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쓰네오
1. 개요
마쓰다이라 쓰네오는 아이즈번의 마지막 영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아들로, 외교관, 궁내 대신, 참의원 의장을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도쿄 제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가 주미 대사, 주영 대사 등을 지내며 친영미 외교 노선을 걸었다. 2·26 사건 이후 궁내 대신으로 임명되어 9년 3개월간 재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도쿄 대공습으로 메이지 궁전이 소실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전후에는 추밀 고문관, 참의원 의장을 역임하며 헌법 제정과 국립 국회 도서관 설립에 기여했다. 그는 1949년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장녀 세쓰코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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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일본 |
|---|---|
| 출생일 | 1877년 4월 17일 |
| 출생지 | 일본 제국 도쿄 |
| 사망일 | 1949년 11월 14일 |
| 사망지 | 연합군 점령하 일본 도쿄 |
| 배우자 | 나베시마 노부코 |
| 자녀 | 3명 (장녀: 지치부노미야 세쓰코) |
| 부모 | 마쓰다이라 가타모리 (아버지) |
| 친척 | 도쿠가와 쓰네나리 (손자) |
| 직위 | 일본 참의원 의장 |
|---|---|
| 임기 시작 | 1947년 |
| 임기 종료 | 1949년 |
| 이전 | 도쿠가와 이에마사 (귀족원 의장) |
| 이후 | 사토 나오타케 |
| 소속 정당 | 녹풍회 |
|---|
| 출신 학교 | 도쿄 제국대학 |
|---|
| 친족 (정치인) | 의붓아버지: 나베시마 나오히로 (귀족원 의원) 형: 마쓰다이라 요시다이 (귀족원 의원) 형: 야마다 히데오 (백작) (귀족원 의원) 동생: 마쓰다이라 야스오 (귀족원 의원) 처남: 마에다 도시쓰구 (귀족원 의원) 처남: 나베시마 나오미쓰 (귀족원 의원) 처남: 마키노 다다아쓰 (나가오카 시장) 처남: 나베시마 나오쓰나 (귀족원 의원) 처남: 야나기사와 야스시게 (귀족원 의원) 조카: 마쓰다이라 이사오 (후쿠시마현 지사) |
|---|
| 서훈 | 종1위 훈1등 욱일대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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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재 일본 대사 -
요시다 시게루
요시다 시게루는 친미·친영 성향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과 미일 안보 조약 체결을 주도하고 경제 재건 중심의 '요시다 독트린'을 추진하여 일본 고도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한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며 네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
영국 주재 일본 대사 -
시게미쓰 마모루
시게미쓰 마모루는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외무대신을 역임했으며, 전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으나 복귀하여 부총리 겸 외무대신으로서 일본의 국제 사회 복귀에 기여한 인물이다. -
미국 주재 일본 대사 -
시데하라 기주로
시데하라 기주로는 국제 협조 외교를 펼친 외무대신이자 일본국 헌법 제정에 관여하고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으로, 헌법 9조 제안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미국 주재 일본 대사 -
아오키 슈조
아오키 슈조는 메이지 유신 이후 외무대신을 지내며 불평등 조약 개정에 힘쓰고 주미국 일본 대사로서 일본인 이민 문제에 대응했으며 독일 유학을 통해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며, 추밀원 고문관을 지냈다. -
시베리아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시베리아 전쟁 관련자 -
시데하라 기주로
시데하라 기주로는 국제 협조 외교를 펼친 외무대신이자 일본국 헌법 제정에 관여하고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으로, 헌법 9조 제안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 생애
1877년 4월 17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여섯째 아들로 후쿠시마현아이즈와카마쓰시 오야쿠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타모리의 측실 나가(가와무라 겐베의 딸)이다. 가쿠슈인과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02년 도쿄 제국 대학 법과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교관 및 영사관 시험에 수석 합격하여 외무성에 들어갔다. 런던 주재, 청국 주재, 톈진총영사, 구미국장, 외무 차관 겸 정보부장, 주미 대사, 주영 대사를 역임했다. 런던 해군 군축 회의 수석 전권을 맡는 등 시데하라 기주로와 함께 친영미파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1928년 장녀 세쓰코가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과 결혼하였다. 1936년 2·26 사건으로 사이토 마코토 내대신이 암살되자 궁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1945년 5월 25일 야마노테 대공습으로 메이지 궁전이 소실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947년 참의원 선거에 후쿠시마 지방구에서 입후보하여 당선, 녹풍회 소속으로 초대 참의원 의장이 되었다. 국립 국회 도서관 관장 선임 문제를 재정했다.
1949년 11월 14일 심근 경색으로 도쿄도시나가와구에바라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3세(만 72세). 사후 최초의 참의원 장례가 거행되었고, 아오야마 묘지에 안장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외교 경력
마쓰다이라 쓰네오는 1877년 4월 17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타모리는 전 아이즈번의 다이묘였으며, 보신 전쟁에서 도쿠가와 가문을 지지했지만, 이후 신관이 되었다.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의 오야쿠엔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가타모리의 측실인 나가(가와무라 겐베의 딸)이다.
가쿠슈인과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02년 도쿄 제국 대학 법과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교관 및 영사관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외무성에 들어갔다. 1906년에는 나베시마 나오히로 후작의 딸인 나베시마 노부코와 결혼했다.
런던 주재, 청국 주재를 거쳐 톈진총영사, 구미국장, 외무 차관 겸 정보부장, 주미 대사를 역임했다. 런던 해군 군축 회의 수석 전권을 맡는 등 시데하라 기주로와 함께 친영미파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2.2. 황실과의 인연과 궁내대신
1928년 장녀 세쓰코가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과 결혼하였다.
1929년 주영 대사로 임명되어 런던에 부임하였다.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석하여, 미국의 데이비드 A. 리드 상원의원의 설득으로 일본 정부에 불리한 함선 비율을 수용하였다.
1936년 2·26 사건으로 사이토 마코토 내대신이 암살되자, 유아사 구라헤이 궁내대신 후임으로 3월 6일 궁내대신에 임명되었다.
1945년 5월 25일 야마노테 대공습으로 메이지 궁전이 소실된 책임을 지고 궁내대신직에서 사임했다.
2.3. 전후 정치 활동
1946년 추밀원 고문관으로 임명되었으나, 1947년 헌법 시행으로 추밀원이 폐지되었다. 하토야마 이치로가 공직에서 추방된 후, 그의 후임 총리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요시다 시게루가 대신 총리가 되었다.
1947년 참의원 선거에서 후쿠시마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다른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녹풍회를 결성하고 초대 참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의장 재임 중에는 국립 국회 도서관 관장 선임 문제를 처리하기도 했다.
1949년 11월 14일, 심근 경색으로 도쿄도 시나가와구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아오야마 묘지에 안장되었다.
3. 훈장 및 영예
마쓰다이라 쓰네오는 일본과 여러 외국으로부터 다양한 훈장과 영예를 받았다.
| | 훈장 및 영예 | |
|---|---|
| 1902년 12월 27일 | 종7위 |
| 1903년 6월 20일 | 정7위 |
| 1909년 3월 1일 | 종6위 |
| 1911년 9월 20일 | 정6위 |
| 1916년 2월 12일 | 종5위 |
| 1918년 8월 30일 | 정5위 |
| 1922년 7월 20일 | 종4위 |
| 1925년 1월 9일 | 정4위 |
| 1926년 2월 10일 | 금배 1조 |
| 1928년 2월 2일 | 종3위 |
| 1930년 12월 5일 | 제도 부흥 기념장 |
| 1931년 4월 11일 | 금배 1조 |
| 1933년 2월 15일 | 정3위 |
| 1934년 4월 26일 | 금배 1조 |
| 1936년 3월 16일 | 종2위 |
| 1937년 12월 13일 | 일본 적십자사 유공장 |
| 1940년 8월 15일 |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장 |
| 1941년 4월 1일 | 정2위 |
| 1949년 11월 14일 | 종1위 |
| 1914년 3월 21일 | 중화민국 3등 가화장 |
| 1916년 7월 11일 | 중화민국 2등 가화장 |
| 1919년 3월 17일 | 중화민국 3등 문호장 |
| 1927년 | 폴란드 공화국 폴스키 훈장 그랑 크루아 |
| 1928년 | 페루 공화국 Order of the Sun of Peru영어 그란 오피시에 |
| 1939년 | 샴 왕국 쿠론 훈장 그랑 크루아, 이탈리아 왕국 상모리스에라자르 훈장 그랑 크루아 |
| 1942년 2월 2일 | 만주국 훈1위 경운장, 건국신묘 창건 기념장 |
3.1. 일본 훈장
마쓰다이라 쓰네오는 1931년 4월 11일에 勲一等旭日大綬章일본어을 수여받았다. 이전에는 욱일장 6등(1906년 4월 1일), 5등(1911년 8월 24일), 4등(1916년 4월 1일)을 수여받았다.
1924년 5월 31일에는 보관훈장 대수장을 수여받았으며, 이전에는 보관훈장 3등(1919년 6월 28일)과 2등(1920년 11월 1일)을 수여받았다.
3.2. 외국의 훈장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그랑 오피시에, 이탈리아 왕국 Ordine della Corona d'Italia이탈리아어 그란 오피치에, 영국 제국 Royal Victorian Order영어 나이트 그랜드 크로스 등을 받았다.
4. 가족 관계
* 아버지: 마쓰다이라 가타모리 - 구 아이즈번주, 교토 수호직,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 10대
* 아내: 노부코 - 나베시마 나오히로 후작의 넷째 딸
장남: 이치로 - 도쿄 은행 회장
* 손자: 도쿠가와 쓰네타카 - 도쿠가와 이에마사 양자, 도쿠가와 종가 제18대 당주
장녀: 세쓰코 (야스오 양녀,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비)
차녀: 마사코 -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제20대 당주 도쿠가와 요시치카 부인
** 차남: 지로 - 요절
5. 평가와 유산
마쓰다이라 쓰네오는 일본 외교와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