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 (일본사)
1. 개요
무가(武家)는 일본사에서 무예를 직능으로 하는 가계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헤이안 시대 중기 가업의 계승이 진행되면서 등장했다. 무사는 막부를 섬기며 조정에 무력 봉사하는 역할을 하였고, 막부와 가마쿠라 도노가 무가로 불리며, 조정에 봉사하는 문관인 공가와 대비되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무가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센고쿠 시대에는 다이묘,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와 상층 무사에게까지 관위가 수여되었다. 에도 막부는 무가를 통제하기 위해 '무가 제법도'를 제정했다.
| 명칭 | 무가 (武家) |
|---|---|
| 다른 이름 | 무문 (武門), 무변 (武邊), 무사 (武士), 무인 (武人) |
| 주요 구성원 | 무사 무장 무관 |
| 발생 시기 | 헤이안 시대 중기 |
|---|---|
| 주요 활동 시기 |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에도 시대 |
| 주요 역할 | 군사적 역할 수행 치안 유지 막부 정치의 핵심 세력 |
| 정치 체제 | 막부 중심의 정치 번 체제 |
|---|---|
| 사회 계층 | 사농공상 중 사 계층 |
| 주요 가치관 | 무사도 |
| 생활 양식 | 검술, 무예 훈련, 다도, 서예 등 |
|---|---|
| 복장 | 기모노, 하오리, 가타나 |
| 주거 형태 | 무가 저택 (부케야시키) |
| 주요 가문 목록 | 미나모토 씨 아시카가 씨 도쿠가와 씨 오다 씨 다케다 씨 우에스기 씨 모리 씨 호조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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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항목 | 무사 무사도 막부 다이묘 사농공상 부시 쇼군 겐지 헤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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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
무가의 동량
무가의 동량은 일본 무사 사회에서 무문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조직의 핵심 인물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하여 가마쿠라 막부 이후에는 세이와 겐지의 혈통을 잇는 세이이타이쇼군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으며, 시대 변화에 따라 조정의 군사 귀족에서 지방 무사들을 규합하는 정치적 대표자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
일본의 귀족 -
다이묘
다이묘는 일본 역사에서 유력 무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시대에 따라 슈고 다이묘, 센고쿠 다이묘로 변화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막부 통제 하에 번주로서 막번 체제를 구성하였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사라졌다. -
일본의 귀족 -
뇨보
뇨보는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궁중에서 윗사람을 모시던 궁녀를 지칭하는 용어로, 시대에 따라 역할과 의미가 변화했으며 현대 일본어에서는 아내를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
무사 -
사무라이
사무라이는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의 무사 계급을 일컫는 말로, 본래 귀족을 섬기는 사람을 뜻하는 '사부라이'에서 유래하여 쇼군을 섬기는 무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변화했으며, 무사도를 따르며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무사 -
무사도
무사도는 중세 일본에서 시작하여 에도 시대에 발전한 사무라이의 윤리 및 생활 방식으로, 진실성, 충성, 명예 등을 중시하며 선종, 유교 등의 영향을 받아 체계화되었고 현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역사
헤이안 시대에는 관직이나 직능이 특정 가계에 고정되어 가는 가업의 계승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무예를 직능으로 하는 하급 귀족은 '병(兵)의 집'으로서 무예에 특화된 가계를 형성했고, 그중에서 군사 귀족 (무가 귀족)이라는 성립기 무사의 핵심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이러한 가계·가문을 무가, 혹은 무용의 집, 무문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무사를 통솔하는 유력한 지도자가 대두하여, 동국에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자, 막부 및 가마쿠라 도노가 '무가'라고 칭하게 되었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 조정은 가마쿠라 막부 및 가마쿠라 쇼군가 또는 가마쿠라 쇼군 개인에게 관위를 부여하여 '무가' 혹은 '간토'라고 불렀으나, 죠큐의 난을 거쳐 막부가 조정을 감시하기 위해 야마시로국에 로쿠하라 탄다이를 설치하면서, '무가'라는 단어는 로쿠하라 탄다이를 가리키고 막부는 '간토'로만 불리게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무로마치 막부 및 아시카가 쇼군가 또는 아시카가 쇼군 (쇼군 후보)이나 유력 다이묘가 무가로 여겨졌다. 에도 시대에는 여러 다이묘와 상층 무사 (하타모토)에게도 벼슬 (종5위 하 이상)이 주어지게 되어, 이들도 무가로 불리게 되었다.
2.1. 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 중기, 특정 가계가 관직과 직능을 세습하는 '가업의 계승'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무예를 전문으로 하는 하급 귀족들은 '병(兵)의 집'으로서 무예에 특화된 가계를 형성했고, 그중 군사 귀족(무가 귀족)이 성립기 무사의 핵심적인 존재로 등장했다. 이러한 가계·가문을 '무가', '무용의 집', '무문' 등으로 불렀다.
이후 무사를 통솔하는 유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동국에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자, 막부 및 가마쿠라 도노가 '무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는 막부 및 가마쿠라 도노(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조정에 대해 무력으로 봉사할 것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조정이 막부 및 가마쿠라 도노의 군사 경찰권 등을 공인한 것을 반영한다. '무가'라는 호칭이 정착되자, 조정에 섬기는 문관의 총칭으로서의 '공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조정에 정무 일반으로 봉사하는 '공가'와 군사 면에서 봉사하는 '무가'라는 대비에 기초했다.
2.2. 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시대 초기 조정은 가마쿠라 막부 및 가마쿠라 쇼군가, 혹은 가마쿠라 쇼군 개인에게 관위를 수여하여 "무가" 혹은 "간토"라고 칭했다. 그러나 조큐의 난을 거쳐, 막부가 조정을 감시하기 위해 야마시로국에 로쿠하라 탄다이를 설치하면서, "무가"라는 말은 로쿠하라 탄다이만을 가리키게 되었고, 막부는 "간토"라고만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유력한 고케닌에게도 관위가 수여되면서 이들 역시 "무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는 막부 및 막부 기관, 막부 권력을 "무가"라고 부르는 것이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