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려
1. 개요
마려는 고구려 동명성왕의 셋째 아들 온조와 함께 남하하여 백제 건국에 기여한 인물이다. 온조의 형 비류와 함께 정착지를 찾아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것을 주장했고, 십제 건국 후 좌보 벼슬을 받았다. 백제 초기 정치 체제 확립에 기여했으며, 십제공신 중 한 명으로 장흥 마씨와 목천 마씨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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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 마씨 -
마해송
마해송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상을 비판하는 등 대한민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목천 마씨 -
마광수
마광수는 대한민국의 국문학자이자 작가, 대학교수로,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며 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학관으로 기성 문단과 갈등을 빚었고, 소설 《즐거운 사라》로 외설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
한국의 건국 신화 -
단군 신화
단군 신화는 환웅과 웅녀의 결합으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홍익인간의 이념과 고조선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국의 건국 신화이다. -
한국의 건국 신화 -
삼성 신화
삼성 신화는 탐라국 건국 설화로, 한라산 북쪽 기슭에서 솟아난 세 신인이 일본국에서 온 사신과 세 처녀를 맞이하여 탐라국을 건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고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사 왜곡에 이용되기도 했다. -
온조왕 -
소서노
소서노는 졸본 부여 또는 연타발의 딸로, 북부여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으며, 고구려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고구려 건국을 돕고 두 아들과 함께 백제를 건국한 인물이다. -
온조왕 -
위례성
위례성은 백제의 초기 수도로, 하남 위례성과 하북 위례성으로 나뉘며, 하남 위례성은 현재의 서울 지역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하고,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2. 생애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찾아와 주몽이 그를 태자로 삼았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간, 마려 등 10명의 신하들과 남쪽으로 떠났는데,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이들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아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거처를 정하려고 하자, 마려는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 얻기 어려운 요새와 같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이 건의를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었다. 그는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고 후회하다가 죽었고, 비류를 따르던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기원전 18년, 온조왕은 하남(河南)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제(十濟)를 건국하였다. 마려는 백제 건국 후 온조를 보좌하였으며, 온조왕은 백제 개국공신(開國功臣)인 마려에게 좌보(左輔) 벼슬을 내렸다. 백성들이 온조를 즐겨 따랐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
2.1. 백제 건국 이전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찾아와서 주몽이 그를 태자로 삼았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간, 마려 등 10명의 신하들과 남쪽으로 떠났는데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드디어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아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거처를 정하려고 하자, 마려 등 10명의 신하가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 얻기 어려운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가 없었다.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고는 후회하다가 죽었다. 비류의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2.2. 백제 건국
기원전 18년 온조왕은 하남(河南)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제(十濟)를 건국하였다. 마려는 백제 건국 후 온조를 보좌하였으며, 온조왕은 백제 개국공신(開國功臣) 마려에게 좌보(左輔) 벼슬을 내렸다.
백성들이 온조를 즐겨 따랐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
2.3. 비류와의 갈등
마려 등 10명의 신하는 비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原文중국어: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 얻기 어려운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류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었다.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고 후회하다가 죽었고, 비류를 따르던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