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코소 고헤이
1. 개요
무라코소 고헤이는 일본의 육상 선수이자 스포츠 기자, 코치이다. 구제 고등학교 테니스부 시절 로드 레이스 우승을 계기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여, 1936년 베를린 올림픽 5000m와 10000m에 출전하여 4위를 기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마이니치 신문 운동부 기자로 활동하며 마라톤 대회 창설에 기여했으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1971년 자수포장을 수훈했으며, 1998년 사망 후 고향에서 열리는 아오시마 태평양 마라톤에서 그의 이름을 딴 컵이 수여되고 있다. 그는 33세에 하코네 역전에 출전하여 최고령 기록을 세웠으며, "올림픽의 패자에게 천재는 없다!"라는 좌우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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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무라코소 고헤이 |
|---|---|
| 출생일 | 1905년 8월 29일 |
| 출생지 |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
| 사망일 | 1998년 7월 8일 (향년 92세) |
| 사망지 | 효고현 아카시시 |
| 신장 | 1.65m |
| 체중 | 50kg |
| 종목 | 장거리 달리기 |
|---|---|
| 세부 종목 | 5000m, 10000m |
| 최고 기록 | 5000m – 14분 30.0초 (1936년) 10000m – 30분 25.0초 (1936년) |
| 소속 | 가와사키 중공업 |
| 모교 | 주오 대학 |
| 코치 | 히로시마 구라오, 데라사와 도루 |
| 올림픽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5000m 4위, 10000m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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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자 장거리달리기 선수 -
시노다 마사히로
시노다 마사히로는 와세다 대학교 졸업 후 쇼치쿠 스튜디오에서 오즈 야스지로 등과 함께 작업하며 경력을 쌓은 일본의 영화 감독으로, 일본 뉴웨이브를 이끌었고 독립 프로덕션 표현사 설립 후에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과 전통 일본 연극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
일본의 남자 장거리달리기 선수 -
고노 겐조
고노 겐조는 가나가와현 선거구에서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 정치인으로, 참의원 의장과 일본체육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참의원 개혁과 스포츠 진흥에 기여했고, 그의 가문은 일본 정계의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손기정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으며, 광복 후에는 육상 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기여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루이스 잠페리니
루이스 잠페리니는 미국의 장거리 육상 선수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으로,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후 전쟁 중 일본군 포로로 억류되었으며, 전후에는 복음주의자로 용서와 화해를 전파하고 그의 삶은 여러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
주오 대학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2. 생애
무라코소 고헤이는 미야자키 중학교 테니스부 시절 로드 레이스 대회에서 우승하며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 후 보병 제23연대에 입대했다가, 제대 후 미야자키 현립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육상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중앙 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하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 5000m와 10000m에서 4위를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대일본 제국 육군에 소집되어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육군 대위로 퇴역했다.
전후 마이니치 신문 운동부 기자로 활동하며 마이니치 마라톤 등 여러 대회를 창설하는 데 기여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1971년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1998년 사망 후, 그의 업적을 기려 아오시마 태평양 마라톤에서 무라코소 고헤이 컵을 수여하고 있다.
2.1. 유년 시절 및 선수 경력
미야자키 중학교 테니스부 시절 로드 레이스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장거리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25년(다이쇼 14년) 중학교 졸업 후, 미야코노조(都城) 보병 제23연대에 입대했다. 1927년(쇼와 2년) 제대하여 미야자키 현립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육상 경기를 계속하던 중 자질을 인정받아 1932년 27세의 나이에 중앙 대학교 법학부 법률학과에 진학했다.
중앙 대학교 재학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 5000m와 10000m에서 핀란드 선수 3명과 접전을 벌여 4위를 차지하며 관중을 열광시켰다. 10000m 경주는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제전"에 수록되었다. 베를린에서 무라코소의 역주에 감명받은 체코슬로바키아 소년 에밀 자토펙은 훗날 '인간 기관차'로 불렸다.
도쿄 하코네 간 왕복 대학 역전 경주에도 출전했던 무라코소는 1939년 대학 졸업 후 가와사키 중공업에 입사해 선수로 활동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일본 제국 육군에 소집되어 현역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육군 대위로 퇴관했다.
2.2. 베를린 올림픽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중앙 대학교 소속으로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5000m와 10000m에서 핀란드의 선수들과 접전을 벌여 4위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민족의 제전"에 수록되었으며, 에밀 자토펙에게 영감을 주었다.
2.3. 올림픽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가와사키 중공업에 입사하여 선수로 활동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일본 제국 육군에 소집되어 현역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 육군 대위로 퇴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군에서 복귀하여 마이니치 신문의 운동부 기자가 되어 스포츠 취재를 하는 한편, 마이니치 마라톤(현재의 비와코 마이니치 마라톤), 전국 고등학교 역전 경주 대회, 전일본 실업단 대항 육상 경기 대회 등의 창설에 참여했다.
육상 경기 코치로서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고향 미야자키에서 히로시마 구오를 발굴하는 등 후진 양성에 힘썼다. 마이니치 신문 운동부장, 편집국 차장, 이사를 거쳐 정년퇴임했다.
1971년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1998년 7월 8일, 급성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 육상 경기 발전에 기여한 무라코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미야자키에서 개최되는 아오시마 태평양 마라톤에서 남녀 풀 마라톤 우승자에게 무라코소 고헤이(村社講平) 컵이 수여되고 있다.
2.4. 후진 양성 및 사망
제2차 세계 대전 후, 군에서 복귀한 무라코소 고헤이는 마이니치 신문의 운동부 기자가 되어 스포츠 취재를 했다. 한편 마이니치 마라톤(현재의 비와코 마이니치 마라톤), 전국 고등학교 역전 경주 대회, 전일본 실업단 대항 육상 경기 대회 등의 창설에 참여했다.
육상 경기 코치로서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고향 미야자키에서 히로시마 구오를 발굴하는 등 후진 양성에 힘썼다. 마이니치 신문 운동부장, 편집국 차장, 이사를 거쳐 정년퇴임했다.
1971년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1998년 7월 8일, 급성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 육상 경기 발전에 기여한 무라코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미야자키에서 개최되는 아오시마 태평양 마라톤에서는 남녀 풀 마라톤 우승자에게 무라코소 고헤이 컵이 수여된다.
3. 업적 및 평가
무라코소 고헤이는 1930년대 일본 장거리 육상계를 이끌었던 선수로, 핀란드의 장거리 육상 영웅들과 비교되며 '일본의 파보 누르미'로 불렸다. 에밀 자토페크는 무라코소를 존경하여, 1981년 일본 방문 당시 그와 함께 달리기도 했다.
3.1. 에밀 자토페크와의 관계
1981년 4월, 타마 로드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에밀 자토페크는 "무라코소 고헤이와 꼭 함께 달리고 싶다. 그는 나를 육상 경기의 길로 이끌어준, 동경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75세였던 무라코소는 이 말을 듣고 "그 정도까지 말한다면"이라며 함께 달리는 것을 수락하여, 자토페크와 함께 5km를 달렸다.
레이스 후, 자토페크는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나에게 영웅인 무라코소와 함께 달릴 수 있었으니까"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4. 기타
무라코소 고헤이는 "올림픽의 패자에게 천재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이 말은 그의 모교인 미야자키 시립 아카에 초등학교에 기념비로 새겨져 있다. 그는 하코네 역전에 33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역대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4.1. 최고령 하코네 역전 선수
하코네 역전에 출전했을 때는 33세였으며,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5. 저서
* 陸上競技読本일본어 (일본 육상 경기 연맹 보급부(편), 만유사, 무라코소 고헤이가 장거리 부분을 집필, 1950)
* 長距離を走りつづけて일본어 (베이스볼 매거진사, 1976)
* 長距離を走りつづけて일본어 (ほるぷ自伝選集일본어 스포츠에 산다 <16>, 취미와 생활사, 1981.6) 위의 책 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