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쿠라 켄
1. 개요
타카쿠라 켄은 1931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난 일본의 배우이다. 1956년 영화 《덴코 가라테 우치》로 데뷔하여, 야쿠자 영화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1965년 《아바시리 감옥》 시리즈로 주목받았으며, 1970년 《영웅은 너무 늦다》를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1989년 할리우드 영화 《블랙 레인》에 출연하여 서구에도 널리 알려졌다. 2014년 림프종으로 사망했으며,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 4회, 블루 리본상 주연 남우상 2회 등 다수의 영화 관련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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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명 | 다카쿠라 켄 |
|---|---|
| 본명 | 오다 고이치 |
| 출생일 | 1931년 2월 16일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나카마시, 일본 |
| 사망일 | 2014년 11월 10일 |
| 사망지 | 도쿄, 일본 |
| 신장 | 180cm |
| 혈액형 | B형 |
| 학력 | 메이지 대학 |
| 직업 | 배우, 가수 |
| 활동 기간 | 1956년–2014년 |
| 배우자 | 에리 치에미 (1959년–1971년, 이혼) |
| 양녀 | 오다 기즈키 |
| 주요 활동 | 1955년: 도에이 뉴페이스 제2기생으로 도에이 입사 1956년: 데뷔, 영화 첫 주연 1961년: '남자의 혈조가 울린다' 1964년: '일본협객전' 1965년: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 '쇼와잔협전 시리즈' 1966년: '지옥의 법에 내일은 없다' 1975년: '신칸센 대폭파'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1978년: '겨울의 꽃' / '야성의 증명' 1980년: '동란' / '아득한 산의 부름' 1981년: '역 STATION' 1982년: '해협' 1989년: '아・운' 1994년: '47인의 자객' 1998년: 자수포장 1999년: '철도원(폿포야)' 2006년: 문화공로자 2012년: '당신에게' 2013년: 문화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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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작품 | '전광공수타' '유성공수타' '폭력 거리' '불량배' '일본협객전 시리즈'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쇼와잔협전 시리즈' '지옥의 법에 내일은 없다' '고로쓰키 무숙' '현대임협사' '고르고13' '3대째 습명' '더 야쿠자' '신칸센 대폭파'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 '핫코다산' '행복의 노란 손수건' '겨울의 꽃' '야성의 증명' '동란' '아득한 산의 부름' '역 STATION' '남극 이야기' '이자카야 조지' '야차' '블랙 레인' '아・운' '47인의 자객' '철도원 (폿포야)' '당신에게' |
|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남우주연상 1978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산' 1982년 '동란', '아득한 산의 부름' 1983년 '역 STATION' 2001년 '철도원 (폿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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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리본상 | 주연 남우상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산' 1999년 '철도원(폿포야)' |
| 모트리올 세계 영화제 | 남우주연상 1999년 '철도원(폿포야)' |
| 샌디에이고 영화비평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2006년 '단기, 천리를 달리다' |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 주연 남우상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
| 키네마 준보상 | 주연 남우상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산' 1999년 '철도원(폿포야)' |
| 호치 영화상 | 주연 남우상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산' 2012년 '당신에게' |
| 닛칸 스포츠 영화대상 | 주연 남우상 2012년 '당신에게' |
| 자수포장 | 1998년 |
| 후지모토상 | 특별상 2001년 '반딧불' |
| 문화공로자 | 2006년 |
| 문화훈장 | 2013년 |
| 애칭 | 켄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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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 가수 -
센 마사오
센 마사오는 1965년 데뷔하여 '북국의 봄' 등 히트곡으로 일본 대표 엔카 가수로 성장했으며,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했으나 버블 붕괴 후 가수 활동에 복귀, NHK 홍백가합전에 16회 출연했다. -
엔카 가수 -
장은숙 (가수)
장은숙은 1970년대 후반 데뷔하여 '춤을 추어요', '당신의 첫사랑'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얻은 한국 가수로, 1995년 일본에 진출하여 '장수'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성공을 거두었고, 독특한 음색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앨범 발매, 드라마 OST 참여, 홍보대사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킹레코드 (일본)의 아티스트 -
니시다 토시유키
니시다 토시유키는 폭넓은 연기, 가수 활동, 사회 활동으로 활약한 일본의 배우, 가수, 내레이터, 사회자로서, 반전 평화주의자로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일본 배우 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
킹레코드 (일본)의 아티스트 -
스기야마 고이치
스기야마 고이치는 닛폰 문화방송과 후지TV 감독 출신의 일본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음악 작곡으로 유명하며, 극우 성향의 정치적 견해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일본의 남자 배우 -
스즈키 세이준
스즈키 세이준은 독특한 영상미와 스타일로 '세이준 미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마니아층을 형성한 일본의 영화 감독으로, 닛카쓰에서 해고 후 복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일본의 남자 배우 -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는 1985년 소년대로 데뷔하여 곡예 실력과 차분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일본 배우 겸 가수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며 쟈니즈 사무소 소속 최초로 대하드라마 주연을 맡았으나 2023년 쟈니즈 사무소 사장 취임 후 연예계를 은퇴했다.
2. 생애
후쿠오카현 나카마에서 1931년 태어났다. 인근 야하타시의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의 메이지 대학 상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1955년 우연한 기회에 도에이 영화사에 스카우트되어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6년 영화 《덴코 가라테 우치》(번개 가라테 일격)로 데뷔했으며, 1965년 영화 《아바시리 반외지》 시리즈와 《쇼와 잔협전》 시리즈 등 야쿠자 영화에서 과묵하고 의리 있는 반영웅 역할을 주로 맡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59년 가수 에리 치에미와 결혼했으나 1971년 이혼했다. 1976년 도에이를 떠나 독립하기 전까지 18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독립 후에는 연기 변신을 시도하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할리우드 영화 《영웅은 너무 늦다》(1970), 《야쿠자》(1974), 《블랙 레인》(1989), 《미스터 베이스볼》(1992) 등에 출연하며 국제적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블랙 레인》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와 앤디 가르시아에게 던진 대사는 서구권에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사토 준야 감독의 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는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 개봉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타카쿠라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호타루》(2001), 장이머우 감독의 《천리주단기》(2005), 《아나타 에》(2012)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2014년 11월 10일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에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은 팬들과 영화계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가 중일 문화 교류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그를 "일본의 마지막 거장 배우"라고 칭했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켄 산》(Ken San)이 2016년 제작되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고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2.1. 배우가 되기까지
1931년 2월 16일 후쿠오카현 나카마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4남매 중 차남이었다. 아버지는 전직 일본 제국 해군 군인이자 탄광 총괄 책임자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린 시절 폐병을 앓아 병약했으나, 중학생 시절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미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복싱과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직접 학교에 요청해 복싱부를 만들었으며(전적 6승 1패), 영어는 고쿠라의 미군 사령관 아들과 교류하며 익혔다.
인근 야하타시의 도치쿠 고등학교(현 후쿠오카현립 도치쿠 고등학교) 상업과를 졸업하고, 무역상을 목표로 도쿄의 메이지 대학 상학부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복싱부와 영어 동아리(ESS)에서 활동했으며, 야쿠자 영화를 보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1년간 스모부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1955년 대학 졸업 후, 지인의 소개로 연예 기획사 신게이 프로의 매니저 면접을 보던 중, 우연히 자리에 함께 있던 도에이의 영화 프로듀서 마키노 미쓰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다. 이를 계기로 도에이 뉴페이스 2기생으로 입사하며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동기로는 이마이 켄지, 오카 사토미 등이 있었다. 입사 초기에는 도니치 무역 사장 쿠보 마사오의 집에 머물렀다.
2.2. 스타덤과 이미지
1956년 영화 《전광공수치》로 주연 데뷔하였으나, 초기에는 액션, 코미디, 형사물, 청춘물, 전쟁 영화, 문예 작품,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현대극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도에이의 간판 스타였던 미소라 히바리 주연의 '베란메에 게이샤' 시리즈에도 출연했지만, 연기가 어색하고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저음 때문에 화려함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1963년 영화 《인생극장 비차각》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는 그가 닌교(任侠) 영화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4년에는 《일본협객전》 시리즈에서 하차한 만야 긴노스케를 대신하여 주연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쿠자 영화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다카쿠라 특유의 과묵한 태도와 강렬한 눈빛은 도에이의 닌교 영화 노선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이후 다카쿠라는 말이 없고 금욕적이며 의리를 목숨처럼 지키는 야쿠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며 술을 마시지 않고 꾸준히 근력 트레이닝을 했으며, 닌교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디다 마지막에 목숨을 걸고 복수하는 야쿠자 역을 인상적으로 연기하며 극기적인 이미지를 확립했다. 1964년부터 시작된 《일본협객전》 시리즈, 1965년부터 시작된 《아바시리 반외지》 시리즈와 《쇼와 잔협전》 시리즈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도에이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부른 《아바시리 반외지》와 《쇼와 잔협전》 시리즈의 주제가(각각 동명의 '아바시리 반외지', '당사자모란')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70년 안보를 둘러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단련된 몸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과묵하며, 부당한 처사에 굴하지 않고 변명 없이 정의를 관철하여 마침내 복수를 이룬다"는 다카쿠라의 영웅상은 당시 샐러리맨과 학생 운동에 참여하던 학생들을 포함한 남성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심야 상영은 팬들로 가득 차 입석까지 매진될 정도였다.
하지만 다카쿠라 본인은 연간 10편 이상 제작되는 빡빡한 일정과 매번 비슷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갔으며, 때로는 마지못해 연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직접 극장을 찾아가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며 큰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이게 뭘까… 하고 생각했지. 모르겠어, 나로서는.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하고. 그래서 정말 (영화란) 무서운 매체야. 보고 나면 사람이 달라져 있으니까." 당시 그의 외모는 극화 《고르고 13》의 주인공 듀크 도고의 모델이 되었으며, 이후 제작된 실사 영화판 출연은 원작자 사이토 타카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도에이의 닌교 영화 대량 생산 체제는 다카쿠라를 지치게 했고, 이는 그의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해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극장에서 목격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때문이었다. 그는 1970년대에도 야쿠자 영화에 계속 출연했지만, 이미지 고착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기존의 영웅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신칸센 폭탄 테러범 역할로 영화 《신칸센 대폭파》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고, 이 작품은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그가 1976년 도에이를 떠나 프리랜서 배우로 전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2.3. 독립 이후
1976년 도에이 영화사를 떠나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도에이를 떠나기 전까지 1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그는, 독립 후 연기 변신을 시도하며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1977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에 출연하여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사토 준야 감독의 《야생의 증명》(1978),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역 STATION》(1981), 쿠라하라 코레요시 감독의 《남극 이야기》(1983)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국제적인 활동도 이어갔다. 사토 준야 감독의 1976년 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일본 외 일부 지역에서는 '맨헌트'로 알려짐)는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외국 영화 중 하나로, 이 작품을 통해 타카쿠라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89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블랙 레인》에 출연하여 마이클 더글러스, 앤디 가르시아와 호흡을 맞추며 서구권에도 이름을 알렸다. 1992년에는 프레드 셰피시 감독의 코미디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에서 톰 셀렉과 함께 출연하며 다시 한번 서구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200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활동하여, 2001년 《ホタル일본어》(반딧불이), 2005년 장이머우 감독의 중국 영화 《천리주단기》, 그리고 2012년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아나타 에》(당신에게) 등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2014년 11월 10일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은 팬들과 영화계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훙레이는 타카쿠라 켄이 중일 문화 교류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보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그를 "일본의 마지막 거장 배우"라고 칭하기도 했다.
사후 그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켄 상》(Ken San)이 제작되어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같은 해 8월 일본에서 개봉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진작가 히비 유이치가 감독했으며, 마틴 스코세이지, 폴 슈레이더, 마이클 더글러스, 존 우, 야마다 요지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2.4. 만년
2006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9일에는 베이징영화학원(北京電影学院)의 객원교수로 취임했다. 11월 6일에는 명인(明仁) 천황과 미치코(美智子) 황후가 주최한 문화훈장 수상자 및 문화공로자 초청 다회(茶会)에 참석했다.
2012년 8월, 전작 {{lang 이후 6년 만에 205번째 주연 작품인 영화 {{lang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이 작품으로 제37회 보치영화상 주연 남우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1977년 {{lang, {{lang으로 수상한 이후 35년 만이었다. 또한 제25회 일간스포츠영화대상·이시하라 유지로상에서도 주연 남우상을 수상했으며, 작품 자체도 이시하라 유지로상을 받았다. 2013년 일본아카데미상 우수 주연 남우상 후보로도 선정되었으나, "젊은이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이유로 수상을 사퇴했다. 이는 2002년 영화 {{lang 이후 두 번째 수상 사퇴였다.
2013년 10월 10일에는 "50년이 넘는 활동과 고독한 정신을 관철하고 독자적인 경지를 보이는 영화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인정받아 제60회 기쿠치 칸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는 불참하고 대리인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같은 해 10월 25일, 일본 정부는 다카쿠라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고, 11월 3일 황궁에서 열린 친수식(親授式)에 참석했다. 친수식 후 기자회견에서 다카쿠라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정말 잘했다고 오늘 생각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 결정 발표 후인 10월에도 "앞으로도 이 나라에 태어나서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상을 연기할 수 있도록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 감동하는 마음을 계속 기르고 싶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발표한 바 있다.
차기작 영화 風に吹かれて일본어를 준비하던 중, 2014년 11월 10일 오전 3시 49분, 악성 림프종으로 도쿄 내 병원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년 전 전립선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정기 검진에서 악성 림프종이 발견되어 요양 중이었다. 다카쿠라는 입원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며, 임종은 병원 직원들만이 지켜보았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장례는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밀리에 치러졌고, 장례가 끝난 후인 11월 18일, 소속사인 다카쿠라 프로모션(高倉プロモーション)을 통해 "往く道は精進にして、忍びて終わり悔いなし일본어"라는 고인의 말을 덧붙여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그를 "일본의 마지막 거장 배우"라고 평가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중국에서도 많은 인터넷 사용자와 영화계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으며, 중국 외교부 대변인 훙레이(洪磊)는 다카쿠라가 중일 문화 교류에 큰 공헌을 했다고 논평했다.
다카쿠라 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健さん일본어가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8월 20일 일본에서 개봉했다. 사진작가 히비 유이치(Yuichi Hibi)가 감독한 이 영화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폴 슈레이더, 마이클 더글러스, 존 우, 야마다 요지 등 여러 영화인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3. 출연 작품
타카쿠라 켄은 1956년 영화 『전광공수치』로 주연 데뷔한 이래, 초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1960년대 중반 도에이의 닌쿄 영화 노선 전환과 함께 『일본협객전 시리즈』,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쇼와잔교전 시리즈』 등 히트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과묵하고 의리 있는 야쿠자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그는 도에이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다.
1976년 도에이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에는 닌쿄 영화의 이미지를 벗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1977), 『핫코다 산』(1977), 『역 STATION』(1981), 『철도원』(1999) 등 다양한 작품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을 네 차례 수상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미국 영화와 중국 영화에도 출연하며 국제적으로도 활동했다. 그의 마지막 주연 영화는 2012년 작 『당신에게』이다.
3.1. 영화 (일본)
배우 데뷔 전, 하이유자 연극 연구소에서 6개월간 기초 레슨과 도에이 촬영소에서 엑스트라 출연 등 6개월간의 수련을 거쳐야 했으나, 연구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니 견학만 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기에 소질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채용 1개월 반 만에 주연 데뷔가 결정되었고, 마키노 마사히로의 지인으로부터 '타카쿠라 켄'이라는 예명을 받았다. 본인은 시나리오 속 주인공 이름 '시노부 유사쿠'를 마음에 들어 했으나 거절당했다.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신인이었지만, 1956년 영화 『전광공수치』로 주연 데뷔했다. 배우 지망생이 아니었기에 처음 분장을 하고 거울을 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초기에는 액션 영화, 희극, 형사물, 청춘 영화, 전쟁 영화, 문예 작품, 미스터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현대극 영화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출연작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했다. 카타오카 치에조, 나카무라 킨노스케, 미소라 히바리 등 당대 스타들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미소라 히바리 주연의 「베란메에 게이샤」 시리즈에 출연했지만, 연기가 어색하고 어두운 분위기 탓에 히바리의 상대역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고, 히바리 본인도 다카쿠라와의 계속된 공연을 원치 않았다. 닛카쓰 출신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의 『암흑가 마지막 날』 등을 통해 갱스터 영화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1963년 작 『인생극장 퍄차각』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닌쿄 영화 스타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64년에는 『일본협객전 시리즈』에서 하차한 나카무라 킨노스케를 대신해 주연을 맡게 되었다. 다카쿠라 특유의 과묵함과 강렬한 눈빛은 도에이 닌쿄 영화 노선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이후 다카쿠라는 말이 없고 금욕적이며 의리를 지키는 야쿠자라는 이미지를 굳히며 스타로서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 엄격하게 생활하며 술을 마시지 않고 근력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다.
이후 닌쿄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참고 견디다 마지막에 목숨을 걸고 복수하는 야쿠자 역을 통해 금욕적인 이미지를 확립했다. 1964년부터 시작된 『일본협객전 시리즈』, 1965년부터 시작된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쇼와잔교전 시리즈』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도에이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의 동명 주제가는 가사 일부가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한때 방송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200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1966년 『쇼와 잔쿄덴』 시리즈의 주제가 『당사자모단』 역시 큰 인기를 얻어 현재까지도 가라오케 등에서 불리고 있다.
70년 안보를 둘러싼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카쿠라가 연기한 "단련된 몸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과묵하며, 부당한 처사에 묵묵히 견디고, 변명 없이 정의를 관철하여 마침내 복수를 이루는" 주인공은 당시 샐러리맨과 일본의 학생 운동에 참여하던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남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다카쿠라 본인은 연간 10편 이상 제작되는 빡빡한 일정과 매번 비슷한 줄거리 속에서 심신이 지쳐 연기에 몰입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스크린 속 자신에게 열광하고 영화가 끝난 후 주인공에게 감화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고,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실감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모습은 극화 『고르고 13』의 주인공 듀크 도고의 모델이 되었으며, 원작자 사이토 타카오의 간곡한 요청으로 실사 영화판에 출연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도에이의 닌쿄 영화 양산 체제에 지친 다카쿠라는 『가미카제 야로 진정의 결투』(1966년)를 시작으로 도에이 외 작품 및 해외 작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도 야쿠자 영화에 계속 출연했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자유를 달라"며 당시 도에이 사장 오카와 히로시의 승인을 얻어 개인 프로덕션인 '다카쿠라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듬해 오카와 사장이 사망하고 오카다 시게루가 새 사장이 되면서 이 특례는 인정받지 못하고 무효화되었다. 1973년 『인의 없는 전쟁』이 히트하며 도에이가 실록 노선으로 방향을 바꾸자, "이대로 도에이에 남으면 야쿠자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도에이 작품 출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재난 영화 붐에 편승해 도에이가 기획한 대작 『신칸센 대폭파』(1975)의 대본을 받고, 신칸센 폭탄 테러범 오키타 테츠오 역을 자원하여 주연을 맡았다.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악역이었지만, 이는 이미지 변신의 계기가 되었고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다카쿠라는 1976년 도에이를 퇴사하고 출연 편수 계약을 맺는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이는 배우 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은퇴 각오의 결단이었다.
프리랜서 전향 후 첫 주연작은 『너는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로, 10년 이상 이어온 닌쿄 영화의 이미지를 벗어났다. 1977년에는 『핫코다 산』과 『행복의 노란 손수건』 두 작품으로 제1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과 제20회 블루리본상 주연 남우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동란』(1980), 『멀리 있는 산의 부름』(1980), 『역 STATION』(1981), 『철도원』(1999) 등으로 총 4회의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과 2회의 블루리본상 주연 남우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남극 이야기』(1983), 『야차』(1985), 『아·운』(1989), 『47인의 자객』(1994), 『호타루』(2001)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 영화 『블랙 레인』(1989), 『미스터 베이스볼』(1992)과 중국 영화 『단기, 천리를 달린다.』(2005) 등 해외 작품에도 출연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1998년에는 자수포장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문화훈장 친수식 후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오늘 생각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2년, 6년 만의 복귀작이자 유작이 된 영화 『당신에게』로 제37회 호치 영화상 주연 남우상, 제25회 닛칸 스포츠 영화 대상 주연 남우상을 수상했다.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주연 남우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고 싶다"며 수상을 사퇴했다.
=== 주요 출연 영화 ===
아래는 다카쿠라 켄이 출연한 주요 일본 영화 목록이다. 초기 도에이 시절부터 프리랜서 전향 이후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 및 조연으로 활약했다.
{| class="wikitable sortable"
! 연도
! 제목
! 역할
! 감독
! 비고
! class="unsortable"| 참고자료
|-
| rowspan="7" | 1956
| 전광공수치
| rowspan="2" | 닌 유사쿠
| 쓰다 후지오
| 주연・데뷔작
|
|-
| 류세이 공수치
| 쓰다 후지오
| 주연
|
|-
| 무적의 공수! 찹 선생
| 아리자와 안지
| 고이시 에이이치
|
|
|-
| 대학의 이시마츠
| 주연・이시다 마츠오
| 고이시 에이이치
| 시리즈 첫 작품
|
|-
| 일본 G맨 특별무장반 출동
| 소노카와 형사
| 고이시 에이이치
|
|
|-
| 석양과 권총 일본편 대륙편
| 야마오카 신타로
| 사에키 기요시
|
|
|-
| 권총을 버려라
| 주연・류코
| 고이시 에이이치
|
|
|-
| rowspan="5" | 1957
| 대학의 이시마츠 여자 무리 돌파
| 주연・이시다 마츠오
| 고이시 에이이치
|
|
|-
| 다정불심
| 니시야마 푸레츠
| 오자와 시게히로
|
|
|-
| 일청전쟁 풍운비화 안개의 거리
| 유키 키노스케
| 사사키 야스시
|
|
|-
| 푸른 바다
| 하마다 켄지
| 고바야시 쓰네오
|
|
|-
| 제트기 출동 제101항공기지
| 나카다 지로
| 고바야시 쓰네오
|
|
|-
| rowspan="9" | 1958
| 딸 18세 거역할 수 없다
| 이노우에 쇼고
| 사에키 기요시
|
|
|-
| 다라오 반나이 13명의 마왕
| 쓰카자키 요우키치
| 마쓰다 사다쓰구
|
|
|-
| 연애 자유형
| 센바 타카야
| 사에키 기요시
|
|
|-
| 계절풍 저편
| 코우다 선생
| 세키가와 히데오
|
|
|-
| 히바리의 화형 탐정 합전
| 미타무라 에이지
| 사사키 야스시
|
|
|-
| 희망의 처녀
| 아이하라 조지
| 사사키 야스시
|
|
|-
| 숲과 호수의 축제
| 주연・후우모리 이치타로
| 우치다 토무
|
|
|-
| 딸 중의 딸
| 이시오카 히로시
| 사에키 기요시
|
|
|-
| 놈의 권총은 지옥이다
| 다무라 경부
| 마쓰다 사다쓰구
|
|
|-
| rowspan="7" | 1959
| 선풍 가족
| 다무라 고로
| 고이시 에이이치
|
|
|-
| 무법가의 야로들
| 소네 후미오
| 오자와 시게히로
|
|
|-
| 검은 손가락의 남자
| 주연・미타 신키치
| 이이즈카 마스이치
|
|
|-
| 고도 7000미터 공포의 4시간
| 주연・야마모토 케이조
| 고바야시 쓰네오
|
|
|-
| 짐승이 지나가는 길
| 주연・시카자와 신지
| 세키가와 히데오
|
|
|-
| 지옥의 밑바닥까지 사귀겠다
| 이카리 미키오
| 오자와 시게히로
|
|
|-
| 국제 스릴러 영화 표류 시체
| 야마나카
| 세키가와 히데오
|
|
|-
| rowspan="9" | 1960
| 속 베란메에 게이샤
| 니노미야 타쿠야
| 고이시 에이이치
|
|
|-
| 위대한 여정
| 이와미 시즈오
| 세키가와 히데오
|
|
|-
| 즈베코 천사
| 키시다
| 오자와 시게히로
|
|
|-
| 천하의 쾌남아 돌진타로
| 주연・돌진타로
| 고바야시 쓰네오
|
|
|-
| 속속 베란메에 게이샤
| 타도코로 유사쿠
| 고이시 에이이치
|
|
|-
| 남자라면 해봐라
| 주연・카지무라 고로
| 사에키 기요시
|
|
|-
| 사막을 건너는 태양
| 량
| 사에키 기요시
|
|
|-
| 대공의 무법자
| 주연・사타케 고로
| 시마즈 쇼이치
|
|
|-
| 두 번째 발포는 지옥행이다
| 키드의 켄
| 오자와 시게히로
|
|
|-
| rowspan="10" | 1961
| 천하의 쾌남아 선풍타로
| 주연・선풍타로
| 와카바야시 에이지로
|
|
|-
| 꽃과 폭풍과 갱
| 스마일리 켄
| 이시이 테루오
|
|
|-
| 히바리 민요의 여행 베란메에 게이샤 사도로 간다
| 류타
| 와타나베 쿠니오
|
|
|-
| 만년타로와 아네고 사원
| 주연・만년타로
| 고바야시 쓰네오
|
|
|-
| 베란메에 중승이씨
| 오카 켄이치
| 이가야마 마사미쓰
|
|
|-
| 악마의 수구리 노래
| 주연・킨다이치 고스케
| 와타나베 쿠니오
|
|
|-
| 마지막 간역
| 알 수 없음
| 사사키 야스시
|
|
|-
| 어시장의 여자 이시마츠
| 키타가와 다쓰야
| 쿠도 에이이치
|
|
|-
| 내가 지옥의 마술사다
| 타치바나 조지
| 오자와 시게히로
|
|
|-
| 베란메에 게이샤 멋대로 한다
| 하나무라 켄이치
| 고이시 에이이치
|
|
|-
| rowspan="12" | 1962
| 남태평양 파도 높다
| 곤도
| 와타나베 쿠니오
|
|
|-
| 베란메에 게이샤와 오사카 아가씨
| 히야마 케이키치
| 와타나베 쿠니오
|
|
|-
| 2・26사건 탈출
| 코미야 상사
| 고바야시 쓰네오
|
|
|-
| 사랑과 태양과 갱
| 주연・이시하마 노부오
| 이시이 테루오
|
|
|-
| 오몬 사장 만유기
| 사사스케 사부로
| 고이시 에이이치
|
|
|-
| 민요의 여행·사쿠라지마 오테모얀
| 타테가미 슈헤이
| 와타나베 쿠니오
|
|
|-
| 365야
| 가와키타 코로쿠
| 와타나베 쿠니오
|
|
|-
| 암흑가 마지막 날
| 마키 테츠오
| 이노우에 우메지
|
|
|-
| 도쿄 언터처블
| 주연・하라다 요시오
| 무라야마 신지
|
|
|-
| 유민가의 총탄
| 타카기 켄지
| 이이즈카 마스이치
|
|
|-
| 배반자는 지옥이다
| 아오노
| 오자와 시게히로
|
|
|-
| 천희와 히데요리
| 카타기리 하야토
| 마키노 마사히로
|
|
|-
| rowspan="9" | 1963
| 암흑가의 간역 11명의 갱
| 사와카미 사다오
| 이시이 테루오
|
|
|-
| 도쿄 언터처블 탈주
| 하라다 요시오
| 세키가와 히데오
|
|
|-
| 암흑가 최대의 결투
| 마쓰오카 신페이
| 이노우에 우메지
|
|
|-
| 미야모토 무사시 이도류 개안
| 사사키 코지로
| 우치다 토무
|
|
|-
| 갱 충신장
| 아사노 다쿠미
| 오자와 시게히로
|
|
|-
| 협박
| 주연・야부키 테루오
| 와타나베 유스케
|
|
|-
| 인생극장 퍄차각
| 미야가와 켄
| 사와시마 타다시
|
|
|-
| 두목을 쓰러뜨려라
| 주연・요시오카
| 이시이 테루오
|
|
|-
| 폭력가
| 주연・오기소 슌스케
| 고바야시 쓰네오
|
|
|-
| rowspan="8" | 1964
| 도쿄 갱 대 홍콩 갱
| 주연・키타하라 슈지
| 이시이 테루오
|
|
|-
| 미야모토 무사시 일승사의 결투
| 사사키 코지로
| 우치다 토무
|
|
|-
| 자코만과 철
| 주연・철
| 후카사쿠 킨지
|
|
|-
| 나자무자
| 주연・난죠
| 이시이 테루오
|
|
|-
| 이레즈미 돌격대
| 슈우기 일등병
| 이시이 테루오
|
|
|-
| 암흑가 대로
| 주연・닌 테츠야
| 이노우에 우메지
|
|
|-
| 일본협객전
| 주연・다쓰미의 나가키치
| 마키노 마사히로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5위
|
|-
| 늑대와 돼지와 인간
| 쿠로키 지로
| 후카사쿠 킨지
|
|
|-
| rowspan="9" | 1965
| 간역
| 하야미 쿄이치
| 이시이 테루오
|
|
|-
| 기아해협
| 아지무라 토시오·히가시마이즈루서 수사관
| 우치다 토무
|
|
|-
| 일본협객전 나니와 편
| 주연・후지카와 소우지
| 마키노 마사히로
|
|
|-
| 아바시리 외부지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시리즈 첫 작품
|
|-
| 일본협객전 간토 편
| 오가타 유우
| 마키노 마사히로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5위
|
|-
| 미야모토 무사시 간류섬의 결투
| 사사키 코지로
| 우치다 토무
|
|
|-
| 쇼와잔교전
| 주연・테라시마 세이지
| 사에키 기요시
| 시리즈 첫 작품
|
|-
| 아바시리 외부지 왕향편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4위
|
|-
| 아바시리 외부지 북해편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2위
|
|-
| rowspan="10" | 1966
| 쇼와잔교전 당사자모단
| 주연・하나다 슈지로
| 사에키 기요시
|
|
|-
| 일본협객전 혈투 칸다 축제
| 주연・신조
| 마키노 마사히로
|
|
|-
| 가미카제 야로 진정의 결투
| 쿠로키 후미오
| 후카사쿠 킨지
|
|
|-
| 남자의 승부
| 센주 코타로
| 나카지마 사다오
|
|
|-
| 일본협객전 라이몬의 결투
| 주연・히라마쓰 신타로
| 마키노 마사히로
|
|
|-
| 지옥의 규칙에 내일은 없다
| 주연・타키타 이치로
| 후루하타 야스오
|
|
|-
| 쇼와잔교전 외톨이 늑대
| 주연・타케이 시게지로
| 사에키 기요시
|
|
|-
| 아바시리 외부지 남국의 대결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3위
|
|-
| 아바시리 외부지 황야의 대결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9위
|
|-
| 아바시리 외부지 대설원의 대결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이시이 테루오
| ※연도별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 1위
|
|-
| rowspan="9" | 1967
| 아바시리 외부지 결투 영하 30도
| 주연・타치바나 신이치
|
3.2. 영화 (해외)
3.3. 드라마
;텔레비전 드라마
:* 봄봄 힘내다 (1956년, KR텔레비전)
:* 금요드라마 / 아니키 (1977년, TBS계) - 주연・카미야마 에이지
:* 토요드라마 (NHK종합)
치롤의 만가 (1992년) - 주연・타테이시 지츠로 ※제29회 갤럭시상 장려상
형사 뱀에게 가로막히다 (1995년) - 주연・아키니와 미노루
:* 금요 엔터테인먼트 / 이제부터 해변의 여행자들 (1993년, 후지텔레비전) - 주연・츠다 타케히코 ※일본민간방송연맹상 텔레비전 드라마 부문 최우수상 수상
;라디오 드라마
:* 히구마 아라시 (1980년, TBS 라디오) - 주연・야마오카 긴시로 ※방송문화기금상 제7회 드라마 프로그램 부문 장려상
4. 수상 및 서훈
|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
| 1956 | 엘란도르상 | 신인상 | |
| 1977 | 제20회 블루 리본상 | 주연 남우상 |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 산 |
| 1977 | 제32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 남우 연기상 | 행복의 노란 손수건 |
| 1977 | 제2회 호치 영화상 | 주연 남우상 |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 산 |
| 1977 | 제51회 키네마 준보 | 주연 남우상 |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 산 |
| 1978 | 제1회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주연 남우상 | 행복의 노란 손수건, 핫코다 산 |
| 1978 | 제22회 엘란도르상 | 특별상 | |
| 1978 |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 주연 남우상 | |
| 1981 | 제4회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주연 남우상 | 『동란』, 먼 산의 부름 |
| 1982 | 제5회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주연 남우상 | 역 STATION |
| 1982 |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 주연 남우상 | |
| 1990 |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 주연 남우상 | |
| 1999 | 제23회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 주연 남우상 | 철도원(포포야) |
| 1999 | 제42회 블루 리본상 | 주연 남우상 | 철도원(포포야) |
| 1999 | 제73회 키네마 준보 | 주연 남우상 | 철도원(포포야) |
| 1999 |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 주연 남우상 | 철도원(포포야) |
| 2000 |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주연 남우상 | 철도원(포포야) |
| 2007 | 샌디에고 영화 비평가 협회 | 주연 남우상 | 천리주단기 |
| 2012 | 제37회 호치 영화상 | 주연 남우상 | 당신에게 |
| 2012 | 제25회 니칸 스포츠 영화 대상 | 주연 남우상 | 당신에게 |
| 2012 | 제60회 기쿠치 칸상 | ||
| 2013 | 제37회 일본 아카데미상 | 협회 명예상 | |
| 2014 | 제39회 호치 영화상 | 특별상 | (사후 수상) |
| 2014 | 제27회 니칸 스포츠 영화 대상 | 특별상 | (사후 수상) |
| 2018 | 키타데미상 | 주연 남우상 | (사후 수상) |
| 연도 | 훈장 및 표창 | 비고 |
|---|---|---|
| 1998 | 자수포장 | |
| 2006 | 문화공로자 | |
| 2013 | 문화훈장 | |
| 2014 | 종삼위 | 사후 추서 |
5. 평가 및 영향
다카쿠라 켄은 1970년 전쟁 영화 《영웅은 너무 늦다》에서 일본 제국군 소좌 역을 맡아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야쿠자》(1974)에서 로버트 미첨과 함께 출연했으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1989)에서는 마이클 더글러스, 앤디 가르시아와 호흡을 맞추며 서구권에 이름을 알렸다. 1992년에는 프레드 셰피시 감독의 코미디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에 톰 셀렉과 함께 출연했다.
특히 사토 준야 감독의 1976년 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원제: 君よ憤怒の河を渉れ일본어)는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외국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이 작품을 통해 다카쿠라 켄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소수의 일본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2014년 11월 10일 다카쿠라 켄이 림프종으로 사망하자,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보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그를 "일본의 마지막 거장 배우"라고 칭했으며, 특히 중국에서는 수많은 인터넷 사용자와 영화계 유명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 훙레이는 정례 브리핑에서 "다카쿠라 켄 선생은 중국 국민이 잘 아는 일본 예술가이며, 중일 문화 교류 증진에 중요하고 적극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중국 CCTV를 비롯한 여러 방송사에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일본 연예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도에이 뉴페이스 후배이자 오랜 동료였던 치바 신이치는 "일본 영화계를 위해, 그리고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분의 부고에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심정"이라며 "인생에서도 배우로서도 유일하게 존경해 온 분"이라고 애도했다. 《아아 동기의 벚꽃》의 감독 나카지마 사다오는 "역할 만들기에 집념을 가지고 역할과 하나가 되는 사람, 모든 것을 걸고 영화를 찍었던 희귀한 배우였다"고 회상했으며, 각본가 쿠라모토 소는 "그렇게 건강에 유의하던 켄 씨가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라며 그의 겸손한 인품을 기렸다. 《남극 이야기》에서 함께 출연한 와타세 츠네히코는 "저에게 있어 항상 '사장님'과 같은 존재였다"며 슬픔을 표했고, 유작 《당신에게》(2012)에서 공연한 아사노 타다노부는 트위터를 통해 감사를 표하며 명복을 빌었다. 《아훔》(1989)에서 공연한 이후 친분을 이어온 반도 에이지는 갑작스러운 부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신칸센 대폭파》(1975) 등을 연출한 사토 준야 감독은 "시대를 짊어진 스타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했다.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추모했다. 유작 《당신에게》를 연출했으며 차기작도 함께 할 예정이었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스포츠계에서는 친분이 있던 나가시마 시게오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 많았다"며 애도했다.
사후에도 그의 업적은 계속해서 조명받았다. 2014년 일본 레코드 대상 특별 영예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소속사의 의향으로 수상을 사양했다. 같은 해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올타임 베스트 일본 영화 남우' 부문에서 4위에 올랐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켄 산》(Ken San)은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월드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폴 슈레이더, 마이클 더글러스, 존 우, 야마다 요지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2017년 3월 18일에는 가마쿠라시의 고묘지 경내에 그의 키와 같은 180cm 높이의 묘비가 건립되었다.
다카쿠라 켄은 후대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 베스트 100'에 다카쿠라 주연의 《아득한 산의 울림》(원제: 遙かなる山の呼び声일본어)와 《아훔》(원제: あ・うん일본어)을 포함시켰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다카쿠라 켄과 츠루타 코지가 주연한 임협 영화를 즐겨 보았으며, 특히 《쇼와잔쿄덴 죽어줘야겠소》(원제: 昭和残侠伝 死んで貰います일본어)를 높이 평가했다. 미시마 사건 당일에는 이치가야 주둔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동료들과 다카쿠라의 노래 '唐獅子牡丹일본어'(당사자모단)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미와 아키히로는 신문 연재를 통해 다카쿠라 켄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저서에서 좋아하는 배우로 다카쿠라 켄을 언급했다.
홍콩의 존 우 감독은 다카쿠라 켄을 알랭 들롱, 스티브 맥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동경하는 영화 스타로 꼽았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연기한 캐릭터의 의상과 이미지가 다카쿠라 주연의 《아바시리 번외지》(원제: 網走番外地일본어) 시리즈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다카쿠라 주연의 《역 STATION》(원제: 駅 STATION일본어)을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배우 나카다이 다츠야는 다카쿠라 켄을 현대에도 신비성을 잃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평가했으며, 배우 기타오지 긴야는 다카쿠라의 일에 대한 진지한 자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평론가 카모시타 신이치, 스즈키 토시오, 작가 노자와 히사시, 영화감독 이시이 카츠히토, 배우 마에다 아츠코 등이 그의 작품과 연기를 높이 평가했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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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쿠라 켄은 사생활을 거의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1959년 2월 16일(다카쿠라의 28세 생일), 1956년 영화 '공포의 공중살인'에서 함께 출연했던 가수 에리 치에미와 결혼했다. 3년 후인 1962년, 에리는 임신했지만 중증의 임신중독증으로 유산했고,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에리의 이복언니가 일으킨 문제들이 결혼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결국 에리 측의 요청으로 1971년 9월 3일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에리의 친척과 관련된 문제였다. 이후 다카쿠라는 다른 여성과의 교제 소문은 있었으나 재혼하지 않았다. 이혼 11년 후인 1982년 2월 13일, 에리가 뇌졸중과 구토물 흡인에 의한 질식으로 45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다카쿠라는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매년 에리의 기일에 묘소를 찾아 꽃과 함께 본명을 적은 향을 바쳤다고 한다.
다카쿠라는 생전에 33세 연하인 오다 키즈키라는 여성을 양녀로 삼았으며, 그녀는 다카쿠라가 사망할 때까지 17년 가까이 함께한 파트너로서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사실은 다카쿠라 사후에 알려졌고, 2023년 NHK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그녀를 "마지막 17년을 함께 보낸 파트너"로 소개했다.
영화 관계자나 옛 친구들은 그를 본명인 "오다 고우이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다카쿠라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으나, 친족이 부르는 본명은 "오다 타케이치"이며, 조카도 이를 증언했다. 그의 조상 중에는 호조 아쓰토키(가나자와 분코 창설자인 사네토키의 아들)가 있다. 아쓰토키의 자손들은 규슈에서 호조 성을 버리고 "고마쓰야"라는 상호로 환전상을 경영했으며, 후에 후쿠오카 번주 구로다가로부터 미요지타이토(묘지타이토, 성씨 사용과 칼 소지를 허락받음)를 받아 오다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 말기 『동로일기』를 기록한 치쿠젠 국의 가인 오다 이에코도 그의 조상이다.
다카쿠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토크 프로그램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과거 『스타 천일야』, 『즈바리! 아테마쇼』, 『토요일 좋아! 830』, 『테츠코의 방』 등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1980년에는 친분이 있던 타나카 쿠니에, 키타오오지 킨야와 함께 『훌륭한 동료』에 출연했다. 헤이세이 시대 이후에는 영화 홍보를 겸해 『SMAP×SMAP』(1997년 9월 15일)에 출연했고, 2001년 5월 17일에는 『클로즈업 현대』에서 쿠니야 히로코와 인터뷰했다. 『SMAP×SMAP』 출연분은 2005년 특별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뽑은 명장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2년 8월 18일에는 쿠사나기 츠요시에게 서프라이즈로 출연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SmaSTATION!!에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이는 다카쿠라의 첫 생방송 출연이자 평생 유일한 생방송 출연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NHK 『프로페셔널 일의 방식』 스페셜에 출연하여 영화 『당신에게』 촬영 현장 밀착 취재에 응하며, 배우 생활 56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와 속마음, 배우로서의 신조 등을 일부 밝혔다.
오레타치 효킨족에 출연하고 싶어 비트 타케시에게 출연 기회를 달라는 서명을 한 사진을 건넨 적이 있다. 이를 들은 프로그램 관계자 요코자와 타케시는 '타케짱맨' 코너에 제자 '켄짱맨'을 등장시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1972년, 도에이 선배인 요로즈야 킨노스케의 권유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 령원에 생전 묘를 세웠다. 이 묘에는 앞서 언급된 유산된 아이를 위한 수자 지장보살상도 함께 세워져 있다.
TBS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오오사와 유리 유유 와이드』의 팬이었으며, 게스트 출연 제의가 있었으나 영화 촬영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후에 프로그램에 그 뜻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다.
다카쿠라와 친했던 화가 요코오 타다노리에 따르면, 다카쿠라는 1970년 미시마 사건에 자극받아 미시마 유키오에 관한 영화 제작을 계획했다고 한다. 계획이 구체화되어 로스앤젤레스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미시마의 아내 히라오카 요코의 동의를 얻지 못해 영화 제작을 단념했다. 이후 다카쿠라는 요코오에게 전화해 다마 령원에 있는 미시마의 묘소에 함께 참배하러 가자고 제안하며 카메라를 가져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고 한다.
하네다 공항에서 다카쿠라가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에게 말을 걸었으나, 바바는 다카쿠라를 알아보지 못하고 수행원에게 "배우? 미토 코몬에는 안 나오잖아"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켄 씨』에 따르면, 다카쿠라는 아침잠이 많아 도에이 시절 매일 20분 정도 지각했으며, 영화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시가현 오쓰시의 이시야마데라 경내 폭포에서 참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