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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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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방부 중앙정보부는 195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제안으로 국방부 장관 김정렬의 지시 하에 설립된 정보 기관이다. 한미 정보 교류를 위한 한국 측 정보 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3군에서 선발된 정보 요원들을 기반으로 창설되었으며, 이후락이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CIA와의 정보 교류를 주요 임무로 수행했고, 이후락은 CIA 정보를 분석하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4.19 혁명 이후 해체되었으며, 이후락의 경험과 조직은 5.16 군사 정변 이후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 창설에 활용되어 대한민국 정보기관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2. 설립 배경

1959년 미국 CIA국방부미국 기관과는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될 CIA 한국 지부 설치를 제의하면서, 지부 요원들에게 외교관과 같은 치외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4] 그러나 김정렬 국방부 장관은 한국 지부가 독자적인 기관으로 설치되는 것은 곤란하며, 미국 대사관 안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승만 대통령 또한 CIA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CIA 지부 창설은 허가했지만 "CIA는 못된 놈들이야. 조심해![5]"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2. 1. 미국 CIA의 제안

1959년 어느 날, 미국 CIA의 주요 간부 한 사람이 국방부 장관 김정렬에게 미국 기관과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3] 그는 미국 기관과는 별도로 운영될 CIA 지부를 한국에 설치하고 싶으며, CIA 지부 요원들에게 외교관과 같은 치외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4]

자신을 CIA 간부라고 소개한 넬슨은 CIA 서울 지부를 창설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국방부 장관 김용우와 CIA 부장 앨런 덜레스가 서명한 한미 정보 협력 협약서를 제시했다.[5] 김정렬은 이러한 협약이 체결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김정렬은 CIA 한국 지부가 독자적인 기관으로 설치되는 것은 곤란하고, 미국 대사관 안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여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4] 웨인 넬슨은 이 협약에 따라 CIA 지부를 개설하고, 이 기구와 협력할 한국 측 정보기관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5]

김정렬이승만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승만은 CIA를 믿지 말라며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CIA 지부 창설을 허가하면서도 "CIA는 못된 놈들이야. 조심해![5]"라며 주의를 주었다.

2. 2.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

1959년 미국 CIA 주요 간부 한 사람이 국방부 장관 김정렬에게 미국 기관과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의했다.[3] 김정렬은 CIA 한국지부가 독자적인 기관으로 설치되는 것은 곤란하나, 미국 대사관 안에 적절한 자리를 마련하여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4]

김정렬이후락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미국 CIA에서 계속 부탁하자 이승만에게 보고했다. 이승만은 CIA를 믿지 말라며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김정렬 장관이 이 문제를 이승만 대통령과 상의했더니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CIA 지부 창설을 허가하면서도 주의를 주었다.[5] 이승만은 허락을 해주되 "CIA는 못된 놈들이야. 조심해![5]"라며 조언하였다.

3. 설립

미국 CIA과의 협의 결과, 미국 대사관 내에 CIA 한국 지부가 설치되었고, 웨인 넬슨이 초대 지부장으로 부임했다.[4] 넬슨 지부장은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정보 협력 협정 이행을 위해 한국 측 정보기관 설립을 제안했다.[4]

3. 1. 중앙정보부 창설

웨인 넬슨 미 CIA 한국 지부장이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 부임 즉시 '김용우 전임 국방부 장관 시절 한국과 미국 양국 국방부 장관 사이에 양국 정보 교환 비밀 협정을 맺었는데, 이 협정을 이행하려면 한국 측에도 GA 상대역인 정보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4] 김정렬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3군에서 정보 요원을 뽑아 국방 장관 휘하 직속부대를 만들고 이후락 준장을 부대장으로 임명했다.[4] 이 부대의 정식 명칭은 '중앙정보부'였고, 대외적으로는 이후락 자신의 군번을 딴 '79부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했다.[4]

국방부 직속 기관으로 국방부 중앙정보부장은 국방부 장관이 겸임했으며, 국방부 중앙정보부(79호실)의 실질적인 운영은 이후락 실장이 맡았다.

4. 기관장

중앙정보부장은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장 이후락은 확인된다.[1]

4. 1. 부장

김정렬 (1958년 ~ 1960년 5월 2일)

4. 2. 실장

이후락 (1958년 ~ 1960년 5월 2일)은 대한민국 국방부 중앙정보부 실장, 국방부 79호실장, 국방부 79부대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1]

5. 활동

CIA과의 정보 교류 및 협력이 국방부 중앙정보부의 주요 임무였다. 기존의 국방부 제4국, 육군본부 정보국, 해군 정보국, 육군 특무부대, 국군 방첩대 등과는 별도로 운영되었으며, 이들 기관에서 수집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CIA에서 제공하는 해외 정보를 분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창립 당시 79부대의 인원수는 20여 명이었고, 미 CIA 요원들도 이 부대에 파견되어 초창기 업무를 도왔다.[1]

5. 1. 정보 교류 및 분석

미국 CIA에서 전달되는 정보는 1주일에 캐비닛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방대했다. 이후락은 이 중 중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매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고, 국방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간추려 경무대에 보고하였다.[1]

5. 2. 라오스 밀파 활동

이후락은 79부대장 시절 이승만의 밀명을 받아 라오스에 잠입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라오스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익 노사반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 지원 방안을 검토하다가 이후락라오스 현지로 보냈다.[1] 이후락은 당시 베트남 대사 최덕신의 도움을 받아 노사반을 만났다.

김정렬 국방장관은 서울로 돌아온 이후락 준장을 데리고 경무대로 들어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락은 노사반 장군이 한국군의 파견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에 따라 백선엽 합참의장 산하에 라오스 파병을 연구하는 실무반이 조직됐으나, 미국 측의 반대로 백지화되었다.[1]

6. 해체 및 영향

4·19 혁명 이후 이후락은 79호실 책임자로 계속 업무를 수행했다. 중앙정보부는 국방정보본부의 전신이며, 1960년 11월 창설된 중앙정보위와 중앙정보부의 모태가 되었다.[1]

6. 1. 중앙정보부(KCIA)로의 계승

5·16 군사 정변 주체 세력은 정보 책임자인 이후락을 체포했으나, 이후 중앙정보부 창설 과정에서 그의 경험과 조직을 활용했다.[1] 국방부 중앙정보부는 이후 대한민국 정보기관 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 되었다.

참조

[1] 서적 남산의 부장들: 정치 공작 사령부 KCIA, 1권 동아일보사
[2] 서적 통일문제와정치・사회적갈등, 1953-1961 서울대학교 출판부
[3] 서적 다큐멘터리 박정희 3권 평민사
[4] 서적 다큐멘터리 박정희 3권 평민사
[5] 뉴스 제7부 가난한 군인의 길.....<206>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199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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