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그레그
1. 개요
도널드 그레그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1951년 CIA에 입사하여 1982년까지 근무했으며, 1973년부터 1975년까지는 대한민국 CIA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냈다.
| 존칭 | 대사 |
|---|---|
| 이름 | 도널드 그레그 |
| 원어 이름 | Donald Phinney Greg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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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미국 대사 |
|---|---|
| 임기 시작 | 1989년 9월 27일 |
| 임기 종료 | 1993년 2월 27일 |
| 대통령 |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
| 이전 대사 | 제임스 R. 릴리 |
| 다음 대사 | 제임스 T. 래니 |
| 출생일 | 1927년 12월 5일 () |
|---|---|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헤이스팅스온허드슨 |
| 배우자 | 마가렛 커리-그레그 |
| 자녀 | 1명 |
| 모교 | 윌리엄스 칼리지 (문학사) |
|---|
| 소속 국가 | 미국 |
|---|---|
| 군종 | 미국 육군 |
| 복무 기간 | 1945년-194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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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재 미국 대사 -
리처드 스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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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재 미국 대사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와 한미 관계의 주요 현안들을 다루었고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로서 외교관계협의회 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
윌리엄스 칼리지 동문 -
강봉균 (정치인)
강봉균은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 정책을 주도하며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
윌리엄스 칼리지 동문 -
제임스 C. 스콧
제임스 C. 스콧은 1936년에 태어나 2024년에 사망한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이며, 동남아시아 농민과 국가의 관계, 지배와 저항의 역학을 연구했다. -
1927년 출생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
1927년 출생 -
귄터 그라스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비롯한 단치히 삼부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즘의 영향을 다룬 독일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조각가이며, 무장친위대 복무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치 과거 청산과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 생애 및 경력
도널드 그레그는 1951년부터 1982년까지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했다. 이후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국가안보 자문을 맡았으며,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 청년회 소년부 전국 서기인 아벨 J. 그레그였다. 그의 아내는 마가렛 커리였다. 그들의 딸 루시 스튜어트 그레그는 보수 언론인이자 작가인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의 아들, 작가 크리스토퍼 버클리와 결혼했다. 그의 조카는 팟캐스트 선구자이자 전 MTV VJ인 아담 커리이다.
2.1. 초기 생애 및 CIA 경력
도널드 그레그는 1945년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하여 암호 해독가 훈련을 받았으나, 해외에 파견될 만큼 훈련을 마치지는 못했다. 이후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국(CIA)에 스카우트되었다.
그레그는 1951년 CIA에 입사하여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일본에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는 대한민국에서 CIA 지부장으로 근무했는데, 이는 그가 직접 요청한 보직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레그는 한국 국가정보원의 고문으로 사망한, 미국에서 훈련받은 한 반체제 교수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개인적으로 항의했다. 이로 인해 당시 국정원장인 이후락이 교체되었으며, 그의 후임자는 고문 금지 조치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레그는 상사 테드 섀클리가 그러한 간섭을 경고했음에도, 이를 "CIA 요원으로서 내가 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묘사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그레그는 CIA 본부와 워싱턴 D.C.에서 근무했으며, CIA를 조사하는 "파이크 위원회"에 대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79년, 스탠스필드 터너의 새로운 정권으로 인해 CIA 내 경력이 정체되자,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정책 및 정보 담당 전문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카터 행정부에서 레이건 행정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그곳에 머물렀으며, 1981년 NSC 정보국 국장이 되었다. 1982년 8월,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어 CIA에서 사임했다. 이후 레이건 행정부의 나머지 기간 동안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임했다.
2.2. 국가안보보좌관 및 주한 미국 대사
조지 H. W. 부시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했다. 1979년, 스탠스필드 터너의 새로운 정권으로 인해 CIA 내에서의 경력이 정체되자,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정책 및 정보 담당 전문가로 자리를 옮겼다. 카터 행정부에서 레이건 행정부로 전환되는 시기에도 그곳에 머물렀으며, 1981년 NSC 정보국 국장이 되었다. 1982년 8월,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CIA에서 사임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임했으며,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2.3. 퇴임 이후
조지 H. W. 부시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 자문으로 활동했고,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한국협회에서 근무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정보 기술 교육 및 기타 문제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맥스웰 스쿨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2012년 2월 미국과의 북한 핵 합의 이후, 북한 외무성 부상 겸 핵 군축 협상 대표인 리용호가 맥스웰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그는 PBS 뉴스 아워에 출연하여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에서 한국 전문가였던 조지타운 대학교 객원 교수 발비나 황과 함께 이 합의에 대해 논의했다.
2009년 9월, 그레그는 한국협회 명예 회장직에서 은퇴했으며, 토머스 C. 허바드가 그의 뒤를 이어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그레그는 회고록 도자기 파편: CIA, 백악관, 그리고 두 개의 한국에서 살아온 삶의 조각들을 출판했다.
3. 가족 관계
도널드 그레그의 아버지는 기독교 청년회 소년부 전국 서기였던 아벨 J. 그레그였다. 그의 아내는 마가렛 커리였다. 그레그 부부의 딸 루시 스튜어트 그레그는 보수 언론인이자 작가인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의 아들인 작가 크리스토퍼 버클리와 결혼했다. 도널드 그레그의 조카는 팟캐스트 선구자이자 전 MTV VJ인 아담 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