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형철
1. 개요
리형철은 1948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의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77년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하여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책임지도원, 조선사회과학원 지도원,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외무성 부부장, 1994년 외무성 미주국장을 거쳐 1997년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되어 핵·미사일 문제 등과 관련하여 미국과 협의했으며, 2001년 해임되었다. 이후 조선로동당 국제부 과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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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 -
박길연
박길연은 1943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수석 대표, 유엔 대사, 외무차관을 역임했다. -
유엔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 -
김성 (외교관)
김성 (외교관)은 1980년대 초 외무성에 입부하여 이란,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외무성 국제기구국 연구원, 유엔 대표부 참사관, 외무성 조약국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부터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활동하며 2023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일 관계 관련 발언으로 주목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이다. -
평안북도 출신 -
양세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평안북도 출신 -
김계관
김계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의 고위 외교관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 외무성 부상 및 제1부상 등을 거치며 북한 외교 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1948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다. 1977년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외교 및 연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조선사회과학원, 군축평화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1993년 외무성 부부장을 거쳐 1994년 미주국장을 역임하며 미국 관련 외교 실무를 담당했다.
1997년 11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되어 핵 및 미사일 문제 등 미국과의 주요 현안 협의에 참여했다. 유엔 대사 재임 중 컬럼비아 대학교 한인학생회 초청 연설에 참석했으며, 반 테러협약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2001년 11월 대사직에서 해임된 후, 2002년 조선로동당 국제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6월에는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다.
2.1. 출생과 초기 경력
1948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다. 1977년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78년에는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책임지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81년 조선사회과학원 대외부문 지도원을 거쳐, 1988년 군축평화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1991년 6월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승진했고, 1993년 외무성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94년 외무성 미주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주국장 재임 중이던 1996년 12월, 같은 해 9월에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국무성 한국과장과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이 협의를 통해 북한이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97년 6월에는 뉴멕시코주의 샌디아 국립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같은 해 6월과 8월에는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했다. 1997년 11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되었다.
2.2. 외교 분야 진출
1981년 조선사회과학원 대외부문 지도원을 거쳐, 1988년 군축평화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1991년 6월에는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승진했다.
1993년 외무성 부부장에 임명되었고, 1994년에는 외무성 미주국장을 맡아 미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1996년 9월에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후속 협의를 위해 같은 해 12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국무성 한국과장과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이 협의에서 북한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1997년 6월에는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샌디아 국립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같은 해 6월과 8월에는 로버트 아인혼 당시 미국 국무차관보와 만나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했다. 1997년 11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되어 핵 및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당국자들과 협의를 이어갔다. 2001년 11월 대사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2002년 조선로동당 국제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4년 6월에는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3. 주요 외교 활동
1993년 외무성 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에는 외무성 미주국장을 맡아 주로 미국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 시기 미국과의 주요 현안을 다루었으며, 이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후속 협의 등으로 이어졌다. 1997년 11월에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되어 핵·미사일 문제 등 국제 사회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 미국 등 관련국들과 협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01년 11월 유엔 대사직에서 해임된 후, 2002년 조선로동당 국제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당 차원의 외교 활동에 참여했으며,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2004년 6월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3.1. 대미 관계
1996년 9월에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후속 협의를 위해, 같은 해 12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국무성 한국과장과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이 협의를 통해 북한은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사과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1997년 6월에는 뉴멕시코주에 있는 샌디아 국립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같은 해 6월과 8월에는 로버트 아인혼 국무차관보와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 협의했다.
1997년 11월 유엔 주재 북한 대사로 임명된 이후, 핵·미사일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미국 당국자와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대사 재임 중 컬럼비아대학교 한인학생회의 초청으로 연설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반 테러협약에 서명했다.
4. 경력 요약
* 1977년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 1978년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책임지도원
* 1981년 조선사회과학원 대외부문 지도원
* 1988년 군축평화연구소 연구원
* 1991년 6월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
* 1993년 외교부 부부장
* 1994년 외교부 미주국장
* 1996년 9월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관련, 같은 해 12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과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북한의 "깊은 유감" 표명으로 합의했다.
* 1997년 6월 뉴멕시코주 샌디아 국립 연구소 방문 및 같은 해 6월, 8월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차관보와 미사일 문제 협의
* 1997년 11월 유엔 주재 북한 대사 임명, 핵·미사일 문제 등 미국 당국자와 협의
* 2001년 11월 유엔 대사 해임
* 2002년 조선로동당 국제부 과장
* 2004년 6월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 기념 서울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