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체네렌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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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 체네렌톨라는 조아키노 로시니가 작곡한 2막의 오페라이다. 1817년 1월 로마에서 초연되었으며, 신데렐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야코포 페레티가 대본을 썼으며, 초연 당시에는 초기에는 냉담한 반응을 얻었으나, 곧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 19세기 동안 세비야의 이발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20세기에는 부활 공연과 음반 발매를 통해 로시니 오페라 부흥을 이끌었다. 현재는 표준 레퍼토리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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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체네렌톨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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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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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드람마 조코소 |
작곡가 | 조아키노 로시니 |
대본 작가 | 자코포 페레티 |
언어 | 이탈리아어 |
원작 | 샤를 페로의 상드리용 |
초연일 | 1817년 1월 25일 |
초연 장소 | 로마, 테아트로 발레 |
다른 이름 | 라 체네렌톨라, 오시아 라 본타 인 트리온포 (La Cenerentola, ossia La bontà in trionfo) |
2. 역사
조아키노 로시니가 25세 때 작곡한 작품으로, 세비야의 이발사 다음 해에 작곡되었다.[1] 불과 3주 만에 완성되었지만, 로시니의 가장 뛰어난 아리아와 중창을 포함하고 있다.[1] 빠른 템포의 노래와 소동을 특징으로 하는 오페라 부파(희극)이지만, 체네렌톨라와 왕자의 진지한 아리아처럼 희극을 넘어선 면도 있어 "오페라 세미 세리아"로 분류되기도 한다.
초연 당시에는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1] 곧 이탈리아 안팎에서 인기를 얻었고, 1820년 런던, 1826년 뉴욕에서 상연되었다. 19세기 동안 세비야의 이발사와 인기를 다투었지만, 콜로라투라 콘트랄토 가수가 드물어지면서 점차 상연되지 않게 되었다.
2. 1. 작곡 배경
대본 작가 야코포 페레티의 설명에 따르면, 1816년 12월, 조아키노 로시니는 로마에서 성 스테파노 축일에 테아트로 발레에서 상연될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기존 대본 ''프란체스카 디 푸아''는 교황 검열관에게 거부되어, 대체할 작품을 찾아야 했다.페레티는 세비야의 이발사 대본을 거절당했던 일로 로시니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작곡가와 흥행주 카르토니를 만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새 작품 주제들은 너무 진지하거나 가볍거나, 상연하기에 너무 비싸고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되었다. 페레티는 24개 이상의 주제를 제안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하품을 하며 소파에서 반쯤 잠든 로시니에게 페레티가 신데렐라를 언급했다. 로시니는 페레티에게 대본을 쓸 용기가 있느냐고 물었고, 페레티는 로시니에게 음악을 만들라고 맞받아쳤다. 로시니는 당장 작업할 구절이 있냐고 물었고, 페레티는 "피곤하지만, 내일 아침에요!"라고 답했다.
페레티는 밤새 작업해 약속대로 아침에 작품의 첫 부분을 준비했다. 그는 22일 만에 대본을 완성했고, 로시니는 24일 만에 악보를 완성했다. 페레티는 오페라의 성공을 의심했지만, 로시니는 1년 안에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라 체네렌톨라''는 1817년 1월 25일에 초연되었고, 초기에는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곧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로시니의 예측대로, 19세기 내내 ''세비야의 이발사''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로시니가 25세 때 작곡한 작품으로, 세비야의 이발사 다음 해에 쓰였다.[1] 불과 3주 만에 작곡되었지만, 로시니의 가장 뛰어난 아리아와 중창을 포함하고 있다.[1]
2. 2. 초연 및 반응
La Cenerentolait는 초연 당시 약간의 적대감을 받았다.[1] 그러나 곧 이탈리아 전역과 그 너머에서 인기를 얻었다. 1819년 리스본[2], 1820년 런던, 1826년 뉴욕에서 상연되었다. 19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 인기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경쟁했지만, 주역을 위해 원래 쓰여진 콜로라투라 알토가 희귀해지면서 레퍼토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2. 3. 19세기 이후
19세기 동안, 라 체네렌톨라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인기를 다투었지만, 주역을 위해 원래 쓰여진 콜로라투라 알토가 희귀해지면서 레퍼토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1]글린데본 페스티벌에서 비토리오 구이의 지휘로 1952년에 부활하여 EMI에서 LP 레코드로 녹음된 이후, 로시니의 작품은 부흥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세대의 로시니 메조소프라노들이 ''라 체네렌톨라''가 다시 전 세계에서 공연되도록 했다.[3] 이 오페라는 현재 표준 레퍼토리의 필수 요소로 간주된다.[3] 1970년대 이후 로시니 르네상스에 의해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로시니를 잘하는 신세대 메조 소프라노 가수가 등장하면서 이 작품의 인기는 다시 불붙었다. 현재는 녹음 및 상연 횟수가 많은 오페라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