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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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길연은 1943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 미얀마 대사관 영사로 외교부에 입부하여 북한의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수석 대표, 유엔 대사, 외무차관을 역임했으며, 1991년부터 1996년,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유엔 대사를 지냈다. 특히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반발하여 회의장을 퇴장하는 등 강경한 외교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박길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박길연
한자 표기朴吉淵
로마자 표기Bak Gil-yeon
인물 정보
출생일1943년 1월 26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학력국제관계대학
경력
직책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1986년 11월 ~ 1998년 7월, 2003년 8월 ~ 2009년 3월
직책국제 연합 대사
임기1991년 9월 ~ 1996년 5월, 2001년 12월 ~ 2008년 8월
직책정무원 외교부 부부장
임기1983년 11월 ~ 불명, 1996년 6월 ~ 1996년 9월
직책외무차관
임기1996년 9월 ~ 불명, 2008년 8월 ~ 불명
훈장
훈장김일성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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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경력

박길연은 1943년 일제강점기 평안북도(현 자강도)에서 태어나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1992년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2.1. 외교 경력

박길연은 1969년 미얀마 대사관 영사로 외교부에 입부한 이후 북한 외교관으로 활동해 왔다. 1975년에는 주 싱가포르 총영사 대리를 역임했다. 1982년 외교부 미주국장에 취임했고, 1983년 외교부 부부장에 취임, 같은 해 2월 인도에서 개최된 비동맹 제국 정상 회의에 참가했다. 1985년 유엔 북한 대표부 수석 대표로 취임, 1991년 7월 유엔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같은 해 9월 유엔에 가입하자 유엔 대사에 취임, 11월부터 콜롬비아 대사를 겸임했다. 1995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를 방문했다.

1996년 6월 유엔 대사에서 해임되어 중동 담당 외교부 부부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9월부터 외무차관을 역임했다. 2001년 12월 유엔 대사에 재임명되어, 미국의 프리처드 한반도 평화 협의 담당 특사와 회담하는 등 대화 의사를 보였으며, 6자 회담 수용을 표명했다. 2002년부터 캐나다 대사를 겸임했다.

2006년 북한이 핵 실험을 실시하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제재 결의가 채택되었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것을 선전 포고로 간주하고 물리적 보복 수단을 취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2008년 8월 임기가 종료되어 유엔 대사를 퇴임하고, 외무차관에 취임했다. 2010년 9월 북한 대표로서 유엔 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 2012년 77개 그룹 외무장관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경제를 개선하고, 국제 교류를 장려하겠다고 말했다.

2.2.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박길연은 1986년에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제9기 대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 7월에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 선거에서는 선출되지 못했다.

3. 유엔 주재 북한 대사

박길연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그리고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두 차례 유엔 주재 북한 대사를 역임했다.

3.1. 1기 (1991년 ~ 1996년)

1991년 9월 유엔에 가입하자 초대 유엔 대사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 11월부터 콜롬비아 대사를 겸임했다. 1995년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를 방문했다. 1996년 6월에 유엔 대사에서 해임되었다.

3.2. 2기 (2001년 ~ 2008년)

박길연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유엔 주재 대사를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유엔일본의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5년 5월 13일, 북한의 핵 확산 문제에 대한 "6자 회담" 복귀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의 특사 조셉 디트라니와 만났다. 이 회담은 6개월 만에 열린 미국과 북한 관리 간의 첫 만남이었다.

외교관들 사이에서 그는 수사 때문에 '닥터 처클스(Dr. Chuckles)'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박길연은 유엔이 "악명 높고, 쓸모없고, 무모한 결의안"을 발표하는 대신, 그의 나라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의 업적을 "축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자, 박길연은 이사회의 조치를 "갱스터 같은" 행위라고 비난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에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존 볼턴은 이 행동이 1960년 니키타 흐루쇼프유엔에서 구두를 내리친 것과 같다고 응수했다.

2001년 12월 유엔 대사에 재임명되어 미국의 프리처드 한반도 평화 협의 담당 특사와 회담하는 등 대화 의사를 보였으며, 6자 회담 수용을 표명했다. 2002년부터 캐나다 대사를 겸임했다.

2006년 북한의 핵 실험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제재 결의 채택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것을 선전 포고로 간주하고 물리적 보복 수단을 취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2008년 8월 임기가 종료되어 유엔 대사를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