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성지
1. 개요
미리내 성지는 한국 고유어로 은하수를 뜻하며,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1846년 김대건 신부와 1866년 이윤일의 시신이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72년부터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어 김대건 신부 동상, 피정의 집 등이 완공되었다. 1980년대와 1991년에 걸쳐 광장 확장, 14처 조각 설치,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 건립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되었다. 현재 경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다른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으며, 103위 시성기념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비골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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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 -
이벽
이벽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한국 천주교회 개척자로, 천주교 서적을 통해 교리를 독학하고 권철신, 정약용 등과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전교 활동을 펼치다 체포 후 사망했으며, 순교 여부는 논란이 있으나 한국 천주교회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한국의 기독교 -
강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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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
김건순
김건순은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이며 정약종과 함께 《성교전서》를 저술하던 중 황사영에 의해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은 부산광역시에 위치하며,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오륜대 수도원 설립을 기념하여 1982년 개관, 한국 천주교회사 관련 유물 및 전시를 제공하고 2009년 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
대한민국의 역사 -
색동회
색동회는 1923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창립되어 어린이들에게 다채로운 꿈과 희망을 주고자 아동 문화 운동을 펼친 단체로, 잡지 발간, 어린이날 제정, 행사 개최 등을 통해 아동문학과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광복 후 활동을 재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며 아동 교육에 공헌한 사람들을 시상하는 색동회상을 제정했다. -
대한민국의 역사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2. 명칭
미리내는 한국의 고유어(순 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이다. 이 성지에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한자로 미리천(美里川)으로 표기하며, 이를 산촌의 이름을 따서 미산리라고도 하였다.
3. 역사
미리내 성지는 19세기 초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 여러 차례의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1883년 공소가 설치되었고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은 197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80년 경당 옆 광장 확장, 14처 조각 설치, 1987년-1989년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 건립 등이 이루어졌다.
3.1. 초기 박해와 신앙 공동체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마을을 이루어 살았으며,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윤일(요한)의 시신이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3.2. 김대건 신부와 이윤일의 순교
미리내 성지는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윤일(요한)의 시신이 안장된 곳으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경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과 여섯 분의 묘소가 있다. 김대건 신부의 다른 유해는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 묘역에는 한국 천주교 3대 주교인 페레올 주교와 미리내의 첫 주임신부 강도영 마르코 신부, 3대 최문식 베드로 신부 등의 유해가 석관 속에 안치되어 있다.
1991년 완공된 103위 시성기념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비골(종아리뼈)이 모셔져 있으며, 2층에는 박해 당시 사용되었던 성구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3.3. 성지 발전 과정
1883년 공소가 설치되었다가 3년 뒤인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은 1972년부터 시작되었다. 성모 성심 수도회와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가 이곳에 자리 잡았으며, 주차장 시설, 김대건 신부 동상, 피정의 집 등이 완공되었다.
1980년에는 경당 옆에 3만 평 규모로 광장을 확장하고, 미리내 성당에서 경당까지 길 옆에 14처 조각을 세웠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2년에 걸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건립되었다.
3.4. 유해 안치
경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이 안치되어 있고, 페레올 주교, 강도영 마르코 신부, 최문식 베드로 신부 등 여섯 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다른 유해는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1991년에 완공된 103위 시성기념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비골(종아리뼈)이 모셔져 있고, 2층에는 박해 당시의 성구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4.1. 103위 시성기념성당
1991년에 103위 시성기념성당이 완공되었으며,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비골, 종아리뼈)가 모셔져 있다. 2층에는 박해 당시의 성구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4.2. 경당
경당에는 현재 여섯 분의 묘소와 함께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이 안치되어 있다. 다른 유해는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묘역에는 한국 천주교의 3대 주교인 페레올 주교와 미리내의 첫 주임신부인 강도영 마르코 신부, 3대 최문식 베드로 신부 등의 유해가 석관 속에 안치되어 있다.