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오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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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오 동맹은 187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제국이 체결한 군사 동맹이다. 이 동맹은 러시아의 팽창에 대한 견제를 목표로 하였으며, 두 제국 간의 상호 방위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탈리아가 1882년 동맹에 합류하면서 삼국 동맹으로 발전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앙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나, 1918년 패배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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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오 동맹 | |
|---|---|
| 지도 | |
| 조약 정보 | |
| 정식 명칭 | 독일-오스트리아 동맹 조약 |
| 체결일 | 1879년 10월 7일 |
| 체결 장소 | 빈 |
| 효력 발생일 | 1879년 10월 7일 |
| 종료일 | 1918년 10월 31일 |
| 당사국 | |
| 주체 |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 서명자 | 오토 폰 비스마르크 줄리어스 안드라시 |
| 주요 내용 | |
| 목적 | 상호 방어 동맹 |
| 조약 내용 |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상호 방어 다른 국가의 공격 시 상호 중립 유지 제3국의 공격 시 상호 지원 러시아가 공격 시 군사적 지원 약속 조약은 비밀 유지 조약은 5년마다 갱신 |
| 추가 조항 | 이탈리아가 가입하여 삼국 동맹으로 발전 |
| 파기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와 함께 자동 파기 |
| 역사적 배경 | |
| 배경 | 러시아 제국의 팽창 견제 및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안전 보장 |
| 영향 |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 |
| 기타 |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한 비밀 조약 삼국 동맹의 기초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와 함께 조약의 효력 소멸 |
2. 동맹의 형성 배경
187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제국이 동맹을 맺은 것은 당시 매우 놀라운 일 중 하나였다.[4] 두 제국은 모두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유사한 문화를 공유했지만,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처럼 종종 갈등을 빚었다. 합스부르크 군주들은 독일이 지지하는 민족주의 확산이 자신들의 다민족 제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공통된 불신이 두 제국의 공동 목표를 위한 연합으로 이어졌다.[4]
1871년 독일 제국 성립 이후,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독일 제국의 권력을 강화하고 독일을 통일하기 위해 자국을 유럽 현상 유지의 평화 유지자로 보이게 하려 했다.[5] 1878년, 러시아 제국은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패배시켰다.[5] 그 결과 체결된 산 스테파노 조약은 발칸 지역에서 러시아에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했는데, 이는 발칸 지역에서 러시아의 주요 라이벌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격분시켰다.[5] 비록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삼황동맹에서 러시아와 독일의 동맹국이었지만, 이 조약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따라서 1878년 비스마르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회의(베를린 회의)를 소집했다.[5] 회의의 결과로 체결된 베를린 조약은 산 스테파노 조약으로 러시아가 얻은 이득을 되돌리고 오스트리아에게 보스니아를 보상으로 제공했다.[5] 비스마르크가 베를린 회의에서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 이후 러시아-독일 관계는 악화되었다.[5] 삼황동맹은 해체되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5]
러시아가 양 제국 중 하나에 공격을 가한다면, 조인국은 제국의 전력을 다하여 지원할 의무를 진다. 따라서 공동의, 또 상호의 동의가 없이는 강화에 응하지 않는다.
3. 러시아에 대한 견제
4. 동맹 조약의 내용 (1879)
만약 조인국이 다른 한 나라에 공격받는 경우, 조인국은 그 동맹국에 대한 침략자를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지 국가에 대해서는 최소한 우호적인 중립을 유지한다.
그러나, 만약 침략국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그것이 공동 행동에 의한 것이거나 또는 피침략국의 위협이 되는 군사적 수단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제1조의 상호 부조의 취지에 따라, 조인국은 그 전력을 다하여 공동 행동에 나선다. 이 경우, 공동의 평화가 달성될 때까지 조인국의 전쟁은 계속된다.
이 조약의 기간은 비준일로부터 잠정적으로 5년으로 한다. 이 조약의 만료 1년 전부터 조인국은 이 조약의 기초가 되는 조건이 계속되고 있는지, 그 이상의 연장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지, 세부적으로 수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협의한다. 이 조약의 최종 연도 초에 어느 한 조인국으로부터 이러한 협상에 대한 초청장이 발송되지 않을 때, 조약은 그 후 3년간에 한하여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
이 조약의 평화적 취지에 비추어 오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인국에 의해 비밀로 한다. 제삼자에게 공개할 때는 양자의 공동 의정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특별 합의에 따른다.
조인국은 알렉산드로프스크 회의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황제에 의해 표명된 견해에 대해 러시아의 군비는 조인국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희망한다. 따라서, 본건에 대해 연락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희망이 기대에 반하여 잘못된 것으로 증명된다면, 조인국은 알렉산드르 황제에게 한쪽에 대한 공격은 양쪽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는 것을 비밀리에 통고하는 것이 충량한 의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 조약은 양국 황제의 인가에 유효성의 기초를 둔다. 그리고 이 인가가 이루어진 후 14일 이내에 발효하는 것으로 한다.
4. 1. 제1조: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상호 지원
조인국 중 한 국가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국가는 전력을 다해 지원해야 하며, 상호 합의 없이 단독으로 강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
4. 2. 제2조: 제3국의 공격에 대한 중립
조인국 중 한 국가가 다른 나라에게 공격받는 경우, 조인국은 그 동맹국에 대한 침략자를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맹 국가에 대해서는 최소한 우호적인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침략국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그것이 공동 행동에 의한 것이거나 또는 피침략국의 위협이 되는 군사적 수단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제1조의 상호 부조의 취지에 따라, 조인국은 그 전력을 다하여 공동 행동에 나선다. 이 경우, 공동의 평화가 달성될 때까지 조인국의 전쟁은 계속된다.
4. 3. 제3조: 조약의 유효 기간 및 갱신
이 조약의 기간은 비준일로부터 잠정적으로 5년으로 한다. 이 조약의 만료 1년 전부터 조인국은 이 조약의 기초가 되는 조건이 계속되고 있는지, 그 이상의 연장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지, 세부적으로 수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협의한다. 이 조약의 최종 연도 초에 어느 한 조인국으로부터 이러한 협상에 대한 초청장이 발송되지 않을 때, 조약은 그 후 3년간에 한하여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
4. 4. 제4조: 조약의 비밀 유지
이 조약은 평화적 취지에 비추어 오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인국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다. 제3자에게 공개할 때는 양자의 공동 의정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특별 합의에 따른다.
조인국은 알렉산드로프스크 회의에서 알렉산드르 황제가 표명한 견해에 대해 러시아의 군비는 조인국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희망한다. 따라서, 본건에 대해 연락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희망이 기대에 반하여 잘못된 것으로 증명된다면, 조인국은 알렉산드르 황제에게 한쪽에 대한 공격은 양쪽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는 것을 비밀리에 통고하는 것이 충량한 의무라고 이해하고 싶다.
4. 5. 제5조: 조약의 발효
이 조약은 양국 황제의 인가를 받은 후 14일 이내에 발효된다.
5. 이탈리아의 합류와 삼국 동맹으로의 발전
1881년, 이탈리아 왕국은 튀니스(현재 튀니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경쟁에서 프랑스에 패했다. 외교적 지원을 얻기 위해 이탈리아는 1882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삼국 동맹을 형성했는데, 이는 유럽 최초의 공식 동맹이었다. 1907년에는 세계 협상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이탈리아는 동맹국들과 즉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1915년에 이탈리아는 협상국에 가입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그리고 1916년에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중 동맹은 중앙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쟁 내내 지속되었고, 1918년 그들의 패배와 함께 종식되었다.
6. 제1차 세계 대전과 동맹의 해체
1881년, 이탈리아 왕국은 튀니스(현재 튀니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경쟁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후, 외교적 지원을 얻기 위해 1882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삼국 동맹을 형성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이탈리아는 동맹국들과 즉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1915년, 이탈리아는 협상국에 가입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고, 1916년에는 독일에도 선전포고했다. 이중 동맹은 중앙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쟁 내내 지속되었고, 1918년 그들의 패배와 함께 종식되었다.
7. 역사적 의의와 영향
참조
[1]
서적
A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2]
논문
Austro-German Relations Since 1866
https://www.jstor.or[...]
1918
[3]
논문
German world policy and the reshaping of the dual alliance
https://www.jstor.or[...]
1966
[4]
서적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2003
[5]
논문
Bismarck, the Dual Alliance and Economic Central Europe, 1877–1885
https://www.jstor.or[...]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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