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요시토모 (오와리 도쿠가와가)
1. 개요
도쿠가와 요시토모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인물로, 191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는 후쿠이 번의 전 영주 마쓰다이라 슌가쿠의 아들이자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제18대 당주의 외손자이다. 1931년 영국 유학 후 도쿠가와 레이메이회 부회장, 도쿄 제실 박물관 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말레이와 도쿄 포로 수용소에서 활동했다. 전후에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사회 복지 사업에 힘썼고, 도쿠가와 레이메이회 회장과 영일 협회 이사 및 부회장을 지냈다. 영일 친선과 일본-말레이시아 우호에 기여하여 대영 제국 훈장과 조호르 왕국의 최고 훈장을 받았다.
| 씨명 | 도쿠가와 |
|---|---|
| 이름 | 요시토모 |
| 휘 | 의지 (義知) |
| 출생일 | 1911년 5월 22일 |
| 사망일 | 1992년 4월 14일 |
| 출생지 | 도쿄도 |
| 직업 | 일본 적십자사 상임 이사 |
| 배우자 | 도쿠가와 마사코 (마쓰다이라 쓰네오의 차녀) |
| 자녀 | 도쿠가와 미치코 (장녀), 도쿠가와 요시노부 (양자) |
| 부모 | 도쿠가와 요시치카 (부), 도쿠가와 요네코 (모) |
| 아버지 | 도쿠가와 요시치카 |
|---|---|
| 어머니 | 도쿠가와 요네코 |
| 배우자 | 도쿠가와 마사코 |
| 자녀 | 도쿠가와 미치코 |
| 양자 | 도쿠가와 요시노부 |
| 졸업 학교 | 교세이 중학교 |
|---|---|
| 주요 활동 | 일본 적십자사 상임 이사 역임 |
| 대수 | 20대 |
|---|---|
| 임기 시작 | 1976년 |
| 임기 종료 | 1992년 |
| 이전 당주 | 도쿠가와 요시치카 |
| 다음 당주 | 도쿠가와 요시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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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국립박물관 관련자 -
도쿠가와 요시노부 (오와리 도쿠가와가)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홋타 마사쓰네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양자가 되었으며, 도쿄 은행을 거쳐 학문과 사회 활동을 병행하며 도쿠가와 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하고, 겐지 이야기 그림 두루마리 연구에 매진하다 2005년 사망했다. -
말레이시아-일본 관계 -
야마시타 도모유키
일본 제국 육군 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말레이 작전 지휘로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나, 종전 후 전쟁 범죄 혐의로 사형당했고, 그의 재판은 지휘 책임에 대한 논쟁과 '야마시타 기준'이라는 법적 선례를 남겼다. -
말레이시아-일본 관계 -
주말레이시아 일본 대사관
주말레이시아 일본 대사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일본의 외교 공관으로, 1957년 말라야 연방 독립과 함께 외교 관계가 수립되어 개설되었으며, 1964년 말레이시아 성립 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
영국-일본 관계 -
영일 동맹
영일 동맹은 1902년 영국과 일본이 러시아의 팽창과 청나라 이권 경쟁에 대한 공동의 우려로 체결한 군사 동맹으로, 중국과 한국의 독립을 상호 인정하고 특정 조건 하에 상호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여러 요인으로 관계가 악화되어 1923년 공식 종료되었다. -
영국-일본 관계 -
나마무기 사건
나마무기 사건은 1862년 나마무기 촌에서 사쓰마 번 행렬과 마주친 영국인들이 무례하다는 이유로 공격받아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막말 정치 혼란 심화, 외국인 배척 운동 격화, 사쓰에이 전쟁의 원인, 대중문화에의 영향 등의 결과를 낳았다.
2. 생애
1911년 도쿄에서 후쿠이번의 전 영주 마쓰다이라 슌가쿠의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치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요네코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제18대 당주 요시노리의 장녀이다. 유년기 이름은 고로타이다. 게이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영국으로 2년 이상 유학을 떠났다. 같은 해 6월, 화족의 장남의 관례에 따라 성인이 되면서 종5위에 오르고 요시토모로 개명했다.
1931년 도쿠가와 요시치카가 재단법인도쿠가와 레이메이회를 설립하자 부회장에 취임했고, 1946년 아버지 요시치카가 공직 추방을 당하자 회장에 취임하여 재단 및 도쿠가와 미술관 부흥에 힘썼다.
1942년 아버지와 함께 말레이로 건너가 조호르주의 시정에 힘썼다. 1943년 귀국 후 도쿄 포로 수용소에서 근무하며 영국인과 미국인 포로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전후에 감사장을 받았다.
1945년 일본 적십자사에 입사하여 사회 복지 사업에 힘썼다. 1951년부터 영일 협회 이사, 196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부회장을 역임했다. 196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Honorary 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아 영일 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고, 1977년에는 말레이시아 연방조호르 왕국의 술탄으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다.
2.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1911년 도쿄에서 후쿠이번의 전 영주 마쓰다이라 슌가쿠의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치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요네코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제18대 당주 요시노리의 장녀이다. 유년기 이름은 고로타이다. 게이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영국으로 2년 이상 유학을 떠났다. 같은 해 6월, 화족의 장남의 관례에 따라 성인이 되면서 종5위에 오르고 요시토모로 개명했다.
2.2. 도쿠가와 레이메이회 활동
1931년 12월, 도쿠가와 요시치카가 재단법인도쿠가와 레이메이회를 설립하자 요시토모는 부회장에 취임했다. 1946년 1월, 아버지 요시치카가 공직 추방을 당하자, 도쿠가와 레이메이회 회장에 취임하여 재단 및 도쿠가와 미술관 부흥에 힘썼다.
2.3. 제2차 세계 대전
1942년 3월, 아버지 도쿠가와 요시치카와 함께 말레이로 건너가 조호르주의 시정에 힘썼다. 귀국 후, 1943년 12월부터 도쿄시 오모리구의 도쿄 포로 수용소에서 근무하며 영국인과 미국인 포로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전후에 감사장을 받았다.
2.4. 전후 활동
1945년 9월, 일본 적십자사에 입사하여 사회 복지 사업에 힘썼다. 1946년 1월, 아버지 요시치카가 공직 추방을 당하자 도쿠가와 레이메이회 회장에 취임하여 재단과 도쿠가와 미술관의 부흥에 기여했다.
1951년부터 영일 협회 이사로 활동했고, 196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영일 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67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Honorary 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아 영일 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7년에는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우호 친선에 헌신한 공로로 말레이시아 연방조호르 왕국의 술탄으로부터 최고 훈장(Darjah Kerabat Johor Yang Amat Dihormati)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