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릉 두씨
1. 개요
두릉 두씨는 중국 경조에서 시작된 한국의 성씨이다. 본관은 중국 산시성 장안 남쪽에 위치한 두릉이다. 고려 시대에는 두경승 등이 주요 인물로 활동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두량필 등이 병자호란에서 활약했다. 명나라에서 기주자사를 지낸 두교림의 아들 두사충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와 정착하면서 두릉 두씨가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 무과 급제자 2명, 사마시 합격자 2명을 배출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실군, 익산시 등에 집성촌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5,701명이 두릉 두씨 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 한자 표기 | 杜陵 杜氏 |
|---|---|
| 한국어 표기 | 두릉 두씨 |
| 로마자 표기 | Dureung Du ssi |
| 지역 | 중국 산시성 |
| 시조 | 두경녕(杜慶寧) |
|---|---|
| 창성지 | 산시성 두릉현(杜陵縣) |
| 시조 | 두경녕(杜慶寧) |
|---|---|
| 직위 | 경조윤(京兆尹) |
| 설명 | 원래 중국 사람이었지만, 신라에 귀화함. |
| 고려 시대 | 두경녕(杜慶寧)의 아들 대에서 자사(刺史)를 지냄. |
| 조선 시대 | 두지건(杜之建)과 두지봉(杜之逢)이 중서사인(中書舍人)과 우장군(右將軍)을 지냄. |
| 기타 | 두릉 두씨(杜陵杜氏)는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한다. 두경녕(杜慶寧)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릉 두씨(杜陵杜氏)는 만경 두씨(만경두씨)와 두산 두씨(두산두씨)로 분파되었다. |
| 2015년 인구 조사 | 10,749명 |
|---|
4. 주요 인물
* 두량필(杜良弼):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인명(仁明), 호는 일송(逸松)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파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 인근으로 진격, 계략으로 적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인조는 그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도총관(都摠管)에 제수하고 진무일등(振武一等) 공훈을 내렸다.
4.1. 고려
* 두수총 : 대도호부장군
* 두명라 : 보문각진사
* 두방 : 중서문하시랑
* 두경승(杜景升,? ∼ 1197년) :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이 되어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약탈했으나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산을 범하지 않았다. 명종 초 산원(散員)이 되었다가 이의방(李義方)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으며, 뒤이어 낭장(郎將)이 되었다. 1173년(고려 명종 3) 김보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뒤이어 장군이 되었으며,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어 창주(昌州 :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를 진수하였다. 이 때 서경유수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키자 개성으로 후퇴하였다가 다시 동로가발병마부사(東路加發兵馬副使)가 되어 고산(孤山)·선주(宣州 :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맹주(孟州 : 지금의 평안남도 맹산)·무주(撫州 : 지금의 평안남도 덕천) 등지에서 무공을 세운 후 개성으로 개선하였다. 다시 후군총관사(後軍摠管使)가 되어 연주(漣州 : 지금의 평안남도 개천)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1176년에 윤인첨과 함께 서경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 뒤,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영청(永淸 : 지금의 평안남도 평원)을 진수했다. 이듬해 북로처치사(北路處置使)를 겸했고, 뒤이어 상장군·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올랐다. 1180년에 공부상서, 이듬해 호부상서, 1185년에 참지정사(參知政事), 1190년에 수태위(守太尉)가 되었다. 이듬해 판이부사(判吏部事)·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전주(銓注)를 맡았다. 뒤이어 평장사(平章事)가 되었다가 1193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으며, 다시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겸하였다. 이듬해 이의민과 함께 문하시중이 되었다가 1196년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이듬해 새로 정권을 잡은 최충헌에 의해 자연도(紫燕島)로 귀양갔다가 울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금을 가지고 있어 그의 종이 도둑질하려고 은밀히 죽였다고도 전한다.
* 두현 : 문하시랑평장사
* 두무지 : 병마절도사
* 두명철 : 평장사
4.2. 조선
* 두경승(杜景升, ? ~ 1197년): 고려 의종 때 무관으로, 정중부의 난에서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여 명성을 얻었다. 명종 초에 여러 관직을 거쳐 1173년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서북면병마사, 공부상서, 호부상서, 참지정사, 수태위, 판이부사, 수국사, 평장사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1193년 삼한후벽상공신에 책봉되었고, 감수국사를 겸하였다. 1196년 중서령에 올랐으나, 이듬해 최충헌에 의해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 두량필(杜良弼):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인명(仁明), 호는 일송(逸松)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 인근에서 청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인조가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 도총관에 임명하고 진무일등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4.3. 두교림(杜喬林)계 두릉 두씨
두교림(杜喬林)은 명나라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자는 정덕(正德)이다. 두사충(杜師忠)은 두교림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조선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두교림을 시조로 하고 고향인 두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5. 과거 급제자
두릉 두씨는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자 3명, 사마시 합격자 2명을 배출하였다. 만경 두씨 과거 급제자는 두기문, 두제방, 두진경이며, 두릉 두씨에서는 두철수, 두시재가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5.1. 만경 두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3명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