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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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스 해링은 198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미국의 예술가이다. 그는 지하철 드로잉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팝 아트와 그래피티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선과 밝은 색채, 그리고 춤추는 듯한 인물들로 특징지어진다. 해링은 에이즈 퇴치 운동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담았으며, 1990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키스 해링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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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헤링
본명키스 앨런 헤링
출생일1958년 5월 4일
출생지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딩
사망일1990년 2월 16일
사망지미국 뉴욕주 뉴욕
사망 원인에이즈 합병증
국적미국
교육
학력아이비 스쿨 오브 프로페셔널 아트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예술 활동
분야팝 아트
거리 미술
영향 받은 사람월트 디즈니
윌리엄 S. 버로스
대표 작품키스 해링 벽화 (1984)
크랙 이즈 왝 (1986)
타워 (1987)
모두 함께 에이즈를 멈출 수 있습니다 (1989)
투토몬도 (1989)
계곡 (1989–90)
무제 연작 (숀 칼리시와 함께) (1989–90)
기타
공식 웹사이트키스 해링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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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키스 해링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쿠츠타운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흥미를 가졌으며, 피츠버그에서 잠시 미술 공부를 한 후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시각 예술 학교에 입학했다. 뉴욕 거리와 지하철의 낙서 스타일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그는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의 벽을 캔버스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부터 시작한 지하철 드로잉은 간결한 선과 생생한 색, 재치 있는 표현으로 뉴욕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를 통해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81년 토니 샤프라치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을 계기로 스타 작가로 급부상했으며, 낙서화 형식을 빌린 그의 독창적인 회화는 뉴욕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활동 중 앤디 워홀, 마돈나, 장-미셸 바스키아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캔버스 작업과 함께 파리 비엔날레 참가 등 국제적인 활동을 넓혔고, 뉴욕, 시드니, 베를린 장벽 등 세계 여러 도시에 대형 벽화를 남겼다. 1986년에는 소호팝 샵(Pop Shop)을 열어 자신의 예술품을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등 상품으로 제작해 판매했다. 이는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작품을 알리려는 시도였으나, 일각에서는 예술의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팝 샵 개점 이후 그의 작품은 에이즈(AIDS) 문제, 마약 확산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더욱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해링 자신도 동성애자였으며, 1988년 에이즈(AIDS) 진단을 받은 후에는 HIV 감염 예방 메시지를 알리는 등 에이즈(AIDS) 퇴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9년에는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AIDS) 관련 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힘썼다.

그의 생애 마지막 주요 공공 작품 중 하나는 이탈리아 피사의 산탄토니오 교회 벽에 그린 '투토몬도'(Tuttomondo) 벽화이다. 1990년 2월 16일, 에이즈(AIDS) 관련 합병증으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는 그레이트풀 데드의 열렬한 팬(데드헤드)이기도 했다. 2012년 5월 4일, 그의 54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구글 로고가 키스 해링 스타일로 디자인되기도 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1958–1979)

키스 해링은 1958년 5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 리딩에서 태어나 컷스타운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만화가인 앨런 해링, 어머니는 조앤 해링이었으며, 케이, 캐런, 크리스틴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아버지와 함께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의 초기 예술적 영감은 월트 디즈니 만화, 닥터 수스, 찰스 슐츠, 그리고 벅스 버니 쇼루니 툰 캐릭터 등에서 비롯되었다.

해링의 가족은 그리스도 연합 교회에 다녔으며, 그는 10대 초반에 예수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그레이트풀 데드와 반닉슨 디자인이 새겨진 티셔츠를 팔면서 전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경험도 있다. 1976년 컷스타운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피츠버그의 아이비 전문 예술학교에서 광고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상업 미술에 흥미를 잃고 중퇴했다. 로버트 헨리의 저서 예술의 정신(1923)을 읽은 후 자신의 예술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피츠버그에 머무는 동안 피츠버그 예술 공예 센터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며 장 뒤뷔페, 잭슨 폴록, 마크 토비 등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특히 1977년 피에르 알레친스키의 회고전과 1978년 조각가 크리스토의 강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알레친스키를 통해 글씨와 인물이 특징인 대형 이미지 작업에 영감을 받았고, 크리스토를 통해 예술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1978년 피츠버그 예술 공예 센터에서 자신의 첫 번째 중요한 전시회를 열었다.

1978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로 이주하여 시각 예술 학교(School of Visual Arts, SVA)에 입학해 회화를 공부했다. 이 시기 나이트클럽 댄세테리아에서 웨이터 보조로 일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빌 벡클리와 함께 기호학을 공부하고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 아트를 실험했으며, 작가 윌리엄 버로스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1978년 해링은 자신의 일기에 "나는 움직임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인식하고 있다. 회화가 퍼포먼스가 될 때 움직임의 중요성은 강화된다. 퍼포먼스(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결과물인 그림만큼 중요해진다."라고 적으며 작업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12월, 뉴욕시 트라이베카 지역의 아메리칸 텍스타일 빌딩에서 1979년에 그린 해링의 그림이 발견되기도 했다.

2.2. 초기 작품 활동 (1980–1981)

1980년, 뉴욕 지하철역에서 사용되지 않는 광고 게시판의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지하철 드로잉 활동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하철을 자신의 "실험실"로 여겼으며, 비어있는 검은색 광고판을 그림을 그리기에 완벽한 무료 공간으로 생각했다. 이때 탄생한, 빛나는 광선을 내뿜는 아기 형상의 빛나는 아기(The Radiant Baby영어)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이 되었고, 지하철 작업 시 자신의 서명처럼 사용했다. 이 외에도 짖는 개, 비행접시, 큰 하트 등의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윌리엄 S. 버로스와 브라이언 기신이 글쓰기에서 사용한 컷업 기법은 해링이 글자와 단어를 활용하는 작업에 영감을 주었다. 1980년, 그는 단어들을 병치하여 만든 문구를 수백 장 인쇄해 맨해튼의 가로등 기둥에 붙였다. 여기에는 "리건, 영웅 경찰에게 살해당하다"나 "인질 석방을 위해 교황이 살해당하다"와 같은 도발적인 내용도 포함되었다. 같은 해, 초기 공공 프로젝트 중 하나인 《타임스 스퀘어 쇼》에 참여하면서 타임스 스퀘어 지하철 입구 위에 걸린 프랑스 의류 브랜드 "Chardón프랑스어"의 배너 광고 첫 글자를 지워 "hardón스페인어"라는 의미로 바꾸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대량으로 제작한 버튼이나 자석을 나누어 주거나 지하철 광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등 상업적인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과 메시지를 널리 알렸다.

1980년에는 클럽 57에서 전시회를 조직하기도 했으며, 이 모습은 그의 친구이자 사진가인 증광치가 기록으로 남겼다. 1981년 2월, 해링은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웨스트베스 페인터스 스페이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트라이베카의 할 브롬 갤러리에서 첫 상업 갤러리 개인전을 선보였다.

2.3. 명성 (1982–1986)

1982년 1월, 해링은 퍼블릭 아트 펀드가 선정한 12명의 예술가 중 첫 주자로 타임스 스퀘어의 스펙터컬러(Spectacolor) 전광판에 자신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품을 전시했다. 같은 해 여름, 그는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휴스턴 보웨리 벽에 첫 대형 야외 벽화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종종 에너지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선들을 특징으로 했으며, 때로는 하루에 40점의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작업하며 가능한 많은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제목 없음'(1982)은 빛나는 하트 모양을 중심으로 두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는 동성애적 사랑에 대한 대담한 표현이자 중요한 문화적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82년, 해링은 독일 카셀에서 열린 권위 있는 현대미술 전시회인 도큐멘타 7에 참여하여 요셉 보이스, 안젤름 키퍼,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이 트웜블리, 장-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협력자인 앤젤 "LA II" 오르티즈와 함께 토니 샤프라지 갤러리에서 2인전을 열었다. 또한 뉴욕 알렉산더 밀리컨 갤러리의 '패스트(Fast)' 전시를 포함한 여러 그룹 전시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3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2월에는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해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에도 참여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4월에는 밀워키의 해거티 미술관 건설 현장 울타리에 '건설 펜스'라는 제목의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하반기에는 피츠버그에서 열린 '도시의 맥박: 아티스트와 도시' 전시회에 참여하여 피츠버그 예술 센터의 한 방 전체에 스프레이 페인팅을 하고 PPG 플레이스에 야외 벽화를 제작했다. 10월에는 패션 디자이너 엘리오 피오루치의 초청으로 밀라노에 있는 피오루치 매장 벽에 그림을 그렸으며, 같은 달 런던의 로버트 프레이저 갤러리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안무가 빌 티 존스와 협업을 시작하여 존스의 몸 전체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1984년, 해링은 앤젤 "LA II" 오르티즈와 함께 친구인 윌리 스미스와 로리 말렛의 의류 브랜드 '윌리웨어 프로덕션(WilliWear Productions)'을 위한 티셔츠 디자인을 제작했다. 페이퍼 잡지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만나게 되었고, 웨스트우드는 해링의 그림 두 점을 1983-84년 가을/겨울 '마녀(Witches)' 컬렉션의 직물 디자인으로 사용했다. 해링의 친구였던 팝스타 마돈나는 1984년 싱글 "보더라인" 뮤직비디오에서 이 컬렉션의 스커트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타덤에 올랐음에도 해링은 계속해서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그의 작품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을 즐겼으며, 종종 무료 버튼이나 포스터를 배포했다. 1984년에는 증광치(Tseng Kwong Chi)의 사진과 헨리 겔드잘러의 서문이 포함된 책 교통수단 속의 예술(Art in Transit)을 출판했다. 그의 급격한 국제적 명성 상승은 언론의 주목을 받아 1984년 2월호 베니티 페어와 10월호 뉴스위크에 그의 예술이 소개되었다.

같은 해, 뉴욕시 위생국으로부터 쓰레기 문제 방지 캠페인 로고 디자인을 의뢰받았으며,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호주로 초청받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과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에 임시 벽화를 제작했고, 멜버른의 콜링우드 기술대학(현 콜링우드 칼리지)에는 영구적인 '키스 해링 벽화'를 남겼다. 또한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벽화를 그렸으며,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에서 공연된 빌 티 존스와 아니 자네의 비밀 목장(Secret Pastures)을 위한 무대 세트를 디자인했다.

빨간 강아지의 간단한 조각상

1985년에는 유엔의 의뢰로 국제 청년의 해를 기념하는 첫날 커버와 함께 한정판 석판화를 제작했다. 그는 MTV 세트 장식을 디자인하고 맨해튼의 유명 나이트클럽 팔라디움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 벽화를 그렸다. 3월에는 파리 비엔날레를 위해 그랑 알 드 라 비예트의 벽에 그림을 그렸고, 7월에는 필라델피아 J.F.K. 경기장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또한 미술상 맥스 프로테치 소유의 자동차에 그림을 그려 경매에 부쳤고, 수익금 전액을 아프리카 기근 구호를 위해 기부했다. 해링은 1985년 '자유 남아프리카(Free South Africa)'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1986년 세계 핵무기 철폐를 위한 평화 대행진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198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벽화를 그리는 해링
198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벽화를 그리는 해링

1986년 봄, 해링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미술관 창고 건물 외벽에 거대한 벽화를 그렸다. 같은 해 브루클린 플러싱 애비뉴에 위치한 우드헐 의료 및 정신 건강 센터의 로비와 외래 환자 진료실에도 공공 벽화를 제작했다. 6월에는 시티키즈 재단(CityKids Foundation)과 협력하여 미국 자유의 여신상 도착 100주년을 기념하는 약 27.43m 길이의 배너 '시티키즈가 말하는 자유(CityKids Speak on Liberty)'를 제작했다. 그달 말에는 뉴욕 이스트 할렘의 FDR 드라이브 옆 벽면에 마약 크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크랙은 망친다(Crack is Wack)'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는 처음에 뉴욕 경찰에 의해 불법 낙서로 간주되어 해링이 잠시 체포되기도 했으나, 언론의 관심 속에 경미한 혐의로 풀려났다. 안타깝게도 그가 구금된 사이 원본 벽화는 훼손되었고, 해링은 같은 해 10월 같은 장소에 새로운 버전의 벽화를 다시 그렸다. 이 벽화는 소비주의가 아닌 의식 고양을 위한 해링의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콜라가 최고다"가 아닌 "크랙은 망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1986년 10월 23일, 해링은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베를린 장벽에 벽화를 그렸다. 300m 길이에 달하는 이 벽화는 노란색 배경 위에 독일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서로 얽힌 인물들을 묘사하며 동서독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해링은 1984년 앤디 워홀을 통해 만난 가수 겸 배우 그레이스 존스와도 긴밀하게 협업했다. 그는 존스가 1986년 발표한 싱글 "나는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너에게는 완벽해)(I'm Not Perfect (But I'm Perfect for You))"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의상(특히 커다란 스커트)에 그림을 그렸고, 비디오의 조감독 역할도 맡았다. 또한 파라다이스 차고에서의 라이브 공연과 존스가 출연한 1986년 영화 뱀파이어의 흡혈귀 여왕 카트리나 역할을 위해 존스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기도 했다. 보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스파다와 협력하여 존스를 위한 조각 장신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데이비드 보위의 "위드아웃 유"(1983), NYC 피치 보이스의 인생은 특별한 무언가다(1983), 말콤 맥라렌의 "오이스터를 위한 오리"(1983), 실베스터의 "너 같은 사람"(1986) 등 여러 음악가의 앨범 커버 아트를 작업했다. 1986년에는 앤디 워홀과 함께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포스터를 공동으로 디자인했으며, 이 포스터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몽트뢰-디트로이트 재즈 페스티벌에도 사용되었다.

1986년 4월, 해링은 뉴욕 소호 지역에 팝 가게(Pop Shop)를 열었다. 이 가게에서는 그의 작품이 담긴 티셔츠, 포스터, 배지, 장난감 등 다양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이 그의 예술을 쉽게 접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링 스스로도 "작품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여겨 지하철 드로잉 활동을 중단했다. 지하철 그림들이 무단으로 뜯겨나가 팔리는 문제도 활동 중단의 한 이유였다.

팝 샵 개점은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예술의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링은 "몇 점만 그려서 가격을 올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내 가게는 지하철역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이며,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사이의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라고 반박하며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했다. 팝 샵은 해링 사후인 200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수익금은 그가 설립한 키스 해링 재단에 기부되어 AIDS 관련 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팝 샵의 등장을 기점으로 그의 작품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반대, AIDS 인식 개선, 크랙 코카인 유행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4. 후기 (1987–1990)

1987년 HIV 진단을 받았고, 1988년 가을에는 AIDS 진단을 받았다.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였던 해링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안전한 성관계를 옹호했으며,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자신의 병(AIDS)에 대해 이야기하고 AIDS 관련 활동과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87년 해링은 헬싱키, 파리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미국 예술가 10주년 기념 전시회 참석차 파리에 머무는 동안, 해링과 그의 파트너 후안 리베라(Juan Rivera)는 네케르 어린이 병원의 높이 약 26.82m 외부 계단에 타워 벽화를 그렸다. 벨기에 갤러리 121 전시회 기간 동안 앤트워프 현대미술관에 벽화를 그렸다. 같은 해 예술가 로저 넬렌스(Roger Nellens)의 초청으로 그의 크노케 카지노에 벽화를 그렸고, 작업 기간 동안 니키 드 생팔이 디자인한 넬렌스 소유의 게스트하우스 르 드라곤(Le Dragon)에 머물며 내부 발코니와 계단에 프레스코 벽화를 남겼다.

또한 안드레 헬러루나 루나(1987년 6-8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유명 현대 미술가들이 디자인한 놀이기구가 있는 임시 놀이공원)를 위해 회전목마를 디자인했다. 1987년 8월, 웨스트 빌리지의 카마인 스트리트 레크리에이션 센터 야외 수영장에 대형 벽화를 그렸다. 1987년 9월, 블룸필드 힐스의 크랜브룩 미술관에 임시 벽화 디트로이트 노츠(Detroit Notes)를 그렸다. 이 작품은 해링 스타일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미술관 측은 그의 AIDS 진단을 예고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해링은 자선 앨범 매우 특별한 크리스마스 (앨범)와 런-DMC의 싱글 "홀리스의 크리스마스" 표지를 디자인했으며, 수익금은 스페셜 올림픽에 기부되었다. 같은 해 필라델피아 포인트 브리즈 지역에 미국 헌법 20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 젊은이들 벽화를 그렸다. 원래 임시 작품이었으나 계획된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공원이 되었고, 2013년 복원되어 현재 원래 위치에 남아있는 해링의 가장 오래된 공공 벽화이다.

1988년, 샤토 무통 로쉴드 와인 라벨 디자인에 참여한 소수의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다. 1988년 1월 일본 도쿄에 팝 샵(Pop Shop)을 열었으나 같은 해 여름 문을 닫았다. 1988년 4월, 백악관 사우스 론에서 열린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를 위해 벽화를 그렸고, 이 작품은 워싱턴 D.C.의 어린이 국립 병원에 기증되었다. 여름에는 그림과 조각품 전시회를 위해 뒤셀도르프로 갔으며, 12월에는 토니 샤프라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해링은 이 전시를 자신의 건강 상태와 친구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의 죽음 이후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중요한 전시회로 여겼다.

1989년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여 AIDS 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AIDS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힘썼다. 1989년 2월, AIDS 확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바르셀로나 차이나타운 지역에 우리 모두 함께 에이즈를 막을 수 있습니다 벽화를 그렸다.

우리 모두 함께 에이즈를 막을 수 있습니다 (1989)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근처 벽화, 스페인
우리 모두 함께 에이즈를 막을 수 있습니다 (1989)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근처 벽화, 스페인

1989년 5월, 시카고를 방문하여 그랜트 파크 (시카고)에서 약 500명의 학생들과 함께 약 146.30m 길이의 벽화를 그렸다. 같은 시기 시카고의 러시 대학교 의료 센터에 두 점, 웰스 커뮤니티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한 점의 벽화가 더 그려졌다. 웰스 고등학교 벽화는 해링 도착 전 지역 교사와 학생들이 디자인 템플릿을 바탕으로 완성했고, 해링이 최종 승인 후 서명했다. 스톤월 항쟁 20주년 기념 전시회 더 센터 쇼(The Center Show)를 위해 뉴욕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센터의 초청으로 1989년 5월 2층 남자 화장실에 옛날 옛날에…(Once Upon a Time...) 벽화를 그렸다. 1989년 6월, 피사의 산탄토니오 아바테 교회 후면 벽에 그의 마지막 주요 공공 벽화 작품 중 하나인 투토몬도(Tuttomondo)를 그렸다.

"악을 듣지 말라, 악을 보지 말라, 악을 말하지 말라"는 주제를 다룬 반항적인 수많은 원인(Rebel with Many Causes)(1989)을 통해 AIDS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외면을 비판했다. 1989년 11월 마지막 주, "예술 없는 날" 행사를 위해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는 12월 1일 제2회 세계 에이즈의 날에 맞춰 공개되었으며, 해링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내 삶은 나의 예술이며, 서로 얽혀 있다. AIDS가 내 삶의 현실이 되자, 그것은 내 그림의 주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삶에 더 영향을 미칠수록 내 작품에도 더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했다. 패서디나 작업 후 애틀랜타로 이동하여 12월 2일 사진작가 허브 리츠와의 공동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1990년 뒤셀도르프 한스 마이어 갤러리에서 BMW Z1 자동차에 그림을 그렸다. 1990년 1월 파리 갤러리 1900-2000/라 갤러리 드 포슈(Galerie 1900-2000/La Galerie de Poche)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전시회 키스 해링 1983에 참석했다.

1990년 2월 16일, 그리니치 빌리지의 라과르디아 플레이스 아파트에서 AIDS 관련 합병증으로 31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고향 쿠츠타운 (펜실베이니아주) 남쪽 바우어스 근처 들판에 뿌려졌다. 사망 3개월 후인 5월 4일(그의 32번째 생일이었을 날), AIDS 환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뉴욕 게이 예술가들을 다룬 로자 폰 프라운하임(Rosa von Praunheim)의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 = 죽음 (영화)(1990)에 사후 출연한 모습이 공개되었다.

3. 작품 세계

해링은 다른 낙서화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을 거리와 지하철에서 벗어나 티셔츠, 장난감, 공익광고, 포스터, 벽화 등으로 제작하고 상업화했다. 그는 탄생과 죽음, 사랑, 전쟁과 평화 등의 보편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표현하고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교육,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 당대의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작품의 대중적인 인기 확보로 이어졌다.

1980년 뉴욕 지하철역의 비어 있는 광고판에 검은 종이를 붙이고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지하철 드로잉 활동을 시작했다. 간결한 선으로 리드미컬하게 표현된 그의 그림들은 뉴욕 시민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해링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상징인 '빛나는 아기(Radiant Baby)' 태그도 이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기 예수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였다.

198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벽화를 그리는 해링
198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벽화를 그리는 해링

1986년 4월, 소호에 자신의 작품이 담긴 상품을 판매하는 팝 샵(Pop Shop)을 열었다. 이는 해링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해링은 "작품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지하철 드로잉 활동을 중단했는데, 사람들이 그의 지하철 그림을 떼어다 팔기 시작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일부에서는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고 비판했지만, 해링은 "팝 샵은 지하철역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이며,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예술의 대중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팝 샵은 해링 사후인 2005년까지 운영되었고, 수익금은 키스 해링 재단에 기부되었다.

팝 샵 개설 무렵부터 그의 작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반대, AIDS 인식 제고, 크랙 코카인 유행과 같은 더욱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주제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100회가 넘는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전 세계 도시의 병원, 고아원, 어린이집 등 공공장소에 50개 이상의 벽화를 남겼다. 그는 뉴욕, 시드니, 멜버른, 리우데자네이루, 암스테르담, 파리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벽화를 제작했으며, 베를린 장벽체크포인트 찰리에도 그림을 그렸다.

공개적인 동성애자였던 해링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안전한 성관계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1987년 HIV 양성 판정을 받았고, 1988년 가을 AIDS 진단을 받았다. 이후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에이즈 관련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 '침묵 = 죽음(Silence = Death)' 등을 제작했으며, ACT UP과 같은 에이즈 퇴치 운동 단체를 지지하고 Act Against AIDS(AAA)의 첫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해링의 작품 세계는 윌리엄 버로우즈, 브라이언 기신의 문학 작품, 동시대 예술가인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조지 콘도, 엔젤 "LA II" 오티즈, 그리고 젊은 시절 경험했던 예수 운동과 쓰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다양한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예수 운동의 영향으로 종교적 상징과 반물질주의, 반권위주의적 태도가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1989년 이탈리아 피사의 산탄토니오 아바테 교회 벽에 그린 벽화 '투토몬도(Tuttomondo)'이다. 1990년 2월 16일, 해링은 AIDS 관련 합병증으로 31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3.1. 주요 작품

* 빛나는 아기 (The Radiant Baby영어)
* 크랙은 망친다 (Crack is Wack영어)
* 우리 모두 함께 에이즈를 막을 수 있습니다 (Todos Juntos Podemos Parar el SIDA스페인어)
* 투토몬도 (Tuttomondo이탈리아어)

이탈리아 피사의 산탄토니오 아바테 교회(Sant'Antonio Abate)에 있는 벽화 투토몬도 (1989)
이탈리아 피사의 산탄토니오 아바테 교회(Sant'Antonio Abate)에 있는 벽화 투토몬도 (1989)

* 침묵 = 죽음 (Silence = Death영어)

4. 친구 및 동료

뉴욕으로 이주하여 뉴욕 시각 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한 직후, 룸메이트였던 케니 샤프, 사만다 맥이웬, 존 섹스 등 같은 반 친구들과 친분을 맺었다. 또한 캠퍼스 주변에 SAMO 그래피티를 그리던 장 미셸 바스키아와도 친구가 되었다. 1988년 바스키아가 사망하자, 해링은 보그(Vogue) 잡지에 그의 부고 기사를 기고했으며, 《장 미셸 바스키아를 위한 왕관 더미》(A Pile of Crowns for Jean-Michel Basquiat, 1988)라는 그림으로 그를 기렸다.

1979년에는 이스트 빌리지에서 사진가 증광치를 만나 친구가 되었으며, 증광치는 해링의 활동 기간 대부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1980년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엔젤 "LA II" 오르티즈를 만나 협업을 시작했다. 해링은 오르티즈에 대해 "우리는 즉시 친해졌습니다. 마치 평생 알고 지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제게 마치 어린 동생과 같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오르티즈의 예술은 해링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미술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해링 사후에도 오르티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인정과 대가를 받지 못했으나, 키스 해링 재단과 미술계는 그의 공헌을 재평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0년대 초에는 아티스트 팹 파이브 프레디, 퓨처 2000, 가수 마돈나 등과 친구가 되었다. 1982년에는 앤디 워홀과 친구가 되었으며, 워홀은 해링의 멘토 역할을 했다. 해링은 1986년 워홀을 주제로 한 《앤디 마우스》(Andy Mouse)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워홀은 1983년 해링과 그의 파트너 후안 두보스의 초상화를 그렸다. 워홀을 통해 그레이스 존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오노 요코 등과도 친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조지 콘도,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 클로드 피카소 등과 친분을 맺었다.

해링은 1980년대 초 액세서리 디자이너 바비 브레슬라우를 만났다. 해링은 브레슬라우에게서 조언을 구했고 그를 "유대인 어머니"라고 불렀다. 브레슬라우는 해링을 그의 친구 래리 레번, 파라다이스 가라지 레지던트 DJ에 소개했다. 브레슬라우는 해링이 가죽을 사용하도록 영감을 주었고, 1987년 사망할 때까지 팝샵(Pop Shop)의 매니저였다.

미술상 이브 아르망은 해링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해링은 그의 딸의 대부이기도 했다. 해링은 아르망을 "아마도 미술계에서 내가 가진 최고의 지지자"라고 평가했다. 아르망은 1989년 스페인에서 해링을 만나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88년에는 질 바스케즈를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해링은 사망 전 자신의 이름을 딴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면서, 1984년부터 조수이자 스튜디오 매니저로 일했던 줄리아 그뤼엔을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현재 바스케즈는 해링의 브로드웨이 스튜디오에 기반을 둔 재단의 이사장이다.

그는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열렬한 팬(데드헤드)이기도 했다. 해링의 연인은 후안 두보스였다.

5. 유산

1989년, 키스 해링은 에이즈(AIDS) 단체와 아동 프로그램에 자금과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해 키스 해링 재단(eng)을 설립했다. 재단은 해링의 뜻을 이어받아 불우 청소년 교육과 HIV/AIDS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비영리 단체에 보조금과 자금을 지원하며 그의 유산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을 공유하고 삶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재단은 전시회, 교육 프로그램, 출판물 자금 지원을 통해 예술 및 교육 기관도 지원한다. 2010년에는 뉴욕 에이즈 서비스 센터(AIDS Service Center NYC)와 협력하여 할렘(Harlem) 지역에 HIV 동료 교육과 의료 서비스 접근을 제공하는 키스 해링 ASC 할렘(Harlem) 센터를 열었다.

마돈나는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1990년 블론드 앰비션 월드 투어의 미국 마지막 공연을 해링 추모 자선 콘서트로 열었다. 티켓 판매 수익 300 이상은 amfAR에 기부되었다. 이 행사는 1991년 영화 마돈나: 트루스 오어 데어에도 기록되었다. 해링의 작품은 AIDS 인식 제고와 기금 마련을 위한 레드 핫 오가니제이션의 여러 활동, 특히 레드 핫 + 블루(1990)와 레드 핫 + 댄스(1992) 앨범에 사용되었으며, 후자 앨범 표지에도 그의 작품이 실렸다. 그의 예술 작품은 전 세계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 1991년, 해링은 그의 유명한 아기 아이콘이 새겨진 천 패널과 함께 AIDS 기념 퀼트에 기념되었다. 이 패널은 해링의 이모와 어머니가 직접 제작했다. 팀 핀은 그의 앨범 비포 & 애프터(1993)에 해링을 기리는 곡 "Hit The Ground Running"을 수록했다.

2006년, 해링은 이퀄리티 포럼에서 LGBT 역사의 달의 31명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8년에는 해링을 기리는 풍선이 메이시스 땡스기빙 퍼레이드에 등장했다. 이는 퍼레이드 풍선을 만들고 싶어 했던 그의 생전 꿈이 사후 18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2012년 5월 4일, 그의 54번째 생일에 구글은 구글 두들로 그를 기렸다. 2014년, 해링은 샌프란시스코 캐스트로 지역에 위치한 명예의 거리인 레인보우 오너 워크의 초대 수상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거리는 "자신의 분야에 중요한 공헌을 한" LGBTQ 인물들을 기린다. 2019년 6월, 해링은 뉴욕시 스톤월 인의 스톤월 국립 기념물(SNM) 내 전국 LGBTQ 명예의 벽에 헌액된 최초의 50명의 미국 "선구자, 개척자, 영웅"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는 LGBTQ 권리와 역사에 헌정된 최초의 미국 국립 기념물에서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졌다. 2024년, 그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쿠츠타운에 해링을 기리는 역사적 표지판이 세워졌다.

베를린의 복서 (1987) 조각
베를린의 복서 (1987) 조각

키스 해링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러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문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유산은 아디다스, 라코스테, 유니클로, 슈프림, 리복, 텐가, 코치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에 활용되었다.

이탈리아 작곡가 로렌초 페레로는 DJ 니콜라 귀두치와 함께 해링을 주제로 한 음악 작품 eng을 작곡 및 공연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음악과 클래식 샘플, 합성 사운드를 결합하여 2005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키스 해링 쇼"에서 선보였다. 2008년에는 크리스티나 클라우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eng가 개봉되어 친구, 동료, 갤러리스트들의 인터뷰와 기록 영상을 통해 그의 유산을 조명했다. 마돈나는 2008-2009년 스티키 앤 스윗 투어에서 "인투 더 그루브" 리믹스 공연 중 해링의 작품을 애니메이션 배경 영상으로 사용했다. 2011년, 라벤스부르거는 해링의 작품 32개를 담은 32,256조각짜리 퍼즐 eng를 출시했는데, 가로 약 5.18m, 세로 약 1.83m 크기에 무게는 약 19.05kg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퍼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그의 여동생 케이 해링이 아동 도서 eng을 출간했다. 2020년에는 BBC TwoPBS아메리칸 마스터스 시리즈를 통해 1989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eng가 방영되었다. 2021년에는 폴라로이드가 그의 시그니처 모티프를 활용한 카메라와 필름을 출시하며 그를 기렸다.

6. 관련 서적 및 논문

* 황요섭, 〈키스해링(Keith Haring)의 작품에 나타난 대중성에 관한 연구 : 그라피티 일러스트레이션(Graffiti Illustration) 요소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2년 2월
* 임수진, 〈만화적 속성을 통해 본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품〉, 《미술사학보》 29, 2007년
* 김지영, 〈미술의 공공성과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사회적 개입에 관한 연구〉, 《미술 이론과 현장》 제8호, 2009년
* 조치훈, 〈그래피티 아트의 조형적 근거에 관하여 - 키스 해링의 작품을 중심으로 -〉,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27,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2011년
* 강향미,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낙서화에 나타난 풍자성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학위논문, 2011년 8월
* 알렉산드라 콜로사 지음, 김율 옮김, 《키스 해링》, 마로니에북스, 2022년
* 배리 블린더맨, 《키스 해링: 미래의 원시 시대》 (Keith Haring: Future Primeval영어),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미술관, 1990년. ISBN 978-1-55859-378-7
* 존 그루엔, 《키스 해링: 공식 전기》 (Keith Haring: The Authorized Biography영어), 사이먼 & 슈스터, 1991년. ISBN 978-0-671-78150-7
* 젠 콴치 촬영, 《키스 헤링 지하철 아트》 (キース・ヘリング 地下鉄アート일본어), 카와데쇼보 신샤, 1986년. ISBN 4-309-26081-0. (2012년 현재 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