설 비판
산야 차륜과의 대담에서 한국 기원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선화는 최근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네티즌을 중심으로 일본 문화인 기모노나 검도 등이 모두 한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활발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일부 일본인 중에도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한국의 차 문화 기원 주장에 대해, 본래 한반도에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으며, 재일 한국인이 한국에 차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는 역사를 날조하고 다원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의 차집을 방문하고 그곳이 발상지라고 감탄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오선화는 한반도 중심의 소중화사상과 반일감정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을 경시하며, 정신적·혈통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국의 역사학자조차 나라 등을 둘러본 후 '일본은 한국이었다'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는 등, 일본 건축물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 강조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불교나 한자 등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했음에도 한국 학교 교육에서는 이를 강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한국이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를 한반도식으로 변형하여 '아무것도 없는 미개한 땅이었던 일본'에 전해준 것만 부각하며, 예를 들어 중국 불교를 백제 불교로 바꾸어 일본에 전파했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교육 때문에 일반 한국인들은 '모든 것은 한국 발상이고, 우리가 일본에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게 되며, 이것이 한국인의 삶의 보람처럼 여겨진다고 비판했다.
4. 저서
1990년 이후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나, 대한민국 내에서는 대부분 반입 및 출판이 금지되었으며, 한국 내에서 출판된 일부 저서도 절판된 상태이다.
PD수첩에서는 오선화의 일본어 구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출판사가 대신 글을 써주거나 명의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냐는 대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단독 저서 ===
* スカートの風일본어 (1990년, 삼교사(三交社), 이후 각와문고(角川文庫)에서 출간)
* 続・スカートの風 恨を楽しむ人びと일본어 (1991년, 삼교사(三交社), 이후 각와문고(角川文庫)에서 출간)
* 新・スカートの風 日韓合わせ鏡の世界일본어 (1992년, 삼교사(三交社), 이후 각와문고(角川文庫)에서 출간)
* 逆風・日韓=異文化の交差点で일본어 (1994년, 삼교사(三交社))
* 恋愛交差点 韓国人と日本人=それぞれの愛の風景일본어 (1994년, 각와서점(角川書店), 이후 '사랑의 어긋남'으로 문고판 출간)
* ワサビと唐辛子 「恨の国」韓国から見た「受身文化の国」日本일본어 (1995년, 상전사(祥伝社) 논 북)
* 攘夷の韓国 開国の日本일본어 (1996년, 문예춘추(文藝春秋), 이후 문고판 출간)
* 化粧するアジア 華人都市の消費事情일본어 (1996년, 삼교사(三交社))
* 「日帝」だけでは歴史は語れない 「反日」の源流を検証する일본어 (1997년, 삼교사(三交社))
* 日本人を冒険する 「曖昧さ」のミステリー일본어 (1997년, 삼교사(三交社), 이후 PHP문고(PHP文庫)에서 출간)
* 日本嫌いの日本人へ일본어 (1998년, PHP연구소(PHP研究所), 이후 '일본인만큼 개성과 창조력이 풍부한 국민은 없다'로 개제하여 문고판 출간)
* 日本の瀬戸際 沈む日本 浮上する日本일본어 (1999년, 일본교문사(日本教文社), 이후 '일본 정신의 가능성'으로 PHP문고에서 출간)
* 私はどのようにして〈日本信徒〉となったか일본어 (1999년, PHP연구소(PHP研究所), 이후 문고판 출간)
* 韓国併合への道일본어 (분춘신서(文春新書), 2000년)
* 「反日」を捨てる韓国일본어 (2000년, PHP연구소(PHP研究所))
* 生活者の日本統治時代 なぜ「よき関係」を語らないのか일본어 (2000년, 삼교사(三交社))
* ワサビの日本人と唐辛子の韓国人일본어 (2000년, 상전사(祥伝社) 황금문고)
* 縄文思想が世界を変える 呉善花が見た日本の神秘力일본어 (2001년, 려택대학(麗澤大学)출판회(광지학원(廣池学園)사업부))
* 「脱亜超欧」へ向けて 日本は欧米・アジアの限界をどう乗り越えるのか일본어 (2001년, 삼교사(三交社))
* 「反日韓国」に未来はない일본어 (소학관문고(小学館文庫), 2001년)
* 海の向こうの「楽園」 日本を目指す韓国・済州島の女たち일본어 (2002년, PHP연구소(PHP研究所))
* コリアン・カルチャー濃縮パック일본어 (2003년, 삼교사(三交社))
* 韓国人から見た北朝鮮 独裁国家のルーツ일본어 (PHP신서(PHP新書), 2003년)
* 女帝論 「天皇制度」の源流を訪ねて일본어 (2004년, PHP연구소(PHP研究所))
* 日本オリジナルへの旅 伝統技術の現場を訪ねて일본어 (2005년, 일본교문사(日本教文社))
* 「反日親北」韓国の暴走 「韓流ブーム」ではわからない일본어 (2005년, 소학관(小学館), 이후 '「반일 친북」을 그만둘 수 없는 한국의 폭주'로 문고판 출간)
* 日韓 恋愛の幻想일본어 (2006년, 문예춘추(文藝春秋), 이후 '한류 환상'으로 문고판 출간)
* 日本語のこころ 言語の源風景を訪ねて일본어 (2006년, 일본교문사(日本教文社))
* 韓国 倫理崩壊 1998-2008 - 社会を蝕む「恨」と「情」の呪縛일본어 (2008년, 삼교사(三交社))
* 「漢字廃止」で韓国に何が起こったか일본어 (2008년, PHP연구소(PHP研究所)) ISBN 978-4-569-69518-1
* 日本の曖昧力 融合する文化が世界を動かす일본어 (PHP신서(PHP新書), 2009년)
* 私を劇的に変えた日本の美風일본어 (이백사(李白社), 2010년)
* なぜ「反日韓国に未来はない」のか일본어 (2013년, 소학관(小学館))
* Getting Over It! Why Korea Needs to Stop Bashing Japan영어 (2015년, 다치바나출판(たちばな出版)) ISBN 978-4813325499
* 侮日論일본어 (2014년, 문예춘추(文藝春秋))
* 日本人はなぜ「小さな命」に感動するのか일본어 (2014년, WAC BUNKO)
* 反日韓国の自壊が始まった일본어 (2014년, 웅구출판(悟空出版))
* 朴槿恵の真実 哀しき反日プリンセス일본어 (분춘신서(文春新書), 2015년)
* 韓国を蝕む儒教の怨念 ―反日は永久に終わらない―일본어 (2019년, 소학관(小学館))
* 韓国「反日民族主義」の奈落일본어 (분춘신서(文春新書), 2021년 4월)
* 「親日韓国人」ですが、何か?일본어 (2020년, 고쿠 공업 출판) WWUK 공저
=== 공저 ===
* 日本の驕慢・韓国の傲慢 新・日韓関係への道일본어 (와타나베 쇼이치 공저, 1993년, 도쿠마 쇼텐), 후에 '가까우면서 먼 나라'로 문고판 출간
* 韓国の激情・日本の無情 日韓反目の壁をどう破るか일본어 (와타나베 쇼이치 공저, 1996년, 도쿠마 쇼텐)
* これでは困る韓国 ニューカマー韓国人の対話일본어 (최길성 공저, 1997년, 산교샤)
* 歴史と文化が日本を再生させる일본어 (모랄로지 연구소(히로이케가쿠엔 사업부)) 야기 히데쓰구·타카모리 아키노리 공저
* 日本の文化力 世界を幸福にする일본어 (쿠사카 코토 공저, 2004년, PHP 연구소)
* やっかいな隣人 韓国の正体 なぜ「反日」なのに、日本に憧れるのか일본어 (이자와 모토히코 공저, 2006년, 쇼덴샤), 후에 황금문고 출간
* 売国奴일본어 (황원웅·석평 공저, 2007년, 비즈니스샤)
* 帰化日本人 だから解る 日本人の美点・弱点일본어 (황원웅·석평 공저, 2008년, 이백사(포레스트 출판))
* 日本を誣いる人々 ―祖国を売り渡す徒輩を名指しで糺す―일본어 (와타나베 쇼이치·야기 히데쓰구 공저, 2011년, PHP 연구소)
* 日本人の恩を忘れた中国人・韓国人の「心の闇」: 呉善花〈韓国〉が黄文雄〈台湾〉、石平〈中国〉に直撃일본어 (2013년 12월, 이백사)
* 困った隣人 韓国の急所일본어 (이자와 모토히코 공저, 쇼덴샤 신서, 2013년 3월)
* 日本人は中国・韓国人と根本的に違う 黄文雄〈台湾〉が呉善花〈韓国〉、石平〈中国〉に直撃일본어 (2013년 4월, 이백사)
* 日本人は中韓との「絶交の覚悟」を持ちなさい 石平〈中国〉が黄文雄〈台湾〉、呉善花〈韓国〉に直撃일본어 (2014년 1월, 이백사)
* もうこの国は捨て置け! 韓国の狂気と異質性일본어 (석평 공저, 와쿠 문고, 2014년 2월)
* 日本と韓国は和解できない 「贖罪」と「幻想」からの脱却일본어 (와타나베 쇼이치 공저, PHP 연구소, 2014년 9월)
* 日韓 悲劇の深層일본어 (니시오 칸지 공저, 쇼덴샤 신서, 2015년 10월)
* 最後の痛言 呉善花〈韓国〉が黄文雄〈台湾〉、石平〈中国〉に真意を問う일본어 (2015년 4월, 이백사)
* 反日をやめれば成り立たない国・韓国일본어 (석평 공저, 와쿠 문고, 2015년 5월)
* 呆韓論の裏返し ヘイトの時代を読み解く일본어 (가세 히데아키 공저, 와쿠 문고, 2017년 1월)
* 赤い韓国 危機を招く半島の真実일본어 (사쿠라이 요시코 공저, 산케이 신문 출판, 2017년 5월)
* 韓国・北朝鮮はこうなる!일본어 (가토 다쓰야 공저, 와쿠 문고, 2018년 7월)
* 日・韓・台 このままでは中国に呑み込まれる! 「反日民族主義」後の近未来 上일본어 (석평, 황원웅 공저, 이백사, 2020년 2월)
* 視界断絶の日・中・韓 4000日間の総括 「反日民族主義」後の近未来 下일본어 (황원웅, 석평 공저, 이백사, 202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