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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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970년대 조지 릭키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설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1977년부터 10년 주기로 독일 뮌스터에서 개최되는 야외 조각 전시이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며, 예술가들이 뮌스터의 역사, 문화, 도시 환경을 조사하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다른 국제 미술 행사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작품은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도시의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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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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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조각가 조지 릭키(George Rickey)가 자신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을 뮌스터 시에 설치하자, 이에 대해 대중이 격렬하게 항의했다.[1][2] 당시 뮌스터의 베스트팔리셰스 란데스 박물관(Westfälisches Landesmuseum)의 책임자였던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n)은 이 대중적 불만에 관해 고심하며 공공 장소의 예술에 대한 이해에 가교를 놓고자 1977년 미술관 강연 프로그램 개설에 착수했다.
이 프로그램이 확장되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관한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부스만과 루트비히 박물관(Museum Ludwig) 큐레이터였던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는 이 프로젝트의 설립자가 되었다.[1][2]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가 얼마간 있었으나, 뮌스터의 시민들은 마침내 이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날 시민들은 프로젝트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하며, 작은 대학 도시인 뮌스터에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 또한 이해한다. 뮌스터 시는 지난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 35점을 구입하기도 했다.[1] 100일간의 행사는 1977년부터 매 10년동안 개최되었으며, 200km 떨어진 지역인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Documenta)와 같은 기간에 진행되도록 조정되었다.[1][2]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기획 위원회는 돌아가며 기획을 맡고, 전 세계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최고의 조각 및 설치 미술 작품을 조명하고자 한다. 예술가들은 도시의 한 장소를 골라 그 장소에 적합한 작품을 계획한다.[1][2] 2017년에는 최초로 마르 지역의 산업 도시로 전시가 확장되었다.[2]
1987년 제2회 전시의 예산 65만 달러는 뮌스터 시, 베스트팔렌-리페(Westphalia-Lipp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예산 및 개인 기금으로 충당했다. 1997년 제3회에는 25개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50만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2. 1. 기원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970년대 조지 릭키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 설치에 대한 뮌스터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에서 기원한다.[1][2] 당시 베스트팔리셰스 란데스 박물관의 책임자였던 클라우스 부스만은 이러한 대중의 불만을 해소하고 공공 장소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1977년 미술관 강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카스퍼 쾨니히와 함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1]프로젝트 초기에는 반대도 있었지만, 뮌스터 시민들은 점차 프로젝트를 수용하고 자랑스러워하게 되었으며, 프로젝트가 도시에 가져오는 경제적 이점도 인식하게 되었다. 뮌스터 시는 지난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 35점을 구입하기도 했다.[1] 1977년부터 10년마다 개최되는 이 행사는 도쿠멘타와 같은 기간에 진행되도록 조정되었다.[1][2]
2. 2. 설립 및 발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970년대 조지 릭키(George Rickey)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이 뮌스터 시에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1][2] 이 작품 설치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항의에 대응하여, 당시 뮌스터의 베스트팔리셰스 란데스 박물관(Westfälisches Landesmuseum) 책임자였던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n)은 공공 장소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1977년 미술관 강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1][2]이 프로그램은 확장되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부스만과 루트비히 박물관(Museum Ludwig) 큐레이터였던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가 프로젝트의 설립자가 되었다.[1][2] 초기에는 반대가 있었으나, 뮌스터 시민들은 점차 프로젝트를 수용하고 경제적 이익을 인식하게 되었다.[1][2] 뮌스터 시는 지난 전시 작품 중 35점을 구입하여 영구 설치했다.[1]
1987년 제2회 전시 예산 65만 달러는 뮌스터 시, 베스트팔렌-리페(Westphalia-Lipp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예산 및 개인 기금으로 충당했다. 1997년 제3회에는 25개국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977년부터 10년마다 개최되며, 200km 떨어진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Documenta)와 같은 기간에 진행되도록 조정되었다.[1][2] 기획 위원회는 돌아가며 기획을 맡고, 전 세계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최고의 조각 및 설치 미술 작품을 조명하고자 한다. 예술가들은 도시의 한 장소를 골라 그 장소에 적합한 작품을 계획한다.[1][2] 2017년에는 최초로 마르 지역의 산업 도시로 전시가 확장되었다.[2]
2. 3. 개최 주기 및 확장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977년부터 매 10년마다 개최되는 행사이다.[1] 1970년대 미국의 조각가 조지 릭키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이 뮌스터 시에 설치되자 대중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베스트팔리셰스 란데스 박물관의 책임자였던 클라우스 부스만은 공공 장소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미술관 강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 프로그램이 확장되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1]이 프로젝트는 클라우스 부스만과 루트비히 박물관 큐레이터였던 카스퍼 쾨니히가 설립하였다. 초기에는 반대가 있었으나, 뮌스터 시민들은 프로젝트를 수용하였고, 현재는 이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을 이해하며 그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뮌스터 시는 지난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 35점을 구입하기도 했다.[1]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0일간 진행되며,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와 같은 기간에 진행되도록 조정되었다.[1] 기획 위원회는 돌아가며 기획을 맡고, 예술가들은 도시의 한 장소를 골라 그 장소에 적합한 작품을 계획한다. 2017년에는 최초로 마르 지역의 산업 도시로 전시가 확장되었다.[2]
1987년 제2회 전시 예산 65만 달러는 뮌스터 시, 베스트팔렌-리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예산 및 개인 기금으로 충당했다. 1997년 제3회에는 25개국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3. 특징
이 전시는 야외 조각전이지만, 단순히 유명 작가의 기성 작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 야외에 놓는 전시가 아니다. 작품과 도시·생활의 관계를 묻는 전시이다. 초대된 예술가는 개최 2년 전부터 마을에 와서, 작품이 놓일 뮌스터 시의 풍경과 역사, 도시의 형성 과정과 문제 등을 미리 조사한다. 심포지엄이나 아티스트 토크를 열어, 미술가는 주민들의 마을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 주민들은 그 작가의 작품의 의미와 생각을 이해한다. 그 위에 작품의 설치 장소와 계획이 결정되어 가고 (이 시점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제작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종적으로 제작·설치되며, 회기 중에도 주민이나 관객과의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 회기가 끝나면 작품은 철거된다. (일부 작품은 시에서 매입하여 영구 설치된다.)
미술가에게는 자신의 작품 제작을 미술과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완성된 작품과 설치 장소와의 관계가 엄격하게 평가받음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하는 엄격한 장이 된다. 또한,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마을을 외부에서 온 작가나 관객과 이야기하고, 작품 설치로 일변한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마을에 대한 인상이 변화하거나 예술의 효과나 존재 이유를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마을의 미래를 위해 활동하거나 마을에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최근에는 미술 작품의 경향 변화에 맞춰 조각보다는 뮌스터 각지를 무대로 한 영상 작품 상영이나 퍼포먼스, 미술가가 주최하는 이벤트나 회합 형식을 취한 작품도 늘고 있다. 이 전시 운영 방식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선행하는 대형 국제 미술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2000년부터 니가타현토카마치시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3. 1. 예술과 공공성의 논쟁 (일본어 문서)
헨리 무어의 야외 작품을 뮌스터시에 기증하려 했으나, 시 당국이 설치를 거부하면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논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가톨릭 대성당이 있는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무어의 작품은 예술로 인정받기 어려웠지만, 이 결정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작품의 기증 거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작품이 훌륭함에도 기증을 거부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의견과, 시의 보수성과 문화 수준이 낮다는 비판이 있었다. 반면, 전위적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작품을 마을에 두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무엇이든 용서되는 것은 아니며,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작품은 장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또한, 시민 생활과 유리된 예술의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미술가, 미술 평론가, 시민 운동가, 도시 연구자들도 참여하는 공공성과 예술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로 확대되었다.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도 역 앞 등 공공 공간에 설치되는 조각 작품(퍼블릭 아트)에 대해 "불편하다", "눈에 거슬린다", "이 마을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조각 공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2. 운영 방식
예술가들은 개최 2년 전부터 뮌스터 시를 방문하여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시민들과 소통한다. 심포지엄과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예술가와 주민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작품 설치 계획을 구체화한다. 회기가 끝나면 작품은 철거되지만, 일부 작품은 시에서 매입하여 영구 설치된다.이러한 운영 방식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다른 대형 국제 미술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2000년부터 니가타현 토카마치시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에도 영향을 주었다.
4. 영향
이 전시는 야외 조각전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유명 작가가 기성 작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 야외에 놓는 전시가 아니다. 작품과 도시·생활의 관계를 묻는 전시이다. 초대된 예술가는 개최 2년 전부터 마을에 와서, 작품이 놓일 뮌스터 시의 풍경과 역사, 도시의 형성 과정과 문제 등을 미리 리서치한다. 심포지엄이나 아티스트 토크를 열어, 미술가는 주민들의 마을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 주민들은 그 작가의 작품의 의미와 생각을 이해한다. 그 위에 작품의 설치 장소와 플랜이 결정되어 가고 (이 시점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제작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종적으로 제작·설치되며, 회기 중에도 주민이나 관객과의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 회기가 끝나면 작품은 철거된다. (일부 작품은 시에서 매입하여 영구 설치된다.)
미술가에게는 자신의 작품 제작을 미술과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완성된 작품과 설치 장소와의 관계가 엄격하게 평가받음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하는 엄격한 장이 된다. 또한,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마을을 외부에서 온 작가나 관객과 이야기하고, 작품 설치로 일변한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마을에 대한 인상이 변화하거나 예술의 효과나 존재 이유를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마을의 미래를 위해 활동하거나 마을에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최근에는 미술 작품의 경향 변화에 맞춰 조각보다는 뮌스터 각지를 무대로 한 영상 작품 상영이나 퍼포먼스, 미술가가 주최하는 이벤트나 회합 형식을 취한 작품도 늘고 있다. 이 전시 운영 방식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선행하는 대형 국제 미술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2000년부터 니가타현토카마치시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4. 1. 국제적 영향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작품과 도시 및 생활의 관계를 묻는 전시로, 초대된 예술가는 개최 2년 전부터 뮌스터 시를 방문하여 풍경, 역사, 도시 형성 과정 등을 연구한다. 심포지엄과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며 작품 설치 장소와 계획을 결정한다. 회기가 끝나면 작품은 철거되지만, 일부는 시에서 매입하여 영구 설치한다.최근에는 조각뿐만 아니라 영상 작품 상영, 퍼포먼스, 이벤트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이 늘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 미술 행사에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의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와 같은 행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4. 2. 한국에의 시사점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2000년부터 니가타현토카마치시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와 같은 한국의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에 영감을 주었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5. 논란
1987년, 독일 예술가 카타리나 프리치는 루르드 성모의 실물 크기 석고 조각을 제작했다.[3] 이 작품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되었으며, 매년 수많은 시민들이 루르드를 방문하는 주요 로마 가톨릭 도시인 뮌스터의 쇼핑센터, 시장, 대성당 근처 거리에 설치되었다.[3] 설치 직후 성모상의 기도의 손 부분이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경찰서로 옮겨진 후에는 꽃다발을 받았다.[3] 현재 이 작품은 석재로 제작되고 있다.[3]
브루스 나우만은 1977년 최초의 뮌스터 프로젝트를 위해 뮌스터 대학교 핵물리학과 앞에 땅에 묻힌 역피라미드를 처음 제안했다.[4] 주 건축 당국에 의해 거부된 후, 나우만은 2007년에 1977년의 원래 가격으로 자신의 원래 제안을 다시 제시했다.[4]
5. 1. 카타리나 프리치의 작품
1987년, 독일 예술가 카타리나 프리치는 루르드 성모의 실물 크기 석고 조각을 제작했다.[3] 이 작품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되었으며, 매년 수많은 시민들이 루르드를 방문하는 주요 로마 가톨릭 도시인 뮌스터의 쇼핑센터, 시장, 대성당 근처 거리에 설치되었다.[3] 설치 직후 성모상의 기도의 손 부분이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경찰서로 옮겨진 후에는 꽃다발을 받았다.[3] 현재 이 작품은 석재로 제작되고 있다.[3]5. 2.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
브루스 나우만은 1977년 최초의 뮌스터 프로젝트를 위해 뮌스터 대학교 핵물리학과 앞에 땅에 묻힌 역피라미드를 처음 제안했다.[4] 주 건축 당국에 의해 거부된 후, 나우만은 2007년에 1977년의 원래 가격으로 자신의 원래 제안을 다시 제시했다.[4]6. 참가 예술가
6. 1. 1977년
칼 안드레, 마이클 애셔, 요제프 보이스, 도널드 저드, 리처드 롱, 브루스 나우만, 클래스 올덴버그, 울리히 뤼크림/Ulrich Rückriem영어, 리처드 세라가 197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6. 2. 1987년
198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는 데니스 아담스, 칼 안드레, 조반니 안셀모, 시아 아마자니, 리처드 아츠슈와거, 마이클 애셔, 슈테판 발켄홀, 로타어 바움가르텐, 요제프 보이스, 조지 브레히트, 다니엘 뷔렌, 스콧 버튼, 에두아르도 칠리다, 티에리 드 코르디에, 리처드 디컨, 루치아노 파브로, 로베르 피유, 이안 해밀턴 핀레이, 페터 피슐리 & 다비트 바이스, 카타리나 프리치, 이사 겐츠켄, 루드거 게르데스, 댄 그레이엄, 로드니 그레이엄, 한스 하케, 키스 해링, 에른스트 헤르만스, 게오르크 헤롤트, 제니 홀저, 레베카 혼, 시라제 후시야리, 토마스 후버, 도널드 저드, 후베르트 키에콜, 페르 키르케비, 하랄트 클링겔회러, 제프 쿤스, 라이문트 쿠머, 앙제 레시아, 솔 르윗, 마리오 메르츠, 올라프 메첼, 프랑수아 모렐레, 라인하르트 무하, 매트 멀리컨, 브루스 나우만, 마리아 노르트만, 클래스 올덴버그, 백남준, A. R. 펭크, 주세페 페노네, 헤르만 피츠, 프리츠 라흐만, 울리히 뤼크림, 라이너 루텐벡, 토마스 쉬테, 리처드 세라, 수사나 솔라노, 에토레 스팔레티, 토마스 스트루스, 리처드 터틀, 프란츠 베스트, 레미 자우그를 포함한 다수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6. 3. 1997년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는 김 아담스, 칼 안드레, 마이클 애셔, 게오르크 바젤리츠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영어, 알리기에로 보에티, 크리스틴 보얼랜드, 다니엘 뷔렌, 자넷 카디프자넷 카디프/Janet Cardiff영어, 마우리치오 카텔란, 에두아르도 칠리다, Stephen Craig, 리처드 디콘, 마크 디온, 스탠 더글러스스탠 더글러스/Stan Douglas영어, 마리아 아이히혼, 아이셰 에르크멘, 페터 피슐리 & 다비트 바이스, 이사 겐츠켄, 폴 아망 게트, 제프 쿤스, 더글러스 고든, 댄 그레이엄, 마리 앙주 기유미노, 한스 하케, 레이몽 앵, 게오르크 헤롤트, 토마스 히르쉬호른, 레베카 혼, 황용핑황용핑/Huang Yong Ping영어, 베탄 후스, 파브리스 이베르, 일리아 카바코프, 가와마타 타다시, 마르틴 키펜베르거, 페르 키르케뷔, 제프 쿤스, Svetlana Kopystiansky, 솔 르윗, 아틀리에 판 리쇼트, 올라프 메첼, 라인하르트 무하, 마리아 노르드만, 클래스 올덴버그 & 코스제 판 브뤼겐코스제 판 브뤼겐/Coosje van Bruggen영어, 가브리엘 오로스코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 Orozco영어, 토니 아울러토니 아울러/Tony Oursler영어, 백남준, 호르헤 파르도, 헤르만 피츠, Marjetica Potrc, 찰스 레이, 토비아스 레베르거, 울리히 뤼크림, 앨런 루퍼스버그, 라이너 루텐베크, 쿠르트 르즐라비, 카린 잔더, 토마스 쉬테토마스 쉬테/Thomas Schütte영어, 리처드 세라, 로만 지그너로만 지그너/Roman Signer영어, 안드레아스 슬로민스키, 소네 유타카, Diana Thater, 베르트 테이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에우랄리아 발도세라, 헤르만 데 프리, 로렌스 위너, 프란츠 베스트, 레이첼 휘트리드레이첼 휘트리드/Rachel Whiteread영어, 엘린 빅스트룀, 볼프강 빈터 / 베르톨트 횔벨트, 제프리 위스니에프스키, 안드레아 지텔, 하이모 조베르니히를 포함한 다수의 작가들이 참여했다.6. 4. 2007년
2007년에는 파베우 알트하머, 프랜시스 알리스, 마이클 애셔, 가이 벤-네르, 기욤 비일, 마틴 보이스, 제레미 델러, 엘름그린 & 드라그셋, 한스-페터 펠트만, 도라 가르시아, 이사 겐츠켄,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 투 그린포르트, 데이비드 햄몬스, 발레리 주브, 마이크 켈리, 수찬 키노시타, 마르코 레한카, 에바 마이어와 에란 샤에르프, 데이만타스 나르케비시우스, 브루스 나우만, 마리아 파스크, 만프레트 페르니체, 수잔 필립스, 마사 로슬러, 토마스 쉴테, 안드레아스 지크만, 로즈마리 트로켈, 실케 바그너, 마크 월링거,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 아네테 베어만, 페 화이트 등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다.6. 5. 2017년
2017년에는 아라카와 에이, 아람 바르톨, 나이리 바그라미안, 코시마 폰 보닌 / 톰 버, 안드레아스 분테, 제라드 번, [https://studio.camp CAMP] (샤이나 아난드와 아쇼크 수쿠마란), 마이클 딘, 제레미 델러, 니콜 아이젠먼, 아이셰 에르크멘, 라라 파바레토, 흐레인 프리드핀손, 모니카 긴터스도르퍼 / 크누트 클라센, 피에르 위그, 존 나이트, 자비에르 르 루아와 스칼렛 유, 저스틴 매더리, Sany, 크리스티안 오주크, 에메카 오그보, 펠레스 엠파이어, 알렉산드라 피리치, 미카 로텐버그, 그레고르 슈나이더, 토마스 쉴테, 노라 슐츠, 마이클 스미스, 히토 슈테르옐, 타나카 코키, 오스카 투아존, 조엘 투엘링크스, 세리스 윈 에반스, 에르베 윰비, 바르바라 바그너 / 벤자민 드 부르카 등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다.[5][7]7. 영구 설치 작품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폐막 후에도 일부 작품이 영구적으로 남아 뮌스터 시에 전시된다.[6] 이전 프로젝트에서 설치되었던 총 39개의 작품은 장소 특정 조각, 공공 미술, 기념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산책로를 형성한다.[6]
- 제1회 조각 프로젝트 (1977): 도널드 저드의 ''무제'', 브루스 나우만의 ''사각 우울증'' (2007년 제작), 클래스 올덴버그의 ''거대한 풀 공''
- 제2회 조각 프로젝트 (1987): 댄 그레이엄의 ''뮌스터를 위한 팔각형'', 맷 멀리컨의 ''화학 연구소를 위한 보덴릴리프''
- 제3회 조각 프로젝트 (1997): 호르헤 파르도의 ''부두'', 헤르만 데 브리스의 ''산크투아리움'', 일리아 카바코프의 ''올려다보고 이 단어들을 읽어라…''
- 제4회 조각 프로젝트 (2007): 마틴 보이스의 ''우리는 여전히 있고 사색적이다'', 로즈마리 트로켈의 ''다른 것들보다 덜 야생적이다''
참조
[1]
뉴스
The Art World Goes Provin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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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Spiegel
2007-06-21
[2]
뉴스
Sculpture Projects Münster 2017: the essential things to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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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Newspaper
2017-06-11
[3]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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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스
Peek-a-boo!
https://www.the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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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5]
뉴스
Skulptur Projekte Münster 2017 Announces List of Artists {{!}} artnet News
https://news.artnet.[...]
artnet News
2017-03-12
[6]
뉴스
In Münster, a Sculpture Space Odyssey
https://www.ny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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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Skulptur Projekte Münster 2017 Announces List of Artists {{!}} artne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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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Skulptur Projekte Archiv
https://www.skulptur[...]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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