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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스로트 (워터게이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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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딥 스로트(Deep Throat)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한 익명의 정보원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딥 스로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사건 은폐 시도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여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다. 2005년, 딥 스로트의 정체는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 딥 스로트 사건은 언론의 자유와 권력 감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으며, 대중문화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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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스로트 (워터게이트 사건)

2. 워터게이트 사건의 배경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복합단지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제임스 W. 맥코드 주니어를 포함한 5명의 남자가 체포되었다. 이들은 현금, 플라스틱 장갑, 절도 도구, 무전기, 카메라, 최루탄총, 그리고 민주당 사무실에 설치하려던 전자 장치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4] 맥코드 주니어는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선 위원회("CREEP"라는 약어로 조롱받음)의 경호원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예비선거 중,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의 재선 위원회 경비 주임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초기에는 '삼류 소매치기 사건'으로 여겨졌고, 언론의 관심도 옅었으나, 워싱턴 포스트만이 유일하게 사건 보도를 계속했다.

2. 1. 닉슨 행정부의 은폐 시도

워터게이트 사건 초기에는 단순 침입 사건으로 여겨졌으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닉슨 대통령은 사건 발생 6일 후 은폐 공작을 승인했다.[4] 처음에는 사건의 상세한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 '삼류 소매치기 사건'으로 치부되었고, 같은 해 11월의 대통령 선거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아 닉슨은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3년 3월, 침입범 제임스 W. 맥코드 주니어가 증언을 통해 닉슨 재선 위원회 및 닉슨 정권 측근이 연루되어 있음을 폭로했고, 그 후 수많은 부정 발각과 은폐를 부인한 닉슨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커져 마침내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의 존재가 드러났다.

3. 딥 스로트의 역할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딥 스로트'의 제보를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딥 스로트는 우드워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며,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왔다.[1]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한 '도청 소동'으로 여겨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사건 발생 당일부터 취재를 계속했고, 취재에 어려움을 겪던 우드워드는 3년 전 해군 재직 시절 알게 된 '정권 내부의 중요 인물'에게 연락을 시도했다.[36] 1972년 10월, 우드워드는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한 주차장에서 그를 만나 사건의 진상에 대해 물었고, 이것이 '딥 스로트'의 시작이었다.

딥 스로트는 우드워드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이런 정보를 찾아라"라는 식으로 정보 획득 방향을 제시했다. 우드워드가 찾아낸 정보에 대해 딥 스로트는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더 찾아봐라", "같은 종류의 정보를 더 찾아봐라. 이중 체크해라", 또는 "괜찮다"는 식으로 조언하며,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딥 스로트는 내부 고발을 한 것은 아니며, 스스로 정보를 누설하지도 않았다. 정보를 입수하고 세상에 알린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였다. 딥 스로트가 한 일은 기자들에게 정보를 얻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3. 1. 딥 스로트와 우드워드의 소통 방식

밥 우드워드와 '딥 스로트'는 비밀리에 소통하며 만남을 가졌다. 우드워드는 자신의 집 발코니에 빨간 깃발이 꽂힌 화분을 놓아 딥 스로트에게 만남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냈다.[5] 딥 스로트가 만남을 원할 때는 우드워드가 구독하는 뉴욕 타임스 20쪽 페이지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고 시계 그림을 그려 시간을 표시했다.[5] 이들은 주로 로슬린의 키 브리지 바로 위에 있는 지하 차고 맨 아래층에서 새벽 2시에 만났다.[5]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에이드리언 해빌은 우드워드의 아파트 구조상 발코니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고, 뉴욕 타임스 배달 방식 때문에 딥 스로트가 우드워드의 신문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7] 그러나 우드워드는 당시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가 골목길에서 보였고, 뉴욕 타임스에 자신의 아파트 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고 반박했다.[7]

이러한 비밀스러운 소통 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기도 했으며, 펠트의 아내가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8]

4. 딥 스로트의 정체: 마크 펠트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연방 수사국(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2005년 잡지 《베니티 페어》의 기사를 통해 자신이 "딥 스로트"였다고 밝혔다. 30년 이상 딥 스로트의 정체는 미국 정치와 언론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였으며, 많은 대중의 호기심과 추측의 대상이었다.[1]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펠트가 사망하거나 공개에 동의할 때까지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하워드 사이먼스는 비밀 정보원에게 "딥 스로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정보가 제공되는 깊숙한 배경과 당시 유명했던 포르노 영화 《딥 스로트》를 동시에 암시하는 것이었다.[1]

J. 앤서니 루카스는 저서 《악몽: 닉슨 시대의 이면》(1976)에서 딥 스로트가 마크 펠트라고 추측했지만, 널리 비판을 받았다.[2] 1999년에는 번스타인의 아들 제이콥이 친구에게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라고 말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칼 번스타인은 즉시 이 주장을 반박했다.[17]

마크 펠트


작가 로널드 케슬러가 W. 마크 펠트를 인터뷰하는 모습


《베니티 페어》 기사가 보도된 후, 우드워드, 번스타인,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벤저민 C. 브래들리는 펠트가 딥 스로트임을 확인했다.[3] 우드워드는 펠트와의 오랜 인연과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펠트가 제공한 정보의 중요성을 상세히 밝힌 저서 《비밀의 남자: 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 이야기》를 출간했다.

우드워드는 1970년 해군 중위 시절 백악관에서 펠트를 처음 만났고, 이후 펠트를 멘토이자 직업 조언자로 삼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펠트는 닉슨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드워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FBI와 법무부를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펠트가 제공한 정보는 조지 월리스 암살 미수 사건 보도 등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부터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사용되었다.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 이후, 우드워드는 펠트에게 전화하여 워터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펠트는 닉슨 백악관과 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FBI를 조작하려는 노력에 대해 경멸감을 느꼈고, FBI 파일에서 얻은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고 닉슨과 그의 측근들이 책임을 지도록 비밀스러운 방식을 통해 국을 보호하고자 했다.[25]

닉슨 행정부 간부였던 조지 H.W. 부시, 헨리 키신저 등이 딥 스로트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2005년 펠트의 고백으로 딥 스로트의 정체는 명확해졌다.

4. 1. 펠트의 동기 논란

펠트가 딥 스로트 역할을 한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제기되었다. 밥 우드워드는 자신의 저서 《비밀의 남자》에서 펠트가 J. 에드거 후버 국장의 충실한 추종자였으며, 후버 사후 L. 패트릭 그레이가 FBI 국장 대행으로 임명되자 분노했다고 묘사했다.[3] 30년 경력의 FBI 베테랑인 펠트 대신 법 집행 경험이 없는 L. 패트릭 그레이가 임명된 것에 대한 불만과, 그레이의 FBI 운영 방식에 대한 혐오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펠트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우드워드에게 조언을 구하며 정보를 제공했고, 우드워드는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펠트는 자신의 신원과 관여를 숨긴 채 우드워드의 수사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3]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펠트의 행동을 비난하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부당하게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9] 팻 뷰캐넌과 G. 고든 리디 등은 펠트를 비판하며, 닉슨에 대한 공격을 "마녀 사냥"이라고 칭했다.[10]

반면, 펠트의 가족은 그를 "미국의 영웅"이라고 칭하며, 도덕적이고 애국적인 이유로 정보를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그래블 전 상원의원은 펠트의 고발을 칭찬하며 자유 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마크 펠트에 대한 평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펠트가 FBI 국장 승진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폭로 동기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점은 평가가 엇갈리는 요인 중 하나이다.

4. 2. 펠트의 정체 공개 이후의 논란

펠트의 신원 공개 이후, 그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펠트의 가족은 그를 "미국의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그가 도덕적이고 애국적인 이유로 워싱턴 포스트워터게이트 사건 정보를 유출했다고 밝혔다.[3]

팻 뷰캐넌과 G. 고든 리디 등 닉슨을 위해 일했던 일부 보수 인사들은 펠트를 비난하며, 닉슨이 부당하게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9] 이들은 닉슨 대통령 축출을 "마녀 사냥"이라고 칭하기도 했다.[10]

반면, 전 상원 의원 마이크 그래블은 펠트를 "영웅"이라 칭찬하며 자유 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마크 펠트에 대한 평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닉슨의 연설 작가였던 패트릭 뷰캐넌은 펠트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30년 넘게 숨겨왔다고 비난했다.

펠트가 FBI 국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정보 유출의 동기 중 하나였을 수 있다는 점도 평가가 엇갈리는 요인이다.

5. 딥 스로트 사건의 영향 및 평가

딥 스로트 사건은 언론의 자유와 권력 감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4]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2년 동안 이 사건을 추적했다.[4] 이 스캔들은 결국 백악관 비서실장 H. R. 홀데먼, G. 고든 리디, 에길 크로, 백악관 법률 고문 찰스 콜슨, 전 미국 법무부 장관 존 N. 미첼, 전 백악관 법률 고문 존 딘, 그리고 대통령 고문 존 얼리크먼의 사임과 수감으로 이어졌다.[1]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하워드 사이먼스는 비밀 정보원을 "딥 스로트"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정보가 제공되는 깊숙한 배경과 1972년에 개봉하여 널리 알려진 포르노 영화 《딥 스로트》를 동시에 암시하는 것이었다.[1] 30년 이상 딥 스로트의 정체는 미국 정치와 언론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였으며, 많은 대중의 호기심과 추측의 대상이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그가 사망하거나 공개에 동의할 때까지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주장했다.[1]

2005년 5월 31일, 《베니티 페어》는 펠트의 대리인인 변호사 존 D. 오코너가 웹사이트에 게재한 기사를 통해 펠트가 딥 스로트였음을 밝혔다. 펠트는 "나는 그들이 딥 스로트라고 불렀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니티 페어》 기사가 보도된 후, 우드워드, 번스타인,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벤저민 C. 브래들리는 펠트가 딥 스로트임을 확인했다.[3]

'딥 스로트'는 엄밀히 말해 내부 고발을 한 것은 아니며, 세상에 대해 스스로 무언가를 호소하거나 정보를 스스로 누설한 것도 아니다. 정보를 입수하여 세상에 밝힌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이다. '딥 스로트'가 한 것은 정보를 얻는 방법을 기자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5. 1. 한국에 미친 영향

딥 스로트 사건은 한국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 언론 탄압과 권력 남용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언론의 역할과 권력 감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인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으며,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심어주었다.

6. 대중문화 속 딥 스로트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정보원이었던 '딥 스로트'는 이후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거나 패러디되었다. 이는 딥 스로트의 정체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 스캔들 중 하나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딥 스로트는 1974년 2월,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저서 《대통령의 사람들》을 통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당시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하워드 사이먼스는 비밀 정보원을 "딥 스로트"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정보 제공의 깊숙한 배경과 1972년 개봉한 유명 포르노 영화 《딥 스로트》를 동시에 암시하는 것이었다.[1]

2005년 5월 31일, 베니티 페어는 펠트의 대리인인 변호사 존 D. 오코너가 웹사이트에 게재한 기사를 통해 펠트가 딥 스로트였음을 밝혔다. 펠트는 "나는 그들이 딥 스로트라고 불렀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니티 페어》 기사가 보도된 후, 우드워드, 번스타인,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포스트》의 편집장이었던 벤저민 C. 브래들리는 펠트가 딥 스로트임을 확인했다.[3]

6. 1. 영화

할 홀브룩은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에서 딥 스로트를 연기했으며, 영화 속에서 그는 "돈을 따라가라"라는 유행어를 외쳤다(이는 원작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다).[1]

리암 니슨은 영화 마크 펠트: 백악관을 무너뜨린 남자(2017)에서 마크 펠트를 연기했다.[3]

6. 2. 기타

드라마와 게임에서도 딥 스로트는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 할 홀브룩은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에서 딥 스로트를 연기했으며, 그는 "돈을 따라가라"라는 유행어를 외쳤다(이것은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 X파일에서 폭스 멀더는 우드워드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딥 스로트"라는 별명의 정부 정보원과 소통한다. 이 캐릭터가 워터게이트 정보원과 동일한 인물로 묘사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 PlayStation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에서는 그레이 폭스가 정체를 숨기고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무선으로 조언할 때 딥 스로트라고 칭하며, 스네이크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 코미디 영화 (1999)에서 딥 스로트는 닉슨의 개 산책을 시켜주던 두 명의 10대 워싱턴 소녀로 밝혀진다.
  • 첩보 영화 스릴러 영화 마크 펠트: 백악관을 무너뜨린 남자(2017)에서 리암 니슨이 마크 펠트를 연기한다.
  • 성장기를 그린 초자연 코미디 공포 텔레비전 시리즈 웬즈데이(2022) 에피소드 6에서 제나 오르테가가 웬즈데이 아담스를 연기하며 "우리 딥 스로트가 벌써 온 것 같네."라고 말한다.[35]
  • 코미디 영화 청춘 영화에서 마이크와 토니는 농담으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라고 불리며, 마이크는 "그럼 넌 딥 스로트가 되는 거네"라고 응수한다.
  • 아서 S9E9B, "신화 제조기 버스터"에서 아서와 버스터는 변장한 정보원 "딥
  • 페어리 테일 영화 "채널 체이서"에서 투티는 비키가 나쁜 베이비시터라는 정보를 터너 씨 부부에게 유출하기 위해 "딥 투트"라는 잠입 신분을 사용한다. 이것은 딥 스로트를 패러디한 것이다.
  • 아메리칸 대드! S11E19, "가필드와 친구들"에서 외계인 로저는 딥 스로트를 기반으로 한 페르소나를 채택하여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
  • 앤드루 플레밍(Andrew Fleming) 감독은 "딥 스로트의 정체는 15세의 두 명의 여학생이었다"는 대담한 설정을 가진 코미디 영화 키얼스틴 던스트의 대통령을 조심해!(1999년. 키얼스틴 던스트, 미셸 윌리엄스 주연)를 제작했다.
  • 코믹스 워치맨에서 앨런 무어는 닉슨에게 보내진 히어로 "코미디언"에 의해 워터게이트 사건이 은폐되고, 그 결과 닉슨이 대통령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평행 세계의 설정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게임판에서는 이 사건이 중심이 되어, 딥 스로트, 즉 펠트와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살해된 경위가 그려진다.

참조

[1] 웹사이트 How 'Deep Throat' Took Down Nixon From Inside the FBI https://www.history.[...] History.com 2021-01-24
[2] 뉴스 Was Fred Fielding Deep Throat? http://www.slate.com[...] Slate 2003-04-28
[3] 서적 The Secret Man: The Story of Watergate's Deep Throat Simon & Schuster 2005
[4] 웹사이트 Watergate conspirator James McCord Jr. died two years ago. His death was never announced. https://www.washingt[...]
[5] 뉴스 'Deep Throat' garage from U.S. Watergate scandal to be razed https://www.reuters.[...] Reuters 2014-06-16
[6] 웹사이트 Time Could Be Up for Rosslyn's 'Deep Throat' Parking Garage https://northernvirg[...] 2023-06-14
[7] 뉴스 New Zealand man's Deep Throat mystery solved http://www.nzherald.[...] 2011-09-27
[8] 웹사이트 'I'm the Guy They Called Deep Throat' https://www.vanityfa[...] 2020-09-17
[9] 뉴스 Contemporaries Have Mixed Views https://www.washingt[...] The Washington Post 2005-05-31
[10] 뉴스 1973-07-22 – Witch Hunt https://www.newspape[...] 1973-07-22
[11] 서적 Leak: Why Mark Felt Became Deep Throat Univ Pr of Kansas
[12] 뉴스 Revenge Was Felt's Motive, Former Acting FBI Chief Says https://www.washingt[...] 2005-06-27
[13] 뉴스 President Called Felt a 'Traitor' in '73 https://www.chicagot[...] 2005-06-02
[14] 서적 The Friends of Richard Nixon Ballantine 1975
[15] 웹사이트 Woodward and Bernstein on Imus https://www.nbcnews.[...] 2022-12-03
[16] 뉴스 Deep Throat and Me: Now It Can Be Told and Not for the First Time Either http://www.huffingto[...] 2010-05-09
[17] 뉴스 Deep Throat https://www.courant.[...] 1999-07-28
[18] 간행물 Deep Throat: An Institutional Analysis https://www.theatlan[...] The Atlantic Monthly 1992-05
[19] 뉴스 Bob Woodward who exposed Watergate scandal reveals story of friendship that brought down US president https://www.theguard[...] 2020-04-10
[20] 뉴스 Why Did Bob Woodward Lunch With Mark Felt in 1999? http://www.slate.com[...] Slate 2002-05-02
[21] 서적 The Secret Man: The Story of Watergate's Deep Throat Simon and Schuster 2012
[22] 서적 The Bureau: The Secret History of the FBI St. Martin's Press
[23] 뉴스 New York Post 2005-06-03
[24] 뉴스 I'm the Guy They Called Deep Throat http://www.vanityfai[...] VanityFair.com 2008-11-28
[25] 뉴스 How Mark Felt Became 'Deep Throat' https://www.washingt[...] 2008-11-28
[26] 뉴스 Throat Clearing; Watergate conspiracy theories that still won't die. http://www.slate.com[...] 2014-07-21
[27] 서적 In Nixon's Web: A Year in the Crosshairs of Watergate https://books.google[...] Times Books 2008
[28] 웹사이트 Full Biography http://bobwoodward.c[...] Bob Woodward 2014-07-24
[29] 웹사이트 Deep Throat: Uncovered https://web.archive.[...] Department of Journalism, University of Illinois
[30] 간행물 Who Was Deep Throat? http://www.smithsoni[...] Smithsonian Magazine 2003-12
[31] 뉴스 Deep Throat, Antihero: His unmasking makes everybody look a little less noble http://www.slate.com[...] Slate 2005-05-31
[32] 서적 'Wedge: From Pearl Harbor to 9/11 – How the Secret War between the FBI and CIA Has Endangered National Security' Touchstone 2002
[33] 서적 Katharine the Great: Katharine Graham and the Washington Post Sheridan Square Press 1987
[34] 웹사이트 Was Fred Fielding Deep Throat? https://slate.com/ne[...] 2024-11-02
[35] 간행물 Quid Pro Woe 2022-11-23
[36] 문서 ホワイトハウスに書類を逓送する役目の時にたまたま同席していた。
[37] 서적 ぼくはこんな本を読んできた 文藝春秋 1995
[38] 문서 ウッドワードの当時の著作では、情報源について、[[キャサリン・グレアム]]社主に対して名前を明かさず地位だけを知らせただけであった。この情報は社主からの要請で行われたが、時期はもっと後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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