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소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틴 소럴은 1945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기업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후, 1985년 와이어 앤 플라스틱 사(WPP 그룹)의 주식을 취득하여 1986년 대표이사가 되었다. WPP를 이끌면서 J. 월터 톰슨, 오길비 앤 메이더 등을 인수하며 광고 업계의 거물로 성장했으나, 2018년 개인적인 부적절한 행위 의혹으로 WPP를 떠났다. 이후 S4 Capital을 설립하여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0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마틴 소럴 - [인물]에 관한 문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광고인 - 데이비드 오길비
    20세기 광고계에 큰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오길비는 오길비 앤 매더 광고 회사를 설립하여 과학적인 조사와 데이터에 기반한 광고 제작 원칙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브랜드의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을 이끌었고, 그의 광고 철학은 창의성, 연구, 고객을 위한 실질적인 결과, 그리고 전문적인 규율이라는 4가지 기본 원칙에 기반한다.
  • 광고인 - 이능선 (1902년)
    이능선은 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언론인, 문인, 친일 행위자로 활동했으며, 매일신보 기자 및 발행인을 역임하고, 정국물산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등을 지냈으며, 1963년에 사망했다.
  • 루마니아계 잉글랜드인 - 로즈메리 해리스
    로즈메리 해리스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상을 받은 영국의 배우로,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메이 파커 숙모 역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 루마니아계 잉글랜드인 - 앤드류 가필드
    앤드류 가필드는 연극으로 시작해 영화 《보이 A》로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미국의 배우이며, 《소셜 네트워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핵소 고지》, 《틱, 틱... 붐!》 등 다양한 영화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토니상 연극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하버드 대학교 동문 - 한덕수
  • 하버드 대학교 동문 - 체링 톱게
    체링 톱게는 2013년부터 2018년, 그리고 2024년부터 현재까지 부탄의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인민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며 정계에 입문하여 경제 발전, 투명성 강화, 그리고 탄소 중립 유지를 위한 환경 운동에 힘쓰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마틴 스튜어트 소렐은 1945년 2월 14일 런던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계 조상을 둔 전자 제품 소매업자였다. 그는 사립 해버대셔스 보이즈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68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3. 경력

1945년 런던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75년 광고 회사 사치 앤 사치에 입사하여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재무 분야를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다.

1985년 영국의 철사 쇼핑 바구니 제조업체였던 와이어 앤 플라스틱 프로덕츠(WPP)의 지분을 개인적으로 인수하였고, 1986년에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었다. 이후 WPP를 통해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추진하여 1987년에는 JWT, 1989년에는 오길비 앤 매더를 적대적 인수 방식으로 인수했다. 2000년 이후에는 영 & 루비컴 등을 인수하며 WPP를 세계 최대 광고 및 마케팅 서비스 그룹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1997년에는 영국 외무·영연방부로부터 영국 산업 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98년에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인도 경영대학원의 이사로도 선임되었다. 같은 해부터 WPP와 자본 및 업무 제휴 관계에 있던 일본의 광고 대행사 아사츠 디케이의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모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Alumni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다.

3.1. 초기 경력

소럴은 글렌디닝 어소시에이츠, 제임스 걸리버를 거쳐 스포츠 에이전트인 마크 매코맥을 위해 일했다. 1975년 사치 앤 사치에 합류하여 1977년부터 1984년까지 그룹 재무 이사를 역임했다. 종종 ''"셋째 형제"'로 불렸으며, 사치의 많은 에이전시 인수를 확인하고 감독했다. 소럴은 ‘수익 배분’ 관행을 개선하여 이를 수행했다.

3.2. WPP 그룹

1985년, 소럴은 영국의 철사 쇼핑 바구니 제조업체인 와이어 앤 플라스틱 프로덕츠 plc(WPP)에 개인적으로 투자했으며, 1986년에는 최고경영자(CEO)로 정식 합류했다. 그는 "비주류" 광고 관련 회사를 인수하는 전략을 펼쳐 3년 만에 18개 회사를 인수했다. 1987년에는 566 규모의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제이 월터 톰슨(JWT)을 인수하여 광고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89년에는 825를 들여 오길비 앤 매더를 인수하는 또 한 번의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그룹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오길비는 공개적으로 소럴을 "odious little shit영어"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WPP는 영 & 루비컴과 그레이와 같은 글로벌 에이전시 네트워크도 인수하며 성장을 이어갔다. 또한 WPP와 자본 및 업무 제휴를 맺은 일본 광고 대행사 아사츠 디케이의 이사를 1998년부터 역임했다.

1997년, 소럴은 영국 외무·영연방부로부터 영국 산업 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98년에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인도 경영대학원의 이사로도 취임했다.

2008년 6월, WPP의 자회사인 Y&R이 소수 지분을 보유한 에이전시 '이마고'가 짐바브웨의 ZANU-PF 대통령 선거 운동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마고가 로버트 무가베의 재선을 위한 선거 운동에 고용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 이후 WPP는 짐바브웨에서 Y&R의 소수 지분을 매각했다.

2012년, 소럴은 워렌 버핏버크셔 해서웨이에 WPP를 매각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 소럴에 따르면,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점심 식사 중 버핏이 당시 주가보다 20% 높은 주당 925펜스를 제안했다고 한다.

소럴의 고액 연봉은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005년 그의 급여는 현금 및 보너스를 포함하여 2.42였으며, 52 상당의 주식 옵션을 행사했고, 추가로 5.8의 주식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또한 2008년까지 15 상당의 추가 옵션 행사를 연기했다. 2011년에는 WPP의 세전 이익이 28% 증가하자 소럴의 급여 패키지는 70% 증가한 4.5에 달했다. 같은 해 10월, 그는 서구 세계의 실질 임금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포함한 CEO들의 급여 인상에 대해 BBC에 출연하여 방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총 40의 보수를 받았다.

2017년 8월, 소럴은 "디지털 파괴"가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와 새로운 고객 접근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WPP의 판매 둔화 보고와 미래 성장 경고 이후 주가가 10% 이상 하락한 시점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마케팅 산업이 "너무 경쟁적"이라며, 에이전시들이 수익성과 관계없이 계약 수주 자체와 언론 노출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했다.

2017년, 소럴은 1985년부터 WPP를 이끌며 영국의 FTSE 100 지수 포함 기업 중 가장 오래 재임한 CEO가 되었다. 그는 2018년 WPP를 떠났다. 2007년에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최고의 영예인 Alumni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다.

3.3. S4 캐피털

2018년 5월, 소럴은 런던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현금 쉘(shell) 회사인 데리스톤 캐피탈(Derriston Capital)을 인수하여 S4 Capital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자금 53를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15를 추가로 유치했다.

같은 해 7월, S4 Capital은 네덜란드의 디지털 프로덕션 회사인 미디어몽크스(MediaMonks, 현재 몽크스(Monks))를 350에 인수했으며, 이 자금은 주식 발행을 통해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소럴의 전 직장이었던 WPP는 소럴이 인수 거래를 진행하면서 WPP의 기밀 정보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S4 Capital은 공격적인 인수를 계속하여 2018년 12월에는 미국의 프로그래매틱 광고 회사인 마이티하이브(MightyHive)를 150에 인수했다. 2019년 6월에는 멜버른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 기술(BizTech) 회사를 인수했으며, 이 시점까지 S4 Capital의 직원 수는 약 1,300명에 달했고, 이 중 상당수는 WPP 출신이었다.

2019년 10월, 마이티하이브는 영국의 데이터 분석 및 디지털 마케팅 회사인 컨버전웍스(ConversionWorks)와의 합병을 발표했다. 컨버전웍스는 부츠(Boots), 디아지오(Diageo), 기프가프(Giffgaff) 등 유명 브랜드와 협력해 온 회사였다. 이후에도 S4 Capital은 성장을 지속하여 2022년에는 미국의 디지털 컨설팅 회사인 시어럼원(TheoremOne)과 소셜 미디어 마케팅 에이전시인 XX 아티스트(XX Artists)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4. 논란

1987년 J. 월터 톰슨을 566 규모의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인수하며 광고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1989년에는 825 규모로 오길비 앤 매더를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룹 회장 데이비드 오길비는 공개적으로 소럴을 "혐오스러운 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8년 6월, WPP의 자회사인 Y&R이 소수 지분을 보유한 에이전시 '이마고'가 짐바브웨의 ZANU-PF 대통령 선거 운동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마고가 로버트 무가베의 재선을 위한 선거 운동에 고용되었다고 보도했다. 논란 이후 WPP는 짐바브웨에서 Y&R의 소수 지분을 매각했다.

소럴은 WPP 재직 시절 고액 연봉으로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5년 그의 급여는 현금 및 보너스를 포함하여 2.42였으며, 52 상당의 주식 옵션을 행사하고 추가로 5.8의 주식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2011년에는 WPP의 세전 이익이 28% 증가하자 소럴의 급여 패키지는 70% 인상된 4.5에 달했다. 특히 2011년 10월, 서구 세계에서 실질 평균 임금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럴은 BBC에 출연하여 자신을 포함한 CEO들의 급여 인상을 옹호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총 40의 보수를 받아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총액을 기록했다. 거듭되는 비판 속에 2017년, 소럴은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2016년 46였던 연봉을 2021년까지 13로 삭감하는 데 동의했다.

2017년 9월, 소럴은 마케팅 산업이 "너무 경쟁적"이라며, 에이전시들이 수익성보다 계약 수주 자체나 언론 노출에 더 집중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WPP의 판매 둔화 및 성장 경고 발표로 주가가 하락한 시점과 맞물려 주목받았다.

2018년 4월, 소럴은 개인적인 부적절한 행위와 회사 자산 남용 의혹 속에서 33년간 몸담았던 WPP를 떠났다. 소럴 본인은 해당 의혹들을 부인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의 사임 배경을 조사하며 "부하 직원들에 대한 일상적인 언어 폭력, 일부 동료 및 아내에게까지 확장된 공사 구분 없는 생활, 회사 경비 지출 문제" 등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회사 자금으로 사창가를 방문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으나, 소럴은 이 역시 부인했다.

WPP 퇴사 직후인 2018년 5월, 소럴은 S4 Capital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7월 미디어몽크스 인수 과정에서 전 고용주였던 WPP는 소럴이 거래 추진 과정에서 기밀 정보를 유용했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WPP와 소럴은 그의 사임 이후 언론에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정보와 관련된 지급액 문제를 놓고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이다.

5. 기타 활동

1997년, 영국 외무부로부터 영국 사업 홍보대사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영국의 국가 이미지를 해외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외무부 패널 2000에도 참여했다. 1998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동문 이사회와 인도 경영대학원 이사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부터 WPP와 자본 및 업무 제휴 관계인 일본 광고 대행사 아사츠 디케이의 이사도 맡았다. 1999년에는 교육 및 고용부 장관에 의해 경영 및 리더십 우수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국제 비즈니스 및 경영 센터(CIBAM)의 글로벌 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 시장의 요청으로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미래와 뉴욕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하는 'Media.NYC.2020' 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2007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영예인 동문 공로상(Alumni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정치적으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는 "잔류론자"였으며, 브렉시트 조건이 확정된 이후에도 EU 회원 자격에 대한 2차 국민투표 실시를 지지했다. 그는 "최종 브렉시트 조건이 나오면, 유권자들이 국민투표나 총선 공약 등을 통해 여전히 이를 원하는지 다시 확인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예상되는 이민 제한 조치에 대비해, WPP 인력의 원활한 이동을 확보하고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EU 국가에 대한 신규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당시 WPP 인력의 약 17%가 영국 외 다른 EU 국가 출신이었다.

6. 사생활

소럴은 처음 샌드라 파인스톤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으나, 2003년에 결혼 생활이 파탄났다. 2005년 10월, 그는 이혼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WPP 주식 12 상당을 현금화했다. 니컬러스 모스틴 QC가 대리한 파인스톤은 총 30를 받았는데, 여기에는 3.25 상당의 4층짜리 조지 양식 타운하우스, 해롯 지하 주차 공간 2개(각 90 상당), 현금 23.5, 은행 예금 2, 그리고 주식 등의 기타 자산이 포함되었다. 이혼 합의에도 불구하고, 소럴은 이혼 후에도 WPP 주식 1,300만주, 약 80 상당의 지분(회사 지분의 약 1%)과 2005년 급여 합의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이혼 합의는 소럴에게 유리한 60/40 분할로 이루어져 주목받았다. 이는 2002년 해리 램버트와 섄 램버트의 이혼 소송에서 영국과 웨일스 항소법원 판사 매튜 소프가 내린 판결, 즉 비취업 배우자의 가정 기여도를 남편의 기여도와 동등하게 간주하여 재산을 50/50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기존의 판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램버트 판결에서 소프 판사는 "특별한 기여는 여전히 정당한 가능성이 있지만,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언급했는데, 소럴은 휴 베넷 판사가 가족의 부에 대한 그의 "특별한 기여"를 인정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소럴의 세 아들, 마크, 조나단, 로버트는 모두 아버지를 따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한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아들 중 조나단 소럴은 헤지 펀드 맨 그룹의 사장이다.

소럴은 이후 세계 경제 포럼의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사인 크리스티아나 팔코네와 재혼했다. 그러나 2020년 2월, 팔코네는 12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소럴과 이혼한다고 발표했으며, 소럴은 이 과정을 슬프고 불쾌하다고 표현했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소럴은 작가 에이전트인 캐롤라인 미셸과 교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셸의 고객 중에는 베어 그릴스 등이 있다.

7. 서훈

* 2000년 신년 서훈에서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 2007년 9월 27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최고 영예인 동문 공로상을 학장 제이 O. 라이트로부터 받았다. 이 상은 하이메 아우구스토 조벨 데 아얄라, A. 말라치 믹슨, Donna Dubinsky, 한스요르크 비스에게도 함께 수여되었다.
* 2015년 대영 박물관의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