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지슈
1. 개요
류 지슈는 1904년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나, 도요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하다 중퇴 후 쇼치쿠 영화사 가마타 스튜디오에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25년부터 1993년까지 배우로 활동하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만춘', '동경 이야기', '산마의 맛'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여 '일본의 아버지상'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9년부터 1992년까지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65년부터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93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에도 영화 스타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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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동일함 |
|---|---|
| 다른 이름 | Chishuu Ryuu |
| 출생일 | 1904년 5월 13일 |
| 출생지 | 일본 구마모토현 다마나군 다마미즈무라 다치바나 (현재의 다마나시) |
| 사망일 | 1993년 3월 16일 (88세) |
| 사망지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 신장 | 171 cm |
| 직업 | 배우 |
| 활동 기간 | 1928년 - 1992년 |
| 가족 | 류 겐조 (손자) |
| 가나 | りゅう ちしゅう |
|---|---|
| 한자 | 笠 智衆 |
| 로마자 | Ryu Chishu |
| 블루리본상 | 조연 남우상 1952년 《우리 집은 즐거워》, 《생명 아름다워》 |
|---|---|
| 일본 아카데미상 | 회장 특별상 1994년 |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 남우 연기상 1949년 《손을 잡는 아이들》 1952년 《생명 아름다워》, 《바다의 불꽃》 남우 조연상 1971년 《가족》 특별상 1991년 |
| 영화 | 《아버님 계세요》(1942년) 《동경 이야기》(1953년) 《꽁치의 맛》(1962년) 《꿈》(1990년) |
|---|---|
| 텔레비전 드라마 | 《다마유라》 《파도의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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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자 배우 -
스즈키 세이준
스즈키 세이준은 독특한 영상미와 스타일로 '세이준 미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마니아층을 형성한 일본의 영화 감독으로, 닛카쓰에서 해고 후 복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일본의 남자 배우 -
타카쿠라 켄
타카쿠라 켄은 1956년 데뷔 후 1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과묵하고 금욕적인 이미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고, 국제적인 인지도 또한 얻었으나 2012년 은퇴 후 2014년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
훈4등 욱일소수장 수훈자 -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쇼가쿠칸 만화상 등을 수상하며 SF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202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훈4등 욱일소수장 수훈자 -
노구치 히데요
노구치 히데요는 1876년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 화상을 입었지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에서 매독과 황열병 연구를 수행하며 매독 스피로헤타를 발견하는 등 업적을 남겼지만 황열병으로 사망한 세균학자이다. -
1993년 사망 -
황인철 (1940년)
황인철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변호사, 사회운동가로서, 판사 출신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청학련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시국사건 변론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등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
1993년 사망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2. 생애
류 지슈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다마나시 다마나군 다마미즈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토진종 본원사 계통 사찰인 라이쇼지(來照寺)의 주지였다. 류는 초등학교와 현립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요 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하여 불교를 공부했다. 부모는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라이쇼지의 주지가 되기를 바랐지만, 류는 그럴 뜻이 없어 1925년 대학을 중퇴하고 쇼치쿠 영화사 가마타 스튜디오 연기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사망하여 류는 주지 역할을 맡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으나, 반년 후 형에게 그 직책을 넘기고 가마타로 돌아왔다.
2.1. 초기 생애 (1904~1925)
류 지슈는 1904년 5월 13일 규슈 구마모토현 다마나시 다마나군 다마미즈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토진종 본원사 계통 사찰인 라이쇼지(來照寺)의 주지였다. '류 지슈'는 본명이다. 류지슈는 마을 초등학교와 현립 중학교를 졸업하고 류코쿠 대학을 거쳐, 도요 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는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라이쇼지의 주지가 되기를 바랐으나, 류는 그럴 뜻이 없어 대학에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1925년 2월,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의 배우 제1기 연구생 모집에 합격하여 입소하면서 대학을 중퇴했다.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은 본심은 아니었지만, 주지 이외라면 어떤 직업이라도 괜찮았다. 같은 해 7월, 아버지의 사망으로 4개월간 주지를 이어받았지만, 1926년 1월, 형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상경하여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에 복귀했다.
2.2. 배우 경력 (1925~1993)
1925년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 연구생으로 입소했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잠시 주지직을 맡았다가 형에게 물려주고 복귀했다. 약 10년간 엑스트라와 단역 생활을 하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젊은이의 꿈(1928)'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1936년 오즈 감독의 '대학은 좋은 곳'에서 주연급 역할을 맡았고, '만춘'에서 노역을 연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7년 사이토 토라지로 감독의 '아오게바 도토시'로 첫 주연을 맡았다. 1942년 오즈 감독의 '아버지가 있었다'에서 주연을 맡은 후, 오즈 작품의 단골 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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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춘'(1949년), '동경 이야기'(1953년), '산마의 맛'(1962년) 등 오즈 감독의 대표작에 출연하여 '일본의 아버지상'을 확립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 외에도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 등 여러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1969년부터 1992년까지 야마다 요지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서 '고젠사마(御前様)' 역으로 출연하여 전 세대에 걸쳐 큰 인기를 얻었다. 1965년 드라마 '타마유라'를 시작으로 TV 드라마에도 진출, 9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1993년 3월 16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작은 '남자는 괴로워: 토라지로의 청춘'(1992년)이다.
3. 연기 특징
류 지슈는 평생 동안 어린 시절 고향인 구마모토의 사투리를 고집했다. 이는 초기에는 연기 경력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영화 속 배역에 진정성과 소박한 정직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야마모토 나츠히코가 류의 사투리를 조롱하는 글을 발표했을 때는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 항의 편지가 쇄도하기도 했다.
그는 "메이지 시대 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우는 연기를 거부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지켰는데, 《만춘》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즈 감독이 류 지슈에게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요구했으나 류 지슈가 이를 거절하여 고개를 숙이는 장면으로 변경되었다. 그는 훗날 이 장면을 "졸고 있다"고 비평한 평론가에게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눈물 연기를 선보인 작품도 있다. 1982년 드라마 《살아있으면》에서는 멀리 입원한 아내를 문병하며 "외롭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고, 1983년 드라마 《파도의 제단》에서는 패전의 슬픔에 통곡하는 노인을 연기했다. 2년 후 《겨울 채비》에서는 자살 미수 후 여관에서 혼자 우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각본가 야마다 타이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야마다 타이치는 그의 연기에 감동했지만, 류 지슈는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아버지 역할을 맡아 '일본의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1990년대에는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의 '고젠 님' 역할로 젊은 세대에게 '상냥한 할아버지'로 인식되며 '일본의 할아버지'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NHK에서 그의 사망 직후 추모 프로그램을 방영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그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하며 애도하는 소감을 보내기도 했다.
4. 수상 내역
| 연도 | 상 이름 | 작품 |
|---|---|---|
| 1949년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남우주연상 | 손을 잡는 아이들 |
| 1952년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남우주연상 | 생명 아름다워, 바다 불꽃놀이 |
| 블루리본상 남우조연상 | 생명 아름다워, 우리 집은 즐거워 | |
| 1967년 | 자수포장 | |
| 1971년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남우조연상 | 가족 |
| 1975년 | 욱일소수장 | |
| 1985년 | NHK 방송 문화상 | |
| 1987년 | 기쿠치 간 상 | |
| 1988년 | 도쿄도 문화상 | |
| 1990년 | 가와키타상 | |
| 1991년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특별상 | |
| 1994년 | 일본 아카데미상 회장 특별상 |
5. 출연 작품
류 지슈는 약 10년 동안 엑스트라와 단역을 전전하며, 종종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14편에 출연했는데, 첫 작품은 1928년 대학 코미디 영화인 《청춘의 꿈》이었다. 1936년 오즈의 《대학은 좋은 곳》에서 처음으로 큰 역할을 맡았고, 《만춘》(1936)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당시 32세였지만, 실패한 중년 교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류 지슈는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1937년 사이토 토라지로의 《아오게바 도토시》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고, 1942년에는 오즈의 《아버지》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보다 불과 7살 어린 사노 슈지의 아버지 역을 맡아 "노인" 연기를 선보였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에 총 52편 출연하였으며, 《아파트는 즐겁다》(1947)부터 《가을 햇살》(1962)까지 오즈의 모든 전후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동경 이야기》(1953)에서 보여준 "노인" 연기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24개의 눈동자》(1954), 오카모토 기하치의 《일본의 가장 긴 하루》(1967) 등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도 100편 이상 출연했다. 1969년부터 1993년 사망할 때까지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 40여 편에서 자비로운 불교 승려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1965년과 1989년 사이에는 약 90편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