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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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는 1980년 11월 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15편이 김포국제공항 착륙 중 발생한 사고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조종사의 과실로 인해 활주로에 미치지 못하고 기체가 파손, 화재가 발생하여 승객과 승무원 226명 중 15명이 사망하고, 착륙 장치에 공군 병사 1명이 추가로 희생되어 총 16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기장은 1만 시간 무사고 표창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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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 |
---|---|
사고 개요 | |
사고 명칭 | 대한항공 015편 사고 |
사고 유형 | 지형 제어 충돌(CFIT) |
발생 일시 | 1980년 11월 19일 |
발생 위치 | 김포국제공항, 서울, 대한민국 |
원인 | 조종사 과실 및 악천후(짙은 안개)로 인한 시야 불량 |
항공편 정보 | |
항공사 | 대한항공 |
편명 | KE015 |
기종 | 보잉 747-2B5B |
등록 번호 | HL7445 |
출발지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
경유지 |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 |
목적지 | 서울 김포국제공항 |
탑승자 정보 | |
승객 | 206 |
승무원 | 20 |
총 탑승 인원 | 226 |
사망자 | 15 |
부상자 | 4 |
생존자 | 211 |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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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고 경위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 조종사는 서울 김포국제공항 활주로에 접근하던 중 너무 빨리 하강하여 메인기어가 활주로 앞 제방에 부딪혔다.[3] 이로 인해 날개가 공사용 차량에 부딪혀 파손되었고, 기체는 무게중심을 잃고 활주로에 곤두박질쳤다. 동체 착륙 상태로 2km를 활주한 후 정지했으며, 연료가 적어 큰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기체는 전소되었다. 승무원과 승객은 긴급 탈출했으나, 승무원 6명, 승객 9명, 그리고 제방에서 보초를 서던 공군 병사 1명이 사망하여 총 16명이 희생되었다.[5]
2. 1. 운항 정보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은 미합중국 로스앤젤레스발 앵커리지 경유 서울행 항공편이었다. 해당 항공편은 승객 200명, 승무원 6명, 기장 1명, 부기장 1명, 항공기관사 1명으로 구성되었다. 대한항공 015편의 기장은 1만 시간 무사고 표창장을 받은 기록이 있다. 당초 예정된 도착 시각은 오전 7시 20분이었으나, 당시 김포국제공항은 짙은 안개에 싸여 시야가 800m ~ 1,000m 정도로 제한된 상황이었다.2. 2. 사고 당시 상황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앵커리지 경유 서울행 항공편이었다. 이 항공편에는 승객 200명, 승무원 6명, 기장 1명, 부기장 1명, 항공기관사 1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대한항공 015편의 기장은 1만 시간 무사고 표창장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당초 예정된 도착 시각은 오전 7시 20분이었으나, 당시 김포국제공항은 짙은 안개에 싸여 시야가 800m ~ 1,000m 정도에 불과했다.[3]이러한 상황에서 활주로에 접근하던 중, 조종사가 너무 빨리 하강하여 메인기어가 활주로 앞의 제방에 부딪혔다. 날개는 공사용 차량에 부딪혀 한쪽 날개가 부서졌고, 기체는 무게중심을 잃고 활주로에 낙착(落着) 후 불이 붙었다. 기체는 동체 착륙 상태로 2km를 활주한 후 정지했다. 동체에 남아있던 연료가 적었고, 인화성 물질이 적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승무원과 승객이 긴급 탈출에 성공했지만, 기체는 전소되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226명 중 15명(승무원 6명, 승객 9명)이 사망했다. 랜딩 기어에 제방에서 보초를 서던 공군 병사 한 명도 추가로 희생되어, 사망자 수는 총 16명으로 늘었다. 희생된 승객 대부분은 B747기의 2층에 타고 있었다. 조종을 했던 양창모 기장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고 하여 기체 안에서 사망했고, 그와 뜻을 함께 하겠다는 항공기관사, 부기장도 사망했다.[5] 승객 중 일본인은 82명이었는데, 그 중 77명은 간사이의 여행 회사가 기획한 미국 서해안 관광 단체 관광객이었다.
3. 인명 피해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226명 중 15명(승무원 6명, 승객 9명)이 사망했고,[3][5] 착륙 중 나온 랜딩 기어에 제방에서 보초를 서던 공군 병사 한 명도 희생되어, 사망자 수는 총 16명으로 늘었다.[3] 희생된 승객 대부분은 B747기의 2층에 타고 있었다. 조종을 했던 양창모 기장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고 하여 기체 안에서 사망했고, 그와 뜻을 함께 하겠다는 항공기관사, 부기장도 사망했다. 승객 중 일본인은 82명이었으며, 그 중 77명은 간사이의 여행 회사가 기획한 미국 서해안 관광 단체 관광객이었고, 이 중 여성 1명이 희생되었다.
4. 사고 원인
착륙 장치[1]가 활주로 90m 앞 제방에 충돌한 것이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다. 당시 김포국제공항은 짙은 안개로 시야가 800m ~ 1,000m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었다.[1] 이러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너무 빨리 하강하는 바람에 메인기어가 활주로 앞 제방에 부딪혔다.[1]
5. 사고 후 조사 및 여파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은 미합중국 로스앤젤레스발 앵커리지 경유 서울행 항공편이었다. 당시 김포국제공항은 짙은 안개로 시야가 800m ~ 1,000m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너무 빨리 하강하여 착륙 중 활주로 앞 제방에 랜딩 기어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226명 중 15명(승무원 6명, 승객 9명)이 사망했고, 제방에서 보초를 서던 공군 병사 1명이 랜딩 기어에 맞아 사망하여 총 16명이 사망했다.[1]
사고기는 동체 착륙 상태로 2km나 활주로를 미끄러진 후에 정지했으며, 남아있던 연료가 적었고 인화성 물질이 적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승무원과 승객은 긴급 탈출에 성공했지만, 기체는 전소되었다. 희생된 승객 대부분은 보잉 747기의 2층에 타고 있었다.
사고 당시 015편에는 일본인 승객 82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 중 77명은 간사이 지방의 여행 회사가 기획한 미국 서해안 관광 단체 관광객이었다.
5. 1. 조종사 관련 논란
저시정 기상 상태에서 조종사의 과실로 인해 활주로에 미치지 못하고 추락했다.[1]6. 기타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226명 중 15명(승무원 6명, 승객 9명)이 사망했다. 랜딩 기어에 의해 제방에서 보초를 서던 공군 병사 한 명이 추가로 희생되어, 사망자 수는 총 16명으로 늘었다.[1] 희생된 승객 대부분은 B747기의 2층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조종을 했던 양창모 기장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고 하여 기체 안에서 사망했고 그와 뜻을 함께 하겠다는 항공기관사, 부기장도 사망했다.[1] 승객 중 일본인은 82명이나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 중 77명은 간사이의 여행 회사가 기획한 미국 서해안 관광의 단체 관광객이었다.[1]
분류:대한민국의 항공 사고
분류:1980년 항공 사고
분류:1980년 11월
분류:보잉 747 사고
분류:대한항공의 사건 및 사고
참조
[1]
웹사이트
Korean Air Flight 015
http://www.airdisast[...]
2019-05-27
[2]
웹사이트
HL7445 Korean Air Lines Boeing 747-200
https://www.planespo[...]
2022-03-31
[3]
간행물
UK CAA Document CAA 429 World Airline Accident Summary (ICAO Summary 1/82)
[4]
뉴스
12 die as jet crash-lands in Korea
https://news.google.[...]
The Day
1980-11-19
[5]
웹사이트
Korean Air Flight 015
http://aviation-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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